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

설겆이와 서글픔

코치 박현진 2011. 4. 19. 19:29
주말에 집에 갔을 때였다.
늘 그렇듯 엄마가 식탁을 차리고 우리는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우리집엔 여자가 셋이다. 
슬그머니 동생과 나는 설것이는 누가 할 것인가에 신경전을 벌였고,
서로 암묵적 동의하에 눈치껏 미루기로 했다.
결론은 엄마가 하게 두자. 는거였다. (참 싸가지 없는 나쁜 딸년들이다.)

밥을 먹고 물러나자, 개수대에 쌓인 설겆이를 본 엄마는 늘 같은 잔소리가 이어졌다.
먹었으면 잘좀 치워라, 다 큰 가시나들이 설것이 쌓아놓는 꼴이라니....
아무도 없는 빈집에 외출하고 돌아와서 저걸 보면 얼마나 서글픈지 아니?

이날의 잔소리는 며칠을 내 맘을 떠나지 못하였는데, 
하나의 단어 때문이었으리라. 
서글프다....
밀린 설겆이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귀찮아서 짜증나는것을 넘어
서글픔으로 채워지다니.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반성으로 이어졌다.

삼십여년 매일 밥을 한다는게 얼마나 지겨운일일지 가늠할까 싶다. 
살림이라는게 끝도 없는 행위에 진저리가 나련만 그래도 자식 밥 먹인다고 따뜻한 밥 한끼 안겼는데
그 성의를 밀린 설겆이로 보답했으니 서운한 감정이 생기고도 남으리라.
밥만 먹고 그대로 사라진 빈집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싶다.

차라리 신경질을 내셨던들 나는 마음이라도 편했지.
엄마가 있는 공간에 서글픔을 남기는 딸년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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