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박현진 2071

4월 마지막 벚꽃 '산협의 노래 도종환 낭송을 들으며'

이날은 차가운 봄 보슬비가 내렸다. 4월도 마지막주로 치닫고, 얼마전 집 앞에서 무심히 발견했던 벚꽃을 언제 다시 보겠나 싶어, 나갔다. 바람이 흔들때마다 비에 젖은 나비의 날개처럼 애닯게 추락한다. 아스팔트 위에 나의 한숨을 더한다. 마침 알맞은 음악이 곁에 있어주었다. 뺨위로 떨어지는 젖은 벚꽃잎의 차가운 서늘함이 어디 겨울 눈송이에 비견하랴. 올해도 여전히 벚꽃이 전부라던 진해를 못가본 채, 그놈의 벚꽃타령도 이걸로 끝이다. 산협의 노래 - 오장환 이 추운 겨울 이리떼는 어디로 몰려다니랴. 첩첩이 눈 쌓인 골짜기에 재목을 싣고 가는 화물차의 철로가 있고 언덕 위 파수막에는 눈 어둔 역원이 저녁마다 램프의 심지를 갈고. 포근히 눈은 날리어 포근히 눈은 내리고 쌓이어 날마다 침울해지는 수림(樹林)의 어..

일상의 기록 2011.04.22

설겆이와 서글픔

주말에 집에 갔을 때였다. 늘 그렇듯 엄마가 식탁을 차리고 우리는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우리집엔 여자가 셋이다. 슬그머니 동생과 나는 설것이는 누가 할 것인가에 신경전을 벌였고, 서로 암묵적 동의하에 눈치껏 미루기로 했다. 결론은 엄마가 하게 두자. 는거였다. (참 싸가지 없는 나쁜 딸년들이다.) 밥을 먹고 물러나자, 개수대에 쌓인 설겆이를 본 엄마는 늘 같은 잔소리가 이어졌다. 먹었으면 잘좀 치워라, 다 큰 가시나들이 설것이 쌓아놓는 꼴이라니.... 아무도 없는 빈집에 외출하고 돌아와서 저걸 보면 얼마나 서글픈지 아니? 이날의 잔소리는 며칠을 내 맘을 떠나지 못하였는데, 하나의 단어 때문이었으리라. 서글프다.... 밀린 설겆이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귀찮아서 짜증나는것을 넘어 서글픔으로 채워지다니. 묘..

일상의 기록 2011.04.19

말을 잘 한다는 것

넌 경청의 자세가 부족해. 라고 둘도없는 친구가 내게 충고를 했다. 친구이니깐 이런말을 할수 있기도 했고, 친구이니까 경청을 못해주기도 했다. 말하기 좋아하고, 말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게 습관인 나에게 (친구에게 만큼은) 경청의 미덕을 살리긴 힘들어서였다. 나는 수다쟁이였다. 스스로 말을 잘 한다고 여겼고, 온갖 의성.의태어를 선보이며 희한한 비유와 흉내를 내면서 참 창조적인 말발이라고 착각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 도취되어 뱉어내는 말에 처음에는 재미있게 듣다가도 곧 지치는거다. 말을 맛깔스럽게 잘 한다는 것과 콘텐츠가 많아 말을 잘 하는 것은 참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수다를 다양한 표현의 배합으로 떠들어대는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말을 펼칠 수 있는 것..

벚꽃은 어디에 있었나

4월. 벚꽃은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은 삭막한 곳이라 벚나무 따위 심어질 리 없다고 지레 단정했다. 어떻게 하면 만개한 벚꽃 무더기를 볼수 있을까 고민했다. 주말 절정이라는 곳 찾아 벚꽃무더기 아래서 봄을 만끽하는 소소한 소풍놀이를 마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아파트 정문. 세상에! 거기에 벚꽃이 우르르 피어있었다. 매일 출근할 때 눈길도 두지 않았던 내 등 뒤로. 그렇게 조금씩 저 홀로 꽃 구름을 만들어 놨던 것이다.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생의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만 파랑새를 찾아 밖으로 떠돈게 아니다. 벗꽃은 바로 내 곁에 있었다. 행복은 저대로의 행복으로 놓여있다.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일상의 기록 2011.04.19

블랙스완, 익숙한 것과의 결별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와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주는 매혹적인 시각 효과도 있겠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대한 한탄에 진을 뺐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해야 하는 자가 느끼는 두려움. 이라 말하기엔 영화가 너무 강렬하다. 데미안을 인용하자. '새는 알로부터 나오려고 싸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래야 약하고 연약한 나탈리포트만의 살갖을 뚫고 나오는 검은 백조의 깃털을 말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검은 백조의 본성과 싸우는 동안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대한 귀찮음을 가장한 두려움 확신할 수 없어 두렵지만 욕망하는 세계. 검은백조를 욕망하듯 내 안의 기질적 욕망을 헤집어 본다. 그리고 어느날은..

일상의 기록 2011.02.27

살가움의 정점

창의적으로 살아보겠다고 두 달간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명도 창의성을 와락 키워줄 것만 같은 '창의적 글쓰기'다. 두번째 날부터 시작된 차 한 잔이 맥주 한 잔이 매주 이어져 여덟번째 종강때는최고조에 다달았다. 두 달의 한정된 시간 동안 가장 친해진 살가운 모임이 아닌가 싶다. 그 살가움의 정점에 저 편지가 있다. 수강생들에게 제공해준 티켓 사용 날짜가 지나 아쉬운 때에 남은 티켓을 보내주셨다. 사진전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이 귀찮은 날 귀찮은 몸을 이끌고 예술의 전당까지 간 이유는 이 살가운 편지에 대한 배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무엇때문인지 나에게 오해를 쌓은 지인에게 손으로 곱게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다. 말로도 메신저로도 차 한잔으로도 도무지 이해를 시켜주지 않던 그에게 마음..

신년계획

신년이되니 하나 같이 올해 계획은 뭐냐고 묻는데 나는 멍 때리며 되물었다. 글쎄 딱히 신년맞이 목표가 없는데? 사람들은 1월 1일이면 어디선가 거대한 목표가 생겨나는 것 같다. 이루기 참 어려울수록 멋지다고 생각하 듯 꿈같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비장한 각오를 내비치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나는 하던 일 계속 할 예정이고 2011년 1월 1일 이어서 갑자기 튀어나온 목표는 아니나 다짐하는 차원에서 나열해보련다. 올해는 책을 그냥 읽는 것에서 벗어나 리뷰를 써볼 예정이다. 그동안 시작도 못한 문사철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고전으로 폭을 넓힐 것이고 실용서적들은 간략하게 메모라도 해볼 요량이다. 글쓰기 강좌로 시작된 '창의적'인 쓰기 방식을 항상 고민할거고, 소재 모으기에도 열심일거다. MBTI 강사 자격증을 따..

일상의 기록 2011.01.03

까칠한 여자의 몰스킨 다이어리

나이 들었음을 느끼는 때는 내가 당당하게 까칠함을 발산할 때다. 돈을 내고도 그만큼의 서비스를 받지 못했을 때, 점원이 실수를 해서 물질적 피해를 입었는데 말로만 죄송하다하며 행동은 없을 때, 잘못된 정보로 시간까지 낭비됐을 때... 어느 순간부터 그저 내 속을 달래며 참고 넘어가는 일이 줄었다. 오늘같은 날이 그 까칠함이 발산한 새해다. 2011년판 몰스킨 위클리 노트북을 사기 위해 시내 대형서점을 수색했다. 신년대란을 예상하고 전화를 미리 걸어 재고를 파악했다. 몇 번의 전화 끝에 광화문 교보에 재고 발견. 사전 예약을 하고 달려갔다. 그.러.나.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엉뚱한 제고만 쌓아두고 그 알바생은 식사를 하러 자리에 없었다. 이대로 업무일지를 못쓰고 신년을 시작할 수 없다며 기어이 강남 영풍..

일상의 기록 2011.01.03

timeline과 weeklyline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 3월 3일이나 3월 4일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으로 사는 나이지만 신년에 맞춰 꼭 준비하는 것이 '몰스킨' 다이어리다.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일갈하는 시간 관리의 대명사 프랭클린 다이어리도 시도해봤으나, 매일 적어야 하는 두페이지의 분량으로 질려버렸다. 자그만치 일년치 분량이 정통 영한 사전 두께다. 하루 할당량의 페이지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은 할 일 없는 건달로 전락하거나, 그 페이지를 다 채워 버림으로서 한가하지 않음을 증명하느라 정작 할일을 못하는 딜레마적 상황에 봉착하는바 빈껍데기로 일년을 버틴 끝에 다이어리자체를 안 써버리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그때, 적당한 두께하며 감동일 정도로 심플한 레이아웃과, 한손에 착 감기는 물성과 튼튼함으로 나 여깄소 하며 나타난 다이어..

일상의 기록 2011.01.02

붙이고 만 편지

책이라는 출판을 통한 저자의 메시지 전달하는 것이다. 메세지를 주장하고 서문에 thanks to를 기록하는 것 이외에도 누군가에게 공개 편지의 도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석원이 출간한 '보통의 존재'를 보다가 인상깊은 꼭지를 읽었다. 제목은 '오해'였고 작가에게 오해를 품은 누군가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차분하고 스타일리쉬한 창작자가 어떤 사건으로 그와 멀어지게 되었다. 다분히 억울한 작가는 연락하지 않는 그 친구와 오해를 풀고 싶었고, 그 바람으로 메시지를 책에 남겨 출판을 했다. 현실에서는 냉가슴 앓던 붙이지 못한 편지는 그렇게 출판을 통해 부쳐버린 편지가 되었다. 물론 실명은 아니었고 분명 그 메시지를 들었을 누군가가 연락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표현하는 이석원이라는 ..

일상의 기록 2010.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