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 23

[Buen camino] 드디어 친구가 생기다

2009.11.02 에스텔라 - 로스아르코스 : 21.8km 어제 비가 온 뒤 제법 쌀쌀해진 기온으로 상쾌한 걷기가 시작되었다. 새끼발가락 물집을 실리콘 밴드로 동여매고 만반의 준비로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변덕이다. 첫 번째 고개를 넘어서자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쬔다. 황토 빛 땅이 환하게 개고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반가운 산티아고 길의 날씨다. 두 번째 고개를 넘어서자 바람이 마구 불기 시작한다. 갈대길 사이로 갈대보다 더 흔들리는 바람이다. 그리고 슬슬 춥다. 땀이 나기도 전에 식어버렸다. 그래도 비를 맞고 걷게 되지 않음에 감사하나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이 들 정도다. 이때 나의 장갑과 귀가리개가 딸린 모자가 위력을 발한다. 물론 바람막이가 되어줄 나의 주황색 점퍼..

[Buen camino] 불타는 발바닥을 지긋이 즈려밟고

2009.11.01 푸엔테 라 레이냐-에스텔라 : 22.4km 오늘은 불나는 발바닥과의 투쟁기가 되겠다. 발바닥 뒷굼치 굳은살에 자리 잡은 두터운 물집, 전체적으로 발을 조이는 등산화 덕에 살을 파고드는 엄지발톱의 고통. 그리고 자꾸 새로이 잡히는 발바닥의 부분적인 물집들. 가장 힘든 건 발을 디딜 때 마다 느껴지는 발바닥 통증이다. 발바닥 뼈로 바로 다가오는 통증들. 오늘은 일행들 중에서 맨 꼴찌로 걷곤 했다. 가끔은 걷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만사가 귀찮다. 발바닥만 괜찮다면 14 킬로의 짐도 견딜 수 있다. 불타는 발바닥을 느끼며 신선놀음 하던 나는 드디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 왜 여기 있는거니?? 발바닥에 물집까지 잡혀가면서 이곳에서 떠날 생각도 못하고 있는 나는 뭔가. 출발 기세대로라면 '즐..

[Buen camino] 나의 피로회복제 코카콜라, 에스프레소

2009.10.31 팜플로냐-레이나 : 23.5km 오늘은 페르돈 고개를 넘어야 한다. 길은 평탄하고 오늘의 날씨는 덥다. 수확을 다 끝낸 밭은 황토빛 일색이고 하늘은 맑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눈인사를 나눈 순례자와 말을 걸어온다. 호기심이 가득 담은 표정으로. 이 길을 걷는 스페인 사람들은 몹시도 궁금해했다. 동양 여자들이 어떻게 알고 이곳 까지 왔는지. 너는 이 길을 왜 걷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오지만,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걷고 싶어서라는 늘 하던 말 대신 오늘은 다른 말을 해본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봤어. 그리고 이곳으로 왔지." 한 달의 휴가를 내고 생활하기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서 이곳으로 온 이유? '그냥' 대신에 이유를 꼭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700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