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생활의 발견 276

어떤 신년인사

1월 1일 아침에 전화가 울린다. [화니]다. 수화기 넘어 '언니, 새해복 많이 받아요'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에 새날에 대한 설레임이 묻었다. 대뜸 자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 3개를 말해달란다. 이런 거 할 때마다 쑥쓰럽지만 새 해니까 봐준다. 부산여자, 속살여행가, 귀여워.라고 답했다. 좋은 이야기를 해줬으니 나에게도 3가지를 꼽아주겠다고 한다. 오, 이건 예상치 못한 선물인데? B급 취향,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능력, 계획적임을 꼽는다. B급 취향을 꼽은 이유는 그 B급 특유의 독특한 생각이 나오는것 같으니 꼭 그 취향을 유지하란다. 나는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지키는 편이 아니다. 즉흥이 반이요 딴생각하다 삼천포로 빠지는게 자랑이다. 그런데 계획적이라니. 그건 아마도 아주 오래전 아주 넓은..

두 이방인, 웃을수가 없었다

요즘 고학력 실업자 사태를 풍자한 코미디극이 인기인가보다. 두 남자가 등장해 서로 박사라고 부르며 본인들이 쓰는 논문을 칭찬해주며 대화를 풀어간다. 그들은 연봉 2억 5천을 보장하는 회사에 지원했으며 청년취업문제는 남의나라 이야기다. 한마디로 재수없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폭소가 터진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은 막노동 현장판이다. 현장감독이 물건을 옮기라고 지시한다. 조그만 짐을 앞에 두고 이들은 지렛대의 원리를 운운하며 짐을 옮기려고 한다. 물리적인 완벽함을 위해 움직도르레를 설치해달라고 제안을 하기까지한다. 그런 꼴을 보다 못한 현장감독이 직접 해치운다. 이들은 입만 살아있는 현장에서는 쓸모 없는 존재다. 오, 웃기긴데 웃을수가 없다. 앉아서 이방향 저방향만 입만 살아 나불대는 나를 발견하다. 박사님..

모두 처음 해보는 생존 경험

혼자 이사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살던 원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직접 복덕방을 다니고 집을 보고 살 곳을 정하고 복비를 정산하고... 중고 가전제품을 찾아 재활용 센터를 뒤적인다. 집이나, 중고 가전이나 다리품 팔면 확실히 좋은 제품을 얻는다. 이사 비용도 만만찮다. 결국 몇군데 견적을 내보고 포장이사는 포기하고 직접 박스구해다가 짐을 포장해놨다. 처음 하는 이사라 짐 하나 싸는것도 불안했다. 하루에 몇개씩 미리미리 싸두었다.짐은 많지 않았는데 박스로 포장해두니 꽤 많았다. 나는 특별히 가전 제품도 없고 옷가지와 책이 전부였다. (책은 이삿짐으로 최악이다. 아주 무겁다.) 개인용달에 짐을 같이 나를 기사 한분만 신청했다. 다행이 아저씨가 워낙 잘 운반해주시고 개별 바구니도 가득 싣..

부산에 숨겨진 인연, 카페 아임(l'm)

'오랫만에 춘봉이나 보러갈까?' 카페 아임(l'm). 부산에서 활동중인 속살여행가 양화니가 데리고 간곳이다. 춘봉이는 카페주인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다. 개똥이, 춘삼이 같이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주면 오래 산다는 설이 있어서 고심끝에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카페 아임은 갤러리 겸 카페로 1,2층은 카페, 3층은 갤러리로 운영한다. 이곳의 주 메뉴는 진저비어(ginfer beer)와 짜이(chai)다. 생강에 밀크가 주 원료인듯한데 카페 내부에 레몬과 계피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즉석에서 레몬을 짜내고 나면 그냥 버리지 않고 난로위에서 말리고 실내 소품장식으로도 쓰는 듯 했다. 잠시 후 남자가 들어온다. 카페 안주인의 남편되는 분이란다. 낫이 익다. 벌써 8년이 지난 2004년이다. 당시 마로니에 미술관에서..

들려주는 고전읽기

아이폰 업데이트를 하고나니 UI가 바뀌었다. 제일 눈에 띈 부분이 podcast다. 바뀐 ui를 잡고 이리저리 검색해보다 신규컨텐츠 발견!! 고전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자기변화경영으로 알려진 구본형 소장과 개그우먼 출신 이희구씨가 진행한다. 최근 '신화를 읽는 시간'을 통해 성장메세지를 전달하는 등 고전을 탐구하는 진행자로서 구본형 소장이 제격인듯하다. 중저음으로 들려주는 오프닝 멘트도 듣기 좋다. 옆에 이희구 씨는 무거울 수 있는 분위를 발랄한 기운으로 업 시키긴 하나, 가끔 분위기를 깨는 면이 없진 않다. 일연의 삼국사기를 들어봤다. 삼국유사 전도사로 불리는 한양대 문화콘텐츠 학과 고운기 교수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전문 나레이터가 전문을 읽어주고 게스트가 코멘트 해준다. 아주 오랜 세월 우리의 곁..

십년 전의 잔재주 하나

어제 포리라운드 모임의 주제는 '탁월함'이었다. 자신의 탁월함을 소개할 스피치 시간이 주어졌는데 나는 나는 특별히 한 가지의 특출난 점이 없어 고민을 좀 해봤다. 한가지 특출난 점은 없지만 소소하게 잡재주가 많다. 이들을 합쳐서 융합해내는 기술이 내 탁월함이라고 소개했다. 언어감각이 있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끌어내는 걸 좋아하므로 인터뷰를 시도한다. 감정을 끌어내어 감성적인 포장을 잘한다. 그렇게 직.간접으로 보고 들은 것을 내것으로 표현할수 있다. 학교다닐때는 그림을 그려 관찰력이 길러졌고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할수 있었다. 관찰하고 인상남기는 법을 그렇게 배웠고, 이런것들이 쌓여 내 일은 조금씩 단단해 지고있다. 십년 전의 잔재주 중 캐리커쳐 자료를 꺼냈다. 고객을 민망하지 않게 뚫어져라 잘 관찰..

여행박사 후쿠오카 가이드 앱

후쿠오카 가이드 어플 제작하기. 퇴사를 하기 전까지 붙들고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이미 여행박사가 출판했던 가이드 북이 있었기에 콘텐츠 고민은 크게 없었다. 관건은 책에서 스마트 폰으로 콘텐츠를 담는 디바이스가 바뀌는 것이었다. 책은 있었지만 이걸 스마트한 디바이스에 담기 위해선 수작업이 꽤 들어가야했다. 책의 내용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고 어떻게 구획되고 어떻게 보여주느냐도 중요했다. 일일이 위치를 확인하고 사진을 매칭하고 주소, 전화번호 같은 세부내역도 살펴야 했다. 그 사이 가이드북에는 실리지 않은 신규 콘텐츠를 적절히 배합했다. 실제 여행객이 고민스러워 하는 부분을 영업팀에서 대면 조사를 통해 파악했다. 후쿠오카 여행지와 연계한 주변 여행지 정보를 가장 필요로 했고, 담당자가 직접 추천하는 2,3일 ..

글쓰는게 참 좋은데....

글 쓰는게 좋아서 블로그를 시작하고 이젠 블로그에 뭔가를 끄적이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런데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를 누르기까지 한참 걸리고, 그나마도 앉은 자리서 완성하지 못한다. 내 이야기를 나누기를 즐김에도 불구하고 미룬 기록이 한참이다. 몇 매체에 글을 실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해서 고마운데 어딘가에 기록된다는 것 때문에 한편으로는 괴롭기도하다. 인터뷰를 자청해서 해놓고 정리는 아직도 미루고 못하고 있다. 한 사람의 진지한 이야기를 시간을 따로 내어 집중해 듣는것도 흥미로운 일인데 그 이후부터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기록하고 알려지고 누군가에게 읽히고 평가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부로 배설할수도 없다.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좋은데, 글을 쓰는건 좋은데, 늘 부딪히는 일이다. 오늘..

잘 만든 뮤직비디오, 전도 되겠다

나얼의 '바람기억'. 우연히 음악을 듣고 제목을 알아낸 다음, 검색을 하다가 뮤직비디오까지 찾아챙겨봤다. 영화 뺨치는 스케일, 영상미,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까지 눈을 뗄수 없다. 종교 없는 내가 보기에도 기독교적 코드가 가득하다. 기독교 색체가 들어있네 마네로 이슈가 되나보던데 그거야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고 감동한번 찐하다. 문득 명동 한복판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열혈신자나 지하철에서 '예수믿고 천당가세요'라던 공공장소의 무법자, 개독교 신자들의 밉상짓이 싹 지워진다. 심지어 교회를 가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완벽한 전도는 문화로 이뤄지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