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박현진 2071

[Buen camino] 드디어 친구가 생기다

2009.11.02 에스텔라 - 로스아르코스 : 21.8km 어제 비가 온 뒤 제법 쌀쌀해진 기온으로 상쾌한 걷기가 시작되었다. 새끼발가락 물집을 실리콘 밴드로 동여매고 만반의 준비로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변덕이다. 첫 번째 고개를 넘어서자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쬔다. 황토 빛 땅이 환하게 개고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반가운 산티아고 길의 날씨다. 두 번째 고개를 넘어서자 바람이 마구 불기 시작한다. 갈대길 사이로 갈대보다 더 흔들리는 바람이다. 그리고 슬슬 춥다. 땀이 나기도 전에 식어버렸다. 그래도 비를 맞고 걷게 되지 않음에 감사하나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이 들 정도다. 이때 나의 장갑과 귀가리개가 딸린 모자가 위력을 발한다. 물론 바람막이가 되어줄 나의 주황색 점퍼..

[Buen camino] 불타는 발바닥을 지긋이 즈려밟고

2009.11.01 푸엔테 라 레이냐-에스텔라 : 22.4km 오늘은 불나는 발바닥과의 투쟁기가 되겠다. 발바닥 뒷굼치 굳은살에 자리 잡은 두터운 물집, 전체적으로 발을 조이는 등산화 덕에 살을 파고드는 엄지발톱의 고통. 그리고 자꾸 새로이 잡히는 발바닥의 부분적인 물집들. 가장 힘든 건 발을 디딜 때 마다 느껴지는 발바닥 통증이다. 발바닥 뼈로 바로 다가오는 통증들. 오늘은 일행들 중에서 맨 꼴찌로 걷곤 했다. 가끔은 걷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만사가 귀찮다. 발바닥만 괜찮다면 14 킬로의 짐도 견딜 수 있다. 불타는 발바닥을 느끼며 신선놀음 하던 나는 드디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 왜 여기 있는거니?? 발바닥에 물집까지 잡혀가면서 이곳에서 떠날 생각도 못하고 있는 나는 뭔가. 출발 기세대로라면 '즐..

[Buen camino] 나의 피로회복제 코카콜라, 에스프레소

2009.10.31 팜플로냐-레이나 : 23.5km 오늘은 페르돈 고개를 넘어야 한다. 길은 평탄하고 오늘의 날씨는 덥다. 수확을 다 끝낸 밭은 황토빛 일색이고 하늘은 맑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눈인사를 나눈 순례자와 말을 걸어온다. 호기심이 가득 담은 표정으로. 이 길을 걷는 스페인 사람들은 몹시도 궁금해했다. 동양 여자들이 어떻게 알고 이곳 까지 왔는지. 너는 이 길을 왜 걷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오지만,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걷고 싶어서라는 늘 하던 말 대신 오늘은 다른 말을 해본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봤어. 그리고 이곳으로 왔지." 한 달의 휴가를 내고 생활하기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서 이곳으로 온 이유? '그냥' 대신에 이유를 꼭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700유로..

[Buen camino] 이것이 진짜 여행이렸다

2009.10.30 수비리-팜플로냐 : 21km 드디어 처음 제대로 걸어보는 날이다. 공립 알베르게 대산 10유로나 하는 사설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만족도는 높았다. 토마토 한 알과 카페 솔로 그랑데 한 잔으로 가볍게 시작. 아침에는 이슬에 젖기 때문에 바람막이용 점퍼를 입어주어야 한다. 핑크 자켓은 항공좌석에서 놓고 내리고 내게 남은 유일한 바람막이용 점퍼는 여박 점퍼. 주황색 옷은 어디에다 내어놓아도 튄다. 산에서 실종되어도 가장먼저 발견될듯. 인적 없는 숲길, 아침이슬에 옷깃을 스키며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중간에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와 따라온다. 야옹대는 폼이 영 애태우는 걸 보니 녀석이 오랫동안 굶었던 것 같다. 갖고 있던 바게트 빵을 좀 찢어서 던져 주었다. 이틀 전 사두고 거의 잊었던 ..

[Buen camino] 산티아고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2009.10.29 생 장 피드 포드 - 수비리 : 21km 어제의 약속대로 짐을 부치기 위해 마리아를 찾았다. 책, 배낭커버, 화장수, 여분의 바지도 1킬로가 나가길래 뺐다. 양말도 한켤래로 빨아신기로 했다. 그렇게 6킬로 감량에 성공. 그럼에도 저울에 잰 배낭무게는 14킬로...다들 혀를 내두른다. 카메라 2kg, 침낭2kg, 노트북 1.5kg, 그들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아답터 무게가 1kg,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노트북과 카메라는 포기 못하겠다. 그러니 이 부분은 내가 감내해야 할 무게였다. 9시 우체국 문이 열 때까지 마리아와 기다렸다. 십 오분 전 마리아는 테이프와 가위를 가지고 나왔다. 문이 열리기 전의 우체국 앞에서 나를 세워두고 빈 박스를 구하러 총총히 사라졌다. 한국까지의 배..

[Buen camino] 쾌변과 함께 시작, 그러나 제자리걸음

2009.10.28 생 장 피드 포드 : 18km # 아침은 쾌변과 함께 아무리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왔어도 명색이 순례여행인데 몸만큼은 긴장상태였을 거다. 그 긴장감은 대장까지만 전해졌는지 먹이를 고스란히 받아 물고 항문에서 배설을 못해준다. 어쩔 수 없이, 마그밀을 복용해주고 내일은 가벼운 장으로 산을 타야겠다 생각했다. ▲ 창문을 통해 본 새벽의 안개에 쌓인 생장의 아침 드디어 이 아침~ 배낭 싸느라 힘이 빠진 순간, 쾌변을 예감하는 신호가 오는 것이었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나는 과감히 아침식사를 포기한다. 변기에 앉아 쾌변의 쾌감에 쾌재를 부르는 데 웬지 창문을 열고 싶었다. 화알~짝 열어젖히자 새벽 안개를 걷히며 찾아오는 여명이 장관이다. 이런 낭만적인 풍경을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보게 될 ..

[Buen camino] 파리를 지나 생장으로

2009.10.27 프랑크 푸르트 공항의 환승거리만큼이나 파리 지하철의 환승도 환상적으로 길다. 야밤에 도착해서 씻고 어쩌고 다음날 일찍 기차역으로 향하느라 파리의 본 모습은 못 본다. 아침은 민박집에서 한식으로 제공한다. 밥,국,메인 반찬 1에 사이드 반찬 몇 가지를 제공하는데 당분간 구경하지 못할 마지막 한식인지라 열심히 먹었다. 바욘까지 TGV를 타고 생장까지는 갈아타야한다. 열차가 나란히 두 대 있는 것을 모르고 한 대만 해당 량을 찾느라 앞에 있는 차를 놓칠 뻔하다. TGV 고속철답게 귀가 멍멍하다. 검표원 한번 지난 후 별다른 사건은 없다. 6시간을 달리고 달려 환승 한 번 하고 또 1시간여를 달리면 생장이다. 생장이야말로 내가 드디어 유럽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다. 순례길 문턱에 첫 ..

[Buen camino] 여행의 시작, 액땜으로 땜질하기

어쩐지 뭔가 불안했다. 인터넷에서 신청한 환전은 무사히 찾았고, 약국에 들러 맨소래담로션을 못산 것이 내심 맘에 걸렸으나, 그럭저럭 파스 몇장으로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이런 장거리 여행은 처음인데, 액땜 한 건 없이 너무 조용히 출발하는가 싶었다. 아뿔사... 핑크 점퍼를 기내에 놓고 내린 것이다. 환승 보딩 시간 현지시각으로 8시 05분 현재 시각 8시. 당장 루프탄자 항공카운터로 달려갔고 여차저차 한 끝에 결론 "고객님아~ 그냥 오는 길에 환승센터에서 받으삼. 우리가 잘 보호해두께 핑크 점퍼..." 매우 곤란한 상황에 그들은 영어-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리하여 나는 바람막이 점퍼 구입에 쌩돈 몇 십 유로를 또 날리게 생겼구나~~~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 co..

[Buen camino]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 센티, 산티아고엔 왜 갔나

고백컨대, '왜?' 냐는 물음에 나는 '그냥' 이라는 답을 할 뿐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의 길로도 알려진 그곳은 오로지 걸어서 여행하는 곳. 800 km에 달하는 길을 걸으려면 30여일이 훌쩍 넘는다. 연금술사로 잘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가 인생의 전환을 맞았다는 길. 소심하고 까칠한 여자라는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걷고 온 길. 종교인에겐 성지순례의 한 코스라는 길. 그것이 대략 내가 알고 있던 길의 정보였다. 그 길을 알게 된건 작년 2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엉덩이로 방바닥을 기어다닐 때였다. 움직임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인지 그때부터 오래도록 걷는다는 행위를 환장할만큼 원했던 것 같다. 산티아고로부터 불어오는 자유의 바람은 슬슬 콧구멍을 간지럽히기 시작하여 가슴 한 켠을 후벼댔다...

초리선생에게 시조를 선물받다

마데쏭*, 센티팍*. MMORPG* 버전으로 승화시키면 뫄됋쑒 & 쉚틔퐊 ㅡ_ㅡㅋ 내가 아는 고급정보에 의하면.......이 두여인네는 친구다. 그리고 같은 팀이다. 덕분에 업무시간 이외에 휴가나 출장 등의 시간을 공유하기 힘들단다. 티팍사마와 글(메신져)을나누다보니 티팍왈, "우린 휴가도 따로임. 올빼미가 아니면 함께 하기힘듬." 문득 그분이 오셔서 이에 대한 시 한수가 떠올라, 조용히 붓을 들어본다. [언문버전] 쏭 과 틔퐊 작자 : 초리*선생 우리는 따로따로 휴가도 따로따로 항상 따로따로 합체하면 올빼미* [한시버전] 宋 加 炭薄 作文 : 草利 我對分離 休暇分離 恒常分離 合體而鳥類 ------------------------------------------------------------------..

일상의 기록 2009.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