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울렁증이 있는 나를 위해 외국인 카페 모임에 같이 나가기로 한 황샘. 이걸 극복해야 나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기에 용기를 냈고 늘 그렇듯 또 새로운 분을 소개시켜주셨음. 바로 오지레이서 유지성 샘. 우리나라 사막마라톤 등의 오지레이서 1위. 
여행, 그것도 특별한 여행이 좋아서 시작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영어 랭귀지 파티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느새 셋이 소파 한구석을 점령하고서는 두 남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최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5,6번째 연사로 나란히 서게 됐고 올해는 좋은 기운이 상승하는 해라는 짙은 예감에 빠진 두 남자 사이에서 낑겨 기운을 받고 있었다.


유지성 샘은 seri ceo 에서 '하이 크레이지'라는 강의 콘텐츠로 그 주의 1위를 차지한 대단한 강사였다. (ㅎㅎㅎ 그 말 듣고 집에 오는 길에 얼른 시청했다는.) 자칭 B급 럭셔리를 지향하는 유지성 샘. 나의 B급 오리지널 정신과 통하는 듯해서 반가웠다. 재미있었던 점은 삼종경기에 나갈법한 회원들과 벌이는 주말에 브런치 모임이었다. 스포츠인들의 낫 11시의 브런치 모임. 한번 가보고 싶다. 오늘의 이 일을 하기까지 겪은 좌충우돌 이야기들 소소하게 가슴에 와닿은 말이 많았다. 직접 실행해보고 데이터를 확보한 자의 힘있는 말이라고나 할까. 

황샘 이야기는 들을수록 잼있다. 대학 졸업 후 작곡만 2년 하다가 취직을 결심했고 영어, 일어가 되며 내부 디자이너도 가능한 조건을 건 직장에 들어가 100만원 급여자로 생활한 이야기 하며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꿈을 쫒아 지금의 액션영어 장르의 개척까지. 

지루한 파티는 가라. 셋이 이야기 하기도 빠듯한데 차나 마시면서 나머지 이야기를 즐기자는 유지성샘의 제안에 자리를 옮겼다. 주최자가 보면 정말 웃겼을듯. 영어 배울 목적으로 외국인 랭귀지 파티에 남녀 셋이 나란히 와서는 지들끼리 수다를 떨고 웃고 하더니 영어 한마디도 안하고 나가버리는 이상한 애들. 음료와 허니브래드 지성샘이 쐈다. B급 럭셔리를 체험하는 순간이다. 

자신들의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유지성 샘의 10년 전 생각했던 그림들이 어느정도 맞아가고 있다는 말,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꿈이 있는 사람은 참 아름답다. 두 샘들 큰 용기가 되고 자극이 되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왼쪽 액션 잉글리쉬 황승환 샘, 오른쪽 오지레이서 유지성 샘.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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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W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다음 인터뷰는 어르신을 소개하겠다 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 나는 그들과 함께 북한산 둘레길에 서 있었다. 걷다 만난 인연 이왕이면 걸으면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800km걸은 길 위의 동지. 나는 그 길의 키워드로 함께 한 인터뷰어. 이미 사진으로 한 번 만났기에 익숙했다. 첫 만남에 명함을 드리는 나와 달리 어르신은 직접 만드신 엽서를 건내신다. 직접 찍은 사진에 어울릴만한 텍스트를 담아주셨다. 인터뷰라는 거창한 형식은 다 떼고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 



기업에서 전략기획실 임원으로 은퇴 하시고 현재는 기업 컨설팅과 플래닝 강연을 하고 계시다.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하시며 내가 생각할때의 은퇴후 2의 인생을 멋지게 사는 분이다. 걸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산도 한번씩 보고 막걸리와 손수 챙겨주신 초콜릿 바, 그리고 W는 달콤한 사과를 챙겨왔다. 새삼 인생을 바꾸는 여행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나는 이렇게 둘레길도 가보고 좋은 이야기도 듣는다. 이 작업을 하기 참 잘한것 같다. 

손두부를 만드는 집을 안내하신다. 얽기설기 거칠을 표면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한 두부가 나왔다. 고소하면서 깊은 맛이 그만이다. 얼큰한 국물에 후루륵 잘 넘어가는 순두부찌도 일품이었다. 본격 인터뷰는 두부로 만든 저녁을 먹고 차 한잔을 하며 진행했다. 우리 둘은 어느새 인생상담을 하고 있었다. 직장이야기, 인생의 비전 이야기, 꿈 이야기, 가족간의 이야기.... 인터뷰 이전에 상담이 되어선 곤란하다. ㅎㅎ 다시 인터뷰로 돌아갔다 오기를 여러번... 이렇게 지났다.




▲ 어르신은 다음길을 살피시고 방향을 알려주시고 잠시 뒤돌아 우리들을 기다렸다. 이 사진도 그러는 중에 촬영한 사진일것이다.
산티아고에서 끝내 버림(?)받지 않고 일행과 같이 완주했다는 W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적이 있었나? 
거대한 덩치의 어떤 남자였는데 너무나 힘겹게 길을 걷는 거에요. 아 저사람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글쎄 독일에서 2000키로를 걸어 와서 800키로를 더 걷는다는 거예요. 독일인이었는데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위해 치유의 길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회복을 기원 한다는거에요. 그때 나는 뭉클한거에요. 나는 평생 내 형제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생각해보니 없는거에요. 나 혼자 살기 바빴지. 
또 한번은 유모차를 끌고 순례하는 엄마. 그 높은 피레네까지 끌고 온거야. 5살 정도의 아기가 타고 있는데 한번도 그 아이가 걷는걸 못봤어요. 그저 내가 관찰한 것일 뿐이지만 아이를 위한 모성 아닐까 싶어요.
세번째는 나란히 지팡이 한 개를 앞 뒤로 지고 걷는 사람들이었죠. 뒤에 오는 사람이 시약자더라고요. 둘이 친구 사이더라고요. 장애인 친구를 위해 시력이 정상인 친구가 같이 순례를 해주는거였어요. 내 친구를 위해 어려움을 동행한 적이 있었나.. 내가 한일이 뭐가 있을까. 솔직히 없더라고요...



나는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중이에요.  
어느날 부턴가는 인생의 산을 내려오는 일을 지나 정리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걸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 정리를 하고 싶었어. 걷다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난 도통 즐거웠던 일들이 안 떠오르는 거야. 반추되는건 모두 안좋았던 기억, 원한 사무치는 기억, 슬펐던 사건.... 모조리 이런것만 기억이 되는거였어요. 얼마나 처절했는지. 살면서 좋은 기억 없었겠어요? 난 좋았던 건 그냥 흘려보내고 회한만 남겨놓은거야. 그걸 깨닫고 회환의 눈물을 꽤 흘렸어요.

 



행복이란게 뭘까요?

너무나 아픈 기억만 나왔어요. 나는 이북 사람이에요. 홀홀 단신으로 목숨만 살아서 온 사람들이에요.
낙동강을 못넘고, 인민군에게 잡히면 바로 죽임을 당하자나요. 그래서 죽느니 싸우겠다고 군으로 가셨어요. 가족들 유품을 찾는다고 왔다가 만난거에요. 그래서 거제 포로수용소 옆에 단칸방을 마련해서 살림을 만든거에요. 그때부터 어릴적 기억이 나요. 
국민학교 6학년때까지 밥을 못먹었어요. 쌀을 소화할 기능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물었어요. 이남으로 넘어오니 뭐가 좋습니까? 따뜻해서 좋더라, 두번째는요? 내가 숨을 마음대로 쉴수 있어 좋다. 5호 감시제 이런걸 듣고 살아온 거에요. 그런기억들이 많이 남았었죠.
이게 환상인지 직접 본건지 모르겠어요. 계속 따라다니는 기억이 있어요. 포로수용소에서는 삽으로 밥을 퍼줘요. 나는 수용소 밖에서 안을 들여다 봤는데 포로랑 나랑 눈이 마주쳤어요. 내가 6살때인가.... 그런데 포로가 씩 웃는거야. 당시에는 눈이 마주친게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성장하면서 그 장면이 가끔 떠올라요. 그 때의 그 포로의 눈빛은 행복함 아니었던가. 밥 한그릇에. 그 눈이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이 났어요. 행복이 무엇인가. 



훗날 아이가 이 추억을 떠올렸으면...

산티아고 걷는게 큰 감동은 못 느꼈어요. 올레에서 많은 생각을 했었지. 나는 아이에게 뭔가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제대하고 유학을 떠날 건데 3개월 정도 남은 기간에 멀할까 보니 산티아고 생각이 나는거에요. 나는 플래닝으로 강의도 하고 컨설팅도 하는 전문가인데 계획은 아들이 다 짜라고 한거예요. 나는 관조만 했지 그게 참 어려운 일이예요. 참견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안해야 하니까. 난 책도 지도도 의도적으로 안 챙겼어요. 내가 알면 아들에게 이건 아니야, 저건 아니야 라고 참견할 것 같아서. 나는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런데 내가 모르고 온게 너무 행복했어요. 답답함을 누르고 아이에게 다 맡겼어요. 내가 사업전략을 평생 하던 사람인데, 모든 걸 아들에게 맡겼어요. 나는 훈수조차 두지 않으려고 아예 알 생각을 안했죠. 나중에 내가 없겟지만 그때가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면 좋겠다.. 싶어요.
내 나이에 우리 부모가 무엇을 생각했을까. 내 아들이 26살인데 내가 아들을 보면 저거 세상을 잘 헤쳐나 나갈까 싶잖아요? 근데 내가 그무렵때를 떠올려보면 또 달라요. 그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으니까. 내가 대한민국 육군 장굔데, 내가 상장 기업 임원인데.... 그런데 우리는 또 그렇게 생각 안하자나요. 내가 26살일때 우리아버지가 나를 봤을때를 생각했었죠. 지금 내 맘과 같았겠죠. 가끔 그런생각을 해보면 부모가 어땠겠다. 하는 생각이 들거에요.


둘레길 첫시작을 기념하며 사진. 이런식으로 인터뷰를 하게 될줄 몰랐다. 둘레길 체험도 하며 인생이야기도 듣는 나는야 행운의 인터뷰어


오리.지.날 정신의 패러글라이더 - 오리도 지랄하면 날 수 있다. 
나이 55세가 되니깐 안방 노인네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패러글라이딩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아내가 너무 반대를 했는데 어느날 TV를 보는데 여든의 할머니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는거야. 그거 보여주면서 너무 하고 싶어했더니 그렇게 하고 싶은거냐고 허락을 해주더라고요. 휘어진 새끼손가락을 보인다. 이게 자연 앞에서 교만해서 생긴 상처에요. 바람을 타면서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바람보다 욕심을 냈죠. 순간 기류에 휩쓸려서 끌려갔어요. 여기에 지금도 쇠가 박혀있어요.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제비가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 그 원리가 다 보여요. 제비가 강남간다고 하자나요? 그 강남이 동남아예요. 비행기 항로 아세요? 비행기가 홍콩 갈때 어떻게 가요. 홍콩노선은요 여기서 강화, 서해안 따라 여수에서 대마도로 해서 홍콩으로 들어가요. 해안선을 따라갑니다. 우리 항로들이 전부다 해안선을 따라 섬과 섬을 이어요. 
그 쪼그만 새한테 인간이 다 배워요. 군대의 배열 있죠? 그 원리도 새들에게서 나온거에요. 맨 앞에 있는 놈이 우두머리고요 그 앞에 있는 애를 항도라고 불러요. 길잡이 역할 하는. 대형 옆에 떨어져서 한마리씩, 맨 뒤에 떨어져 한마리. 이게 척후병으로 적이 침범하면 알려주는 놈들. 세계의 모든 군대가 이런 원리입니다. 제일 가에 있는 놈이 튼튼하고 안으로 갈수록 노약자, 어린아이들이에요. 가운데는 부력이 생겨서 조금만 움직여도 날 수 있어요.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검색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234769


ⓒ 문경시 제공





반나절 산행과 식사 찻잔 토크를 하면서 얻은 인상. 삶을 참 멋지게 사는 건강한 어른이다. 
사람이 마음이 급해서 움직이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으면 가만이 있어보세요.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입겁니다.
난은 물만 줘야 꽃이 핍니다. 영양제 주고 그럼 꽃이 안펴요. 그러니 지금 조금 힘든 일은 꽃을 피우는 과정이라는 위안의 말씀도 주신다. 인생 레슨을 받은 셈이다. 오리지날 정신을 알려주셔서 필자를 배꼽빠지게 하셨고, 백두대간은 진작에 주파하셨고, 올 여름엔 스킨스쿠버에 도전하러 필리핀으로 떠나신다는 무척 멋진 계획을 갖고 계시다. 분명 바다속 세상을 만날때도 겸허한 마음으로 물속의 생물들과 조우할 테다. 이번엔 어떤 세상 이야기를 꺼내놓으실까.
여름이 지나 그의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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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저... 이걸 가져왔어요.’
인터뷰 장소로 온 W가 인사를 마치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요즘 유행하는 사진 앨범이다. 웹사이트에서 사용자가 사진을 업로드해서 편집을 하면 그대로 책으로 제작되어 나오는 시스템. 신혼여행 앨범, 아이들 백일 사진 등 응용을 많이 하지만 가장 흔히 하는 것이 여행기록을 담은 내용이다.
‘9명의 사람들과 시작과 끝을 같이했어요. 그 친구들이 만들어서 선물로 줬어요. 너무 소중한 인연이에요.’
오늘 만난 W. (실명과 사진을 원치 않았으므로 W로 기재한다.)

‘올해는 나 스스로 나에게 준 안식년이예요. 10년 열심히 일했으니까.’
고객들 중 하필 그녀에게 인터뷰를 청한 건 바로 ‘안식년’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과 나잇대. 그리고 오래 일을 했기에 안식년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년 전 처음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그녀의 인상은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한번은 쉼표를 찍으려는 자의 홀가분함과 해외로 나가기를 즐겨하지 않은 자의 혼란스러움이 교차했다. 그녀는 해외를 나가기를 싫어했던 사람이 한 달여의 여행을 그것도 짐을 지고 떠나야 하는 여행을 선택했기에 좀 더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는 여기 더한 사람도 갔다 왔다고 다 해결 된다며 (다들 무모하다고 말렸다던) 그녀의 결정에 용기를 보탰다.

지난 번 인터뷰 이후로 질문을 별달리 준비하지 않기로했다. 첫 인사를 나누면 대화는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이미 수다 떨 주제는 마련되었고 두 번째 만난 사이라고 하기엔 참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는 이것이 정말 신기하다. 이번에는 그냥 ‘수다’를 떨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사진첩의 동지들로 이야기가 흘렀다. 세계여행을 계획한 30대의 미혼 여성 친구 둘, 60대의 은퇴한 어르신과 20대의 아들, 철저한 기획파 남성, 그리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성, 누구의 아내 엄마의 이름을 떠나 개인의 삶으로 걸어온 여인, 20대 초반의 혈기로 준비 없이 떠나온 배려 깊은 청년 그리고 청년만큼이나 무모하게 즉흥적으로 떠난 W. 





산티아고 길에서 도움을 엄청 받았어요.
처음부터 민폐였어요. 걸어본 적도 없고 체력도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8명의 보폭을 맞추기는 무리였죠. 그래 떨어져 나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근데 이 사람들이 너무 착한 거예요. 어떻게든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또 너무 미안한 거예요. 어떻게 나를 마음 아프지 않게 버릴 수 있게 할까. 밤새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침대에서 안 일어났어요. 난 도저히 갈수 없는 상태라는걸 보여줬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못 떠나는 거예요. 걱정 되서. 결정적으로 제가 지도가 없었거든요. 짐을 줄인다는 생각에 버려서는 안 될 지도도 버려 버린 거예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제가 어리숙했겠어요.

그래서 다음날 혼자 떠나신 거예요?

자꾸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내고 걷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택시도 없는 거예요. 겨우 걸어서, 제가 한 번에 알베르게를 찾아간 적이 없어요. 엉뚱한데 갔다가 아 아닌가봐 이러고 나와요.(웃음) 가까스로 알베르게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일행을 만난 거예요. 다들 비가 와서 많이 못 걷기도 했고 나를 두고 가는 게 마음도 무겁고 걸어지지도 않더래요. 그때부터 이건 운명이다. 각자에 페이스에 맞게 걷되 낙오 없이 끝까지 같이 가자가 된 거죠.

그룹이 참 재미났을 것 같아요. 연령대도 그렇고.

등을 보여주는 어르신이 있었어요. 제가 하도 못 걸으니깐 어르신이 한참 걷고 나면 제가 저 멀리 점으로 보인대요. 그러면 또 안가고 기다리세요. 내 등이 보여야 따라올 수 있다고. 그렇게 맞춰 주셨어요.
20대, 30대, 40대, 50대를 다 사셨잖아요. 이미 그 나이대의 생각들을 아시고 또 아닌 길로 갈수 있는데 그걸 다 지켜보시고 맞춰주세요. 그 나이 대는 그렇게 하게 되어있는 거라면서. 길은 어떻게든 목적지에는 가게 되었어요. 무얼 보고 가느냐. 이게 중요한 거라는 걸 알려주신 분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그냥 목표만 보고 간대요. 젊은 사람은 빨리 걷는 게 뿌듯한 거죠. 그러나 중년은 내려갈 준비도 해야 한 대요. 그러니깐 여유를 가지고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밤이 떨어진 걸 보고 포도도 따먹고 그렇게 느끼면서 걸으라고 하셨죠. 그러니깐 늦게 가는 게 억울할 게 하나 없는 거에요. 저는 제일 느렸기 때문에 유일하게 노을을 보는 사람이었을걸요.
800km를 걸으려던 게 아니었어요. 근데 걸었지. 어르신 덕분에 참 많은걸 깨달았어요. 나는 떠나는 것만 준비했지 어떻게 걸을까를 마음을 어떻게 먹을까 까지는 생각을 못했어요. 많은 조언과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분이죠. 



나는 부족한 걸 다 보여줘요.
저는 가장 좋을 때 항상 나와요. 결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고 해요. 성급하지 않게. 공돌이였고, 형부가 내 멘토였어요. 과학도도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에 폐기물 연구소 쪽으로 갔어요. 그런데 연구소는 안생기고... 일단 전문 기자로 활동을 했죠. 공학도긴 하니깐 기자들이 싫어하는 각종 세미나는 제가 좋아서 가고... 기사도 선배들이 좀 주고... 그랬죠. 거기서도 엄청 도움을 받았어요. 바라던 연구소는 안 생기고 더 다닐 수는 있었지만 원하던 길이 아니니 나왔어요. 

박수칠 때 떠나는 스타일이네요.

이직을 했었고, 사장이 첫 지시를 내렸는데 조달청 가서 멀 해오라는 거예요. 일단 조달청에 가서 수위아저씨를 찾다가 안내하시는 아저씬가 하고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갔어요. 
‘저기요, 첫 출근인데요, 처음 사장님이 시킨 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했더니 그 아저씨가 저 안쪽에 가서 멀 챙겨주더라고요. 그걸 회사에 냈더니 사장이 좀 제대로 해 왔구나 하더라고요. 그 뒤로 무슨 일 있거나 궁금한 일 생기면 전화를 해서 정보 받아오고 그랬어요. 다들 내가 그분과 통화해서 얻은 정보로 보고서 쓰고 그러면 놀라는 거예요. 근데 알고 보니 그분이 사무관인가 엄청 높은 직급의 사람이었어요.
난 그냥 수위 아저씬 줄 알았는데... 높은 사람이래. 너는 서열 모르니? 전 모르는데요. 진짜 그렇게 높은 거예요? (웃음) 저는 그렇게 한 거예요. 저는 늘 그런 거예요. 나중에 그분은 신문에도 나오고 엄청 높아졌더라고요.
첫 월급을 타고 그분을 찾아갔어요. 맛있는 거 대접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너가 무슨 돈이 있냐면서 칼국수 사달라는 거예요. 결국 칼국수를 사드렸어요.
프로젝트성 작업이 많았어요. 저는 거짓말은 못하니깐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너무 어리숙 하니까 업계 사람들이 다 도와줘요. 입찰을 들어가면 그냥 솔직하게 다 말해요. 그냥 계약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신기한 거였죠. 일은 재밌는데 너무 과한 거예요. 과로로 입원할 정도로.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으니까 떠나야겠다. 했죠.


이런 이야기까지 내가 왜 하는 거죠?

7년을 따라다닌 남자애랑 결혼을 해야겠다 했는데, 그 친구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개인적인 일이나 다음 이야기를 위해 사랑했던 이야기를 사정만 적는다.
사랑한번 진하게 못한 나는 이 이야기가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그런 감정이 부럽기도 해서 혹은 상실감에.) 



무슨 페로몬을 뿌린 거예요. 이런이 야기까지 하게 하고. 이상해 오늘..
머핀 드시고 저는 커피를 가져올게요.
잠시 휴식을 가져요 ^^

(이어서)
사랑의 상처도 있고 해서 도피처로 대학원을 갔어요. 남들이 안 쓰는 주제의 논문을 써서 상도 받고 유학도 쉽게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외국이잖아요. 나는 외국이 정말 싫거든요. 그래서 유학을 포기했어요.
그러다가 학원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말에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학비도 벌었는데 싶어서 학원으로 간 거예요. 거기서도 원장님을 잘 만났어요. 자기 수업의 반을 내어주고 저는 또 트레이닝을 한 거죠. 수학강사를 했어요.
(센티 여기서 잠시 움찔한다. 인수분해에서 포기한 사람으로서 W샘이 갑자기 다른 세상 사람으로 보인다.)

어쨌든 나의 이런 선택에 다른 사람들이 엄청 머라 했어요. 대학원까지 나와서 논문으로 표창도 받은 사람이 유학도 마다하고 학원 강사를 한다고. 나는 그냥 어쩌다가 대학원으로 간 거고 상을 받고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거거든요. 나한텐 그게 아쉽지도 않고 소용이 없는 거예요. 해석은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하죠.
(맞다. 내가 안 행복하면 남들이 보는 훌륭한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행복한 것이 먼저다.)

원래 교수가 꿈이었고요, 완벽한 사람만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꿈을 입 밖에 내지 않았죠. 사교육에 몸을 담았지만 저는 그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좋은 거예요. 게다가 학원에서도 엄청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특목고 반도 몇 년을 맡았고, 정말 신나게 달렸죠. 사십 전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어쩌다 보니 작은 학원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수학이라는 하드한 과목을 푸른 정원이 내다보이는 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또 다들 반대했는데 열심히 일을 만들어 학원을 운영했어요.
나는 리더로서 총대를 매는게 자신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내 강점이 못하는건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랬어요. 그래서 했죠. 그렇게
학원도 한 3년 하니깐 정상으로 올랐을 즈음 돌아보니 딱 십년이 되었더라고요. 쉬고 싶었고 그렇게 정리해서 나왔어요. 아름다울 때 떠나왔죠. 


나는 사람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란 걸 알았죠.

내가 행복한 것이 뭘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돌아보니 나는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년을 잡았어요. 내 몸은 항상 바빴어요. 늘 바빴고 시간이 없었고, 친구들 돌잔치가 있거나 몸은 못가니 부주를 했어요. 산티아고를 다녀오고 나서 남은 안식년 동안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했어요. 고마운 게 내 친구들은 나에게 와줬어요. 이제는 그들의 삶의 장소에서 한번 가서 봐야겠다. 해서 정말 찾아갔어요.

저라는 사람의 내가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를 한참 생각했어요. 나는 사람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에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나를 봐주었듯이 나도 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줘야겠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다른 꿈이 있어요. 공교육과 사교육. 스토리가 있는 학원을 만들겠다는 마음에 움직였죠. 
스펙. 중요하지 않아 스토리를 만들어. 니가 이걸 왜 하는지 왜 하고 싶은지 왜 말을 못해.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의사가 기술자.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스토리를 주고 싶어요. 그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요. 내가 행복해지는 건 고생을 해도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즐거운 이 사람이 이뤄내면 나도 돕는 거구나, 삶은 도움을 주고받는 거구나. 관점이 바뀌는 계기가 되는 거죠. 


그러니깐 내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내 나이쯤 되면 있는 사람을 관리하지 새 관계에 투자 하지 않아요. 그래도 내가 나온 이유는,  현진씨가 말한 것 때문이에요. 내가 도움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자는 말에 마음을 움직였어요.
예전에 지리산에 충동적으로 갔어요. 친구랑 갔는데 그 친구가 발목을 다쳐서 저 혼자 정상에 올라가게 된 거죠. 그런데 초짜가 초반에 막 올라가서 내려올 힘도 없는 거예요. 돈이고 짐이고 모두 친구한테 있고. 해는 져가고...
그러다 은인을 만났어요. 힘도 하나도 없이 주저앉아있는데 그분이 먹을 걸 줬어요. 저 양갱 정말 싫어하거든요. 근데 그걸 벗겨먹을 힘도 없어서 그분이 벗겨서 입에 넣어줬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먹었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양갱이 없는 거예요. (웃음) 거의 업혀서 내려왔는데 그분이 끝내 사례를 거절했고 고마운 맘이 든다면 다른 분께 같이 베풀어 주세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게 그 도움이 저는 또 산티아고에서 느낀 거예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생각해요. 

두 번째 이유가 있어요. 이년이 다 되가는 시점에 왜 박현진씨가 나한테 연락을 했을까. 생각을 해 봤죠.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쯤에서 나도 내 삶을 정리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는거죠.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가면 좀 더 담백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나도 말하면서 나를 정리하는 거니까...

최근에 일을 새로 시작했어요. 내가 어려울 때 나에게 와준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나도 돕기로 했죠.
이 사람들이 그리는 꿈이 좋아요. 나도 내가
내가 잘 될 때 박수 쳐준 사람들이 아니고, 내가 힘들 때 와서 도와준 사람들. 그 사람들하고 같이 가고 싶어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과 일을 하면 고생이 아니라 행복인거고요.
이 사람이 이뤄내면 나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돕는거구나...
이 친구가 나에게 '스토리가 있는 학원을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했고, 다른 화려한 제안들을 굳이 물리치고 이쪽에 합류했어요.
대치동은 정말 개인주의예요. 여기는 정말 돕고 돕는 구조예요. 함께 라는 마인드가 너무 좋아요. 이 사람들이 그리는 꿈이 좋아요.  개인적인 인생사까지 살펴보면서 함께 가는. 혼자 사는 건 힘들어요. 내가 이렇게 지나온 것도 도와줬기 때문이에요. 

산티아고 다녀온 전과 후 달라진게 뭐냐고 물었죠? 달라진건 없어요. 다만 사람이 인생을 사는데 있어 과거의 경험을 베이스로 미래를 사는 거거든요. 이제 돌아보니까 산티아고의 경험으로 내 다음 스템도 비춰지는 거예요.
산티아고에서도 아무것도 없이 갔다가 사람들을 만났고 좋았잖아요. 그 경험들을 미루어 앞으로 있을 일들을 헤쳐나가것도 좋겠다. 좋을 것이다. 라는거고, 선택 이후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거죠.
그게 내 행복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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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세 시간 넘는 인터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노트북 앞에 앉기가 쉽지 않았다. 대화 내용이 사라지기 전에 옮겨 적어야 하는데 왜 미루는 걸까. 세 시간의 이야기가 나는 너무 소중했고 이야기 듣는 게 재미있었는데도. 
아마도 내가 받은 이야기가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그 긴 시간을 일일이 되불러 적을 수도 없고, 어떤 부분을 발췌할 수도 없고, 흐름이 잘 전달되도록 만들어내야 하는데, 초보 인터뷰이로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십 여년의 인생 이야기를 아무 조건 없이 해주신 것도 고마웠다.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가 망설여진다. 

모든 사람들이 도와준다던, 운이 좋았다던, 자신이 가진 것 보다 더 높은 가치평가를 받아왔다던 그녀가 결코 운으로 살아온 게 아니었음 안다.
부족한 부분을 보이고, 도움을 요청하기를, 고마움에 크게 감사할 줄 아는 모습이 인간적이다.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아 준 그녀가 좋아졌다.

그럼 현진씨의 키워드는 뭐예요? 질문을 받던 그녀가 끝내는 나에게 질문을 해준 것도 고맙다. 
내가 정말 뭘 원하는가 하는 것. 지금 어쩔 수 없이 외롭다는 것. 글을 잘 써보고 싶은 것. 이 말을 차근차근 되집어 주었다.또 한
나의 외로움을 깊이 공감해주었던 것도. 내가 대여한 공간에 감탄을 해주었던 것도 감사하고 몇 달 만에 얻은 주말의 휴식 한 가운데 시간을 내어준 것도 감사하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던 고집스러움에, 
너의 꿈을 이루자고 같이 가자고 한다면 나의 꿈은 물어봐 주어야 한다는 상식에, 
현실의 가치가 '돈'이 으뜸이 되고 다른 가치들이 묻혀버리는 것에 안타까워 하는 마음에 동감한다.
이 년 전 잠시 맺은 인연을 되불러내어 나의 엉뚱한 인터뷰 요청에 답해준 이 인연이 욕심난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의 '인디언의 복음'이란 책에 실린 '늙은 인디언 양파 장수'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를 정리할까 한다. 



멕시코 시티의 큰 시장 한 그늘진 구석에 포타 -- 라모라는 나이든 인디언이 있었다.
그는 그 앞에 20줄의 양파를 매달아 놓고 있었다. 시카고에서 온 어떤 미국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요?"
"10센트입니다."
"2줄은 얼마요?"
"20센트입니다."
"3줄에는 얼마요?"
"30센트."
"그래도 깎아 주지 않는군요." 그 미국인이 말했다.
"25센트에 주실래요?"
"아뇨."
"20줄 전부는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20줄 전부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안 판다고요? 당신은 여기에 양파를 팔기 위해 있는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붉은 서라피(멕시코나 중남미에서 어깨걸이나 무릎덮개 등에 쓰는 색깔이 화려한 모포)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페드로와 루이스가 와서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인사하고 담배를 태우며 아이들과 곡물에 관해 얘기하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내 삶입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종일 여기 앉아서 20줄의 양파를 팝니다.
그러나 내가 내 모든 양파를 한 손님에게 다 팔아 버린다면, 내 하루는 끝이 납니다.
그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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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안영식. 그를 처음 본때는 2010년도 가을이었다.

산티아고 가겠다고 센티를 찾아 씩씩하게 들어와 몇 가지 확인을 하고는 예약을 마치고 돌아갔다. 한 달을 넘게 낯선 이국땅에서 잠자리를 지고 걷겠다는 사람치고는 질문이 무척 심플했다. 회사를 사직하게 되었고 갑자기 내켜서 떠나기로 했단다. 이유도 참 심플하다.
(이하 센티팍은 ‘센티’로 안영식은 ‘영식’으로 쓴다.)



▲  산티아고 완주자의 자랑 필수품인  증명서를 가져오라는 센티의 말에 기꺼이 가져와 자랑질 중인 인터뷰이.
센티는 생장-부르고스 구간만 경험했기에 완주증이 부럽다. 부러워. 



센티: 어떻게 지내셨어요?

영식: 산티아고 이후로 이탈리아에서 친구가 있어서 한 육 개월 머물렀고요, 제주도도 가서 올레길도 걸어보고...

다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거라는 일상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이런 답이 나온다. 이 남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슬쩍 궁금해진다.


센티: 그럼 그 후로 계속 여행을 하셨단 거에요?

영식: 네, 좀 더 그렇게 여행해보려고요.


센티: 혹시 여행을 계속하시려는 목적이 있나요?


영식: 제 이름으로 된 기행문을 쓰고 싶어요.


(기행문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하자. 음... 솔직히 부럽다. 센티를 이것을 생산적 무위도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노는 게 아냐 생산하는 거야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

센티: 참 그러고 보니 여행박사의 오랜 고객 이시랬죠?

영식: 네, 일본을 비롯해서 베트남, 터키, 그리스 등등 좀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포인트’가 생각만큼 안 쌓였더라고요.

(앞으로 이분 포인트 팍팍 드려야겠다.
일단 기분 좋아진 센티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한다. )

센티: 질문이 제일 없었던 고객이었어요.

영식: 여행은 내 여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산티아고도 기행문 한권 보고만 갔어요. 블로그나 맛집 이런 거도 안 찾아보고.  다른 사람이 짠 일정과 느낌을 그대로 따라 갈 것 같아서 저는 책도 지도 보려고 사는 편이에요.


센티: 제일 고생했던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영식: 첫날 피레네 산맥 넘을 때 거의 죽을 고생을 했고요, 제가 나름 군대를 산에서 보냈는데 피레네는 정말 죽음이더군요... 하필이면 비가 엄청 오는데 온몸이 생쥐가 되어서.

그리고 두 번째는 눈이 너무 온 날.. 산에 올라갔는데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또 얼른 내려왔던 기억이 있고...


▲ 보기엔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눈물나는 고생길인 눈보라길이었다고 한다. ⓒ 안영식





 2010년 11월 말 출발해서 완주했다. 잠깐 늦가을을 맛보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간 거다. 이렇게 눈이 쌓였다가 금새 녹아버린다고 한다. 참 신기허네.  ⓒ 안영식


영식: 기억나는 건 쌀을 싸서 처음 밥을 했는데 이렇게 잘 하는 줄도 몰랐죠. 찰진 밥은 물론, 누룽지, 숭늉까지 만들어 먹었어요.
참 엽서는 좋은 아이템이었어요. 모두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죠.

(나름 표현의 욕구를 나눈 센티의 작품이다. 아주 잘했다고 뿌듯해 한다. 엽서보기 )


센티: 인상 깊은 사람들은요?


영식: 음 오키나와에 살았던 일본인 애가 있는데, 샤미센을 들고 와서 연주도 하고 다녔고요, 꿈이 일본에서 스페인 바를 여는 거
래요. 그 친구 따라 바도 여러 군데 다녔어요. 바 인테리어도 꼼꼼히 보고 사진 찍고... 그랬던 친구..

또 18살짜리 캐나다 화가인데 대학 안가고 바로 전 세계 여행을 다니는 친구예요. 얼마전에 한국에 와서 제가 올레길을 안내하기도 했죠. 이런 저런 사람들 만나면서 삶의 여러 방식을 배웠죠.

(인터뷰 초반에 본인 이름으로 기행문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슬슬 다녀온 여행기록을 블로그에 남기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블로그를 보여 주었다. 블로그를 따라 여정을 한번 더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

영식: 블로그를 만들고 그동안 여행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하드가 다 지워졌어요. 복구도 안되게. 일단 작업 진행이 멈춰졌죠. 젤 아까운 게 터키인데...거긴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어요.


센티: 터키는 자유 여행하기 힘들지 않나요? 문화재도 많아서 가이드 설명이 있으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영식: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란 책을 읽고 갔어요. 현재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어떻게 함락했고, 문화재들을 어떻게 이슬람화 시켰고, 지명이나 문화 유적들이... 보이거든요. 굳이 가이드라는 게 필요 없어요.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저 나름대로 재구성 할 수 있고.


센티: 참 훌륭한 여행 방식 같아요.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음 훌륭한 여행 방식 같다. 센티처럼 취재 목적이 있어 가는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일정이 있다 해도 사전 조사 없이 소설 한권 읽고 가는 것도 여행 로망 중에 하나겠다.)



센티: 같은 사람인줄 몰랐어요. 머랄까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덥수룩한데 표정은 너무 해맑고
평온한 모습이네요.

영식:  맞아요. 이때는 정말 등 따숩고 먹을거리만 해결되면 부족한 게 없는 거예요. 이때 표정이 딱 그런 거죠. 

센티: 뭔가 의미를 만드는 말 같아서 이런 말은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영식: 네, 있어요. 욕심을 버리게 됐어요.


센티: 무슨 욕심이요?


영식: 한 번은 가게를 못 찾아서 아사 직전까지 갔었어요. 한 마을 슈퍼에서 애걸을 해서 장을 보게 해 줬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겨서 마구 산거에요. 물건을.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요. 그 다음날 걷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욕심 부린 것만큼 딱 그만큼 못 가겠는 거예요. 그 뒤로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센티: 저는 처음에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걸으면서 하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영식씨는 어떠셨어요?

영식: 도보여행은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얻게 되는거 같아요. 참 아쉬웠던 게 ‘나란 누구인가’를 생각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
거든요. 취업준비 때 자기소개서 쓰면서 일관된 자기 철학,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리를 못했던걸, 이제라도 여기서 생각한다는 게 다행인거죠.

센티: 같이도 걷지만 혼자서 걷게 될 때가 많은데요, 주로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영식: 걸으면서 저는 저의 과거와 대화를 많이 나눴거든요. 뭐 가끔 동수 놀이도 했고요. (웃음) 과거의 저는 더 좋은 고등학교를 가려고 애썼고, 대학도 더 좋은 곳을 가려고 재수도 했고, 취업도 더 잘하려고 했고... 이 모든 노력들을 돌아보니까 결국 더 돈을 잘 벌기 위한 거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나보다 좋지 않은 고등학교 다니던 친구 녀석을 대학에서 만나기도 하고 사회 나와서도 돈 좀 번다고 흥청망청 쓰는 애들 보면 적은 월급으로 살뜰하게 더 잘 사는 친구들하고도 별 차이가 없고. 사람이 한 단계에서 앞서간다고 해도 인생의 길을 또 가다보면 비슷해져 있기도 하고... 성공만 향해 달려가다가 건강을 잃고 병원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죽지 못해 살다가 죽는 경우도 있고, 평화롭게 생을 마감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 거 생각하다보니깐 아등바등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센티: 우아,, 엄청나게 도를 닦고 오셨네요. 근데 이런 생각은 이미 산티아고를 가실 때 어느 정도 생각한 거 아니었나요?

영식: 회사는 홧김에 그만뒀지만, 여행 다녀와서 바로 MBA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을 하던가. 그래서 더 좋은 직장에서 더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고 살겠다 였죠.

센티: 아 그럼 길 위에서 생각이 바뀐 거네요.

영식: 네 180도로 바뀐 거죠. 길에서 답을 찾고자 떠났죠. 저도 딱히 재취업이랄지 학문을 계속 할지 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데 있을 줄 알았던 답은 없고 길 위에 또 길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필시 기행문이라면 말 그대로 文이 중심일진데 요새는 사진이 주인이 된 듯하다며 같이 개탄하였다. 사람들이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라고 하는데 정작 내용은 안 봐요. 사진 몇 장 보고 잘 찍은 사진이면 이야, 나도 가야지...라고 하는 거에요.
 
일단 우리는 사직작가가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기꺼이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야기한 내용을 모두 적을 수는 없다. 안영식, 이 사람의 블로그에는 참 영양가 있는 감상들이 적혀 있으니 이곳으로 나머지 감상들을 교류해 보길 바란다. ^^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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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식
    2012.01.30 20: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아...민망하네요^^;;;;
    • 2012.01.31 13:0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ㅎㅎ 원래 레시피 공개는 좀 민망합죠.
      어여 기행문 한 작품 내소서.




나 스스로 인터뷰어가 되어 인터뷰이를 물색한다.
어떤 경험을 한 사람들이 다음 사람을 위해 경험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인터뷰이를 캐스팅 하는 작업이다.
대상은 나를 통해 내가 소개한 경험을 겪은 사람. 바로 산티아고를 걷고 온 사람들이다.

산티아고 여행의 기획자로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과 함께 경험을 나누는 콘텐츠를 만들 생각이다.
즉 투철한 공유정신이 발휘되어 나온 아이디어다.
내가 처음 그 길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 다녀온 사람들이 정보를 기꺼이 공유해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터이고
다녀온 후 나 또한 나의 경험을 아낌없이 공유해서 내가 받은 도움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블로그와 웹사이트에 정보를 올렸고 거짓말처럼 내 경험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길의 출발선에 선 사람들은 거의 같은 생각을 한다. 나도 그랬고 나를 만난 사람들도 그랬다.
여행을 다녀본 것도 아니고 보통사람인 내가 한달에 가까운 길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좌충우돌 경험과 사연을 알려주었다.
나의 경험과 노하우는 다음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레시피가 되었다.

내 소망은 이렇게 용기 레시피가 꼬리를 물고 전달 되고 지속 되는 것이다.
다음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덧.
기자도 아니고 인터뷰라는 것도 처음 시도해본다. (대면 설문조사같은 것도 안 해봤다.)
그런데 나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재있겠다며 맞장구를 쳐준 분이 있다.
초짜 인터뷰어로서 너무 감사할 뿐이다.
즐거운 작업이 되기를. 두근두근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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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지루한 틈을 타 모바일 접속으로 메일을 살폈다.
늘 받아보는 미술관련 소식지가 있는데 나랑 인연이 닿으려고 했던지
그 많은 텍스트 중에 유독 한 전시명이 눈에 띄었다.
'당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마침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재도구 일체가 갖추어진 "집"을 무료로 당신에게 임대합니다! - 주택 임대 프로젝트

스마트 하게 바로 전화를 걸어 신청했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예약 가능한가요? 제가 그날 임대하겠습니다.
혼자서 즐기고도 싶었으나 이런 기회를 행복하게 활용할 사람을 초대하기로 했다.
스마트한 시대에 전화를 개통하지 않은 친구. 그녀와 함께라면 이 공간을 유쾌하게 즐기고도 남으리라. 



그날 나와 통화한 분은 작가 본인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고,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전화로 예약한 유일한 사람이었다며 반가워했다.
임대계약서를 작성했고, 싸인을 하고 이 집의 주인이 되었다. 공간을 즐기는 부분을 촬영해달라는 협조요청을 받았다. 





집은 정말 1인이 사색하기에 딱 좋은 구조였고, 2층으로 되었다.
1층은 침실과 간단한 살림도구, 세면대. 사다리로 이어진 2층은 해먹이 가로질러 설치되었다.
튼튼한 집은 아니었으나, 구석구석 견고했고 따뜻했다. 
어릴적 책상과 의자를 지탱해 홑이불과 빨랫줄로 어설프게 텐트를 치고 그 밑으로 숨어들어가 안락함을 즐기던 때도 생각났다.  
곧 나는 이 집의 주인으로서 적응을 하여 내가 초대한 친구를 기다리고, 친구를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끓였다.




수년만에 만나 쌓인 수다를 풀며 아크릴 창으로 넘어오는 빛을 느끼며 이 공간을 만끽할 즈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수다 끝에 허기를 느끼며 나가사키라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거 먹으면 안될까?
집주인인 나 살짝 고민한다. 이거 너무 체험에 집중하는거 아닐까?
에라이 모르겠다. 과감히 살림을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내 집에서 전자 코펠에 끓여먹는 나가사키라면을 끓여 접대하겠어.
이런 체험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혼자 왔다면 여기서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었을까?
나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즐겨주기로 결심했다.




배도 부르고 식후 차 한잔을 끓이며, 나는 작가를 내 집으로 초대를 했다.
작가가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경위도 듣고 이렇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준 작가에게
우리가 느낀 감상도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다음은 채지영 작가와의 대화를 문답으로 기록했다.




센티- 제가 동행인이 있다고 했을 때 당황하신 것 같아요.
작가 - 제 의도는 혼자 사색할 자기만의 공간을 느껴보라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어요.
그래서 1인용으로 제작이 들어갔어요. 늘 제 작업에만 빠져있다보니 저만 당연히 1인 참여임을 인식했나봐요.
메일링 원고에 반드시 1인 참여라는 오라는 이야기가 빠져있더라고요. 

센티 - 저는 제 방은 있지만 집은 공동으로 사용하기에 저만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할수가 없었거든요.
밖에서 만나게 되는 카페같은 장소보다는 이런 공간에 잠시나마 소유해 보는게 의미가 깊네요.
저만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소망을 이룬 셈이네요. 


센티 - 왜 이런생각을 하신거예요?
작가 - 의외로 사람들이 사색을 할만한 여유공간이 없더라고요.
저 부터가 그랬고. 개인공간 최소한의 넓이를 생각해봤더니 딱 주차할 공간 한블록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 공간을 짓자. 라고 해서 시작한거고 그게 일반인에게도 체험할 기회를 주자로 확대된거에요.

이 집을 직접 제작하신건가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고요, 네 제가 꼬박 반년을 들여 제작한 집이에요.
처음에는 시골에서 짓기시작했어요. 집이란게 고정된다는 관념을 탈피해보자 이동식 주거를 짓기로 했어요.
그래서 바퀴도 달고 마을마다 다니면서 체험할수 있도록 구상했지요.

전시가 쉽지 않았을것 같아요.
네 아무래도 전시공간 확보하는게 어려웠어요. 실외가 되니 오픈시간을 정하기도 애매하고
전기를 끌어써야 하는데 안전문제도 있고... 겨우 이 갤러리 큐레이터 분이 제 사정을 듣고 배려해주셔서 진행하게 되었어요.

센티 - 참여자들이 많은가요? 저같이 전화 문의는 어때요?
작가 - 메일을 보고 전화를 주신 분은 아마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것 같아요.
이길을 지나다니면서 여러분들이 문의는 하시는데 체험하기는 많이 주저하세요.
혹은 잠깐 둘러보고 지나가시는 분들도 많고요. 전화하시고 예약하시니까 저로선 신기했어요.

센티 - 그럼 지나가다 만나게 된 사람들 중 가장 인상깊은 분이 있다면요?
좀 있다 오실분인데 오늘 예약하고 가셨거든요. 중년의 남성분이신데 집에서 고요함을 느낄수가 없대요.
아내는 항상 TV를 틀어놓는데 볼륨을 크게 튼대요. 그래서 볼륨을 줄이는 문제로 갈등이 있다네요.
마침 이 프로젝트를 보시고는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두시간이라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센티 - 저는 여기가 정말 아늑하고 좋아요. 아마 혼자 왔다면 라면까진 못끓여먹었을것 같고,
침대에 누워서 잠깐 졸았을거 같아요. 정말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드려요.

작가 - 여러분이 제가 본 중에 가장 자유스럽게 시간을 즐긴것 같아요. 저도 감사해요. 

  
이렇게 대화를 마치고 라면국물로 얼룩진 코펠 설겆이를 마치고 정리할즈음
중년의 남성이 노크를 한다. 자기만의 공간이 절실한 그분인 듯하다.
우리의 흔적은 지우고, 당신의 집은 새로운 세입자를 받아들였다. 
그 분이 짧게나마 자기만의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채지영 개인전
당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Welcome to your ’house‘.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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