'자기다움 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76건

  1. 2019.03.13 아로마의 '기준'을 만들다 <아로마시스> 한은혜 대표
  2. 2019.01.28 아이방 인테리어를 온-오프라인으로 통합하다 <우리아이방> 방민선 대표
  3. 2019.01.28 웹사이트에도 장인정신이 있다 - 웹에이전시 <오렌지코드> 박정미 대표
  4. 2018.01.20 1%의 디테일로 패션을 완성하다 - 누로 조재선 대표
  5. 2018.01.19 전세계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플랫폼 케이오알이 최희정 대표
  6. 2017.07.03 여자 유재석을 꿈꾸는 개그우먼 조승희를 만나다
  7. 2017.04.10 Be Origin 인터뷰 _ 아이디어디렉터 안다비를 만나다
  8. 2016.12.06 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행복한 의료인이 되는길 탁종석 간호사]
  9. 2016.11.02 박현진의 인터뷰 Be Origin _ 청년목수 김동혁을 만나다
  10. 2016.07.31 [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비건크리에이터 박솔지 대표를 만나다
  11. 2016.07.12 [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스타일을 조각하는 Style PD 이진영 대표를 만나다
  12. 2015.07.23 이 남자의 마이웨이, 35년간 기자로 살아온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大記者)
  13. 2015.04.26 춘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산토리니의 맛을 책임지는 남자, 한만재 셰프를 만나다
  14. 2015.04.03 생과 사를 묵묵히 돌파하는 남자,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를 만나다 by퍼스널브랜드PD 박현진 (7)
  15. 2013.12.18 [저자인터뷰] '이완혁명' 이세구 역자
  16. 2013.10.07 [저자 인터뷰] '외로울 땐 카메라를 들어라' 백승휴 저자편
  17. 2013.09.22 [저자 인터뷰] '두 자녀를 잘 키운 삼숙씨의 이야기' 정삼숙 저자 편
  18. 2013.08.19 [저자 인터뷰] '느리게 살아서 즐거운 나날들' 원소영 저자 편
  19. 2013.08.13 [저자 인터뷰] '롤플레이 비밀노트' 정수연 저자 편 (2)
  20. 2013.08.13 [저자 인터뷰] '영웅백범' 홍원식 저자 편

문을 열자 상쾌한 향이 맞이한다. 사무실 곳곳에 스며든 천연 아로마 향이다.

아로마는 근육을 이완하고 스트레스를 낮추는데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인공 향이 들어가지 않은 천연 아로마 오일이 가득한 공간에 있으니 두뇌와 호흡기가 맑아지는 듯했다.

눈을 감으면 허브가 가득한 들판에 조용히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로마오일과 천연원료 전문샵을 운영하는 <아로마시스> 한은혜 대표를 만났다.

Q. 사업 소개 간단히 부탁합니다.

아로마 오일을 베이스로 한 제품군들을 개발하고 있고요, 화장품 원료가 되는 천연원료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병풀추출물, 브로콜리 추출 원액, 히알루론산 등의 원료뿐 아니라 호호바 오일은 화장품으로 인증받아서 패키징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그리고 좋은 아로마를 직수입해서 공급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Q. 아로마라는 흔치 않은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시게 된 스토리가 있다고 들었어요.

이십 대에 첫 직장생활을 한 곳이 아로마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영업직이었어요.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는데 스트레스 때문인지 근육 긴장과 떨림이 있는 신경계에 질병이 왔어요. 치료방법을 찾다 보니 아로마 향을 맡았을 때 근육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었던 게 생각났어요. 당장 아로마테라피스트 공부를 6개월 정도 하고 서울로 이전을 했어요.

다시 의류 쇼핑몰에 취업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또 아픈 거에요.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저는 몸이 아플 때 근육통 질환으로 오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아로마를 찾게 되더라고요. 아로마로 근육통을 치료하고 일하다 아프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아로마로 사업을 하며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지요.

요즘 세상에 정신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의 굳어진 정신과 근육 이완에 아로마만큼 효과적인 자연 치료제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서울에 아로마를 취급하는 회사를 찾아 무작정 올라왔어요. 그 회사가 지금 거래처가 되었지요. 천연원료 취급 회사를 전략적으로 찾아다니면서 경력을 쌓았어요.

아로마시스 한은혜 대표


Q. 아로마로 아이템을 정착하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아로마를 좋아했지만, 첫 사업에서는 싱글을 대상으로 건강 간편식을 판매하는 아이템을 잡았어요. 자취를 오래 하기도 했고 혼자 먹는 식품에 관심이 높아서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저는 이 분야에 연고도 없고 거래처도 없고 하니 일 년가량 고군분투하다 손들었죠. 그리고 내가 잘 아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 내렸어요.

장사는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저에게 비빌 언덕은 그동안 다녔던 회사였어요. 그분들에게 원료도 공급받고 콜라보로 개발을 하기도 하면서 브랜딩을 만들고 있어요.

Q. <아로마의 기준을 만들다> 회사의 슬로건이 인상적이네요. 어떤 의미인가요?

아로마를 공부하다 보니 아로마 시장이 성장을 못 한 원인이 바로 기준이 없어서란 결론을 내렸어요. 사는 사람도 기준이 없고, 판매자도 기준이 없어요.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게 왜 좋은지 설명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제품의 질이나 가격의 기준을 세우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음식은 먹으면 맛을 알 수 있지만, 향은 모호하거든요. 저는 아로마를 단순히 방향 기능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근육통 완화나 스트레스 감소 효과 등의 치료 효과로 접근하려 합니다. 스트레스와 근육통이 있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아로마를 선호해요. 그런 분들은 또 기막히게 질 좋은 아로마를 선별해내시더라고요.

진실된 상품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게 가격이든 물건이든. 저렴한 걸 싸게 사면 좋겠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싼걸 원하기 보다는 좋은걸 싸게 사고 싶은건잖아요. 좋은 제품은 싸지 않아요. 저는 적당한 상품을 싸게 팔기 보다는 더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팔고 싶어요. 그게 표준이 아닐까요. 비싸서 못쓰고, 싼데 후진거 빼고요. 이 정도는 나에게 투자할 수 있어. 정도의 기준을 만들고 싶어요. 원래 중간이 어려워요.

퀄리티와 가격에 대해 예를 들면요, 우리가 흔히 아는 라벤더는 원산지와 계절에 따라 질이 달라요. 꽃이 한 곳에서 핀다고 해도 다 똑같지 않거든요. 상중하 등급이 생겨요. 라벤더는 10월에 폈다 지는 꽃이에요. 모르는 사람은 9월에 수입 해요. 그럼 이미 일년이 지난 재료가 되는 거에요. 그런 경우는 개봉 후 향이 빨리 날아가요. 아로마 판매자는 이런 지식을 갖고 퀄리티와 가격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이미지 향에 익숙한 것도 있어요. 라벤더는 우리가 떠올리기에 달콤한 꽃향기인데 실제 라벤더 향은 풀냄새가 많이 나요. 라벤더를 접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향이 아니라고 하시는데요, 사실 저렴할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그 향이 나요. 음식처럼 조미료를 써서 맛을 내는 거죠. 일종의 첨가물 같은 거에요. 좋지는 않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은 또 없는 거죠. 기준이 없으니까요.

아로마 관련 협회나 모임에 가서 전문가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저는 사업가니까 전문성 키우기보다 사업가로서 활동에 집중했는데요, 브랜드를 만들려다 보니까 전문성이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제가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으니 제가 전문성을 키우면서 전문가들과 교류해야겠다 싶어요.

저는 좋은 아로마의 기준을 만드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아로마 오일이 기본이 되어야 샴푸, 디퓨저, 방향제 등으로 파생상품이 나와요.

아로마 오일을 베이스로한 다양한 제품군


Q. 북부창업보육센터를 졸업한 지 반년 정도 되었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열정적인 삼백 명의 사업자가 있는데 그중에 브랜드로 넘어간 사람은 오십 명도 안된대요. 브랜드 중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은 더 희박하겠죠. 저는 이제 브랜드로 넘어가려고 하는 단계예요. 그래서 인력이건 제품개발이건 수익이 나는 대로 재투자하고 있어요.

첫째로 인력을 충원했어요.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사업은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고 그냥 가는 거라는 거였어요. 그걸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재능을 파는 프리랜서인 것 같아요.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한다는건 혼자 하기 무리지요. 인력을 충원하고 가장 크게 바뀐점이 시스템이 생겼어요. 재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리하다보니 훨씬 효율이 생겼고요. 하루에 물건이 몇 개 나가고 몇 개가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광고비 책정이 가능해졌어요. 택배출고에 대한 정리도 되서 연말에 택배비 정산을 할때 정확히 맞아요. 낭비할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어요. 재고파악을 못해서 과잉 생산을 하고 결국 못팔고 폐기처분한 경험도 있어서,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계기도 되었어요.

둘째로는 신뢰할 만한 제조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요. 기존엔 원료를 소분 했다면 이번에는 화장품 제조회사에 맡겼어요. 1/4 가격에 원료를 살수 있었지만 과감히 전문성을 갖고 신뢰할만한 파트너를 선택했어요.

Q. 신뢰할 만한 제조사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기준이 있나요?

기준은 결국 문서더라고요. 저렴한 제품을 파는 분들은 그런 거 없다고 하고요. 심지어 생산 일자도 안 적혀있었어요. 좋은회사는 문서가 존재해요. 이 상품이 어디에서 왔고 몇 월 며칠에 생산되었고 무슨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 회사는 생산 일자도 정확하고 제품도 깨끗해요. 발품을 뛰면서 좋은 거래처를 찾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직거래하는데 원룟값이 더 올라갔어요. 손님들은 단번에 알지 못할지라도 서서히 알아주실 거라 믿어요.

Q. 화장품 시장은 치열한 시장인데 마케팅은 어떻게 하세요?

광고비를 포함해서 제품가격을 책정해요. 이것도 몇 번의 뼈아픈 시행착오 끝에 생긴 노하우에요. 만 개를 팔았는데 돈이 안 남았어요. 뭐가 문제일까? 새는 돈이 정말 많았어요. 상품가의 35%가 용기비용이었으니 얼마나 몰랐겠어요.

사업자는 이윤이 남으면 재투자를 해야 해요. 광고비를 남겨놓지 않으면 재투자를 할 수 없어요. 정말 중요한 게 아무리 물건을 잘 만들어도 노출이 안되면 팔 수가 없어요. 모든 기준이 노출이에요. 사업자들에게 홍보,마케팅 비용을 얼마 쓰고 있냐라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저랑 같은 카테고리 제품으로 1등 한 업체가 3억을 판매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 정성으로 좋게 만들어낸 물건이 단지 노출이 안 돼서 못 팔았다는 것 속이 엄청 쓰렸어요. 제 제품은 팔 수가 없으니 경쟁사를 보면서 가격정책을 관찰하게 되었죠. 무조건 가격이 싸면 다 잘 파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3배의 가격으로 파는 거에요. 광고비를 2달 써서 노출을 해놓은 거에요. 광고비가 하루 백만 원은 나가요. 일등자리를 안 놓쳐요. 3억을 팔면 한 달에 광고비 3천만 원을 썼어도 마케팅비가 10%라고 해도 3억을 바라고 10%의 광고비를 쓴 거라면 성공한 거죠. 이런 시스템이 보이는 거에요. 경쟁자가 없으면 싸게 팔고 경쟁자가 생기면 노출광고비를 쓰고 제품비용을 올려요.

판매한 돈을 투자한다. 내가 정한 일정한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 당연한 진리를 예전에 몰랐어요. 한번 크게 좌절을 겪고서 알았어요. 그 노출 위치에만 가면 돈을 벌 수 있는걸 알아요. 그런데 한순간 판단 실수로 팔 수가 없었어요. 한이 되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블로그 체험단을 활용해요. 주마다 뽑아서 한 달에 10건 정도의 후기를 쌓고요 그렇게 일 년이 지나면 120건의 후기가 쌓이면서 역사가 생기겠죠.

그래서 지금 와신상담 하고 있습니다. 원료비가 3-4배 늘었도 제품의 질을 높이고요, 고객들도 아시는지 재구매율이 높아요. 2-3년 내에 이 기회가 또 찾아올 때 제가 놓칠까요? 잡겠죠.

Q. 아로마시스만의 특징은 또 어떤게 있을까요?

패키지에도 신경쓰고 있어요. 튼튼한 용기를 고르고, 밑면에 스티커 하나를 붙여도 홀로그램으로 제작해서 붙여요. 손님이 제품을 받았을 때 감동하면 좋겠어요. 일러스트레이터 고용해서 아로마시스의 일러스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기존 아로마 패키지는 상자형이에요. 그런데 별다른 설명이 없어요. 결국 손님들은 상자는 버리고 제품사용법을 문의 하게 되요.

제품패키지는 제품의 보호도 있지만 자세한 가이드라인이 포함되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품 사용설명서를 작품처럼 만들고 싶어요. 설명서가 작품처럼 예쁘면 보관하고 싶어질테고 그러면 좀더 아로마에 대해 알게되겠죠. 시즌별 프린트 작품을 모으고 싶은 욕망이 들도록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요.


제품사용설명이 구체적으로 명기된 패키지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다



Q. 꾸준히 아이템을 발굴하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저는 데이터 분석을 정말 열심히 해요. 그 데이터가 없으면 그 아이템으로는 시작하지 않아요. 호호바 오일을 선정하고 제품을 개발하게 된 것도 소비자 니즈를 분석해 보고 가능성이 있어서였어요. 일등 업체가 연간 3-4억의 매출을 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시장을 잡고 싶은 거에요. 아로마 오일은 최소 5억, 호호바는 최소 3억 시장이라는 걸 봤고 확신이 생겼어요. 그게 진실이기 때문에 광고비를 쓰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거에요.

반짝 유행하고 질 상품이 아니고 지속적인 아이템을 찾아요. 또 아로마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리얼데이터를 본 것도 컸어요. 그리고 제가 아팠기 때문에 제품의 퀄리티와 질을 민감하게 구분해 낼 수 있는 안목도 있고요.




Q. 사업을 하면서 꼭 지켰던 신조가 있다면 공유해주시겠어요?

진실성이요. 제가 제품에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사업이에요. 초기에 싱글들을 위한 건강식 사업을 할 때 야채즙도 판매해봤어요. 관련해서 상품 공부를 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갈아놓은 즙은 비타민이 다 파괴되고 과당만 남는다는 거에요. 그런 정보가 그 당시에는 미비했어요. 제품은 잘 팔리고 있었고 저는 그냥 팔면 되는데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거에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실성에 어긋나는 거였어요. 그 아이템을 끝까지 끌어갈 수 있는 확신이 없어서 중단했어요. 요즘 해독주스 사업이 많이 감소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실성은 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 같아요.

Q. 대표님에게 북부 창업보육센터에서 있었던 시간은 어떤 의미였나요?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된 소중한 기회를 준 곳이죠. 멘토링과 교육을 받게 해주시고, 또 멋진 대표님들과의 인연도 이어올 수 있었어요. 특히 사업은 데이터와 숫자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혜를 주신 정종실 소장님과의 인연도 북부에서 만들어진거네요. 정소장님은 제가 발굴하는 아이템에 대해 늘 '근거'를 대라고 했어요.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핵심을 알려주셨어요. 저는 그렇게 아로마라는 아이템의 가능성을 찾았고, 잘됐고, 한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고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전략과 힘이 있는 거에요. 시장 최초의 선두가 성공하기는 어려워요. 우리 같은 소규모 사업자들은 잘 팔리는 제품을 보완해서 바꾸는 거죠.

Q. 대표님에게 사업은 어떤 의미에요?

나의 전부에요. 정말 하고 싶었고 조금씩 되어가니깐 기뻐요. 성장은 더뎌서 답답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재미있어요. 제가 기획해서 팔면 또 팔리고요. 그 재미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Q. 사업 선배로서 어떤 보탬이 될만한 말을 해준다면요?

혼자 할 생각 하지 마라!! 백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아요. 그걸 잘 모르는 창업자들이 많아요. 특히 여성 창업자들이 그래요. 이 말도 막막할 순 있어요. 그래서 딱 하나 실행해볼 만한 걸 한다면 스터디 커뮤니티 활동을 추천해요. 그냥 친목 도모를 위한 모임보다는 스터디라는 목적과 목표를 갖고 교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업은 혼자 할 수 없다는걸 이치만 이해하면 사업을 끌어갈 수 있어요. 사업을 혼자 하면 망할수 밖에 없어요. 만약 아직도 제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지금까지 혼자였으면 아마 인터뷰 대신 택배 포장하고 있었을 거에요.

Q. 앞으로 계획과 포부를 공유하신다면요?

<아로마시스>의 브랜드 자사 몰을 만들려고 해요. 그리고 정부 지원금 제도를 활용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정부 지원사업은 가능성을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만큼 제힘으로 이끌어 왔으니 투자를 받으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저는 사업이 혼자서 이끌기는 어렵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투자도 받고 싶고, 함께 할 사람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어요.

사업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그 타이밍에 그걸 못 잡으면 다음으로 넘어가 버려요. 저의 다음 기회는 2019년에 몰려있어요. 꾸준히 나갈수 있는 가능성 있는 아이템을 개발해왔기 때문에 2019년이 기대됩니다.


아로마시스 온라인 쇼핑몰 바로가기 : https://smartstore.naver.com/aromasis


대화를 하는 동안 한은혜 대표에게서 신바람이 느껴졌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대한민국 아로마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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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방에 관한 아이템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방민선 대표를 만났다. 오랫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아이방 전문 인테리어 디자인 시공 전문회사인 <우리아이방>을, 아이방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아이룸데코>를 운영한다.





Q. 아이방, 인테리어 키워드로 광범위한 사업을 하시네요. 사업의 시작은 어떠셨나요?

일본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고 일도 했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케어하느라 일을 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전업주부 생활을 하면서 정말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일은 하고 싶은데 내가 사랑하는 인테리어를 하고 싶었고 인지도가 없으니 시공을 맡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온라인 시장이었어요.

엄마들은 아이를 돌봐야 하니 외부 활동에 제한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나 블로그의 온라인 소통을 하게 되는데 그 커뮤니티가 매우 크더라고요.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주부, 엄마,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 세 개 키워드의 교집합을 찾아보니 아이들 소품 중에서도 아이들 이불이었어요.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아이들 이불을 판매했어요. 지인들 인테리어를 해주고 지인들 방 시안을 무료로 제공해줬어요. 그렇게 컨텐츠를 쌓아서 신뢰를 높였고요. 15년 전에는 인터넷 쇼핑몰이 이렇게 발달하지 않았어요. 메이크샵이 처음 나오면서 무료로 정부 지원사업으로 쇼핑몰 구축해주고 교육도 받을 수 있었구요.

Q. 당시에 핫한 정보와 이슈들을 모두 활용하고 계셨네요.

갈급하면 나와요. (웃음) 내가 이걸 해야겠다 싶으면 교육이건, 지원이건 나타나더라고요. 국비 지원이 되는 집 앞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포토샵 같은 그래픽 편집 툴을 배웠어요. 당시에는 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거의 1:1로 지도받을 수 있었어요.

Q. 온라인 쇼핑몰 거의 최초의 세대네요. 운영은 잘 되었나요?

이불이 엄청 잘 팔렸어요. 이불 나르느라 고생을 좀 했어요. 그때는 택배 시스템이 지금처럼 잘 돼 있지 않았어요. 시장에 가서 제가 판매할 제품을 다 가져와서 포장한 후에 택배를 붙이러 가야 했어요. 그렇게 2년이 지나니 이불은 더는 팔지 않아도 되고, 인테리어 시공으로 최고 매출을 찍게 되었어요.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온라인 쇼핑몰로 이불 판매를 하면서 유입률을 높이고 인테리어 시공으로 잘 도약한 것 같아요.

Q. 외부에서 사업을 굉장히 잘하셨는데, 북부여성발전센터 창업보육센터와는 어떤 인연이 되었나요?

사업은 잘 되었는데 혼자 하다보니 일이 힘들었어요. 공장이 일정을 못 맞추면 곤란한 상황도 생기고요. 너무 일을 하면 한편으로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해외로 가족이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죠. 몇 년 후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는데 다시 일이 하고 싶더라고요. 당현천 산책을 하다가 북부 창업보육실을 발견했어요. 알아보니 입주 기업을 구하더라고요. 그때 막 면접 보는 일정이어서 무조건 지원했어요.

면접 볼 때 면접관들이 '이미 경력이 있는 분인데 굳이 보육실에 들어올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제가 창고 구석이라도 달라고 했어요. 그 갈급함이면 뭘 해도 될 거라며 합격시켜주셨어요.


인테리어를 하면서 집에 대한 관심이 커져 경매로 낙찰받은 집을 고쳐서 재판매 하는 업으로 확대돼...




Q. <우리아이방> 시즌2가 되었네요.

공백기가 4년 정도 되었는데 그새 시장이 많이 바뀌었어요. 인테리어 사업을 다시 해도 될까 싶은 고민도 있었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관심이 계속 있었던 건 결국 '집'이더라고요. 6개월 동안 경매를 배웠어요. 그리고 실제 투자하고 수익률 내면서 1년 열심히 했어요.

집을 선택해도 일부러 허름한 집을 낙찰받았어요. 그리고 제가 인테리어를 해서 고쳤어요. 제가 낙찰받은 집을 제가 디자인해서 새롭게 만드는 일이 여러모로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지금껏 한 사업 중에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어요.

Q.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시는 데 어떻게 시작하신 거에요?

북부에 입주해서는 멘토링을 받으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어요. 컨설팅받은 내용 중에 '디자이너 출신이고 디자인 소품을 보는 노하우가 있는데 왜 판매를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처음에는 고사했는데 '당신이 접근하면 잘할 수 있다. 일반 판매자와 디자이너 출신이 판매하는 상품은 설득력이 있지 않느냐.'는 조언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죠.

오프라인 시장은 줄어들고 온라인 시장이 확대될 것인데,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도 온라인 매장을 가질 수 있고요. 모바일 폰 하나로 관리가 되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물건을 소싱하기 시작했어요.

Q.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해보니 어떠셨어요?

수익이 생기면 그 다음 아이템에 재투자를 해야 해요. 그래야 사업이 돌아가더라고요. 이게 잘 되는 건가 하는 고민을 했는데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어요. 마치 장사처럼 생각한 것 같아요. 투자가 되어야 성장을 하고 안정을 찾을 텐데 그 생각보다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빨리 순익이 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컸어요.

택배 나가는 걸 보면 엄청 부자가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내 통장에 돈이 없는 거에요. 다음 아이템을 사느라고... 매번 이렇게 번 돈을 투자하는 게 반복되더라고요. 앞으로는 데이터 분석을 해서 핵심 아이템을 개발해야겠네요.

Q. 사업과 장사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사업과 장사의 차이가 뭘까요?

둘 다 이익을 내는 것은 똑같은데요, 브랜딩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나만의 특화된 아이템으로 브랜딩을 하느냐. 그냥 이익만 내느냐 하는 차이죠. 저는 궁극적으로는 사업을 하고 싶은 것이고 브랜딩은 단시간에 이뤄지지 않으니 결국 투자를 해야 하잖아요. 투자는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해서 시드머니를 가져와 브랜딩에 투자를 하는 거죠. 현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셀렉한 미니어처 방 꾸미기 제품을 소싱해서 팔고 있습니다.



Q.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하실 계획이세요?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을 기획하고 있어요. 아니면 개인적으로 매장을 낼 생각도 있고요. 온라인을 위한 오프라인 매장입니다. 또 하나는 내실을 위해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싶어요. 상세페이지 디자인도 소비자의 시각에서 만드느냐 아니냐에 따라 시장의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Q.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하시는데 졸업 기업으로 입주기업에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북부 창업보육센터를 1000% 이용했어요. 교육, 컨설팅, 마케팅비 지원, 세무 지원비, 행정실의 매니저님과 상의해서 필요한 교육도 받았고요. 이 좋은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시면 좋겠어요.

북부창업보육센터는 한마디로 엄마 뱃속이에요. 혼자 사업을 하다 보면 많이 외롭기도 하고 판단을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는데요, 이곳 구성원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위안과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배운 것도 많았어요.

Q. 사업은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디자이너로서의 나를 대변해주는 것이죠. 자연인으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등 여러 가면이 있는데 디자이너로서의 가면 사회적 페르소나가 <우리아이방>이에요.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정리해보니 이 가면을 제가 참 사랑하는 게 새삼 느껴지네요.

우리아이방 인테리어 웹사이트
http://uriibang.com/


아이룸데코 쇼핑몰 https://smartstore.naver.com/iroomdeco

방민선 대표는 단계별로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는 사업가였다.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중 아이방 인테리어라는 특화된 분야를 세분화 한 뒤 콘츠를 쌓아가며,

온라인 시장으로까지 확대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이 공간의 개성을 살려주고 싶다면, 작은 변화로 아이방의 변화를 주고 싶다면 방민선 대표를 찾아보자.

본 인터뷰는 북부여성발전센터를 거처 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북부여성발전센터의 의뢰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원문: https://blog.naver.com/bukbuwomen/221438922454


Posted by 코치 박현진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의 SNS는 창업자에게 중요한 홍보 수단의 하나이다.

거기에 더해 홈페이지도 빼놓을 수 없다. SNS는 콘텐츠를 즉각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신 분류하고 정리해서 쌓을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홈페이지다. 홈페이지에서는 자신의 사업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전문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웹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오렌지코드> 박정미 대표를 만났다.



워드프레스 기반의 웹에이전시 <오렌지 코드> 박정미 대표





















Q.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첫직장의 첫 업무가 평생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전공이 산업공학이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다루는 일을 많이 했어요. 주로 공장의 전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다 보니 정신없이 7년이 지나갔어요.

제가 잘 다루던 컴퓨터를 사용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조금 공부하면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만드는 게 가능했고 오랫만에 작업을 하니 정말 즐겁더라고요. 하다 보니 좀 더 전문적인 스킬을 익히고 싶어서 북부 여성발전센터의 웹디자이너 양성 교육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취업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요.

저는 웹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웹에이전시로 일자리를 구했어요. 경력은 없었지만, 전산 전공자이다 보니 그게 강점이었어요. 그렇게 첫째, 둘째가 8살, 4살 됐을 때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 제 사업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Q. 창업은 자연스럽게 선택하신 건가요?

왕복 3시간 걸리는 직장에 출퇴근 하다면서 일하고, 가정을 돌보다 보니 결국 몸이 파업하더라고요.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았어요. 이대로는 살 수 없어서 일을 그만두었어요.

몸을 추스르면서 다음 스텝을 고려하는데 마침 북부여성발전센터에서 입주기업을 모집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시기와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어요. 집하고 가까워서 몸의 무리 없이 아이들 케어도 가능하고, 언젠가는 창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곳이니 딱 맞다 싶었지요.


사무실에서 작업 중인 <오렌지코드> 박정미 대표



Q. 북부로 입주하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창업에 대해 감을 익힐 수 있었던 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업을 하는지 간접적으로 볼 수도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처음 창업하면 고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도 막연하거든요. 다행히 입주기업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웹사이트 의뢰를 받아 제작하면서 소프트랜딩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마케팅에 대한 감도 잡을 수 있었어요. 키워드 광고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요. 입주자들과 교류하면서 외부 활동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여러 모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주최하는 세미나도 참여하고요. 온/오프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소개로 일을 수주받기도 했어요. 그렇게 직장인에서 1인기업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Q. 웹에이전시들이 많은데, 오렌지 코드의 경쟁력은 어떤 게 있을까요?

사실 웹에이전시 업종이 레드오션이 된 지는 오래되었어요. 하지만 웹이 존재하는 한 홈페이지 제작 수요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 보고 있고요. 요즘에도 홈페이지를 넘어 다양한 기능을 가진 웹사이트나 특별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프로모션 페이지 등이 나오잖아요. 수요는 끊이지 않으니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그중에 하나가 <오렌지코드> 일겁니다.

저희는 회사 홍보용 홈페이지 제작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어요. 국내 사업자들도 외국인들을 겨냥한 서비스들이 많아요. 쇼핑몰만 하더라도 예전엔 국내 신용카드 결제만 하면 되었어요. 하지만 외국인들을 겨냥하게 되면 그에 맞는 결제 시스템을 구현해야 합니다. 중국의 알리페이, 유니온페이, 엑심페이, 페이팔 등의 워드프레스는 외국인을 위한 결제 시스템을 구현하기에 유리해요.

또 하나는 저희가 기반으로 하는 <워드프레스>라는 제작 툴이 글로벌 환경에서 검색이 유리해요. 해외 고객들이 구글로 검색할 텐데 키워드 노출이 쉽지요.

Q. 오렌지코드에 일을 의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 가지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저희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이건 의리를 중요시하는 제 성향하고도 연결됩니다. 한 번 맡으면 끝까지 책임을 다합니다. 웹사이트는 환경이 자주 변하고 그때마다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는 이슈가 발생합니다. 종종 웹에이전시 제작업체들이 예고 없이 폐업하고 잠적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희는 책임감 있게 유지보수를 진행합니다.

둘째,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내용을 잘 경청하고 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함께 하시는 디자이너, 개발자 직원들의 실력이 좋아요. 트렌드에 맞는 고퀄리티 디자인, 필요한 기능을 정확히 구현하는 뛰어난 개발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Q. 창업 선배이자 졸업 기업으로서 입주기업에 조언한다면요?

첫째, 마케팅비를 너무 아껴서는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네이버 키워드를 직업 운영하는데요, 키워드 광고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수입을 얻은 만큼 어느 정도는 마케팅/홍보비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둘째, 두려워도 실패를 많이 해보시면 좋겠어요. 창업하면 시행착오는 꼭 거치게 되더라고요. 여러 번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안전지대가 있었기 때문에 회복이 빨랐던 것 같아요. 북부여성창업보육센터는 안전지대에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실패해보세요!!

셋째, 네트워킹 활용을 많이 하시면 좋겠어요. 서로 가진 기술과 재능으로 서로의 사업적 성장을 돕기도 하고요. 한 예로 저는 저에게 의뢰했던 사이트를 한 번씩 무상 점검해 주기도 했어요. 함께 입주했던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도 꾸준히 가져가면 의지도 되고 든든할 거에요.

Q. 앞으로 계획과 비전을 말씀해주신다면요?

6개월 동안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직원도 충원하고 자사 홈페이지 리뉴얼도 하면서 준비를 충분히 한 것 같아요. 1인 기업에서 사업규모를 확대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어서에요. 처음 창업을 했을 때는 제가 모든 일을 혼자 다 했어요. 그러다 보니 밤샘도 자주하게 되고 몸에 무리가 가면서 돈은 벌어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건강하지 못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왔지요.

그래서 이제부터 저만의 사업의 원칙이 있다면

1. 혼자 하지 않는다.

2. 이익을 나눈다.

3. 더불어 행복한다

가 되겠네요.


오렌지코드  홈페이지

http://orangecode.co.kr/



<오렌지코드>는 깔끔한 코드를 사용해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상큼한 오렌지 빛깔에 녹여서 만든 이름이다. 코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컴퓨터 화면 너머에 화면을 구성한다. 그런 코드 한 줄에도 깔끔함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박정미 대표의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홈페이지는 내 비즈니스를 알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이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온전히 웹사이트에 담아낼 수 있을 스토리가 쌓였다면 <오렌지코드>를 파트너로 삼아보는 것도 좋겠다.



본 인터뷰는 북부여성발전센터를 거처 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북부여성발전센터의 의뢰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원문: https://blog.naver.com/bukbuwomen/221438614138


Posted by 코치 박현진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밋밋한 셔츠에 버튼 커버를 달자 포인트가 확 살아난다.
패션의 완성은 디테일이라는데 이 말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다.
1%의 디테일을 책임지는 아이템을 탄생시킨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조재선 대표를 만났다.


Q. 누로의 브랜드 뜻과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누로(NOORO)는 소말리아어로 '직관'이라는 뜻입니다. 사유나 분석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것인데요,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그렇게 날카로운 직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직관으로 그 니즈를 충족시켜주고 싶습니다. 소말리아인들은 NOORO를 알라의 선물이라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작은 제품 하나까지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저의 NOORO입니다.
핸드메이드 맞춤 악세서리로 시대에 맞는 공예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재료는 금속, 칠보,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합니다. 핵심 아이템은 버튼 커버고요, 거기서 파생된 악세서리도 만들고 있어요. 주문 후 제작에 들어가는 1:1 맞춤 제작방식으로 한 분의 고객을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다양한 디자인의 버튼 커버

셔츠 앞단추는 물론 소매 단추에도 착용 가능하다.


떼었다 붙였다 하는 특징을 살려 반지 팔찌 등의 악세사리로도 연출 가능하다.


Q. 버튼 커버는 흔치 않은 아이템인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건축을 전공하고 관련 일을 했어요. 건축일이 꽤 하드한데 육아와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공예를 배웠어요. 작은 공방을 내고 작업 활동 하면서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공예를 강의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공모전 관심이 많아서 공예 공모전을 유심히 살폈어요. 버튼 커버로 2014년에 서울여성공예창업대전에 공모했는데 ‘대상’을 수상했어요. 창업 지원을 해주는 공모전이어서 자연스럽게 창업의 길로 이어졌어요.

 버튼커버를 착용한 박원순 시장

 그다음 해부터 북부여성발전센터의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서 첫 사무실이 생겼어요. 사업자는 냈지만, 첫 1년은 거의 창업교육만 받았어요. 창업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거든요. 사업기획서 쓰는 법부터 상표/디자인 등록 등의 지식관련, 세무관련 등 기초부터 차근히 배워나갔습니다.


Q. 공예와 IoT를 콜라보한 색다른 실험도 하시는 것 같아요.

2015년부터 ‘사물인터넷 융합 디자인 협동조합’에서 이사로 있어요. 블루투스 업체, 웹 개발 등의 IT 업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협동조합이에요. 대학교 창업교육 갔다가 만난 분이 저에게 제안을 해주셨어요. 사물인터넷과 공예의 콜라보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겨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제어하는 조명 등 여러 시제품을 만드는 중이고 NFC나 비콘을 활용한 악세서리를 시도하고 있어요. 

스마트폰으로 조명 색, 밝기 등을 콘트롤하는 조명. 시제품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NFC로 다양한 디지털 이미지를 디스플레이할 수 있는 스마트 패션 악세서리


* 비콘(beacon)은 근거리에 있는 스마트 기기를 자동으로 인식하여 필요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무선 통신 장치이다. 블루투스 비콘(Bluetooth Beacon)이라고도 한다. 비콘은 최대 50m 거리에서 작동할 수 있다. 비콘 기술을 이용하면 쇼핑센터, 음식점, 박물관, 미술관, 영화관, 야구장 등을 방문한 고객의 스마트폰에 할인 쿠폰이나 상세 설명 등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 NFC(Near Field Communication) 는 10cm 이내의 근거리에서 작동하는 무선통신인데 교통, 티켓, 지불 등 여러 서비스에서 사용할 수 있다.



Q. 디자이너는 늘 창조를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으세요?
책이나 영상물을 보기도 하고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건축적인 요소를 가져와 공예 디자인에 적용하기도 해요. 스케일의 차이가 있더라도 '디자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까요. 버튼 커버는 남편이랑 뮤지컬 영화 ‘애니’를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영화에 남자 주인공 워벅스가 나비넥타이를 하고 오는데 셔츠에 버튼 같은 게 있는거에요. 호기심에 찾아보니 버튼 커버라는 악세서리가 있더라고요.


Q. 공예 대전 대상 수상 이후로도 꾸준한 전시 참여와 다양한 지원사업의 대상자로 선정 되셨네요. 내게 맞는 지원사업을 찾는 노하우가 있나요?
지원사업은 장단점이 있어요. 사업 계획서 형식과 절차에 맞는 서류를 준비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제가 하는 작업은 우선 비용이 드는 편이어서 지원금 사업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케이스 제작도 기본 단가가 높아서 지원금이 없으면 시도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해보고 싶은 것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어서 장점이 큰 참 고마운 제도에요. 협동조합에서도 시제품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받았고요, KOTRA에서 해외진출을 위한 지원을 받게 됐어요. 해외전시와 인증을 받고싶은데 계획대로 되면좋겠네요. 좋은 바이어를 만나 지속적인 판로를 개척하고 싶어요. 그 모든 것을 저 혼자 하기에는 힘든 부분인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어떤 사업이 되었든 제일 중요한 건 처음 물꼬를 잘 트는거에요. 저는 서울여성공예창업대전이 시작이었어요. 하나를 잘 해내면 그 기관에서부터 엄청난 정보가 쏟아져 와요. 요즘은 지원사업도 홍보 마케팅, 홈페이지 제작 등 세분되어 있어요. 찬찬히 살펴보면 나에게 맞는 지원사업을 찾는 노하우도 쌓여요. 홈페이지도 지원사업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여성능력개발원에서 7명의 공예작가에게 지원금을 주는데 제가 1기로 선정되었습니다.

하이서울우수상품어워드 선정 - 누로의 대표상품 버튼 커버 홍보영상 제작 지원


Q.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거에요?
시간이에요. 일과 가정이 쪼개지니까요. 우선순위는 가족인데 균형을 맞추려면 제가 시간을 쪼개야 해요. 그러다 보니 잠을 줄이는데 급노화가… (웃음) 밤새면서 서류 쓰고 작업해서 결과가 나오면 또 뿌듯해지고 성취감도 생기니까 계속 도전해보는 거죠. 다행이 남편이 지원자가 되어 주었어요. 같이 건축 설계를 해서 서로의 일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요.


Q. 대표님에게 창업의 의미는 어떤 거에요 ?
자아실현이요. 건축할 때 워낙 하드한 일을 하다 보니 저를 몰아쳐서 일하는데 익숙해졌나 봐요. 집안일도 하드하게 해요 (웃음) 그렇지 않으면 일을 안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해도 눈에 잘 안띄는 집안일 보다는 성취가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 있다는걸 느껴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창업 강의도 진행한다.


Q. 올해의 목표는 어떻게 정하셨어요?
완전한 독립입니다. 작년 후반부터 홍보마케팅을 시작했어요. 올해는 오프라인에서 페어에 참여하고 온라인 마켓을 운영하면서 인지도를 쌓아가려고요. 버튼 커버가 국립중앙박물관, 청와대, 세종시청사, 역사박물관 기프트샵에 입점해 있어요. 비즈니스호텔 등으로 진출하고 해외시장으로도 판로를 개척도 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유래된 악세서리다 보니 주 고객은 해외에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강의를 했는데 올해도 시간만 허락되면 꾸준히 진행하고 싶어요.

공예 강의 중인 조재선 대표

홍보/마케팅의 일환으로 공예 관련 정보를 다루는 유튜브 페이지를 개설했다.


Q.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포부 한 말씀 남겨주세요

음. 별 시련 없이 잘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일 하고, 건강하면 그게 행복인 거 같아요.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DIY 공예 카페를 만들고 싶어요. 인간은 손을 사용해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하는데요, 제가 만드는 카페가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한때 서점가에서 '디테일의 힘'이라는 경영책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사소한 1%의 부족이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작지만 ‘치명적인’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디테일의 힘은 비즈니스뿐 아니라 패션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 소매 끝, 셔츠 앞 단에 달린 버튼 커버로 센스있는 패션 감각을 선보일 수 있다. 언젠간 누로의 버튼 커버가 남성들의 비즈니스 센스를 대변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유럽의 전통 악세서리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하게 된 버튼 커버 아이템에 동양적인 디자인으로 해외의 바이어를 사로잡겠다는 그녀. 버튼 커버 하나하나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을 보면 곧 그날이 오리라는 기대감이 든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누로가 되는 날을 응원한다.


누로 홈페이지 : http://nooro.co.kr/



'누로' 조재선 대표 프로필 

2005-2009   
누로공방 한국, 일본 아트클레이 공모전 입선 
2006-2007
인사동 아트센터 및 도쿄 신미술관 전시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참가
2008
국제 도자 장신구 공모전 입선 
2008-2013
중앙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숙명여고 등 특강 강사활동 
2014
서울여성공예창업대전 ‘대상’ 수상 
2015
‘NOORO’ Brand launching 
‘서울여성 공예분야 판로 및 성장 지원사업’선정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문화상품 선정
‘공예가 맛있다’ 서울역 전시 ‘서울여성공예창업축제’ 시민청 전시
‘사물인터넷 융합 디자인’ 협동조합 이사 취임 
2016
국제 핸드메이드페어 참가 
서울여성공예페어 참가
2017
핸드메이드페어 참가 
하이서울우수상품어워드 선정 / 메가쇼 참가
대한민국 산업기술 R&D대전 참가 




본 인터뷰는 북부여성발전센터를 거처 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북부여성발전센터의 의뢰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원문: https://blog.naver.com/bukbuwomen/221187863772


Posted by 코치 박현진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매주 다양한 국가의 청년들이 핫(Hot)한 안건을 놓고 토론하는 '비정상회담'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재기발랄한 세계의 젊은 시선으로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참여자들은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이다.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있다. 외국 출신 방송인이 자신의 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해 한국을 여행하는 것이 리얼리티로 방송에 실린다. 바야흐로 K팝을 넘어 K컬쳐의 시대다. 문화에 관심이 높다 보니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도 높다. 이 가운데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과 교사를 연결해주는 튜터케이가 있다. 전 세계인이 언제 어디서나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어회화 오픈플랫폼 튜터케이 (www.tutor-k.com) 을 운영하는 (주)케이오알이 최희정 대표를 만났다. 


Q. 하는 사업을 소개해주세요.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과 한국어 교사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입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의 국적이 다양한 만큼 교사들도 국적이 다양해요. 심지어 외국어를 전혀 못 해도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어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의 국적이 다양한 만큼 한국어 강사들도 한국어 뿐만 아니라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한국어 강사들도 많이 있어요. 외국어를 전혀 못해도 한국어 강사를 할 수 있냐고 많이들 물어 보시는데 중.상급자들은 수업시간에 “한국어”로만 수업하는걸 원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http://www.tutor-k.com 에서 만날수 있는 한국어 선생님


Q. 한국어 교육 플랫폼을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직장생활 하면서 번 돈으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일 년이면 마스터 할 줄 알았는데 입도 안 떨어지는 거에요. 결혼하고 남편이 주재원 발령을 받아 아이와 함께 LA로 이주했어요. 아이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치고 싶었어요. LA는 한국인이 많은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한국어 선생님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한글학교를 보내도 잘 못 하더라고요. 개인 과외 선생님까지 찾기도 하고 제가 가르치기도 했어요. 아이가 8살에 한국에 왔는데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제가 어학 연수할 때의 막막함과 아이를 가르치던 경험으로 온라인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직접 강사 활동을 해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창업으로 이어졌어요.

(주) 케이오알이의 최희정 대표


Q. 튜터케이의 고객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주 고객층을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해외 거주 외국인으로 잡고 2016년부터 베타 버전을 운영했어요.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알게 됐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의외로 국내에 시장이 있는 거예요. 한국에 20년 거주하는 분들도 한국어 교육이 필요합니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우리도 외국에서 20년 산다고 네이티브가 되는 게 아니듯이요.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도 지속적인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더라고요. 한국인 남편분들의 문의가 많은 편이에요. 외국인들에게는 실질적인 한국식 표현을 알려줘요. 정식으로 학교에서 공부한 분들인데 시험용 언어와 생활에서 쓰이는 언어가 다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영어를 쓰면 다들 배우려고 하니깐 크게 한국어를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에요.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놓치고요. 그러다 취업 등으로 한국어 시험을 봐야 하는데 그때부터 다시 한국어 공부를 해야 하는 분들도 있어요.


Q. 오프라인 교육도 하시나요?
온라인 플래폼으로 시작했지만, 오프라인 교육 요청도 많아요. 한국어 기초를 배울 때는 오프라인 수업이 더 효과적일 수 있거든요. 학생이 있는 가까운 곳에 교사가 있으면 파견을 합니다. 별표, 리뷰를 통해 평판관리가 잘 된 교사를 선별해요.


Q. 교사모집은 어떻게 모집 하나요? 외국인 대상의 홍보도 궁금합니다.
구글 키워드 광고 집행하고 있고 페이스북 페이지와 그룹 4개를 레벨별로 운영해요. 홍보용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있어요. 회사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알리고 있어요. 페북은 회원 수가 많은 회사 커뮤니티와 전략적으로 조인해서 협업하고 있어요. 저희가 가진 콘텐츠 중에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능력 시험 콘텐츠가 있는데, 정답자에게는 100코인을 발급하고 있어요. 1불이 10코인인데 코인으로 사이트 내에서 한국어 교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튜터케이가 개발한 한국어 교육 콘텐츠

한국어 능력시험 퀴즈


한국어 쓰기 학습지도 제공한다.



Q. 대표님에게 창업은 어떤 의미세요?
지금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보다는 남이 하라는 일을 했었어요. 이 일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습니다. 사업의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과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Q. 2016년에 북부여성발전센터에 입주하셨는데요, 여기서 어떤 성과가 있었어요?
1인 창조기업 마케팅 사업. 창조경제타운 인큐베이팅 아이디어 선정. 북부에서 진짜 좋은 일을 많이 했어요. 비즈니스모델도 출원하고요. 외국인 박람회에도 나갔었어요.


Q. 이렇게 밀고 나가는 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남편이 많이 밀어줬어요. 사람 소개도 해주고 남편의 네트워크를 공유해주기도 하고요. 사이트 최초 개발도 남편을 통해 소개받은 개발자가 해줬어요.

최희정 대표와 튜터케이 직원들과 함께


Q. 사업을 하다 보면 고비가 있으실 텐데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정말 힘들면 성공한 분들을 찾아가서 물어봐요. 연락하면 거절하지 않을까 싶어서 망설였는데 기꺼이 만나서 시간을 써주시더라고요. 바쁜 시간을 쪼개서 도와주려고 하시더라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업력이 쌓이면 깊어지는 것 같아요.


Q.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태도요. 겸손하고 배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다 보니 정말 훌륭한 멘토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그분들께 찾아가서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에요. 한 멘토에게 제가 '저는 경영이 제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고민을 토로했더니 '경영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멘토의 말이 충격이었어요. 사업하는 분들은 누구나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누구나 고비를 넘기며 버티는 거라고요. 평범한 아줌마로 남느냐 이 고비를 넘어서 사업가로 성장하느냐는 본인의 선택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정기적으로 만나는 대표들이 있어요 사업가들의 고민도 있고요. 멘토 교수님도 많이 뵙고요.


Q. 대표님이 사업하시는 자기만의 경영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총을 쏠 때, '준비-조준-발사'라고 하자나요. 어떤 책을 읽어보니 '준비-발사-조준'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작은 스타트업을 하는 저희 같은 경우는 후자가 맞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추진력이 부족한데 발사를 자주 해보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력이 많지 않아서 정부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11-7월까지 사업계획서 쓰느라 매우 바쁘지만, 그 준비를 하면서도 많이 배워요.


Q. 앞으로 비전은요?
지금은 한국어 회화 오픈플랫폼으로 시작했지만 전 세계인들이 한국어 하면 떠오르는 한국어 교육포탈로 자리잡고 싶어요. 구글 하면 서칭, 페이스북 하면 소셜네트워킹, 튜터케이 하면 한국어에 관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 라고 여겨지는 사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본 인터뷰는 북부여성발전센터를 거처 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북부여성발전센터의 의뢰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원문 : https://blog.naver.com/bukbuwomen/221185425588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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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MC라는 직업이 있다. 녹화방송 중간마다 관객과 무대의 열기를 이어주는 사전 MC는 원활한 방송을 위해 쉬는 시간에 관중들과 소통하면서 흐름을 이어 나가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방송 프로그램에 없어서는 안 될 사전 MC들은 대부분 남성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 유일한 여성 사전 MC가 있다. 그만큼 관중과 무대의 에너지를 끌어 가는 힘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녀는 바로 개그우먼 조승희씨다. KBS 공채개그맨 23기 출신으로 각종 행사의 진행자로, 공연기획사의 대표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무대에 서면 힘이 난다는 그녀, 여자 유재석을 꿈꾼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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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3기 공채 개그우먼입니다. 여성 MC로 각종 행사와 진행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및 뮤지컬 등 공연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연 '투맘쇼'를 하는 '투맘컴퍼니' 공연기획사 대표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큰 기회를 소개한다면요?

첫째는 저만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다를 텐데요, 저는 '즐거움'이 가장 우선 가치였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명언이 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해야 즐거우냐는 고민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둘째는 대학 시절 광주 MBC에서 보조 MC를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방송 활동에 입문 할 기회도 얻었고 더 큰 무대를 찾아 서울로 와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곳이지요. 








일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는 점과 힘들었던 점을 알려주세요.

일하면서 당연히 가장 큰 보람은 관객과 대중에게 웃음을 주었을 때입니다. 처음에 개그우먼이 되었을 때는 오로지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어요. 연차가 쌓이고 행사도 하고 연기도 하며 공연을 했을 때 대중을 직접 만나면서 다른 부분이 보였어요. 단지 웃음만 드리는 것을 넘어 공감과 감동을 주었을 때 감흥이 크게 일어나는 것 같아요. 또 저로 인해 누군가가 힘을 얻고 작은 것 하나라도 도전할 계기가 되었다면 보람되지 않을까요.

힘들었던 점은 개그 지망생 때라고 할 수 있어요. 잘 아시다피 지망생의 생활은 가난의 연속입니다. 처음엔 가난해서 힘들지만, 나중에는 연속된 실패에서 오는 상처로 더 괴롭습니다.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게 얼마나 두렵겠어요. 1년에 단 한 번 있는 시험이에요. 그 시험에 낙방하고 또다시 1년 동안 지망생 생활을 해야 할 때 눈앞이 캄캄 했습니다. 

개그맨이 되었다고 해서 고생이 없는 게 아녀요. 밤새 짠 코너가 통과되지 않았을 때, 승승장구 하고있는 동기들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 했을때도 견디기 힘들죠.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더라구요. 이건 연차가 쌓여서이기도 하고 30대에 들어보니 생기는 여유와 안목인 것 같습니다.

개그콘서트에 출연중인 개그우먼 조승희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이었나요? 그를 통해 배운 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실패는 2005년 광주 MBC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입니다. 광주의 한 대학생이 방송사에 들어와 2-3개 프로그램의 보조 MC로 활약하다가 드디어 메인프로그램의 MC가 되던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프로그램은 한 달 만에 폐지가 되고 말았죠. 저는 수건 하나가 다 젖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가 오던 그 날 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날 '서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 상황이 되고 나니 어릴 적부터 서울로 가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발판이란 생각이 듭니다. 



롤모델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현재 롤모델은 개그우먼 송은이선배 입니다. 연기와 방송도 두루 하면서 지금은 '비보티비라'는 크리에이티브 컨텐츠 기업을 운영 중입니다. 대중의 사랑도 받으며 후배들의 길도 열어 주는 멋진 일을 하고 계시지요. 제가 선배와 비주얼이 조금 닮았어요.



조승희 선생님이 생각하는 ‘공부’는 어떤 의미인가요?

공부는 결국 나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수학을 전공했어요. 수학과 출신 개그맨이라니요. (웃음)
수학은 생활에서 널리 적용할 수 있는 학문입니다. 논리의 학문입니다. 수학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은  인과 관계의 논리입니다. 
수학 공부가 개그맨이 되는데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생활에 많은 도움이 돼요. 모든 공부에는 나름의 의미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재밌게 수학을 가르치는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어느 날 깨달았는데 제가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수학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아이들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결국 강단이 아닌 무대에 서게 되었네요. 수학과에 갔기에 이 일에 대해 열망을 품을 수 있었어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책 단 한 권만 소개한다면?

'시크릿'이라는 자기계발서입니다. 광주에서의 방송 생활, 개그맨 지망생 시절 의기소침해 있을 때 만난 책이었어요. 도전에 대한 두려움에 젖어있을 때 뭐든 생각하기에 달렸다고 강력하게 말해주던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바로 실천을 했어요. 이미 유명 개그우먼이 된 것처럼 아침마다 생생하게 그려보는 연습을 했어요. 어느 날은 KBS 앞에 찾아가서 '이곳이 내가 출근할 그곳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걸어 보기도 했었습니다.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생생하게 그리다 보니 더욱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어요. 

시크릿
국내도서
저자 : 론다 번(Rhonda Byrne) / 김우열역
출판 : 살림biz 2007.06.16
상세보기





개그맨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개그맨을 꿈꿀 창의력과 끼로 꼭 PD가 되라는 조언을 하고 싶네요^^;;  막상 방송국에 들어와 보니 진정한 일인자는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이 아니었어요. 그 연예인을 무대에 세우는 제작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창작자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더라고요. 

 송은이 선배처럼 개그맨 활동도 하면서 제작자이기도 한 길을 가는 선배들도 많고요, 저 또한 그렇게 길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개그맨이 되어서 인지도를 쌓은 후에 제작자의 길로 가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강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개그 지망생 시절처럼 전투적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봤어요. 약간 반성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꿈은 '현재에 안주해 있지 않은 나, 늘 성장하는 조승희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악기, 언어, 연기, 하모니카도 정말 열심히 배웠습니다.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나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어요. 늘 발전하지 못해도 퇴보는 하지 않는 조승희가 되고 싶네요.

 가까운 10년 안에는 여자 유재석, 대한민국의 인정받는 대표 여성 MC 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꿈이 너무 야무지다고요?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 이효리 씨가 기억이 나네요.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7월 게스트는 KBS 공채개그맨 조승희씨와 함께 한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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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Origin 인터뷰 _ 아이디어디렉터 안다비를 만나다 

낙서를 하면서 why 꽃을 발견하게 된 안다비 아이디어 디렉터


는 일에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아이디어디렉터 안다비입니다. 저는 ‘손재주와 아이디어로 감동을 주는 일‘에 행복감을 느끼고, 아이디어디렉터라는 직업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분야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만들었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호기심'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고, 지금은 호기심이 아이디어가 될 수 있도록 돕는(보이지 않는 호기심을 그려내는 전시 및 사람들의 호기심을 표현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젝트)일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곤 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큰 기회는 무엇이었나요?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적었던 ‘낙서’가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큰 기회 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내 마음 속 호기심을 표출하지 않았다면 (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지 않는 걸까?, 왜 무언가 하려면 꼭 대학을 가야만 하는 걸까?, 왜 무조건 대기업을 가는 것이 성공하는 걸까? 등) 돈과 현실보다 호기심이 중요하다는 깨달음도 얻지 못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당연히 첫 번째 전시회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 이 순간도 오지 않았겠죠?^^


아이디어 디렉터로서 활동한 내용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프로젝트, 작품, 일화 등) 한가지 소개해줄 수 있나요?
세 번째 전시회를 얘기하고 싶어요. 세 번째 전시는 제가 그동안 이야기를 전하면서 만났던 학생들이 그려준 그림(whyart)으로 전시회를 열었어요. 그 중에 인상 깊었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why를 우산으로 표현한 친구가 있었어요.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은 저를 표현했고, 우산 아래 앉아있는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표현했던 친구였는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데요. 근데 제 이야기를 듣고, 내가 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직업을 하고 싶은지, 그 직업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이나 대회 그리고 학원은 왜 안 끌리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렇게 스스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니까 진짜 내가 뭘 원하는지 분명해지면서 쏟아지는 반대를 막는 힘이 생겼다는 말을 해주었어요. 그 학생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두가 호기심의 힘을 느꼈던 순간이었어요. 


가장 큰 실패와 그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이었어요?
실패라고 느꼈던 일이 있었어요. 물론 지금은 실패라고 부르진 않아요. 멘토스 회사에 광고를 제안하러 네덜란드 본사에 찾아갔던 적이 있어요. 사회에는 다양한 어른들이 존재하고 그 모두가 어울려서 살아가는 곳이 사회인데 고등학교 때 들을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은 지극히 편향적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고스펙이 없으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들이요. 제가 직접 느낀 사회와는 너무 달랐죠. 그래서 뭔가 이런 얘기를 전해주고 싶었어요. 마침 멘토스에 이런 메시지를 표현할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걸 광고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영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네덜란드로 갔죠. 광고가 만들어지진 않았어요. 다만 난 광고는 목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호기심’이 수많은 두려움을 이겨낼 힘이라는 깨달음도 얻었고요.

여러사람들이 참여한 WhyArt 그림들



롤모델이 있나요? 누구이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롤모델은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롤모델이란 닮고 싶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제가 지금 가는 길은 진짜 아무도 가지 않았던 제 길을 개척해서 가고 있어서 롤모델 보단 제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큐리어스 마인드>의 저자이자 할리우드 영화제작프로듀서인 ‘브라이언 그레이저’를 꼭 만나보고 싶어요. 그분과 호기심을 키워드로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강한 바램이 있습니다^^ 곧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책을 단 한 권만 추천한다면? 
저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예전에 화려한 겉표지에 호기심이 생겨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제가 제 돈을 주고 책 한권을 산적이 있어요.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이라는 책인데 책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달리 멋진 도전을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책이예요. 정말 이 책은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주변에 선물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읽을 때 마다 다른 느낌으로 와닿더라구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
국내도서
저자 : 아네스 안(Aness An)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06.11.29
상세보기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게 진짜 공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는 배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어릴 때 엄마의 웃는 표정에 호기심이 생겨서 팔다리를 움직이고, 걸음마를 하듯이 호기심에 호기심이 이어져서 정답이 아닌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마음속 꿈틀대는 호기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말도 안 되고, 주변에서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끌리는 호기심이라면 한번 따라가 봤으면 좋겠어요. 에디슨의 호기심은 ‘어두운 밤을 낮으로 바꿀 순 없을까?’였다고 해요. 주변에서는 미쳤다며 손가락질을 했지만, 그 호기심이 지금은 없어선 안 될 전구를 만들었잖아요. 호기심은 에디슨, 아인슈타인, 스티브잡스 머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무궁무진한 호기심이 있고, 여러분도 마음에 귀 기울여 본다면 호기심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의 호기심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갚지 다는걸 잊지 말아요.


앞으로의 꿈 혹은 계획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의 호기심을 모으고 싶어요. 사람들의 호기심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서 비슷한 호기심을 연결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호기심을 융합해보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호기심을 눈앞에 그려내고 싶어요. 호기심 공장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호기심 공장의 자원은 여러분들의 호기심이랍니다.


아이디어 디렉터 안다비 만나기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180cmmmm/
홈페이지 : 180cmmmm.modoo.at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4월 게스트는 아이디어디렉터 안다비씨와 함께 한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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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행복한 의료인이 되는 길 탁종석 간호사]

이제 더이상 남자간호사는 생소한 직업이 아니다. 입시 시즌 전국의 간호대학에 지원하는 남학생 비율률이 늘고 있다는 뉴스도 새롭지 않다. 그런 세태를 반영하듯 요즘 의학 드라마에서는 남자 간호사도 등장한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쾌할하고 유쾌한 목소리의 소유자 탁간호사와 인터뷰 약속을 하고 분당서울대병원 로비에서 만났다. 듬직한 체격의 그는 얼굴 한가들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런 미소는 살뜰히 환자를 살피는 간호사의 몸에 밴 습관 같았다. 행복한 의료인으로서 살고 있는 간호사 탁종석씨를 만나 간호사로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공공의료사업단에서 불우환자돕기후원기금 운영 및 관리와 
해외의료봉사와 국내의료봉사를 담당하는 간호사입니다. 


Q. 간호사가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3학년 진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중, 먼저 간호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친누나의 적극적인 추천과 도움으로 간호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남자 간호사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라는데 어느정도 인가요? 
2014년 면허 등록 한 남자간호사는 2.3%으로 7천명입니다. 
재학중인 간호학과 학생 중 남자는1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6년 국가고시 합격자(1만 8천여명) 중 남자비율은 10% (1천7백여명)로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2013년 인도네시아 의료봉사


Q. 8년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여러 과를 옮겨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각 과의 특징과 일을 설명해주세요. 
2009년 입사 때 처음 발령 받은 곳은 수술실이었습니다. 수술실이라 하면 보통 무섭고 징그러운 장면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누워있는 환자의 배를 칼로 가르고 여러 신체조직을 만지면서 수술하는 모습에 많은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나의 도움으로 단 한명의 환자를 위해 서로 손을 맞추며 치료하고 생명을 구해내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수술실에는 서로 다른 진료과가 38개의 수술실에서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진료과가 일하고 있는 만큼 수술실은 우스갯 소리로 “10년 동안 신입직원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수술실에 적응되면 또 다른 수술실로 가서 새로운 것을 익히고 또 다시 옮기고 이렇게 계속 옮기게 됩니다.  저는 입사 후 비뇨기과, 산부인과, 정형외과를 순서대로 돌면서 수술에 대해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실에서 간호사가 하는 일은 수술기구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업무라 생각 할 수 있지만 그건 매우 큰 착각입니다. 수술을 하기 위해 환자가 들어오고 나가는데 까지 간호사의 손길이 안 미치는 곳이 없습니다. 한 명의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기구를 멸균하고, 수술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합니다. 환자가 들어오면 정서적인 지지를 해줍니다. 더불어 혹시 모를 안전을 위해 여러 번 확인도 합니다. 수술 후에도 이 수술이 정확하게 된 건지 재확인 하는 것이 간호사의 역할입니다. 
수술에 임함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숙지하고 있어야 원활한 수술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각 과의 특징을 말하면 먼저 비뇨기과는 주로 남자분들의 생식계 질환을, 산부인과에서는 여자분들의 질환을 주로 수술하였습니다. 이중 비뇨기과에서는 야구를 하던 중 포수를 하면서 야구공이 바로 급소(고환)에 날라와 한쪽이 터져 응급수술을 한 사람, 음경에 암세포가 생겨 음경을 절제한 환자를, 산부인과에서는 해외에서 유학중인 고등학생 여자분이 거대한 난소 물혹으로 임신의심을 받아 혼난 환자, 결혼을 앞두고 자궁암으로 세상을 등진 환자, 출산 도중 과도한 출혈로 피를 흘리며 수술 문을 박차고 들어온 환자 등 많은 사연의 환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형외과에서는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은 군인, 오토바이를 타다 다친 학생, 얼음판에 미끄러져 고관절이 뿌러진 할머니 등 사고와 퇴행성으로 불편을 호소하던 분들의 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몽골 심장병 환아 치료후 방문 사진



Q. 일하시면서 가장 보람될 때가 언제예요? 
캄보디아 의료봉사 때 선천적으로 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태어났을 때 자동적으로 막혀야 될 심장의 구멍이 안 막히게 되면서 전신으로 펴져야 될 피가 엉뚱한 구멍으로 새어나가게 되면서 호흡도 힘들고 밥 먹기도 힘들고 활동하기 힘들어 하는 아이였습니다. 
주먹만한 심장은 보상작용으로 축구공만하게 커지게 되었고 입술과 손가락에는 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파랗게 질려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바로 심장수술을 통해 심장의 구멍을 모두 막아주었고 이제는 숨쉬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일반적인 아이와 똑같이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회복한 아이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저를 꼭 안아주면서 어쿤(감사합니다)이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이이의 어머니는 감사의 표현을 담아 없는 형편에 시장에 가서 과자를 사와 저희에게 주면서 볼 때마다 두 손을 모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해 주었습니다. 저의 작은 재능으로 한 아이와 그 가족의 행복을 다시 찾아준 보람을 느꼈습니다.
 

Q. 남자 간호사로서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첫째는 힘입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합니다. 누워만 계시는 환자분들의 욕창을 방지하고자 자주 자세를 바꿔 주는 등의 모든 행위를 몸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힘쓰는 일에는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들의 역할이 큽니다. 
둘째는 의견 조율입니다. 일선에서 일을 하다보면 환자와 다른 직종의 직원들과 의견이 부딪힐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때도 남성으로서의 사회성이라고 할까요? 그런 협상과 조율이 효과적으로 풀릴 때가 있습니다.


Q. 간호사의 진로도 다양하다고 들었습니다. 병원 외에 어떤 방향이 있을까요? 
가. 소방공무원 
나. 각종 보험회사 보험 심사간호사 
다. 교정직공무원 
라. 보건교사(양호교사) 
마. 장기이식센터 이식 상담사 
바. 보건소 및 도청 공무원 
사. 산업체 간호사 
아. 보험공단 심사평가원 
자. 군대 간호장교 
차. 의료기기관련회사 취업 
카. 연구관련 전문회사 취업
타. 교수 


Q. 내 인생의 3대 사건을 말해줄 수 있나요? 
첫번째는 간호사가 된 계기이기도 한 어머니의 병원생활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고등학교 3학년때 1년 동안 병원에만 계셨습니다. 주말이면 항상 어머니를 뵙기 위해 춘천성심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항상 보살펴야 겠다라는 책임감이 지금의 저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번째는 부서이동입니다. 캄보디아 심장센터 걸립과 관련하여 공공의료사업단에서는 수술장출신의 남자간호사를 희망하였고, 때마침 수술실에서 근무중인 저는 공공의료사업단으로 부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항상 사람을 만나는 것과,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저로써 천직인 것 마냥 모든일이 흥미진진하고 재미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결혼입니다. 2014년 5월 수술실에서 만난 2년 선배 간호사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항상 서로를 존경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는 아내입니다. 

의료봉사 동료들과



Q. 의료봉사를 많이 하시는데 현장의 일은 어떤거에요?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째, 국내의료봉사는 지역선정을 통해 해당 지역의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정형외과, 신경외과, 안과, 소아과, 내과 등 다양한 진료과를 구성하여 검진버스(x-ray, 혈액검사, 초음파 검사 등)의 다양한 장비를 가지고 그 지역의 환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의료봉사도중 질환이 의심이 되면 병원 외래로 예약을 잡아 검사부터 치료까지의 진료비를 별도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둘째, 재난지역 의료봉사. 국가의 중요한 재난지역이 발생할 경우 응급의학과, 각 진료과의 의료진을 구성하여 특수 장비버스와, 함께 재난지역으로 출발합니다.(ex 세월호 등) 

셋째, 해외 의료봉사. 아직 세계 곳곳에는 의료기술의 낙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치료도 한 번 못받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빈민국을 위해 그곳에서 현장 수술을 진행하여 치료를 해주고 현지의 의사들과 간호사를 교육하여 그곳에서 자생적으로 수술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의료봉사를 기획,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몽골등 다양한 나라에 가서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캄보디아는 현지병원에 심장수술이 가능할 수 있도록 수술장비를 지원하였습니다. 1년에 2차례 의료진을 구성하여 현지에 선천적인 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수술을 해주고 있습니다. 
의료봉사를 앞두고 사전에 방문하여 환자를 몰색하고 수술 명단을 확보 후 수술에 필요한 의료진 구성, 물품 준비, 현지 입국과 관련된 사항, 사후 관리 등 전반적인 모든 구성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Q. 간호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간호사는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으로서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때문에 간호사란 직업 자체가 결국 쉬운 직종이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3D 업종으로 여길 만큼 힘든 직업인건 사실입니다. 4년 동안의 전공 과목 수련, 국가고시 등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한 병원 입사 후에는 더욱 더 전문적인 교육, 3교대 근무, 환자와의 갈등, 정보화 사회로 인한 고객 수준 향상, 생명을 다루는 책임감 등 많은 고충이 따릅니다. 
하지만 대기업 만큼의 연봉, 복리후생, 다양한 취업전망, 재취업 가능 등 다양한 혜택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매력은 나로 인해 타인을 살리고, 그들에게 웃음을 되돌려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간호사님이 생각하는 공부란 무엇인가요?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누나의 권유로 간호대에 진학했지만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외워야 할 것도 많고 공부 자체도 어려운데 여학생들이 또 공부를 엄청 잘하니까요. 지금이야 간호대에 남성비율이 80명 정원에 20명이지 제가 대학생일 당시는 5명이었거든요. 그러니 대충 성적이 그려지죠? 
그러다 군대에 갔다가 복학을 했는데 입대 전에 같이 놀던 남학생 친구들이 저를 배신하고 엄청 공부를 하는거에요. 놀 친구도 없고 나라고 못할게 있나 싶어서 책을 잡게 되었어요. 할만하더라고요. 그때 공부를 해내면서 저는 저를 믿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제가 목표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들을 꾸준히 해 나갈 예정입니다. 
 

Q. 앞으로의 꿈, 목표는 무엇인가요? 
유니세프처럼 큰 기금을 운영하는 세계에서 인정하는 후원단체 설립자가 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각국의 빈민국가가 식량이 없어 굶어 죽고 치료비와 의술이 없어 생을 일찍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슬픈 일들이 지구상에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현재 직무에 최선을 다해 충실히 임하고 있습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불우환자돕기 기금 관리 운영과 세계 빈민국가에 수술센터 설립하는 일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간호사라는 직무적 능력과 인간미 있는 친화력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성장할 계획입니다.


탁종석 간호사와 인터뷰를 진행중인 박현진 대표



남자간호사가 아닌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이었다. 식량이 없어 굶어 죽고 치료비와 의술이 없어 생을 일찍 마감해야 하는 슬픈 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오늘도 일하는 탁종석 간호사. 타인을 살리고, 그들에게 웃음을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간호 실무와 의료지원 행정력을 갖춘 인재로, 그가 꿈꾸는 세계가 인정하는 후원단체를 이끄는 꿈을 이뤄나가길 응원한다.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12월의 게스트는 남자 간호사 탁종석씨와 함께 한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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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의 인터뷰 Be Origin _ 청년목수 김동혁을 만나다  



폐허의 공사현장에 양복을 입고 

한 손에는 묵직한 공구를 든 남자.


청년목수 김동혁씨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때문이었다. 


목수라는 직업이 저렇게 섹시한 거였나?

이후로 그의 SNS를 발견했고, 

메시지를 보내 그와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차난으로 차는 작업장에 두고 바로 출발하느라 작업복 차림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10월 단풍이 무르익던 어느날 서촌의 고즈넉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작업장에서 바로 출발했다는 그는 본인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작업복에 검정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오른쪽 귀에는 노란색 연필이 선명했다. 서른 두살, 목수로 살아온 시간이 16년이란다. 작업복과 미팅복을 구분해서 입는다는 그에게서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의 향기가 났다. 목수 장인을 꿈꾸는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현장에서 작업중인 김동혁 목수





아버지 따라 발을 들인 목수의 세계, 어느덧 16년차  

그는 한달에 천만원을 번다는 30대 초반의 목수다. 인테리어 총괄도 하고 있고, 목공 반장으로도 일한다.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며 소비자 직거래를 하고 있고, 온라인을 통해서도 고객을 많이 만나고 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나는 물음에 고달펐던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돈을 벌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학교 공과금을 못낼정도로 집이 가난했거든요. 그 당시 아버지가 목수였는데 방학때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다녔어요. 적성보다는 적응이 되었다고 할까요.” 


목수들은 현장에서 등 너머로 일을 배운다. 장인들이 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현장에서 하는 도제식 훈련이다. 젊은 사람들이 오면 사실 오래는 못버틴다. 최고 오래 버텼던 친구가 일년 반 정도.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좋은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보단 생활에 얽매여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목수가 10명이라면 지금은 5명 정도 된다. 88년도에 활동했던 목수들이 서서히 은퇴를 하면서 그마저도 매년 0.5명씩 줄어든다. 다행이 기계와 기술이 발달하고 시스템이 워낙 좋아져 목수가 1.5명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김동혁 청년 목수의 프로필 3대째 목수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목수 김동혁 만나기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onghyok_kim/

블로그 : http://blog.naver.com/somunnandong


프리랜서 목수이지만 시간맞춰 함께 그룹으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목수공부(工夫) 몸으로 부딪히고 머리로 흡수하다 

아버지를 따라 모두 현장에서 체득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도 같이 써야 했다. 인테리어가 진행되는 순서, 수많은 공구들의 쓰임새, 현장 용어 숙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타카종류만도 7개, 타카핀 종류만 3-40개나 된다. 타카와 핀이 결합해서 어떤 나무에 사용하면 좋을지, 시멘트, 철재에 박을지, 각각 어떤 효과가 나는지도 실습해보고 알아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측량법∙타공법에 능통해야하고 수학적인 계산도 잘해야 한다. 배우면서 어떨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일이 좋았다. 


21살 무렵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가 생겼다. 목수는 80%이상을 직접 만들어낸다. 그런데 공사를 마치고 결과물을 인정받는 사람은 인테리어 총 감독관과 인테리어 회사가 최종적인 성과를 얻었다.


“어린 마음에 ‘저건 내가 다 만들었는데, 왜 다른 사람이 인정받지?’ 하는 속상함이 올라오더라고요. 샘도 나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디자인 해야겠다고 기능사 준비부터 공부했어요. 반년 정도 하다가 포기한 게 대학에 진학하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거였으니까요. 그때가 이미 5년의 경력을 가진 때였거든요. 17살부터 해온 이 일을 놓는게 너무 아까운거에요. 그러면서 내가 하던 기술을  갈고 닦아서 이 분야의 장인이 되서 인정받겠다는 결심이 들더라고요.” 






청년 목수 김동혁, 이 남자가 일하는 법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이지만 목수 일을 하려는 청년이 없어 늘 인력난을 겪는다. 그 배경에는 목수 일은 노동뿐이라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해 직업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목수는 전문직이고 또 그렇게 보여야 한다. 작업할 때 누가 보더라도 전문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자신의 이미지를 잘 가꾸려고 한다. 추례하게 보이지 않게 작업복과 운동화는 늘 깔끔하게 입고 매일 작업을 마치면 현장을 깔끔히 정리정돈 하고 퇴근한다. 더러운 환경에서 일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 시켜주려고 함께 하는 분들과도 암묵적으로 실행하는 중이라고.


“외국에서는 장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호주만 가도 건설현장 일을 하는 사람이 하이바(헬멧의 준말) 옆구리에 끼고 지하철 타면 우리나라에서 보는 판사, 검사가 법전 들고 다니는 거랑 똑같은 동경의 눈빛을 보내요. 하수구 공사 하는 사람들도 거기서는 호화스러운 직업이에요. 제가 하는 목수 일도 돈을 못버는 직업이 아니에요. 인식의 문제인거죠. 사실 내장 인테리어는 전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육체도 많이 써요. 그래서 사람들이 노가다라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거죠. 현업에 종사하는 목수로서 환경이나 인식부분 개선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직접 제작한 작업물 앞에서




목수하면 김동혁. 장인들의 족보를 만들고파 

이제 목수로 16년 차로 접어들었다. 현재 80%정도의 목표점에 오른것 같다고 한다. 아직 20%를 채우려면 가야할 길이 멀다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기에 SNS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블로그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직 목수쪽에서 손꼽힐 사람은 아니거든요. 목수 하면 김동혁이라는 등식을 만들고 싶어요. 목수로서의 장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인들의 족보를 만들어 내고 싶어요. 어느 분야의 장인 하면 누구, 그의 수제자들이 쭉 적혀 내려오는 그런 족보요”  


머릿속에 생각한 디자인을 현장에서 완벽히 만들었을 때 성취의 희열이 즐겁다는 목수, 공사를 다 마치고 연장을 차에 싣고 시원한 음료 캔을 마시면서 차에 시동을 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목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이민을 꿈꾸기 보단 국내에서 최정상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그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나의 집을 갖게 된다면 청년 목수 김동혁씨에게 꼭 의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이면 그도 아마 ‘장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인터뷰 중인 퍼스널브랜드PD박현진 & 청년목수 김동혁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11월 게스트는 청년목수 김동혁씨와 함께 한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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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비건크리에이터 박솔지 대표를 만나다 


따듯한 봄이 간절했던 지루한 겨울의 끝 무렵. 기다리던 봄보다 먼저 따듯하게 다가온 건 그녀의 뜨거운 밥 한 끼였다. 그녀가 있는 곳 근처에 볼일이 생겨 간 김에 들를까 하는 문자를 보냈고 곧이어 온 답장은 ‘밥줄게’ 였다. 그 말을 듣자 없던 허기가 돌았고 그녀의 쿠킹스튜디오로 달려갔다. 자연으로부터 온 재료로 음식을 요리하고 가르치며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이드하는 비건크리에이터 박솔지 대표를 만났다. 그녀가 운영하는 스윗솔 쿠킹 스튜디오에서 비건베이킹과 쿠킹 강의를 진행하며 비건케이터링 사업도 병행한다. 






그녀는 채식주의자(Vegetarian) 중에서도 비건이다

채식주의자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한다. 육류는 먹지 않지만 생선, 해물, 우유와 유제품까지 먹는 페스코(Fesco), 달걀과 유제품까지 허용하는 락토-오보 (Lacto-ovo), 모든 동물성 음식과 가죽제품 등의 동물성 물건도 사용하지 않는 완전채식주의인 비건(Vegan)이다. 


어릴때부터 고기를 먹으면 몸과 마음의 불편을 느꼈다. 성장해서는 무엇을 먹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쫒으면서 깨달은 것은 몸과 의식은 먹는 것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육식을 멀리 하며 먹거리에 대한 독립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그녀 삶을 창조하는 신념과 연결되기도 하였다. 그녀의 신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 계기는 호주에서 머문 3년의 시간이었다. 20대를 청담동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그녀는 20대 후반, 휴식과 공부를 위해 호주 유학길에 오른다. 채식문화가 보편화 된 호주는 각자의 개성과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비로서 잠재되어 있던 먹거리에 대한 생각을 실천 할 수 있었다. 또한 우연찮게 일하게 된 호주의 비건레스토랑에서 베이킹과 요리를 담당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새로운 진로를 계획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때맞춰 채식붐이 일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어시스트를 마다하지 않고 참여해 실력을 쌓았다. 





이렇게 먹으면 채식할 수 있겠어요! 

베이킹 클래스에서는 원칙이 있다. 첫째 우유, 버터, 계란, 마가린, 인공첨가물, 트랜스지방, GMO는 철저히 배제한다. 그래서 GMO 식품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거나 계란, 유제품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도 안전하게 먹을수 있다. 둘째, 최상의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고 최저의 당분과 유지를 넣는다. 셋째, 우리땅에서 나는 유기농 제품을 사용한다. 케익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우유, 버터, 계란 및 화학적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으면서도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 연구에 몰입한다. 


쿠킹 클래스에서는 채식을 하고 말고를 논하지 않는다. 육식을 하지 말자가 아닌 건강한 채소를 어떻게 먹을까란 주제에 촛점이 맞춰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로 세계각국의 다양한 채소요리법을 구현해낸다. 화려한 비주얼에 맛있고 건강한 비건요리 클래스와 베이킹 클래스는 지방에서 찾아와 배울만큼 매우 인기가 좋다.


우리나라의 제철채소와 수퍼푸드를 이용한 세계요리와 우리밀의 단점을 보완하고 소화가 잘되는 탕종법을 이용한 제빵, 제과 수업이 주요 골자다. 즉, 동물성 재료에서 모티브를 얻어 채소와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메뉴 개발이 핵심이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채식할 수 있겠다’고. 







생활 밀착형 비건라이프를 즐기다 

그녀는 음식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비건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시절 하나의 화장품이 유통되기까지 무수한 동물이 화장품 실험으로 희생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화장품도 동물성 재료가 들어갔거나 동물실험을 자행하는 브랜드는 쓰지 않는다. 앞으로는 비건크리에이터로서 확대된 장르로 창작작업을 할 것이라고 한다. 생산 과정에서 잔인함이 없는 제품 정보도 공유하고 그 제품을 이용한 메이크업 스타일 클래스도 열 예정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중인 비건크리에이터 박솔지 대표


자신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며 사는대로가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었던 그녀는 스스로 자기 삶의 방식을 창조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포부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르고 싶다는 그녀다. 다만 이 세상이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더 평화로운 기운을 갖기를 바라는 정도가 그녀가 가진 소망이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나라에 나같은 사람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일하는 것이 천성이라는 그녀는 정말 일을 즐기며 하는 프로다움이 묻어난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이드 하고 싶다는 그녀를 통해 대한민국 사람들이 조금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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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스타일을 조각하는 Style PD 이진영 대표를 만나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안에 이미 형상이 들어 있어 조각가는 그것을 끄집어 낼 뿐이라고 했다. 그가 대리석을 두드리는 행위는 조각하는 것보다는 형상을 빨리 꺼내 자유롭게 해주려는 행위였다.

이진영 대표는 스타일 컨설팅을 하고, 헤어 & 메이크업샵 운영하며 뷰티아카데미에서 메이크업 레슨과 강의를, 의류 MD 사업을 병행한다. 한 사람이 하기에 굉장히 많은 일이 아닌가 싶지만 그녀의 지난 경력을 보면 이해가 간다. 헤어디자이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며 틈틈이 스타일 공부를 하여 방송국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미국에서 만난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인연으로 마카오에서 의류샵 MD 사업도 병행, 한국에서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풀어보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헤어디자이너 & 메이크업 아티스트에서 

인순이, 백지영 등 스타들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스타일 이야기를 하니 오늘 아침 맘에 드는 옷이 없어 옷장 앞에서 실랑이하던 때가 떠올랐다. 여자들의 영원한 미스터리. 옷장에 옷은 미어터지는데 정작 입고 나갈 옷이 없다는 것. 매 시즌별 같은 의문이 든다. “대체 작년에는 는 뭘 입고 다닌거지?” 이런 의문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것이다. 나의 이 말에 이진영 대표도 공감하는 웃음을 보였다. 동그란 무늬가 큼직하게 패턴을 이룬 흰 셔츠와 검은색 중절모를 매치한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을 설명해주었다. 








“이 옷은 제가 작년에 입었던 건데요, 이상하게 올해 입어보니 작년하고 느낌이 달랐어요. 옷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일 년 사이에 변한 거에요. 그런데 이 옷은 제거 무척 좋아하는 옷이라서 다시 입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 모자를 매치했어요.”   


가수 인순이의 스타일리스트 시절 가수 인순이의 공연이 끝나고



그녀가 모자를 벗은 모습을 보여줬다. 모자 착용의 차이가 엄청 달랐다. 작년에는 모자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얼굴의 형태, 이미지, 느낌이 바뀌었기에 시선을 모자로 분산시켜 준 것이란다. 이런 게 바로 스타일을 잡아주는 거다. 환경, 사람에 따라서 최적의 상태로 맞춰놓는 것, 스타일은 고정이 아니라 유동적인 흐름인 거라고. 그녀의 스타일 강의에 입이 떡 벌어진다.


남편 스타일이 변하는 것을 보고 

남편 친구들이 앞다퉈 컨설팅을 의뢰하다.


남편의 스타일이 변한 것을 보고 남편 친구들이 하나둘 부탁해 왔다. 그중 한 친구분은 자신의 비즈니스가 커지면서 개인의 성장도 이뤘고, 그에 맞춰 스타일도 변화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늘 짙은 색깔의 슈트를 한 세트로 입어서 더 작고 답답해 보였단다. 쇼핑하러 가서 제일 처음에 고른 옷이 카키색 슈트 콤비를 권했다. (콤비 스타일이란 다른 슈트와 바지를 매칭하는 것이다. 슈트는 한 세트로 통일해 입으란 법은 없다고…) 


중국 미용대회에서 수상

“‘나는 키가 작으니깐, 저런 옷은 안 어울릴 거야.’ 라는 생각으로 패션의 다양성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남성분은 그 옷이 보이지 않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세요? 이제는 자기 취향을 말해요. ‘음, 저 옷은 가벼워 보여요. 나는 그래도 무게가 있는 게 좋아요.’라는 식으로 말을 할 줄 알게 된 거에요. 저의 스타일 컨설팅을 거치면서 남성분들도 스스로 자기 취향을 말할 수 있게 돼요. 요즘에는 그루밍족이 많아요. 남성들도 스타일에 관심을 갖는 시대인 만큼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 즐길 수 있는 남성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스타일을 연구하는 저로서도 참 재밌는 일이에요. 저의 고객이자 지독한 패션테러리스트였던 남성분이 생각나요. 편하게 입는 스타일이었는데 본인의 비즈니스가 성장하면서 그것에 맞게 스타일도 변화를 줘야 하는 고객이었어요. 스타일 컨셉을 잡고 퍼스널 쇼핑을 했는데 막 눈이 개안하는 느낌이었대요. 맨 마지막으로 저의 숍으로 모셔와 헤어컷을 해드렸어요. 그때 그분 말씀이, 패션의 완성은 헤어다! 라는 거에요. 지금은 그 스타일을 유지한 채로 비즈니스를 잘하고 계셔요.”  


클래지콰이와 리쌍의 스타일 연출


그녀는 디자이너 시절부터 유독 예민하고 까다로운 고객이 많았다. 다른 디자이너라면 피했을 텐데 그녀는 고객의 까다로움이 미에 대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역지사지가 되었다고. 그래서 더욱 고객 맞춤형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했다. 진심은 다 통한다고 저의 그런 생각이 고객에게 전해진 것 같아 단골도 많았다.


“메이크업 받으러 오시는 여성 고객에게 저는 될 수 있으면 노하우를 알려드려요. 저에게 메이크업 받고 마는 것이 아닌 본인의 스타일을 연구하라고요. 자기 얼굴을 스스로 그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내가 얼마나 예뻐질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연출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변화를 보면 더 예뻐지려고 하는 동기부여가 생기는 거죠.”



스타일 프로듀서는 변화가 필요한 사람에게 

스타일을 진단하고 프로듀싱 함으로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이미지를 갖추도록 코칭하는 사람입니다. 



이진영 스타일PD가 말하는 스타일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람의 전체 이미지만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그 사람의 내면과 생각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거죠. 그 전체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느냐를 연구하는 것이 관건이에요. 스타일리스트 하던 시절에도 컨셉이 나오기 무섭게 엄청 돌아다니면서 공부했어요. 지금 제가 뷰티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스타일PD는 연륜이 생기는 직업이에요. 제 연륜을 잘 활용하고 싶어요.” 


그렇게 그녀의 손끝을 통해 스타일의 극적인 변화를 이룬 사람이 여러 명이다. 주 고객이 30대 후반 50대 초반인데, 이때가 미적 감각이 변하는 시기이다. 비즈니스는 무르익고, 나이에서도 성숙미가 묻어나는 때이니 그 극적인 변화가 재미있기도 하고 보람 있단다.  


  가수 정동하와 함께



매번 부족함을 느끼고 전환하느라 슬럼프를 겪을 시간이 없었다는 그녀. 그렇게 오래 일을 했지만 늘 새로운 고객 앞에선 긴장한다. 그녀를 만나서 더 예뻐지고 멋있어져야 하는데 혹시라도 부족해서 못 해주진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늘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래서인지 고객 관계에선 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한다. 스스로 100%가 아니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스스로 달달 볶는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장이기질이 발휘되는 것이다. 


"스타일 PD, 즉 스타일 프로듀서는 변화가 필요한 사람에게 스타일을 진단하고 프로듀싱 함으로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이미지를 갖추도록 코칭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고객을 만나서 캐릭터를 살펴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스타일을 꺼내주는 거예요. 저를 통해 자신이 더 멋져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타일은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무엇이다.'라던 이탈리아 스타일의 거장 알바자 리노(Al bazar lino)의 철학이 떠오른다. 결국 스타일이란 ‘타인이 모방할 수 없는 표현양식을 가진’이란 의미를 넘어 자신의 개인의 가치와 생각이 표현되는 것이다. 그녀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내면의 가치를 표현할수 있는 멋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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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마이웨이, 

35년간 기자로 살아온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大記者) 


by 퍼스널브랜드PD 박현진




사람마다 한 가지 길을 선택하면 나머지 길은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삶의 길은 숱한 회한이 남기 마련이다. 여기 무려 35년을 기자라는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대학시절도 학보사 활동을 했고 군대 3년을 다녀온 것 이외에는 20대부터 지금까지 기자생활만 해 온 사람. 기자 생활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모든 것’이라고 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천직(天’職)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그는 1090 평화와통일운동 이사로 통일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1090청년위원단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그리고 부사장을 만나 기자로서 그리고 리더로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김종필 증언록을 쓰고 있습니다. 김종필(JP)씨는 우리나라 정치사의 산 증인이자 현대사의 격동과 성취와 좌절을 다 겪으신 분입니다. JP 증언록이자 현대사 회고록을 취재하고 작성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통일 운동을 하시는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게 통일운동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서 말하는 ‘가지 않은 길’ 같은 것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보고 있는 것이죠. 지금의 2030 세대는 통일을 경험하는 세대가 될 것인데 청년들의 관심이 적습니다. 그 이유는 ‘피부로 와 닿지 않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당장 자신의 현실을 준비하는데 급급해서’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 해보면, 통일은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처해있는 경제문제, 실업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북한이 새로운 해결책이 될 거에요. 우리 청년들이 북에 가서 건설업, IT산업, 영어교육, 관광업, 농사기술 활용을 할 수 있겠지요. 이들에게는 통일이 기회의 땅 ‘엘도라도’가 될 것입니다. 




35년간 기자생활로 현재 대기자의 위치까지 오셨습니다. 기자로서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정치부 기자만 30여년을 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부터 박근혜대통령까지, 지금 18대 국회인데 제가 11대 국회부터 출입 기자를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태도는 겸손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꼽습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기자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도 해당됩니다. 대상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대상자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죠. 기자도 같습니다. 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의 취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그 사람과 더욱 친해지고, 남보다 취재의 깊이가 깊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으로부터 특종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겸손하게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세상사는 모든 것에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연을 알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호기심이 평생 기자를 하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기사는 사연에 담긴 사실과 진실을 쓰는 것입니다. 정치 문제뿐만 아니라 작은 사건까지도 겸손한 자세로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면 흥미 있고 드라마틱한 얘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3년 8월 20일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가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뒤 변영섭 문화재청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현직 기자로서는 받기 힘든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으셨네요?
미국 워싱턴 DC의 중심부 로건 서클에 있는 대한제국 공사관을 환수 받은 공로를 인정받아서였습니다. 1910년 일제에 5달러에 강탈당했던 이 건물은 지난해 8월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 기간 역사에서 잊혀졌던 이 건물을 102년 만에 되찾을 수 있었던 데는 건물의 가치와 매입 필요성을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렸기 때문이지요. 20차례 이상 현장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고 칼럼과 강연,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공사관 매입 여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정말 집요하게 파고들었죠.

제가 기자로서 후배들에게 자주 말하는 것이 ‘사명감과 소명감을 먼저 내세우면 핵심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기사를 쓰면 그게 사회에 정의가 되는 것이지, 내가 소명감을 갖고 무언가 파헤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핵심에 접근을 못하게 됩니다. 

어떤 사연을 겸손하게 추적을 하다 보면 진실에 다가설 수 있고 그것으로 좋은 기사, 진실에 다가가는 기사가 됩니다. ‘나는 돈을 벌어야겠다.’, ‘ 내가 세상을 한번 흔들어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표출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행동의 유연성, 순발력, 상상력이 떨어집니다. 우리 20대 청년들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살다 보면 내 얘기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요즘 20대는 끈기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런 청년들에게 지혜를 나눠 주신다면요?
제가 자라면서 선생님들한테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한 우물을 파는 노력이 필요하다’ 였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좌절과 성취를 지켜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성취와 패배의 배경은 무엇인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한 우물을 파는 것’ 이었습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은 쉽지가 않지만 꾸준함으로 일관성을 지키면 드라마틱한 멋진 기회가 반드시 생기더군요. 복잡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 우물을 어느 정도 파야지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 가끔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선택이 맞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청년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세계를 구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때부터는 내공이 붙어서 좌절에 강해집니다. 그렇게 해서 기회를 찾고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 출장을 다니며 각 나라의 청년들을 많이 만났지만, 대한민국 청년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이 좋고, 영어도 능통합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신감을 가시세요. 

기자이자 한편으로는 리더이기도 한 그에게 좋은 리더의 조건에 대해 물었다. 다음과 같은 말이 돌아왔다. 리더는 상상력이 제일 중요하다. 기자들이 많은 기사를 써내면 최종 결정권을 갖는 사람이 편집국장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 노력을 편집하는 자리인 만큼 신중해야 하고 자개 개발에 철저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노력과 고민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러운 소통을 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리더는 상상과 결정력, 그리고 소통하는 사람이다. 리더의 조건을 말하는 부드러운 중저움의 목소리에서 깊고 진한 35년의 무게가 느껴졌다. 






사진: 이준호 포토그래퍼

인터뷰: 1090 청년분과(박현진, 이혜미, 나은샘, 박선미)
인터뷰 글 정리: 나은샘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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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산토리니의 맛을 책임지는 남자한만재 셰프를 만나다

먹는 순간, 만든 사람이 궁금해지는 요리가 있다. 재료의 선도와 적절한 조합 등으로 절로 탄성이 나오는 순간이다. '산토리니'의 한만재 셰프의 요리에서도 그 궁금증이 생긴다. 정성과 자연스러움을 담은 그의 요리에서 고객의 오감만족을 지향하는 고집이 느껴진다. 음식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나가겠다는 한만재 셰프를 만나 그의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Q.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릴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 몸을 움직이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학창시절은 모형항공기 제작에 빠졌어요. 그 덕분에 수능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운 좋게 대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은 호텔, 외식 경영학과가 유명했는데요. 부모님이 레스토랑을 운영하셨고, 저도 레스토랑 경영에 관심도 있는 터라 대학에서 복수전공으로 외식경영을 선택했어요. 레스토랑의 핵심인 주방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게 운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의 적성을 일찌감치 발견해 한길을 걸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발견한 적성을 다듬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국내에도 이미 좋은 문화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는 사람이 많아서 굳이 유학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현지에서 높은 수준의 레스토랑을 다녀보고 외식 문화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경험 덕에 저는 더 공부를 하려고 했고, 더 많이 생각하려 했고, 좋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셰프의 훈련방법이 있나요?    
직접 경험해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학습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요리를 하는 저에겐 직접 다른 사람이 한 요리를 먹어보고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서울의 유명한 레스토랑들을 다녀봅니다. 이 음식을 만든 셰프는 식재료들의 궁합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거죠. 그리고 제 주방으로 돌아와 저의 스타일로 재해석해봅니다. 또 하나는 간접적인 방법입니다. 세계의 유능한 셰프들의 책을 많이 보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연구합니다



Q. 롤모델 셰프가 있나요? 
셰프로서 사는 저에게 두 명의 롤모델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영국 출신의 제이미 올리버예요. 음식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나가겠다는 그의 목표가 좋아요. 문제아로 불렸던 불우 청소년 15명에게 요리를 가르쳐 피프틴(fifteen)’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요. 청소년들에게 요리로 삶의 희망을 찾게 해주었어요. 영국의 급식 문화와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에 길들어 있는 학생들의 식생활 개선 계획에도 적극 참여해 혼자서 괴멸 상태에 가까웠던 영국의 급식 제도를 바꾸는 데 성공한 업적이 있어요. 당시 치킨 너겟을 먹는 꼬마들에게 치킨 너겟의 제조과정을 보여주는 충격요법을 쓰기도 했어요. 이 사건은 , 우웩이라는 제목으로 EBS 지식채널e에도 소개되었죠. 그가 요리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닮고 싶어요.

또 한 명은 이탈리아 음식을 한국에 들여온 안토니오 심 셰프입니다. 2004년 이탈리아 정부에서 운영하는 요리 학교 일 꾸오꼬 알마(IL CUOCO ALMA)를 국내에 론칭해 이탈리아 음식문화를 국내에 널리 알리고 있어요. 2010년 요리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 대통령 훈장을 수여받은 분이기도 합니다. ‘외국 요리를 배울 때 테크닉이나 레시피가 아닌 그 문화를 먼저 익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음식도 그 나라의 문화 속에서 발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음식에서 요리의 뿌리를 중시하는 이분의 철학이 참 좋아요.




Q. 한만재 셰프만의 요리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요리는 정성과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요리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제철에 나오는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해 저의 철학이 담긴 요리를 만들려고요. 인공 조미료는 가급적 줄이고, 스테이크 소스나 드레싱은 직접 만들며, 육수도 직접 뽑습니다. 산토리니의 대표적인 디저트인 젤라또도 직접 만들어요. 샐러드용 채소도 수경 재배실에서 무공해로 재배하고 있어요. 산토리니 채소는 드레싱을 가급적 하지 않아요. 올리브, 소금, 후추 조금 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채소를 수확해서 오래 두면 절단면에서 쓴맛이 올라오거든요. 그래서 쓴맛을 가리려고 강한 드레싱을 사용하는데, 산토리니 채소는 바로 수확한 신선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냥 드셔도 신선한 본연의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산토리니 피자는 나폴리 스타일의 화덕식 오븐에서
450도로 90초간 구워냅니다. 나폴리 피자 협회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이탈리아 피자를 만드는 제대로 된 방법을 배웠어요. 이탈리아 정통 피자는 원래 짧고 강한 화기에 순간적으로 익혀요. 좋은 치즈를 쓰면 피자가 식어도 굳지 않아요. 나폴리 피자는 잘라서 나오지 않고 통째 나옵니다. 저희 
손님들도 기호에 맞는 크기로 잘라드시면 좋겠어요.



Q. 일을 하면 힘들때도 있을 텐데, 어려움을 극복하는 셰프의 방법이 있다면요?
외식업의 특성상 근무시간이 길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노동의 강도가 무척 센 편이에요. 바쁜 시간대는 마치 폭풍우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순간이 지나면 또 무사히 최선을 다해 잘 넘겼구나 하는 쾌감이 있습니다. 저는 산토리니에서 파인다이닝퀄리티를 높이고 싶다는 열망이 큽니다. 10년 안에 산토리니를 세계 100대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하는 게 목표예요. 그 생각하면 피곤함도 싹 사라져요. 



Q.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공개해주세요!
요즘은 산토리니 메뉴를 개편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반영하고 싶었던 요리를 메뉴에 적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 구속력을 갖기 위해 제가 구성한 프로젝트가 있어요. 프로젝트명은 나인프로젝트(Nine Project)예요. 9라는 숫자는 꽉 찬 느낌이 들어서 좋아해요. 6월부터 내년 2월까지 매월 1개씩 총 9개의 신메뉴를 개발하겠습니다. 매월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에 맞춰 시식회도 하고요. SNS채널을 통해서도 오픈하려고요. 이렇게 선포해버리면 남은 건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없겠죠? 하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선 빛이 난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사람들이 먹고 만족할 때 행복을 느낀다는 한만재 셰프에게서도 빛이 났다. 요리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눈빛이 바뀌는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쉴새없이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스스로 약속한 나인 프로젝트다. 그의 주방에서 매달 탄생할 새로운 요리가 기대된다.


한만재 셰프 약력

  • 산토리니 레스토랑 오너 셰프

  •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졸업

  • 세종대학교 외식경영학과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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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를 묵묵히 돌파하는 남자,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를 만나다

by 퍼스널브랜드PD 박현진 



새벽 응급실 응급외상환자가 실려왔다. 밤 늦게 연락받고 달려와 참담한 현실을 만난 보호자는 망연자실 울고만 있다. 응급센터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의 한 의사가 보호자에게 다가온다.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긴장묵직한 진중함이 섞인 어느 의사의 목소리.
그 한 마디의 여운이 깊었나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나중에서야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 의사가 이국종 교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국종 교수는 MBC 의학드라마 '골든타임'의 등장인물 '최인혁' 교수의 모델로, 2011년 1월 '아덴만여명 작전' 당시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총을 맞고 생명이 위태로웠던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증외상환자를 주로 집도하는 그는 EBS 다큐멘터리 '명의 3.0', MBC 다큐멘터리 '골든타임은 있다' 등을 통해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사단법인 1090평화와통일운동 TEK 봉사단 멤버이기도 한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센터장 이국종 교수를 만났다






Q: 중증외상환자들이 일반 환자들과 많이 다른가요?
이런 환자들은 보통 밤에 많이 발생해요. 매우 곤란한 상황이에요. 밤이 되면서 꺼졌던 모든 것들을 다시 켜야 하니까요. 중증외상환자들은 거대한 중장비, 즉, 커다란 시스템이 움직이는 거에요. 예를 들어 ‘응급환자’도 일반적인 응급환자는 치료받고 약 받고 아니면 주사를 맞고 퇴원하는 거죠. 약물로 치료하는 건 의사 한 명이 해결할 수 있어요. 중증외상환자들은 수술 시스템을 돌려야 해요. 수술 방의 장비, 기계도 켜야 하고, 집도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마취과 의사 등 다른 인력들도 투입 되야 하고요. 병원이라는 하나의 큰 시스템을 다시 작동시키는 거죠. 중증 환자 한 명을 치료할 때 수술을 하느냐 안 하느냐 그 차이가, 곧 병원 하나의 시스템을 움직이느냐 안 움직이느냐의 차이가 되는 거죠. 중증환자는 조직이 으깨지고 터진 상태에서 수술하기 때문에 수술의 강도가 무척 세요. 자동차가 고장 나면 부품을 바꾸면 그만인데 사람의 내부장기는 그럴 수 없잖아요. 다 부서지고 끊어진 걸 어떻게 해서든지 치료를 해야 하고. 그러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어요.



Q: 어떻게 중증외과를 선택하셨나요?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외과로 갔어요. 같이 하자 그러더라고요 전망이 좋은 학과를 갈까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성격이 급하니까 차분한 내과 의사는 전혀 안 맞는 것 같고, 성형외과 쪽도 마음이 있었는데 저 말고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겠다 싶더라고요. 아버지가 6·25 때 지뢰를 밟아 눈과 팔다리에 부상을 입은 장애2급 국가유공자인 이유도 있었고요. 



수술직후 바로 약속장소로 들어온 이국종 교수와는 도시락을 먹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이국종 교수



Q: 의사로서 수술을 하는 훈련은 어떻게 하나요?
외국 유학 다녀와서 제 방법대로 외상수술을 하니까 연세 많으신 교수님들이 혼을 냈어요. 의사들이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그런데 그게 의학의 본질을 지키는 safety line같은 거에요. '젊은 의사들이 함부로 이상한 짓을 하면 안 된다.'라는 말과 같아요. 왜냐하면 어떤 수술방법이나 치료, 약물 같은 게 검증도 확실히 안 되어있는데 젊은 의사가 한두 번 해보고 훨씬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생각하고 함부로 쓰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교과서적인 치료 원칙에서 함부로 벗어나면 안 돼요.
우선 기초와 기본을 탄탄히 쌓은 다음에 나중에 숙련이 되었을 때 자신만의 form을 만들어야 해요. 기본도 안 된 상태에서 처음부터 자기 멋대로 수술하면 처음엔 실력이 늘어나는 듯 하다가 나중엔 더 이상 늘지 않아요. 처음부터 자기가 직접 수술을 집도할 순 없고, 많은 윗사람들의 수술을 보고 배워야 해요.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는 거에요. 제대로 적성을 찾지 않은 채 '나는 외과의사가 되어야겠다.'라고 함부로 생각할 수도 없고요. 공부하고, 쉬지 않고 윗사람 수술에 수술보조로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혼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면서 배우는 거죠.
한 사람의 의사가 만들어지기까지 5-8년이 걸려요. 외과 쪽은 더 길어요. 손으로 자기 손에 감각을 익혀야 하니까. 내과 의사들은 공부를 많이 하고 환자 외래진료만 보면 되는데 외과 의사들은 그게 기본인데다가 남의 몸에 칼을 대는 거잖아요. 만만치 않죠.


Q: 가장 인상 깊었던 환자가 있나요? 이를테면 첫 수술을 맡은 환자거나…
‘첫 수술’의 느낌, 그런거 없어요. 얼떨떨한 상태에서 투입이 되니까. 석 선장님 기억에 많이 남죠. 그런데 사실 돌아가신 분들이 더 기억에 남아요. 속된 말로 아주 미치겠어요. 간 기능 해결하면 콩팥기능 망가지고, 그 다음에 폐가 망가지고, 폐 기능 해결했다 싶으면 갑자기 감염성 병균 때문에 고생하고….
누군가 죽는다는 건 언제나 고통스러워요. 어떤 환자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브도 반납하고 심지어 신정, 연휴도 쉬지 못하고 매달렸거든요. 그런데 돌아가신 거에요. 몸이 힘든걸 떠나서 심적으로 괴로워요.




Q: 환자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세요?
통상적인 의사들이 하는 일과는 많이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사전에 환자들과 교감을 나누잖아요. 누가 수술할 의사인지 미리 서로의 신상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기본적으로 의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죠. 저에게 오는 환자들은 중증 외상 환자이기 때문에 의식이 없이 와요. 저와 교감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에요. 환자 보호자 분도 절반은 연락이 안 되고 나중에 연락되어도 수술중인상태이고 수술을 마쳐도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요. 저하고 교감을 나눌 정도면 저에게 올 분들이 아니죠. 제가 하는 소통이라면 일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듣는 거죠. 





Q: 20년간 의사로서 사셨는데, 시간을 견딘 지혜가 있다면요?
하루하루를 살아냈어요. 주어진 일을 하면서. 힘들긴 힘들어요. 죽을 만큼. 이거 말고 다른 일들도 다 힘들잖아요. 환자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많지 않아요. 그 외 다른 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도 많죠. 사직서를 품에 넣고 다니는 거? 그것도 사실은 사치에요. 어떻게 자기가 그런걸 가지고 다닐 수가 있어요? 짤리는거지.



Q: 의사로서 최고의 때는 언제인가요?
지금이 절정이에요. 수술 실력도 그렇고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엔 노안이 와서 좀 힘들어요. 이제부터 점점 체력이 떨어질 거에요. 지금이 마흔 일곱이니까 앞으로 5년 후까지만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어느 외과의사나 나이가 들수록 스킬은 늘지만 체력이 점점 안되잖아요.



Q: 교수님을 이 자리에 있게 한 멘토나 스승이 있나요?
주위 사람들이 다 멘토예요. 저는 오히려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제일 많이 배워요.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요. 의사와 간호사의 직급이 위, 아래로 구분되는 게 아니에요. 하는 일이 다를 뿐이죠. 일하다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아요. 어떤 간호사는 임신 8개월임에도 불구하고 헬기 출동을 마다하지 않아요. 그리고 경기소방 항공대 파일럿 분들 비행하다 보면 위험한 상황이 많아요. 헬기가 번개에 맞아 불시착을 마주할 때도 있고, 정말 목숨을 걸고 일해요. 각자 바쁜 일을 하면서 동료가 헬기 타고 출동할 때 다들 나와서 이륙하는 거 봐주고 그런 끈끈함이 있어요.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이고 멘토에요.



Q: 의사를 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에요?
환자분들 살아서 나갈 때 매번 그런 생각이 들죠. ‘의사 하기 잘했다.’ 라기 보다는 기쁜 거죠. 심장이 멎은 상태에서 심장 마사지를 해가며 수술 방에 들어가요. 정말 끌고 들어간다는 표현을 써요. 세상에 아무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환자와 저 딱 둘이 있어요. 제 손에서 끝을 내야 해요. 제가 밀리면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제가 좀 더 잘하면 환자가 살 수 있는 두 가지 상황밖에 없어요. 어떤 분은 극적으로 회생하거든요. 그러면 지옥에서 끌어올리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이 사람은 살았구나 하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만 저희가 하는 게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사실 의사라는 직업이 저라는 그릇으로 담기엔 너무 큰 일이에요. 남의 목숨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잖아요. 부담감이 커요.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세요. “별 볼일 없는 수많은 의사들 중에서도 네가 참 하바리인데, 그런 별 볼일 없는 네 주제에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 정도 임팩트를 낸다는 자체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하세요.



Q: 1090 평화통일운동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통일을 할 땐 마음이 통해야 하잖아요. 북한에서 스스로 ‘우리의 사회보다 남한의 사회가 더 좋아.’라고 스스로 느끼게 해줘야 하는데 제일 좋은 게 의료에요. 왜냐하면 의료가 제일 노동집약적이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섞여서 일하기가 제일 좋은 곳이기도 하구요.
아주대 의료원 이 좁은 면적에서 3,000명이 일해요. 그래서 통일을 준비할 때 의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대북의료지원은 약과 의료장비를 보내주는 식이었어요.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장비가 없는 일반 병실은 그저 숙박시설에 지나지 않아요. 남한식 병원을 북한에 지어서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곳에 남한 의사, 북한 의사, 남한 간호사, 북한 간호사 절반씩 배치해서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남한 의사들이 직접 진료하고, 수술을 잘 해서 환자를 살려내면 분명 소문이 일파만파 커질 거에요. 그 시스템 안에서 남한 사람들이 뭘 입고, 뭘 먹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병원 안에서 다 볼 수 있을 거에요. 그게 제가 의사로서 제안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Q: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김훈의 칼의 노래요. 한 글자도 놓고 싶지 않아요.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희망이 없는 세상을 희망 없이 돌파하는 한 사내의 이야기.’라고 저자가 직접 쓴 글이 있어요. 희망을 별로 떠들지 않고, 희망을 말하지도 않고, 세상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세상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이요. 누구에게나 다 적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창한 사명이 아닌 거죠. ‘그렇게 희망이 다 없어진 가운데에서도 조금씩 돋아나는 또 다른 희망의 새싹을 얘기하고 싶었다.’ 이런 문장도 기억에 남아요.



Q: 요즘 청년세대가 희망이 없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런 청년들에게 들려줄 말씀이 있으신지?
더 열심히 해야 해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아요. 유사 이래 청년들이 힘들지 않다고 한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청년들이 자기들 뜻대로 다 해 본 시절도 없었어요. 먹고 살려면 자기 몸 움직여서 뭘 해야죠. 누군가가 잘 되는걸 걸 보면서 괴로워할게 아니라, 그렇게 된 이면을 볼 줄 알아야 해요. 그 사람은 뭔가 쌓인 게 있고, 더 노력한 게 많을 거예요. 외국어 스펙이 서너 개가 필요하다 싶으면 하면 되는 거에요. 왜냐면 쌓아놓은 실력은 어디 가질 않으니까요. 중국사람들에게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표현이 없대요. 남과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남겼다. 타인의 삶이 멀리서 보면 멋지고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그 가까이에는 미처 몰랐던 힘겨움과 고난이 가득 숨겨져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라마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될 정도로 유명한 의사라는 명성 이면에는 수면부족과 과로로 인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현실의 의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응급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므로 병원 반경 1km를 벗어나지 않는 사명감이 가득한 의사였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오늘도 묵묵히 삶을 걷는 의사. 대한민국에 이런 의사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함께한 인터뷰이 (호창생략) 좌로부터 장근우, 박현진, 이국종, 조연심



사진: 심재창 포토그래퍼 

인터뷰: 1090 청년분과 조연심, 박현진, 장근우

인터뷰 글 정리: 최유정, 이혜미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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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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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무척 잘 읽었습니다 . 출처를 밝히고 다른곳으로 퍼가도 될까요?
    • 2015.04.27 23:2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
      글을 자주 수정함으로 본문을 가져가시는 것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링크를 가져가시거나 트랙백을 걸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체게바라
    2015.07.25 17: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참 훌륭한 분을 찾으셨네요.
    그리고
    이해가 잘 가게 잘 정리된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두분 다 뵌적은 없지만
    이국종교수님, 뭔지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박현진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박명호
      2016.01.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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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 BlogIcon 박명호
      2016.01.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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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3. 2016.05.14 07:2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정말 대한민국의 대표 의사 선생님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휼륭하시고 존경이 우러러나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오래도록 한국 의학역사에 위대한 인물로 기억될것입니다.
  4. 까뮈이
    2017.11.29 11:1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글 입니다^^

1. 현재 하시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자연치유와 마음치료를 함께하는 “힐빙Heal-Being”에 뜻이 있어
남양주 수동에서 5년전 최초의 힐링펜션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휴식과 음식치유 그리고 건강강좌를 연결하는
힐링캠프 프로그램인 “아리원건강캠프”를 만들어 진행합니다. 

작년에 KBS, MBC등 6군데와 올해는 중국의 CCTV방송에 소개되었고

(http://blog.naver.com/leesaeku 의 Tv속 아리원 참조)
개별적인 체질과 건강 그리고 라이프 코칭까지 함께하는 스타그램 상담, 자연치유, 이완명상 지도를 합니다.

최근에는 차와 마음치유 그리고 명상을 함께하는 동이건강차 교육과정을 개설하여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건강차 멘토 과정'과 '마스터과정' 교육을 체험프로그램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VJ특공대 방영



2. 이완혁명을 번역하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이완혁명의 원제는  'Relaxation Revolution' 입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가 명상이 붐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시작점에 하버드 의과대학의 심신의학센터 소장인 허버트 벤슨박사가 있어요.
1970년대에 명상하는 분들의 뇌를 fMRI를 찍어 이완과 명상을 했을 때의 뇌의 변화를 통해
질병의 직접적인 치료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정리를 하셨어요.

이완혁명
국내도서
저자 : 허버트 벤슨,윌리엄 프록터 / 이세구역
출판 : k-books(경문사) 2013.11.29
상세보기

이 책은 약물과 수술이 아닌 이완과 명상으로 웬만한 병들의 치료할 수 있는 방법과
그 결과를 정리한 책으로 자연치유나 명상의 효과를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입증한 책입니다.
현역 심장전문의가 명상에 대한 이해를 의학적 결과로 소개했습니다. 
국내에 명상의 과학적 근거가 필요한 시점의 번역이었습니다.




3. 이완혁명에서 다루는 심신치료를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심신치료는 각종 질병들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뇌에서 인식하는 바에 따라 통증도 증세도 나타나게 됩니다.

약물이나 수술로 이러한 기전을 억제하거나 병원균을 없애는 형태의 치료도 필요하지만
마음을 이완시키고 명상으로 뇌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면
긴장된 상태의 근육이나 질병이 상대적으로 이완되면서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뭉쳐있던 것들을 풀어주고 이완시키는 방식으로 몸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와 방법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몸과 마음은 원래 둘이 아니라서 심신(心身)불이(不二)라 하는데
자신을 통제하는 것 중에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긴장을 푸는 이완작업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이미지와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명상Meditation을 하시면
이것이 바로 좋은 약Medication이고 치료Medical인 것입니다.



4. 책 한 줄 정의
“우리는 이제 마음으로 몸을 치유할 수 있다”


캘리그래피_ 석산 진성영



5. 공황공포증, 파킨슨병, 우울증 등 일반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게 하는 치료법과는 다릅니다.
심신치료의 적용범위를 설명해주세요.
현대의학의 발달은 세균과의 전쟁으로 질병의 원인을 외부의 감염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세균을 죽이기 위한 항생제, 억제제등으로 약물치료를 해서 상당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다만 내적인 면역기능이 떨어진다든지, 밸런스가 무너졌다든지, 혈액의 산성화나 호르몬 분비 이상 등의
세균외적인 요소에 대한 약물치료는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공항공포증이나 우울증 등은 대표적인 감정적요소로 통제되고 호르몬이상이나 밸런스가 깨진 경우입니다.
파킨슨병은 좀더 복합적이긴 하지만 큰 범주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이완과 명상 그리고 호흡과 같이 심리적 안정이나
뇌의 작용을 순화시켜주는 형태의 치료법이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6.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이완과 명상은 필요한 치료로 보입니다.
건강 및 체질 상담을 하고 계신데 가장 인상적인 상담사례가 있으신가요?
저는 마음치유, 스타그램 상담, 생활 습관의 개선, 음식 치유 등.
각자에게 맞춤한 식생활을 비롯한 이완과 명상을 통한 방법으로 체질 상담을 진행합니다.   
누구든지 비슷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체질에 따라 질병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보편적인 형태의 이완과 명상은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치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도구입니다. 
거기에 더해 각자의 체질, 환경을 조사해서 최선의 솔루션을 찾아주는 맞춤식 치유가
더해지면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경우가 있어 일일이 소개하긴 어렵지만
선체조와 명상요법은 저희 힐링펜션의 건강캠프에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봅니다.



7. 역자가 생각하는 이 책의 베스트 챕터, 단락이 있으신가요?
이 책은 이완이나 명상에 대해서 전혀 몰라도 쉽게 따라 해서 효과를 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7장에 구체적인 심신치료에 대한 지침에서 자신과 관련된 질병,
이미지를 통한 이완과 명상을 해보면 스스로가 차분해지고 몸의 컨디션이 개선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원래 명상은 동양의 것입니다. 

서양으로 건너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개선되었죠. 

그것이 이 책인 이완혁명이고 이 방식으로 여러 질명이 개선된 사례가 이 책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8.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역자도 오랫동안 명상수행과 채식을 직접 경험했고 이완과 명상에 관해서는
동양의학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좀더 발전시킨 “이완 힐링”에 관한 책을 기회가 되면 써보고 싶어요.
또한 체질의학과 동서양천문을 융합시켜 만든 영성(靈醒)천문에 관한 책을 내고 싶습니다.


▲천상열차


70억의 인구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각자가 지금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이
부모님이 선택한 인생이 아니라 각자의 영혼이 필요에 의해 부모님을 선택하고
목표에 따라 이번 세상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체질 이상의 체질과 성격, 특성과 자신이 태어나게 된 배경적 우주정보를 알게 되면
질병치료뿐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름길을 보여 줄 수 있을 겁니다.




9. 저자님의 꿈을 알려주세요.
저의 꿈은 모두가 함께 건강하고 보람된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현실적으로는 전원생활을 겸한 정신문화의 공동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고
꽃차와 동의건강차를 통한 전인치유의 장으로 자연치유, 마음치유, 한의학의 접목을 포함한 강좌를 개설하고 있습니다.
40여년의 학문은 통섭과 융합 그리고 소통으로 일컫는 천지인의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름대로의 전공분야와 넓이를 가진 공부를 했다면 그 목표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보완하면서
이 땅에 태어난 각자의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보람된 일이 될 겁니다.
이세구의 이름처럼 이세상을 구한다는 것은 결국 각자가 자신의 삶의 꿈을 이루고 잘 살아가면
세상은 나비효과처럼 좋은 파장으로 파급되고 모두가 각자의 역할만 잘하면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10. 그래도 못다한 말을 남겨주세요.
“이완명상”에 대한 좋은 내용의 책을 번역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명상이나 수련을 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거라 확신하고
또한 이런 저런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모든 환우 들이나 가족들에게도 약을 먹지 않고도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는 방법과 결과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라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질병의 단계가 스스로가 통제하지 못할 때는 당연히 전문가의 힘을 빌려야 하지만
몸은 많은 징후와 느낌 그리고 통증을 통해 전달합니다.
이완명상은 바로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치료하는 행위로
우리 몸에서 엔도르핀이나 바이돌핀을 생성시킬 수 있는 좋은 처방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현대인들이 스트레스에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완을 통해 명상을 할 수 있으면 자신의 인식과 생각이 바뀌고 차분해지면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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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하시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원래는 인물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였고, 10년 전부터 사람 심리에 관심을 사진과 접목하면서
사진을 찍고 찍히는 과정을 통한 치유를 접목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브랜드명이 포토테라피스트이다.


2.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알려주세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진과 텍스트로의 정리이자,
지금까지 사진가로서 경험했던 내용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책을 쓰게 되었다.


3. 책 한 줄 정의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캘리그래픽 _ 석산 진성영 캘리그래퍼


4. 책 쓰기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세요? 혹은 소재를 찾는 나만의 저장 창고가 있으신가요?
책 쓰기의 영감은 현장에서 경험했던 것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다 보면
이미지와 텍스트가 융합되어 맥락을 찾아낼 수 있다.
소재는 실행에서 찾고, 거기에 공통 언어를 찾기 위해 내용과 관계되는 학습을 통해 완성한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관련 언어들을 사고한다.
그것에 관련된 내용을 수집하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 아침에 그 결론을 나의 무의식이 던져준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외로울 땐 카메라를 들어라
국내도서
저자 : 백승휴
출판 : 끌리는책 2013.09.24
상세보기



5. 그동안 많은 피사체와 사랑에 빠졌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혹은 가장 기억에 남은 대상이 있다면요?
여자들이다. 사실 여자가 남자보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사진촬영을 통해 만족스러운 외모인식을 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것은 마치 예방주사를 맞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어떠한 어려움이 생겨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대상은 사진을 찍은 후에 얼굴이 긍정적으로 바뀐 많은 사람 전부이다.


6. 포토테라피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해주시다면요?
타인을 치유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 스스로 자존과 자신감이 없이 상대에 대한 맹목적인 치유적 행위는 상대에게 아픔만 안길 뿐이다.
포토테라피는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상대와 호흡하는 것이며,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통해서 그가 가는 길을 서브해주는 역할이다.
가지고 있는 도구로 간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포토테라피에 대한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다.
유행처럼 계속 변화되는 세상의 흐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준비하는 자의 모습이어야 한다.
노력한 만큼 자신에게 더 좋은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7. 저자 스스로 꼽은 책의 베스트 챕터, 단락을 꼽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포토테라피스트로서 치유에 대한 내용이 있는 곳을 꼽고 싶다.
사진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과정 중에서 중년여성의 자신감,
그리고 사진의 영향력으로 인해 다이어트에 성공한 대목도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요즘 삶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다양성 때문이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강의를 통해서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 방법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힘을 갖게 한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8.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이번 책의 내용 중에는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내면을 알아내는 내용이 있는데,
앞으로 관심 있는 부분은 사진과 글을 쓴 사람의 글을 분석하는 내용에 대해 접근하고 싶다.
물론 공부도 많이 해야겠지만 텍스트와 이미지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그 사람의 속마음을 분석하는 방법과 예시를 통하여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글로도
재미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음의 계획이다.


9. 저자님의 꿈을 알려주세요.
이제 사진은 누구나 찍고, 잘 찍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런 기준에 의해 사진가의 자존을 지키고 싶지는 않다.
사진이 치유라는 키워드와 잘 어울리는 만큼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재미난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꿈이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백승휴스타일의 포토테라피를 더욱 구체화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10. 그래도 못다 한 말을 남겨주세요.
누구나 뭔가를 하고 있어야 행복해진다.
나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은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된 갈구로 유지되고 완성되는 것도 알고 있다.
나에게 삶이란 생각한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행복해지고 싶다. 나에게 진정한 행복은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결과는 자연스럽게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되어있다. 과정에 충실하다면.





백승휴 저자가 직접 소개하는 최근의 활동


 1.곤지대왕 일루전
작년과 올해 두번이나 일본에 다녀왔다. 학생들과. 일루전이라는 환영기법을 이용하여 1500년전의 곤지왕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 전시는 송파구의 축제에서 부스가 제공되었고, 브로셔까지 만들어주는 멋진 기회를 갖게 되었다. 생각이 실천으로 옮긴 가장 최근의 일이며 감사할 일이다.





 2.강남구민 사진강좌
강남구청에서 주관하는 강좌인데 최단시간에 수강생 모집 완료된 강좌이다. 그리고 이 강좌의 내용은 새로운 강남찾기라는 주제로 사람들에게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강의에 가끔 제자들을 특강에 투입하여 강의능력배양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테크닉들을 공유하는 장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0년이상을 사진을 찍었던 프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자신을 단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3.불교방송 BBS의 힐링법석이라는 프로에 출연하여 50분간의 강의를 두번이나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금 정리하고 사람들과 사진의 의미와 영향력에 대한 것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4.강남구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를 예방하기위한 노인들에게 사진강좌와 사진을 찍어주고 전시회를 한 것이다. 이 장면은 참여자들과 촬영관련 봉사 지원자들이다. 노인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인식하고 자신감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포토테라피를 보여준 사례이다.





 5.성북구 평생교육센터에서 1년간 사진을 가르치고, 그 결과를 전시로  보여준 사례이다. 참가했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참여해 성왕리에 전시를 마칠 수 있었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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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하시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성안교회(장학봉 목사 담임)의 사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녀교육 강사로 특별 세미나를 인도하고, 자녀들을 위한 부모님 상담도 하고 있습니다.

두 자녀를 잘 키운 삼숙씨의 이야기
국내도서
저자 : 정삼숙
출판 : 나침반 2013.06.01
상세보기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알려주세요.

두 자녀를 기른 이야기를 해 달라는 많은 요청에 고민하던 중 출판사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어요.
자식 자랑으로 비춰질 것 같아서 책 쓰는 것도 여러 번 거절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교육학적인 접근이나 과장된 성공 스토리가 아닌,
신앙의 각도에서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교육 방법을 나누고 싶어서 책을 내게 되었어요.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과 단체 및 교회 등에서 강연 및 세미나 요청이 이어지고
이를 통해 놀랍게도 많은 부모님들이 새롭게 도전 받고 자녀교육의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내가매일기쁘게 방송출연 사진



 



책 한 줄 정의
두 아이를 명품으로 키운 빵점 엄마의 특별한 이야기


▲ 캘리그래피 _ 석산 진성영

 

대학교를 다니며 피아노 레슨으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도 피아노를 가르치기 보다는 인격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교육관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니 예수님의 방법으로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돈을 버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한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멘토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자녀분들에게 성경만을 읽히셨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요?

세상적인 교육 이론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비밀들이 성경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 디모데후서 3장 15절 말씀에도 있듯이
성경이야말로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줄리어드음대 대학원 졸업식에서 두 아이와 함께


 


책을 쓰시면서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이 책은 자녀교육을 위한 방법론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책이 아닙니다.
단지 ‘나는 두 아이를 이렇게 길렀더니 이렇게 되었다’는 나의 삶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자녀를 잘 키우고 성공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참 많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훌륭한 이론이나 방법론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그런 책을 봐도 자녀를 잘 키우기 힘듭니다.
저는 어떤 교육학 이론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실질적으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얻은 결과물들을 이 책에 담았어요.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누구나 저처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자 스스로 꼽은 책의 베스트 챕터, 단락을 꼽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105-106P  “하나님께 드리는 과외비, 이 이름은 큰아이가 죽음의 사선을 넘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감동으로 내가 지어낸 헌금 이름이다.”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두 자녀를 잘 키운 삼숙씨의 이야기>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와 조금 더 구체적인 자녀교육 방법을 담은 책을 한 권 더 쓰고 싶습니다.




저자님의 꿈을 알려주세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경험들과 열매들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땅의 소중한 자녀들을 기르는 엄마들이 거룩한 한나가 되기를 꿈꾸며
그 일을 위해 저 자신과 자신의 책이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못다한 말을 남겨주세요.

어떤 분명한 기준없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녀를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부모 때문에
고통 받는 아이들이 참 많잖아요.
저는 믿음이라는 분명한 기준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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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하시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꿈을 구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중입니다.
제 책 제목처럼 느리게 천천히 하고 있어서 지금 현재는 정해진 일이 없네요.
프로방스로 떠나기 전에 했던 방송작가 일을 계속할지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몇 군데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다시 힘들게 빨리빨리 살아야 하는 일이 두려워서 거절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천천히 사는 사람은 솔직히 자리를 잡기 힘들지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은 책읽기와 글쓰기입니다.


느리게 살아서 즐거운 나날들
국내도서
저자 : 원소영
출판 : 책이있는풍경 2013.07.18
상세보기




2. 책을 쓰게 된 이유
프로방스에 살기 시작한지 1년쯤 되었을 무렵인가요?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프로방스의 기억들을 저만의 것으로 묻어두기에는 아깝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아마, 알퐁스 도데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남프랑스 도시, 님 출신인 도데는 파리생활을 접고 이곳 프로방스로 내려와 살면서
<풍차방앗간 편지>라는 단편집을 썼습니다.
그는 아를에서 8키로 떨어진 퐁비에유 마을 언덕에 있는 풍차방앗간에 방을 얻어서 살고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담은 것이 바로 <풍차방앗간 편지, Lettres de mom moulin>입니다.
이 단편집 안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별’과 ‘아를의 여인’이 들어있지요.
프로방스에 살기 시작하면서, 저는 도데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곳은 가슴에 차오르는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었으니까요.
하나 덧붙이자면, 알퐁스 도데보다 뒤늦게 1988년에 쓰여 진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도 저를 자극했습니다.
그는 프로방스 집값을 올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한데요.
그가 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프로방스에서 살겠다며 몰려와서 그렇답니다.
안 그래도 날씨와 풍경이 좋은 프로방스는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유럽 사람들의 로망인 곳인데요.
책이 히트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프로방스에 집을 사면서 집값이 껑충 뛰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터 메일의 책은 참 사소하고 잔잔합니다.
편안하고 부드럽고 재미있는 책 안에는 프로방스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더군요.
그와 똑같이 책을 쓸 수는 없겠지만, 저도 사소하고 잔잔한 재미가 있는 책이라면 쓸 자신이 있었고, 쓰고 싶었습니다.
그가 영국인 남자의 시각으로 프로방스를 바라보았다면 저는 한국아줌마의 시선으로 프로방스를 보고 느끼고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밖에 프로방스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곳입니다.
피카소와 세잔, 고흐, 마르셀 파뇰, 알베르 카뮈, 마티스, 르느아르, 장 콕도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프로방스에서 그들의 예술혼을 불태웠지요.
그들은 왜 프로방스를 사랑했을까요?
그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도 제가 책을 쓴 이유 중 하나입니다.


 



벙투산에서 싸이클리스트들과 




세잔의 그림이 있는 레로브 전망대





3. 책 한 줄 정의 
느리게 살아서 행복한 인생.
여유를 갖고, 욕심내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인생은 저절로 행복해 집니다.



▲ 캘리그래피 _ 석산 진성영 작가



4.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여행객에게 이것만은 경험했으면 하는 곳을 추천하신다면요?
1.프로방스를 사랑했던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다녀 보기
 

2.카페에 앉아서 파란하늘의 구름을 세어보고,
햇살아래 책을 읽거나 메모처럼 짧은 글이라도 무언가 추억으로 남을 글을 써보기.

3.프로방스 특산품인 분홍빛 로제와인 마셔보기

4.여름에 프로방스를 여행한다면, 라벤더꽃밭에 놀러가거나 라벤더축제에 참가해보기.

5.프로방스 메종에서 머물러보기
. 우리나라 민박집처럼 샹브르 도뜨를 찾아가 보세요.
수영장이 있는 곳도 많으니까, 프로방스 메종에서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오후에는 수영도 즐기세요. 


▲ 라벤더꽃밭에서

6.지중해로 놀러가기. 자동차가 없다면, 버스를 타고 마르세유 해변을 찾아가도 됩니다.
니스나 칸 같은 지중해 도시를 여행할 때는 꼭 바다를 즐겨보세요.

7.프로방스 중세마을 구경하기. 고르드나 생폴 드 방스 같이 아름다운 마을을 둘러보세요.

8.여행 전에 프로방스의 축제를 찾아보고, 여행일정을 축제와 맞춘다면 더 특별한 프로방스 여행이 될 수 있을 겁니다.

9.전통시장 둘러보기. 아침시장에서 올리브나 빵을 사먹어 보고, 골동품시장에서 손때 묻은 물건들을 구경해 보세요.

  


▲ sud축제를 끝내고



5. 책 쓰기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세요? 혹은 소재를 찾는 나만의 저장 창고가 있으신가요?  
여행과 책읽기 그리고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떨기.
-제가 프로방스에 살기 시작하면서 다시 느려지다 못해 게을러졌는데요.
남편과 프랑스 남서쪽에 위치한 페리고르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가 문득 떠오른 영감이 있었습니다.
당장,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지요. 스토리는 소개할 수 없지만, 제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였답니다.

-책을 읽다가 영감을 얻는 분들은 저 말고도 많을 거예요.
저도 찌리릿한 느낌과 함께 영감을 받으면 얼른 메모를 합니다.
게을러진 탓에 당장 이야기를 꾸며내지 못했지만... 괜찮은 소재들을 많이 모아놓았지요.



▲ 꽃시장에서 도린,델리나와 함께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사소한 이야기 속에 엄청난 사건과 진실이 들어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 떠는 일을 좋아합니다.
주로 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아직 수다쟁이 기질을 못 버려서 그런지 제가
쓸데없이 수다를 떨다가 기운이 빠질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수다는 즐거운, 저의 힘이고, 제가 영감을 얻게 되는 원천입니다.



6. 저자 스스로 꼽은 책의 베스트 챕터, 단락을 꼽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마지막 43번째 프로방스 편지. 알베르 카뮈가 살았던 마을 루르마랭을 찾아갔던 이야기입니다.
꽤 공들여서 쓴 편지예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여행편지와 예술편지보다 봄부터 겨울까지 쓴 편지.
그곳에서 지지고 볶고 살았던 편지가 더 마음에 듭니다.
원래 책을 준비하면서 55통의 편지를 썼는데요.
편집과정에서 12통의 편지가 잘려나가고 43통의 편지만 실렸습니다.
물론 편지에 쓰지 못했던 이야기도 많았지요. 5년을 살았으니까요.
제 친구가 뽑은 베스트 단락은 59페이지...

‘왜 모든 것을 빨리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젖어있었을까?
왜 느리게........ (중략)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인생일 텐데.’ 도 제가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7.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프로방스를 특히 제가 살았던 도시 엑상프로방스를 무대로 한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꼭 그곳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고요. 그곳을 모티브로 단편이나 중편을 쓰고 싶어요.
미리 썼던 것도 있는데요. 세상에 나올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 저자의 집에서 친구들과 홈파티




8. 작가님의 꿈을 알려주세요.
제 꿈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그냥 작은 행복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어쩌면, 소극적인 제 꿈은 벌써 이루어졌는지 모릅니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에 만족해하면서 사는 것이지요.
제가 프로방스에서 느리게 천천히 살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요.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맛있는 밥 그러나 비싸지 않은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는 순간이 즐겁고요.
밥값이나 찻값을 내면서 ‘아! 참 좋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데 큰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끔 친구와 밥 먹고, 차 마실 여유만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겠다고 크게 포부를 갖는 것보다,
소중한 사람들과 정을 나누면서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는 소박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글은 또 다시, 제 가슴에 차오를 때 쓰고 싶고요.


▲ 페이롤앙프로방스에서 중세축제

 


9. 그래도 못 다한 말을 남겨주세요.
만약에 저처럼 외국에 나가서 살게 된다면, 그 나라의 말을 꼭 배우세요.
언어는 문화를 아는 기본이자 시작이니까요. 그리고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평소에 영어공부를 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어학공부를 안 했는데요.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프랑스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작 영어공부를 할 걸... 하고요.
저도, 제가 외국생활을 하게 될 줄 몰랐거든요. 물론 바쁘게 사느라 영어공부를 할 여유도 없었고요.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것처럼, 평소에 외국어공부를 해 두시면...
저처럼 어느 날, 해외생활을 할 기회가 왔을 때 유용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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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하시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경복대학교 항공서비스과교수 , 학과장역임

롤플레이 비밀노트
국내도서
저자 : 진민정,정수연
출판 : 씽크스마트 2013.08.20
상세보기



2. 책을 쓰게 된 이유
승무원을 꿈꾸는 학생들의 지침서를 발간하여 보
다 승무원 지망생들이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 차원에서 집필하게 됨





▲ 경복대학교 항공객실훈련셑너 개관식





3. 책 한줄 정의
나도 승무원이 될 수 있다.


캘리그래피_ 석산 진성영 작가


 


4. 승무원으로 근무하시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컴플레인을 해결한 극적인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기내용품인 담요를 기념으로 갖고 가시길 원하시는 고객에게
회사 규정상 드릴 수 없다고 충분히 설명하였으나 다른 사람들 다 가지고 가는 담요인데
뭘 그렇게 규정을 설명하냐며 화를 내시는 고객에게 다른 기념품을 대체품으로 드리고
목적지 도착까지 세심한 케어를 해 드려 고객의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5. 승무원을 지망하는 사람들에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승무원은 예쁘고 키크고 날씬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있는 상냥함이 중요합니다.
승객들이 원하는 승무원의 마인드를 갖추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훌륭한 승무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코레일 협약식


6. 책쓰기의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세요? 혹은 소재를 찾는 나만의 저장 창고가 있으신가요?
영감이 아니라 경험으로 터득한 노하우를 집약한 것입니다.



7. 저자 스스로 꼽은 책의 베스트 챕터, 단락을 꼽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모든 단락이 베스트입니다. ^^



8.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면접에 관한 책을 발간하고 싶어요



9. 작가님의 꿈을 알려주세요.
진정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친구 같은 부모가 되길 꿈꿉니다.



▲ 스승의날 승무원 제자들과 함께
 




▲ 아이의 첫번째 돌을 맞아 




10. 그래도 못다한 말을 남겨주세요.
너무 힘이 들 때 우는 것은 삼류입니다.
힘이 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웃을 수 있는 것이 일류이겠지요~~
모든 사람들은 힘든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힘든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라 생각해요.
어려울수록 긍정적인 생각을 지녔으면 합니다.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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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j
    2013.09.26 22:1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희 학교 교수님 인터뷰내용 주소복사해가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2013.09.29 19:5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북TV365 저자로도 출연하셨어요.
      미모의 교수님이셨죠 ^^

1. 현재 하시는 일 

법학박사이며 <영웅 백범>의 저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1999년 백범정신의 실천을 모토로 한 단체[(사)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현재 (사)PEACE KOREA]를 설립한 이후, 소외 계층 중심의 무료법률상담과 고아원매월정기봉사활동, 백범주제특강, 남북교류활동 및 지원 등을 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99년 단체를 설립하기 전까지 고등고시 헌법 스타강사로 신림동과 전국 유수 대학의 고시반을 석권한 바 있으나, 2000년 이후로는 백범 관련 특강과 연구 및 저술활동에 중점을 두고 칼럼니스트로, 대학교수로, 여러 사회단체들의 법률자문역으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 [영웅 백범]을 쓴 홍원식 법학박사

그리고 하늘이 주신 달란트라고 생각하는 강연(의)을 통해 ‘백범정신’ 또는 ‘백범사상’ 을 최대 다수와 최대한 많이 공유하고자, 저를 부르는 곳이면 전국 어느 곳이든 달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현직 경찰 간부 워크샵에서 전,의경 대원들을 상대로 한 <백범의 리더십> 순회 강연과 지방자치단체 초청 특강의 주요 주제였던 <백범식 통일관> 등의 강연은 강연자로서 보람있었던 자리로 기억됩니다. 

최근에는 ‘백범 사상’을 피력하는 기회를 넓히고자 ‘예비 공직자’라 할 수 있는 공무원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강의’와 함께 가을학기부터는 총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영웅 백범
국내도서
저자 : 홍원식
출판 : 지식의숲 2013.06.05
상세보기



2. 책을 쓰게 된 이유 
백범 선생님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한데 백범 선생님은 독립운동가이자 애국주의자, 민족주의자로서 과거의 위인 정도로만 주로 조명되다보니 세월이 흐를수록 젊은 세대들에게는 피상적인 혹은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 정도로 퇴색되어 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 백범 선생님의 정신과 철학이 제대로 조명되고 있지 못한 현실입니다. 모두가 통합을 말하면서도 진정한 통합을 위한 획기적인 대안은 없는 이때에, 백범의 정신과 철학은 갈라진 우리 민족이 지향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미래지향적인 ‘제3의 이념’이자 ‘생활 속 행복창출 이념’으로 결코 손색이 없기 때문입니다. 



▲ 백범 김구 선생님

 
반면 링컨은 오늘날도 여전히 수많은 책과 영화, 혹은 드라마 등을 통해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어린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백범 선생님보다 링컨에 대해 더 잘 알고 보다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문화적 접근성'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미디어와 각종 매체들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 세대들에게 오래된 책이나 교과서,역사다큐멘터리 등을 통해서나 간혹 접할 수 있는 백범은 전설처럼 머나 먼 과거의 위인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라 칭송 받는 백범 선생님이 역사 속으로 묻히지 않기 위해선, 이 시대가 양산하는 수많은 문화 컨텐츠들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머나 먼 과거의 영웅, 마치 전설 속 인물인 듯 인식되고 있는 백범 선생님을 보다 쉽고 흥미롭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을 통해 ‘백범 정신’을 널리 알리고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을 통해 재조명될 수 있는 새로운 백범이야기를 써보자. 그래서 백범은 단순히 과거 속 위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범의 사상과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는 소명감에서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집필은 12년 만에 <영웅 백범>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경찰 공무원 대상 백범리더십 특강


<영웅 백범>은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장점을 살려 짧은 호흡으로 흥미있게 전개함으로써 누구나 보다 쉽고 친숙하게 백범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백범 선생님 생전에 직접 뵙고 함께 했던 분들과의 생생한 인터뷰, 수많은 사료들을 통해 발굴해 낸 비하인드 스토리와 인간 백범의 참모습을 흥미 있게 재조명할 수 있는 소설적 장치들을 통해 보다 친숙한 영웅 백범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역사적 유산인 백범선생님의 <백범일지>가 있습니다. <백범일지>는 선생님께서 과장이나 수식 없이 사실 그대로를 밝히고 기록하는데 주력하신 독립운동의 증언서입니다. 그래서 항일운동의 최전선에서 마치 유서처럼 후대를 위해 남겨 두신 <백범일지>를 통해 우리는 백범선생님의 발자취와 비장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반면,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사로운 기록은 철저히 배제하셨기 때문에 백범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실감나게 느끼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웅 백범>은 단순한 백범일지의 아류가 아닌 즉, 백범일지가 몸통이라면 ‘날개’의 역할, 백범일지가 교과서라면 ‘참고서’, 백범일지가 헌법전이라면 <영웅 백범>은 ‘해설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으로 집필되었습니다. 따라서 <백범일지>의 경쟁제가 아닌 보완제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소명감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책 한줄 정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캘리그래피 _ 석산 진성영 작가



4. 책의 내용이나 챕터 중 가장 좋아하시는 문구를 적어주세요. 
 “빛과 어둠 중 지금 우리는 흑운이 짙게 깔린 어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어둠의 마수가 영원할 줄 알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의 피를 빨아 살아가고 있는 ‘어둠의 자식들’이 많다는 것은 고국 생활에서 보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인아, 신아, 잠 못 이루던 밤에 경험해 본 적이 있겠다마는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은 머지않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시절의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의로운 이들에게 머지않아 찬란한 광명은 비춰 오게 되어 있단다. 어느 시대에나 두 부류의 사람이 있지. 어둠의 자식들과 빛의 사자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참된 승리는 반드시 빛의 편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란다. 훗날 너희들의 눈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야. 내가 들려주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역사는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역사다.” (p. 258)



5. 저작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세요? 혹은 소재를 찾는 나만의 저장 창고가 있으신가요? 
청소년 노동자 생활을 마치고 ‘지식인으로의 탈바꿈’ 을 위해 임마누엘 칸트의 저작물들을 읽었는데, 내용이 난해하여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끊임 없는 독서와 산보(산책)’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칸트라는 위대한 지성을 만든 비결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칸트라는 거대한 산맥 앞에서 비교도 안되는 초라한 언덕 같은 저이지만, 그런 영향으로 부단한 독서와 함께 산책과 산행을 중요한 일과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에 주로 칼럼이나 집필을 위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닥가닥의 상념들을 정리하고 생각에 활력과 산소를 넣어줄 수 있는 이 시간이 제게는 그래서 아주 특별하고 소중합니다.




 
6. 저자 스스로 꼽은 책의 베스트 챕터, 단락을 꼽자면요? 
<영웅 백범>은 총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장마다 백범 선생님의 일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순간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저 자신에게는 모두 소중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굳이 한 파트만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마지막 장이 될 것 같습니다. 베스트 챕터라기 보다 저자에게 있어 그 중 가장 의미가 크다는 측면에서 마지막 장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장은 백범 선생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의 증언과 여러 역사적 사료들을 바탕으로 묘사하기는 했지만, 사실 가장 어렵고 힘겨운 부분이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면인 만큼 어떻게 매듭을 지으면 좋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엄청난 중압감이 따르는 깊은 고뇌의 순간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몰두하고 고심한 것은 암살로 인한 영웅의 죽음이라는 팩트보다 
그 순간 백범 선생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고 어떤 마음이셨을까였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백범선생님의 발자취와 그 삶을 응축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백범 선생님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기 위해 경교장 2층, 백범 선생님의 마지막 숨결이 잦아든 그 집무실로 수도 없이 제 마음은 드나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 내린 라스트 신이 “기다릴테니 떨지 말고 내 가슴을 쏴라! 그래야 산다!”입니다. 
 


▲ 백범기념관
에서
 
 
이 문장을 쓰는 동안 손끝이 떨리며 저릿저릿해짐을 느꼈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 그 먹먹함에서 한 동안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위대한 사랑의 한 평생을 사신 백범 선생님께서 민족의 제단에 바쳐질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셨던 그 절절한 마음이 너무도 벅차게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탈고를 앞둔 마지막 장은 저자에겐 여러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북받치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특별할 수 있겠지만, 제게 있어 <영웅 백범>의 마지막 장은 솔직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그 큰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한 미약한 필력이 무엇보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을 몇 마디로 표현하기란 얼마나 한계가 느껴지던지 백범 선생님 영전에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다만, 백범 선생님의 죽음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백범 선생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셨는지가이 책을 통해 다소나마 전해질 수 있다면 미력한 저의 작은 노력이 큰 보람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7.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현재 집필 중인 책으로 <백범과 링컨의 성공리더십>이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두 위인에게 놀랍도록 비슷한 점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비록 암살이라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기는 하셨지만, 불구하고 두 분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세계인들의 존경과 흠모를 받고 있다는 것은 그분들이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획단계에 있습니다만, 법과 관련된 제반 문제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 실제 법적인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사례별로 쉽게 정리한 책을 내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수많은 소외계층들의 법률자문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참 많습니다. 법적 분쟁과 소송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지내시는 분들은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재판이나 법적 분쟁의 당사자가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정말 억울한 경우를 당하고도 당사자인 본인이 문외한이다보니 어떻게 대응할 바를 몰라 초기 대책에 실패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물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검사나 판사의 공의로운 판결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변호사, 판검사 절대 믿지 마라!>라고 합니다. 그 상세한 이유는 제가 낸 책을 통해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모든 법조인들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믿지 마라’의 포인트는 ‘무조건 맡기지만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법적인 문제에 휘말렸을 때 냉정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판단하고 진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대처법은 알고 문제해결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함을 강조하는 내용을 제 책에 담고자 합니다.

이 외에도 정의와 평화의 문제, 배신의 문제를 다룬 책들을 오래전부터 구상하여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책의 영감들은 제가 걸어온 광야에서의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소중한 교훈, 가치들과 결부되어 떠오른 것들이며, 소명감으로 책을 쓰겠다는 생각에는 역시나 백범 선생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백범 선생님께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늘 변화를 꿈꾸셨고 또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곳이 척박하고 황량한 농토나 희망없는 감옥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쓰러질 위기에 놓인 임시정부까지도, 백범 선생님은 모두가 희망을 놓아버리고 포기해 버린 곳이라도 겨레의 삶이 숨쉬는 곳이라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에 활력과 의미, 새로운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희망의 불꽃을 살리는 그곳에 조국의 미래도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이지요. 꿋꿋한 의지와 노력, 불굴의 투지와 인내로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을, 그리고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아직은 여전히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백범 선생님의 그러한 발자취를 배우며 닮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쓴 책들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백범정신이 녹아든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8. 작가님의 꿈.
단기적인 목표 중 중요한 하나는, <영웅 백범>을 통해 백범정신을 보다 널리 알리며 저변을 확대할 수 있도록 강연을 비롯한 다양한 컨텐츠를 활용하고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 일환 중 하나로,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진행이 보류되었던 남북공동백범추모행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백범의 사상(정신)이 남북문제를 해결할 대안이자 제3의 이념으로 연구 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싶습니다. 
그 구체적인 방안 중 하나로 남북한 초, 중, 고, 대학생들이 개성이나 금강산에서 함께 어우러져 ‘백범 사랑 백일장 대회 및 발표회’와 같은 행사를 추진하는 것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영웅 백범>이 다시 한번 북한에 보급되어 남북간 공감대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꼭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오래 전부터의 소망이었던 <분단 조국의 통합헌법>에의 기여와 국가경영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준비하는 것, 그리고 평생의 꿈인 (사회복지법인) 애민재단(고아들과 무의탁 노인들이 상생협력하는 생활 공동체)을 설립하여 소외계층의 행복을 위한 아름다운 공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계절이 바뀔 때 마다 꽃이 피고 열매들이 맺듯이, 많은 이들의 심장에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책들을 해마다 탄생시키고 싶습니다. 

 


9. 그래도 못다한 말을 남겨주세요.

TO. 조연심 대표님과 박현진 PD님을 비롯한 작가세상,
북TV365 관계자분들께. 백범 선생님 덕분에 좋은 분들 만나게 되고
좋은 분들과 백범 선생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께서 하시는 맑고 가치있는 일들에 경의를 표합니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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