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8
생 장 피드 포드 : 18km
# 아침은 쾌변과 함께
아무리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왔어도 명색이 순례여행인데 몸만큼은 긴장상태였을 거다.
그 긴장감은 대장까지만 전해졌는지 먹이를 고스란히 받아 물고 항문에서 배설을 못해준다.
어쩔 수 없이, 마그밀을 복용해주고 내일은 가벼운 장으로 산을 타야겠다 생각했다.
▲ 창문을 통해 본 새벽의 안개에 쌓인 생장의 아침
드디어 이 아침~ 배낭 싸느라 힘이 빠진 순간, 쾌변을 예감하는 신호가 오는 것이었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나는 과감히 아침식사를 포기한다.
변기에 앉아 쾌변의 쾌감에 쾌재를 부르는 데 웬지 창문을 열고 싶었다.
화알~짝 열어젖히자 새벽 안개를 걷히며 찾아오는 여명이 장관이다.
이런 낭만적인 풍경을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보게 될 줄이야...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한 옵션은 되었다만...
일단 배낭을 메다가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무겁다.
상쾌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발걸음을 옮긴지 한참...
앗, 내 모자. 옵션들 중에 가장 비싼 내 모자를 놓고 왔다.
비행기에서는 점퍼, 오늘 아침은 모자, 도루 돌아갈 수는 없다. 쿨하게 잊기로 한다.
그러나 아깝다...아아~~
▲ 생각에 잠겨 길을 걷다 보면 이런 친구들이 얼굴을 들이밀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배가고파 토마토 한 개를 꺼내 으적으적 씹으면서 간다. 단단한 토마토의 식감이 좋다.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나는 점점 산 중턱으로 기어올라간다.
가을 볕을 받아 쫙 벌어진 밤송이가 지천이라 주워서 까먹었다. 앞으로 겪게 될 수렵 생활의 시작이다.
땅에 시선을 두니 사체의 흔적이 너무나 많다.
짜그러진 달팽이, 엄청 다양한 곤충, 엄청나게 큰 민달팽이..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끝도 없는 깔딱 고개를 막 넘겼을때 마주하게 된 산양의 시체였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를 흰 가죽만 남아 버린 게다가 산양의 시체,
종종 말의 것으로 보이는 넓적다리 뼈다귀가 굴러다니기도한다.
# 끝도 없는 10월의 피레네
하나 둘 씩 순례자들이 보이더니 곧 나를 추월해간다. 집채만한 배낭을 메고 바둥대는 나에게
다들 괜찮냐고 물어봐준다. 응 난,,,,괜찮아(질 것 같아)라고 대답해준다.
길이 끝이 안나다.
발가락 양말을 교체해보다. 발가락사이가 꽉차 발가락의 목을 조른다.
발가락들이 숨 쉬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가뜩이나 부은 발 힘들다고.
쉣, 만 오천원짜리 두 개나 샀단 말이다.
▲ 고도가 높아질수록 양과 말들의 '떼지어 풀뜯기' 광경을 목격 할 수 있다.
목이 말라오면 사과 한 조각, 당근 한 조각씩 씹었다.
방목하는 소, 양, 말이 차례로 내 앞을 걸어간다.
갑자기 집체만한 말이 다가온다. 피했다. 쫒아온다.
발도 아픈데, 냅다 도망쳤다. 안 따라온다. 내 손엔 당근이 들려있었다.
# 아! 그러니까 저 산을 넘으란 말이지?
대체 이졍표가 되는 십자가는 언제 나오나요?
가뭄에 콩 나듯 보이던 순례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안보이기 시작했다.
이 물이 없으면 다음 목적지까지 나는 물 한 모금 못 먹는 거다.
드디어 십자가가 보이고, 순례표지도 더 이상 아스팔트를 가리키지 않는다.
산으로 모든 화살표가 쭉~~
▲ 이제 아스팔트길은 사라지고 저 산을 넘어야 한다.
7:30분에 출발해서 지금 시간이 4:10분 18킬로미터를 조금 넘는 지점에서
앞으로 9키로가 남은 거다. 그리고 남은 길은 비포장. 산을 넘는 거였다.
생각해보라 십자가가 세워진 무덤을 중심으로 황량한 벌판.
지금까지 잘 보고 따라왔던 이정표는 이제 아스팔트길이 아닌 산자락을 가리킨다.
곧 해는 저물어 갈 텐데, 남은 목적지가 9킬로미터 등산.
산양의 목에 매어놓은 종소리만 덩그렁 울려대고, 바람은 이제 온기를 잃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혼자였다. 20여분을 고민했다. 저 산을 오를 것이냐 말 것이냐.
나에게 없는 것은 3가지였다.
1. 물이 없다. 불안하게
2. 식량이 없다. 불안하게
3. 곧 빛이 사라진다. 불안하게
즐겁고 안전한 순례를 위해 과감히 발을 돌렸다.
하루에 25킬로를 꼭 걸어야 할 것도 아니요, 무리할 필요도 없다.
내가 혼자 감격에 겨워 거북이걸음을 한 결과였다.
내일은 자연과 너무 많은 대화는 하지 말아야겠다.
# 센티, 지나가는 차를 세우다.
두 번의 시도 끝에 맘씨 좋은 프랑스인 부부를 만났다.
생장피드포드까지 가시면 저 좀 태워주세요! 와. 복도 많지 흔쾌히 해주신다.
둘 다 짧은 영어로 알아들은 내용. 그 노부부와 같이 탄 꼬맹이는 그들의 손자.
그들의 딸이 이곳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그 부부도 관광차 렌트로 놀러 나왔다고 한다.
딸은 영어를 자기보단 더 잘 한다고 한다. 이따 같이 저녁식사나 하자는 걸
같은 알베르게 에서는 두 번 묵을 수 없다는 원칙에 맘이 급해진 나는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식사를 할 여력이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복조리 모양의 핸드폰 고리를 선물해주고 왔다.
당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거예요~~
9시간 사투의 길을 30분 만에 내려오다.
올라올 때 말과, 소와, 닭과, 꽃과, 달팽이와, 토마토 이 모든 것들과 대화하면서 올라온 길이 눈에 훤하다.
저 길은 떨어진 밤송이를 까서 밤 까먹던 길,
죽은 지 얼마나 됐는지 살은 다 썩어 흰 털만 보이던 양의 사채가 놓여 있던 길,
울타리 사이로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나타난 소가 있었던 길....
그 길들을 다 지났더니 생장드피드포트다.
이젠 이 동네가 우리 동네 같다.
#생장 피드포드에서 두번째 밤을 보내다.
어제의 그 멀쩡하던 처자가 거지꼴이 되어 해질 무렵 다시 찾은 것으로 눈치는 채신 듯.
오늘 아침 모자 놓고 간 거 못 봤냐고 물었더니, 이 호스피탈레는 영어를 못한다.
그나 저나 어제의 그 뒤숑뒤숑 하는 영어하시는 호스피탈레가 와야 내가 무사하단 걸 일행에게 알려줄건데....
핸펀은 또 왜 안 터지는거냐!!! 그나저나 재빨리 샤워를 하고 가게 문 닫기 전에 내일 식량을 구해야 한다.
샤워를 하다 발견한 사실인데, 물이 닿았을 때 오른쪽 어깨가 아려온다.
살펴보니 피멍은 기본이요 살짝 까진 피부의 쓰라림은 옵션이렸다.
산을 넘어간 것도 아니고 18킬로 꼴랑 갔다 와서 피멍든 어깨를 보고 있자니 참 폭폭하다.
▲ 하루 묵어갈 순례자의 침대를 먼저 차지해버린 알베르게의 고냥옹. 저대로 앉아 졸았다.
침낭을 펴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모자가 형체도 알 수 없게 구겨진 형태로 튀어나왔다.
뒤숑뒤숑하는 분이 오셔서 내 일행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나는 피레네를 넘다가 실종되어 경찰에 신고된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이다.
거봐, 너 짐 무거워서 무리일거라 했잔아.
"너 컴퓨터도 가져온거니? 이건 절대 네세서리 하지 않아. 낼 우체국에 붙이러 가자."
"이거 없으면 제가 일기를 못 써요.. 마이 네세서리 아이템~~ 차라리 옷을 하나 버릴테요~~"
대신 고추장을 비롯한 덜 네세서리한 물건들을 보내기로 작정한다.
알베르게 익숙해 져야겠지만 하루만에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아저씨들이 속옷까지 아무렇지 않게 갈아입는 거,
발 냄새와 땀 냄새가 결합된 가공할 만한 향취.
그리고 커플의 애정행각은 견디기 힘들다.
이것들이 나란히 누울 때는 내가 더 조마하다.
저것들이 그냥 나란히만 자면 좋겠는데,
설마 포개지진 않겠지? 나의 숙면을 방해하지 말라규!!
내일은 꼭 다음 알베르게를 가야 할 텐데....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 copyright by sentipark
'여행기획&기록 > 산티아고BuenCamino ' 카테고리의 다른 글
[Buen camino] 이것이 진짜 여행이렸다 (0) | 2009.11.30 |
---|---|
[Buen camino] 산티아고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2) | 2009.11.29 |
[Buen camino] 파리를 지나 생장으로 (0) | 2009.11.25 |
[Buen camino] 여행의 시작, 액땜으로 땜질하기 (0) | 2009.11.24 |
[Buen camino]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 센티, 산티아고엔 왜 갔나 (0) | 2009.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