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 871

기본에 충실해 주면 안되겠니?

빨간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카페. 한때는 누군가의 생활 터전이었을 듯한. 문을 열고 들어가 윤기나는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안방처럼 아늑한 공간. 사방 통유리로 햇빛을 받는 동안은 수다를 떨기에도, 만만한 책 하나 붙잡고 앉아 읽기도 좋았다. 어느날부터 조금씩 변했다. 단가가 안맞는다며 메뉴 종류를 대폭 줄이더니 어느날인가는 모든 서비스를 셀프로 바꿨다. (그것도 가격은 고대로...) 이층까지 맛있는 치즈케익과 더치 커피를 가져다 주는 친절한 언니들도 없어졌다. 여름 한철 살짝 건조한 과일이 잔뜩 들어간 상큼한 샹그리아를 마시는 재미도, 고르는 기쁨을 선사해주는 많고 많은 종류의 핸드드립 커피도 이젠 없다. 슬슬 발길이 뜸하다가도 가끔 아쉬움에 단품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가기도 했다. 내가 그 카페를 좋아하..

막상 까보면 실망할까에 대한 두려움에 관하여

양파 같은 사람. 흔히 시간이 지나도 다채로운 매력이 있는 사람을 양파에 비유한다. 나는 항변한다. 양파는 까도까도 양파 아닌가. 벗길수록 매운기운을 뿜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게다가 점점 작아지는 스케일 하며... 오히려 양파 같은 사람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람 아닌가. 나는 내가 그렇고 그런 양파일까봐 두렵다. 이 이야기는 '막상 까봐서 내가 별볼일 없을 것에 누군가가 실망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양파같은 존재의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적절할 것이다. 최근 나에 대해,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해 참 큰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도움을 주려고 하신다. 한편 그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 켠이 갑갑하다. 그것은 바로 막상 까봐서 실망할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십여년간 내가 하는 온갖 쌩쑈를 지켜봐온..

일상의 기록 2011.06.07

구로시장 쌀집 아저씨

최근에 들었던 인상깊었던 말을 소개한다. 이 말씀을 해주신 분은 성공한 기업인인데 본인이 창업을 하고 경영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담담하게 말씀해주셨다. 창업을 하면 무림의 고수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회장, 중견기업의 CEO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집 수타 짜장면 가게 사장, 만화 대여점 주인 아줌마, 동네 구멍가게 슈퍼 아저씨... 막상 창업을 해보면 구멍가게 하나 운영한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될 것이며 망하지 않고 운영한다는 것이 위대해 보일 거란 내용이었다. 그 말을 난 내가 사는 동네의 구로시장의 상인들에게서 느낀다. 요새 검은콩을 끼니삼아 먹고있는데 (검은콩 다이어트는 나중에 기회되면 알려주겠다.) 요 콩을 나는 구로시장에서 산다. 마침 콩이 떨어..

구로시장 부르스

근처 구로시장을 애용하는데 몇가지 실리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경제적이다. 대형마트에서는 패키지로 구매해야 하는 부분을 이 시장에서는 낱개로 사는게 가능하다. 양파 한 알, 감자 두알 을 인정스럽게 살수 있다. 그리고 인간미가 있다. 마트에서 시식코너를 이용하면서 뭔지모를 불편함을 느끼는데 (입에 침튀김 방지 위생마스크를 쓰는 직원이 마치 재갈을 물려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수도 있다.) 여기서는 가게 주인이 즉석에서 척척 무치고, 빚어내는 당당함이 있다. 바로 뽑은 떡, 막 나온 김이 모락모락나는 두부, 방금 무친 홍어회무침...등 자로 잰 듯한 규칙보다는 생동감이 있다. 계절에 따라 나오는 품목도 다양하다. 어찌보면 지난 계절의 흐름은 시장에 나온 재료들을 보고 가늠한것도 같다. 이 시장을 어슬렁거림..

일상의 기록 2011.05.10

4월 마지막 벚꽃 '산협의 노래 도종환 낭송을 들으며'

이날은 차가운 봄 보슬비가 내렸다. 4월도 마지막주로 치닫고, 얼마전 집 앞에서 무심히 발견했던 벚꽃을 언제 다시 보겠나 싶어, 나갔다. 바람이 흔들때마다 비에 젖은 나비의 날개처럼 애닯게 추락한다. 아스팔트 위에 나의 한숨을 더한다. 마침 알맞은 음악이 곁에 있어주었다. 뺨위로 떨어지는 젖은 벚꽃잎의 차가운 서늘함이 어디 겨울 눈송이에 비견하랴. 올해도 여전히 벚꽃이 전부라던 진해를 못가본 채, 그놈의 벚꽃타령도 이걸로 끝이다. 산협의 노래 - 오장환 이 추운 겨울 이리떼는 어디로 몰려다니랴. 첩첩이 눈 쌓인 골짜기에 재목을 싣고 가는 화물차의 철로가 있고 언덕 위 파수막에는 눈 어둔 역원이 저녁마다 램프의 심지를 갈고. 포근히 눈은 날리어 포근히 눈은 내리고 쌓이어 날마다 침울해지는 수림(樹林)의 어..

일상의 기록 2011.04.22

설겆이와 서글픔

주말에 집에 갔을 때였다. 늘 그렇듯 엄마가 식탁을 차리고 우리는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우리집엔 여자가 셋이다. 슬그머니 동생과 나는 설것이는 누가 할 것인가에 신경전을 벌였고, 서로 암묵적 동의하에 눈치껏 미루기로 했다. 결론은 엄마가 하게 두자. 는거였다. (참 싸가지 없는 나쁜 딸년들이다.) 밥을 먹고 물러나자, 개수대에 쌓인 설겆이를 본 엄마는 늘 같은 잔소리가 이어졌다. 먹었으면 잘좀 치워라, 다 큰 가시나들이 설것이 쌓아놓는 꼴이라니.... 아무도 없는 빈집에 외출하고 돌아와서 저걸 보면 얼마나 서글픈지 아니? 이날의 잔소리는 며칠을 내 맘을 떠나지 못하였는데, 하나의 단어 때문이었으리라. 서글프다.... 밀린 설겆이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귀찮아서 짜증나는것을 넘어 서글픔으로 채워지다니. 묘..

일상의 기록 2011.04.19

말을 잘 한다는 것

넌 경청의 자세가 부족해. 라고 둘도없는 친구가 내게 충고를 했다. 친구이니깐 이런말을 할수 있기도 했고, 친구이니까 경청을 못해주기도 했다. 말하기 좋아하고, 말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게 습관인 나에게 (친구에게 만큼은) 경청의 미덕을 살리긴 힘들어서였다. 나는 수다쟁이였다. 스스로 말을 잘 한다고 여겼고, 온갖 의성.의태어를 선보이며 희한한 비유와 흉내를 내면서 참 창조적인 말발이라고 착각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 도취되어 뱉어내는 말에 처음에는 재미있게 듣다가도 곧 지치는거다. 말을 맛깔스럽게 잘 한다는 것과 콘텐츠가 많아 말을 잘 하는 것은 참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수다를 다양한 표현의 배합으로 떠들어대는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말을 펼칠 수 있는 것..

벚꽃은 어디에 있었나

4월. 벚꽃은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은 삭막한 곳이라 벚나무 따위 심어질 리 없다고 지레 단정했다. 어떻게 하면 만개한 벚꽃 무더기를 볼수 있을까 고민했다. 주말 절정이라는 곳 찾아 벚꽃무더기 아래서 봄을 만끽하는 소소한 소풍놀이를 마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아파트 정문. 세상에! 거기에 벚꽃이 우르르 피어있었다. 매일 출근할 때 눈길도 두지 않았던 내 등 뒤로. 그렇게 조금씩 저 홀로 꽃 구름을 만들어 놨던 것이다.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생의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만 파랑새를 찾아 밖으로 떠돈게 아니다. 벗꽃은 바로 내 곁에 있었다. 행복은 저대로의 행복으로 놓여있다.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일상의 기록 2011.04.19

블랙스완, 익숙한 것과의 결별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와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주는 매혹적인 시각 효과도 있겠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대한 한탄에 진을 뺐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해야 하는 자가 느끼는 두려움. 이라 말하기엔 영화가 너무 강렬하다. 데미안을 인용하자. '새는 알로부터 나오려고 싸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래야 약하고 연약한 나탈리포트만의 살갖을 뚫고 나오는 검은 백조의 깃털을 말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검은 백조의 본성과 싸우는 동안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대한 귀찮음을 가장한 두려움 확신할 수 없어 두렵지만 욕망하는 세계. 검은백조를 욕망하듯 내 안의 기질적 욕망을 헤집어 본다. 그리고 어느날은..

일상의 기록 2011.02.27

살가움의 정점

창의적으로 살아보겠다고 두 달간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명도 창의성을 와락 키워줄 것만 같은 '창의적 글쓰기'다. 두번째 날부터 시작된 차 한 잔이 맥주 한 잔이 매주 이어져 여덟번째 종강때는최고조에 다달았다. 두 달의 한정된 시간 동안 가장 친해진 살가운 모임이 아닌가 싶다. 그 살가움의 정점에 저 편지가 있다. 수강생들에게 제공해준 티켓 사용 날짜가 지나 아쉬운 때에 남은 티켓을 보내주셨다. 사진전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이 귀찮은 날 귀찮은 몸을 이끌고 예술의 전당까지 간 이유는 이 살가운 편지에 대한 배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무엇때문인지 나에게 오해를 쌓은 지인에게 손으로 곱게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다. 말로도 메신저로도 차 한잔으로도 도무지 이해를 시켜주지 않던 그에게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