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의 인터뷰 Be Origin _ 청년목수 김동혁을 만나다
폐허의 공사현장에 양복을 입고
한 손에는 묵직한 공구를 든 남자.
청년목수 김동혁씨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때문이었다.
목수라는 직업이 저렇게 섹시한 거였나?
이후로 그의 SNS를 발견했고,
메시지를 보내 그와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차난으로 차는 작업장에 두고 바로 출발하느라 작업복 차림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10월 단풍이 무르익던 어느날 서촌의 고즈넉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작업장에서 바로 출발했다는 그는 본인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작업복에 검정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오른쪽 귀에는 노란색 연필이 선명했다. 서른 두살, 목수로 살아온 시간이 16년이란다. 작업복과 미팅복을 구분해서 입는다는 그에게서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의 향기가 났다. 목수 장인을 꿈꾸는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현장에서 작업중인 김동혁 목수
아버지 따라 발을 들인 목수의 세계, 어느덧 16년차
그는 한달에 천만원을 번다는 30대 초반의 목수다. 인테리어 총괄도 하고 있고, 목공 반장으로도 일한다.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며 소비자 직거래를 하고 있고, 온라인을 통해서도 고객을 많이 만나고 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나는 물음에 고달펐던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돈을 벌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학교 공과금을 못낼정도로 집이 가난했거든요. 그 당시 아버지가 목수였는데 방학때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다녔어요. 적성보다는 적응이 되었다고 할까요.”
목수들은 현장에서 등 너머로 일을 배운다. 장인들이 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현장에서 하는 도제식 훈련이다. 젊은 사람들이 오면 사실 오래는 못버틴다. 최고 오래 버텼던 친구가 일년 반 정도.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좋은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보단 생활에 얽매여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목수가 10명이라면 지금은 5명 정도 된다. 88년도에 활동했던 목수들이 서서히 은퇴를 하면서 그마저도 매년 0.5명씩 줄어든다. 다행이 기계와 기술이 발달하고 시스템이 워낙 좋아져 목수가 1.5명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김동혁 청년 목수의 프로필 3대째 목수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목수 김동혁 만나기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onghyok_kim/
블로그 : http://blog.naver.com/somunnandong
프리랜서 목수이지만 시간맞춰 함께 그룹으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목수공부(工夫) 몸으로 부딪히고 머리로 흡수하다
아버지를 따라 모두 현장에서 체득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도 같이 써야 했다. 인테리어가 진행되는 순서, 수많은 공구들의 쓰임새, 현장 용어 숙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타카종류만도 7개, 타카핀 종류만 3-40개나 된다. 타카와 핀이 결합해서 어떤 나무에 사용하면 좋을지, 시멘트, 철재에 박을지, 각각 어떤 효과가 나는지도 실습해보고 알아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측량법∙타공법에 능통해야하고 수학적인 계산도 잘해야 한다. 배우면서 어떨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일이 좋았다.
21살 무렵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가 생겼다. 목수는 80%이상을 직접 만들어낸다. 그런데 공사를 마치고 결과물을 인정받는 사람은 인테리어 총 감독관과 인테리어 회사가 최종적인 성과를 얻었다.
“어린 마음에 ‘저건 내가 다 만들었는데, 왜 다른 사람이 인정받지?’ 하는 속상함이 올라오더라고요. 샘도 나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디자인 해야겠다고 기능사 준비부터 공부했어요. 반년 정도 하다가 포기한 게 대학에 진학하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거였으니까요. 그때가 이미 5년의 경력을 가진 때였거든요. 17살부터 해온 이 일을 놓는게 너무 아까운거에요. 그러면서 내가 하던 기술을 갈고 닦아서 이 분야의 장인이 되서 인정받겠다는 결심이 들더라고요.”
청년 목수 김동혁, 이 남자가 일하는 법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이지만 목수 일을 하려는 청년이 없어 늘 인력난을 겪는다. 그 배경에는 목수 일은 노동뿐이라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해 직업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목수는 전문직이고 또 그렇게 보여야 한다. 작업할 때 누가 보더라도 전문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자신의 이미지를 잘 가꾸려고 한다. 추례하게 보이지 않게 작업복과 운동화는 늘 깔끔하게 입고 매일 작업을 마치면 현장을 깔끔히 정리정돈 하고 퇴근한다. 더러운 환경에서 일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 시켜주려고 함께 하는 분들과도 암묵적으로 실행하는 중이라고.
“외국에서는 장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호주만 가도 건설현장 일을 하는 사람이 하이바(헬멧의 준말) 옆구리에 끼고 지하철 타면 우리나라에서 보는 판사, 검사가 법전 들고 다니는 거랑 똑같은 동경의 눈빛을 보내요. 하수구 공사 하는 사람들도 거기서는 호화스러운 직업이에요. 제가 하는 목수 일도 돈을 못버는 직업이 아니에요. 인식의 문제인거죠. 사실 내장 인테리어는 전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육체도 많이 써요. 그래서 사람들이 노가다라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거죠. 현업에 종사하는 목수로서 환경이나 인식부분 개선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직접 제작한 작업물 앞에서
목수하면 김동혁. 장인들의 족보를 만들고파
이제 목수로 16년 차로 접어들었다. 현재 80%정도의 목표점에 오른것 같다고 한다. 아직 20%를 채우려면 가야할 길이 멀다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기에 SNS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블로그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직 목수쪽에서 손꼽힐 사람은 아니거든요. 목수 하면 김동혁이라는 등식을 만들고 싶어요. 목수로서의 장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인들의 족보를 만들어 내고 싶어요. 어느 분야의 장인 하면 누구, 그의 수제자들이 쭉 적혀 내려오는 그런 족보요”
머릿속에 생각한 디자인을 현장에서 완벽히 만들었을 때 성취의 희열이 즐겁다는 목수, 공사를 다 마치고 연장을 차에 싣고 시원한 음료 캔을 마시면서 차에 시동을 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목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이민을 꿈꾸기 보단 국내에서 최정상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그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나의 집을 갖게 된다면 청년 목수 김동혁씨에게 꼭 의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이면 그도 아마 ‘장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인터뷰 중인 퍼스널브랜드PD박현진 & 청년목수 김동혁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11월 게스트는 청년목수 김동혁씨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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