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 상쾌한 향이 맞이한다. 사무실 곳곳에 스며든 천연 아로마 향이다.

아로마는 근육을 이완하고 스트레스를 낮추는데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인공 향이 들어가지 않은 천연 아로마 오일이 가득한 공간에 있으니 두뇌와 호흡기가 맑아지는 듯했다.

눈을 감으면 허브가 가득한 들판에 조용히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로마오일과 천연원료 전문샵을 운영하는 <아로마시스> 한은혜 대표를 만났다.

Q. 사업 소개 간단히 부탁합니다.

아로마 오일을 베이스로 한 제품군들을 개발하고 있고요, 화장품 원료가 되는 천연원료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병풀추출물, 브로콜리 추출 원액, 히알루론산 등의 원료뿐 아니라 호호바 오일은 화장품으로 인증받아서 패키징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그리고 좋은 아로마를 직수입해서 공급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Q. 아로마라는 흔치 않은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시게 된 스토리가 있다고 들었어요.

이십 대에 첫 직장생활을 한 곳이 아로마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영업직이었어요.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는데 스트레스 때문인지 근육 긴장과 떨림이 있는 신경계에 질병이 왔어요. 치료방법을 찾다 보니 아로마 향을 맡았을 때 근육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었던 게 생각났어요. 당장 아로마테라피스트 공부를 6개월 정도 하고 서울로 이전을 했어요.

다시 의류 쇼핑몰에 취업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또 아픈 거에요.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저는 몸이 아플 때 근육통 질환으로 오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아로마를 찾게 되더라고요. 아로마로 근육통을 치료하고 일하다 아프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아로마로 사업을 하며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지요.

요즘 세상에 정신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의 굳어진 정신과 근육 이완에 아로마만큼 효과적인 자연 치료제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서울에 아로마를 취급하는 회사를 찾아 무작정 올라왔어요. 그 회사가 지금 거래처가 되었지요. 천연원료 취급 회사를 전략적으로 찾아다니면서 경력을 쌓았어요.

아로마시스 한은혜 대표


Q. 아로마로 아이템을 정착하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아로마를 좋아했지만, 첫 사업에서는 싱글을 대상으로 건강 간편식을 판매하는 아이템을 잡았어요. 자취를 오래 하기도 했고 혼자 먹는 식품에 관심이 높아서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저는 이 분야에 연고도 없고 거래처도 없고 하니 일 년가량 고군분투하다 손들었죠. 그리고 내가 잘 아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 내렸어요.

장사는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저에게 비빌 언덕은 그동안 다녔던 회사였어요. 그분들에게 원료도 공급받고 콜라보로 개발을 하기도 하면서 브랜딩을 만들고 있어요.

Q. <아로마의 기준을 만들다> 회사의 슬로건이 인상적이네요. 어떤 의미인가요?

아로마를 공부하다 보니 아로마 시장이 성장을 못 한 원인이 바로 기준이 없어서란 결론을 내렸어요. 사는 사람도 기준이 없고, 판매자도 기준이 없어요.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게 왜 좋은지 설명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제품의 질이나 가격의 기준을 세우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음식은 먹으면 맛을 알 수 있지만, 향은 모호하거든요. 저는 아로마를 단순히 방향 기능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근육통 완화나 스트레스 감소 효과 등의 치료 효과로 접근하려 합니다. 스트레스와 근육통이 있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아로마를 선호해요. 그런 분들은 또 기막히게 질 좋은 아로마를 선별해내시더라고요.

진실된 상품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게 가격이든 물건이든. 저렴한 걸 싸게 사면 좋겠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싼걸 원하기 보다는 좋은걸 싸게 사고 싶은건잖아요. 좋은 제품은 싸지 않아요. 저는 적당한 상품을 싸게 팔기 보다는 더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팔고 싶어요. 그게 표준이 아닐까요. 비싸서 못쓰고, 싼데 후진거 빼고요. 이 정도는 나에게 투자할 수 있어. 정도의 기준을 만들고 싶어요. 원래 중간이 어려워요.

퀄리티와 가격에 대해 예를 들면요, 우리가 흔히 아는 라벤더는 원산지와 계절에 따라 질이 달라요. 꽃이 한 곳에서 핀다고 해도 다 똑같지 않거든요. 상중하 등급이 생겨요. 라벤더는 10월에 폈다 지는 꽃이에요. 모르는 사람은 9월에 수입 해요. 그럼 이미 일년이 지난 재료가 되는 거에요. 그런 경우는 개봉 후 향이 빨리 날아가요. 아로마 판매자는 이런 지식을 갖고 퀄리티와 가격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이미지 향에 익숙한 것도 있어요. 라벤더는 우리가 떠올리기에 달콤한 꽃향기인데 실제 라벤더 향은 풀냄새가 많이 나요. 라벤더를 접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향이 아니라고 하시는데요, 사실 저렴할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그 향이 나요. 음식처럼 조미료를 써서 맛을 내는 거죠. 일종의 첨가물 같은 거에요. 좋지는 않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은 또 없는 거죠. 기준이 없으니까요.

아로마 관련 협회나 모임에 가서 전문가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저는 사업가니까 전문성 키우기보다 사업가로서 활동에 집중했는데요, 브랜드를 만들려다 보니까 전문성이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제가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으니 제가 전문성을 키우면서 전문가들과 교류해야겠다 싶어요.

저는 좋은 아로마의 기준을 만드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아로마 오일이 기본이 되어야 샴푸, 디퓨저, 방향제 등으로 파생상품이 나와요.

아로마 오일을 베이스로한 다양한 제품군


Q. 북부창업보육센터를 졸업한 지 반년 정도 되었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열정적인 삼백 명의 사업자가 있는데 그중에 브랜드로 넘어간 사람은 오십 명도 안된대요. 브랜드 중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은 더 희박하겠죠. 저는 이제 브랜드로 넘어가려고 하는 단계예요. 그래서 인력이건 제품개발이건 수익이 나는 대로 재투자하고 있어요.

첫째로 인력을 충원했어요.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사업은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고 그냥 가는 거라는 거였어요. 그걸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재능을 파는 프리랜서인 것 같아요.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한다는건 혼자 하기 무리지요. 인력을 충원하고 가장 크게 바뀐점이 시스템이 생겼어요. 재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리하다보니 훨씬 효율이 생겼고요. 하루에 물건이 몇 개 나가고 몇 개가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광고비 책정이 가능해졌어요. 택배출고에 대한 정리도 되서 연말에 택배비 정산을 할때 정확히 맞아요. 낭비할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어요. 재고파악을 못해서 과잉 생산을 하고 결국 못팔고 폐기처분한 경험도 있어서,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계기도 되었어요.

둘째로는 신뢰할 만한 제조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요. 기존엔 원료를 소분 했다면 이번에는 화장품 제조회사에 맡겼어요. 1/4 가격에 원료를 살수 있었지만 과감히 전문성을 갖고 신뢰할만한 파트너를 선택했어요.

Q. 신뢰할 만한 제조사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기준이 있나요?

기준은 결국 문서더라고요. 저렴한 제품을 파는 분들은 그런 거 없다고 하고요. 심지어 생산 일자도 안 적혀있었어요. 좋은회사는 문서가 존재해요. 이 상품이 어디에서 왔고 몇 월 며칠에 생산되었고 무슨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 회사는 생산 일자도 정확하고 제품도 깨끗해요. 발품을 뛰면서 좋은 거래처를 찾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직거래하는데 원룟값이 더 올라갔어요. 손님들은 단번에 알지 못할지라도 서서히 알아주실 거라 믿어요.

Q. 화장품 시장은 치열한 시장인데 마케팅은 어떻게 하세요?

광고비를 포함해서 제품가격을 책정해요. 이것도 몇 번의 뼈아픈 시행착오 끝에 생긴 노하우에요. 만 개를 팔았는데 돈이 안 남았어요. 뭐가 문제일까? 새는 돈이 정말 많았어요. 상품가의 35%가 용기비용이었으니 얼마나 몰랐겠어요.

사업자는 이윤이 남으면 재투자를 해야 해요. 광고비를 남겨놓지 않으면 재투자를 할 수 없어요. 정말 중요한 게 아무리 물건을 잘 만들어도 노출이 안되면 팔 수가 없어요. 모든 기준이 노출이에요. 사업자들에게 홍보,마케팅 비용을 얼마 쓰고 있냐라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저랑 같은 카테고리 제품으로 1등 한 업체가 3억을 판매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 정성으로 좋게 만들어낸 물건이 단지 노출이 안 돼서 못 팔았다는 것 속이 엄청 쓰렸어요. 제 제품은 팔 수가 없으니 경쟁사를 보면서 가격정책을 관찰하게 되었죠. 무조건 가격이 싸면 다 잘 파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3배의 가격으로 파는 거에요. 광고비를 2달 써서 노출을 해놓은 거에요. 광고비가 하루 백만 원은 나가요. 일등자리를 안 놓쳐요. 3억을 팔면 한 달에 광고비 3천만 원을 썼어도 마케팅비가 10%라고 해도 3억을 바라고 10%의 광고비를 쓴 거라면 성공한 거죠. 이런 시스템이 보이는 거에요. 경쟁자가 없으면 싸게 팔고 경쟁자가 생기면 노출광고비를 쓰고 제품비용을 올려요.

판매한 돈을 투자한다. 내가 정한 일정한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 당연한 진리를 예전에 몰랐어요. 한번 크게 좌절을 겪고서 알았어요. 그 노출 위치에만 가면 돈을 벌 수 있는걸 알아요. 그런데 한순간 판단 실수로 팔 수가 없었어요. 한이 되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블로그 체험단을 활용해요. 주마다 뽑아서 한 달에 10건 정도의 후기를 쌓고요 그렇게 일 년이 지나면 120건의 후기가 쌓이면서 역사가 생기겠죠.

그래서 지금 와신상담 하고 있습니다. 원료비가 3-4배 늘었도 제품의 질을 높이고요, 고객들도 아시는지 재구매율이 높아요. 2-3년 내에 이 기회가 또 찾아올 때 제가 놓칠까요? 잡겠죠.

Q. 아로마시스만의 특징은 또 어떤게 있을까요?

패키지에도 신경쓰고 있어요. 튼튼한 용기를 고르고, 밑면에 스티커 하나를 붙여도 홀로그램으로 제작해서 붙여요. 손님이 제품을 받았을 때 감동하면 좋겠어요. 일러스트레이터 고용해서 아로마시스의 일러스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기존 아로마 패키지는 상자형이에요. 그런데 별다른 설명이 없어요. 결국 손님들은 상자는 버리고 제품사용법을 문의 하게 되요.

제품패키지는 제품의 보호도 있지만 자세한 가이드라인이 포함되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품 사용설명서를 작품처럼 만들고 싶어요. 설명서가 작품처럼 예쁘면 보관하고 싶어질테고 그러면 좀더 아로마에 대해 알게되겠죠. 시즌별 프린트 작품을 모으고 싶은 욕망이 들도록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요.


제품사용설명이 구체적으로 명기된 패키지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다



Q. 꾸준히 아이템을 발굴하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저는 데이터 분석을 정말 열심히 해요. 그 데이터가 없으면 그 아이템으로는 시작하지 않아요. 호호바 오일을 선정하고 제품을 개발하게 된 것도 소비자 니즈를 분석해 보고 가능성이 있어서였어요. 일등 업체가 연간 3-4억의 매출을 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시장을 잡고 싶은 거에요. 아로마 오일은 최소 5억, 호호바는 최소 3억 시장이라는 걸 봤고 확신이 생겼어요. 그게 진실이기 때문에 광고비를 쓰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거에요.

반짝 유행하고 질 상품이 아니고 지속적인 아이템을 찾아요. 또 아로마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리얼데이터를 본 것도 컸어요. 그리고 제가 아팠기 때문에 제품의 퀄리티와 질을 민감하게 구분해 낼 수 있는 안목도 있고요.




Q. 사업을 하면서 꼭 지켰던 신조가 있다면 공유해주시겠어요?

진실성이요. 제가 제품에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사업이에요. 초기에 싱글들을 위한 건강식 사업을 할 때 야채즙도 판매해봤어요. 관련해서 상품 공부를 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갈아놓은 즙은 비타민이 다 파괴되고 과당만 남는다는 거에요. 그런 정보가 그 당시에는 미비했어요. 제품은 잘 팔리고 있었고 저는 그냥 팔면 되는데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거에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실성에 어긋나는 거였어요. 그 아이템을 끝까지 끌어갈 수 있는 확신이 없어서 중단했어요. 요즘 해독주스 사업이 많이 감소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실성은 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 같아요.

Q. 대표님에게 북부 창업보육센터에서 있었던 시간은 어떤 의미였나요?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된 소중한 기회를 준 곳이죠. 멘토링과 교육을 받게 해주시고, 또 멋진 대표님들과의 인연도 이어올 수 있었어요. 특히 사업은 데이터와 숫자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혜를 주신 정종실 소장님과의 인연도 북부에서 만들어진거네요. 정소장님은 제가 발굴하는 아이템에 대해 늘 '근거'를 대라고 했어요.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핵심을 알려주셨어요. 저는 그렇게 아로마라는 아이템의 가능성을 찾았고, 잘됐고, 한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고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전략과 힘이 있는 거에요. 시장 최초의 선두가 성공하기는 어려워요. 우리 같은 소규모 사업자들은 잘 팔리는 제품을 보완해서 바꾸는 거죠.

Q. 대표님에게 사업은 어떤 의미에요?

나의 전부에요. 정말 하고 싶었고 조금씩 되어가니깐 기뻐요. 성장은 더뎌서 답답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재미있어요. 제가 기획해서 팔면 또 팔리고요. 그 재미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Q. 사업 선배로서 어떤 보탬이 될만한 말을 해준다면요?

혼자 할 생각 하지 마라!! 백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아요. 그걸 잘 모르는 창업자들이 많아요. 특히 여성 창업자들이 그래요. 이 말도 막막할 순 있어요. 그래서 딱 하나 실행해볼 만한 걸 한다면 스터디 커뮤니티 활동을 추천해요. 그냥 친목 도모를 위한 모임보다는 스터디라는 목적과 목표를 갖고 교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업은 혼자 할 수 없다는걸 이치만 이해하면 사업을 끌어갈 수 있어요. 사업을 혼자 하면 망할수 밖에 없어요. 만약 아직도 제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지금까지 혼자였으면 아마 인터뷰 대신 택배 포장하고 있었을 거에요.

Q. 앞으로 계획과 포부를 공유하신다면요?

<아로마시스>의 브랜드 자사 몰을 만들려고 해요. 그리고 정부 지원금 제도를 활용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정부 지원사업은 가능성을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만큼 제힘으로 이끌어 왔으니 투자를 받으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저는 사업이 혼자서 이끌기는 어렵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투자도 받고 싶고, 함께 할 사람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어요.

사업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그 타이밍에 그걸 못 잡으면 다음으로 넘어가 버려요. 저의 다음 기회는 2019년에 몰려있어요. 꾸준히 나갈수 있는 가능성 있는 아이템을 개발해왔기 때문에 2019년이 기대됩니다.


아로마시스 온라인 쇼핑몰 바로가기 : https://smartstore.naver.com/aromasis


대화를 하는 동안 한은혜 대표에게서 신바람이 느껴졌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대한민국 아로마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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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인터뷰는 상대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리액션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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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바로가기



지난달,  [여행문화기획자]라는 직업이 궁금하다며 인터뷰 섭외가 들어왔다.
인터뷰이는 월간 기업나라 박은주 기자님.
작년 '고마실'을 창업했었을 때, 서비스가 너무 기발하고 재밌다며 회사 소개도 지면에 실어주었던 분이다. 
그때도 회사만큼 내 개인적인 브랜드명이 독특하다며 관심을 가져주었는데,
개인적으로 [여행문화기획자]가 궁금하다며 이색직업 기획기사를 쓰고 싶다며 6개월만에 연락을 주셨다.

늘 인터뷰를 하다가 인터뷰이로 처음 경험했다.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작아서 내 활동을 제한하는게 아닌가 고민할 즈음이었는데,
다행이 내 생각을 잘 정리하기도 했고, 생소한 이야기를 또 잘 정리해주셨다.

온라인 뉴스로도 나오긴 하는데 이번 명절과 겹쳐 업데이트는 이달 말에나 볼 수 있을것 같다고.











월간 기업나라 기사.pdf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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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만 재외동포의 허브 재외동포신문(회장 이형모)과 브랜드매니지먼트사 (주)엠유(대표 조연심) 공동주관으로 진행되는 글로벌 인재양성을 위한 300프로젝트. 100권의 책을 읽고 해당 분야의 지식을 축적하고, 100명의 인터뷰를 통해 인생의 지식을 쌓고, 100개의 칼럼을 통해 전문가적인 안목을 키운다. 1년 300명만이 참여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 현재까지 약 200여 명의 참여자가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2013년의 절반을 앞두고 칼럼부분 100편의 목표를 달성한 세번째 참가자가 나타났다. 엠유는 이 지면에서 그들의 목표달성 전략과 노하우를 인터뷰로 다루었다. 다음은 칼럼 100편을 완성한 광고쟁이 김도형씨와의 인터뷰이다.


 

 
▲ 100개의 광고칼럼을 완성한 김도형 대표

브랜드 네임 ‘광고쟁이’를 짓게 된 이유와 이 이름과 연관해 하시는 일을 알려주세요

‘광고쟁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누군가에게는 거리의 지저분한 전단지로, 인터넷을 사용할 때 귀찮게 하는 팝업으로, 슈퍼스타K 김성주 아나운서의 ‘60초 후에 시작합니다’ 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좀 더 공익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일도 하고,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광고쟁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합니다.
광고쟁이들은 한 브랜드의 광고를 맡게 되면 그 브랜드에 푹 빠집니다. 비록 클라이언트의 브랜드이지만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 그 브랜드를 하나부터 열까지 파헤칩니다.
이런 광고쟁이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소셜미디어 마케터도 그래야 한다 생각했고, 저는 클라이언트의 브랜드와 관련된 좋은 정보를 전하는 소셜미디어를 만들기 위하여 그 브랜드에 푹 빠지겠다는 각오로 ‘광고쟁이’라는 소셜마케팅 대행사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대표로 재직 중이며 소셜미디어 디렉터, 소셜마케팅 강연가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인 키노트 제작 대행도 소소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습니다.



 


 
 

소셜마케팅 전문가인 000가 아닌 대행사를 운영하는 회사로서 300프로젝트에 참여했네요. 퍼스널 브랜드를 목적으로 하는 참여자들하고는 조금 성격이 다른데, 이렇게 결정하게 된 이유를 말해주세요

저는 퍼스널 브랜드가 목적이 아니라 100권의 책, 100개의 칼럼, 100명의 인터뷰가 너무나도 끌렸습니다. 책 속의 지식, 사람과 만나면서 쌓는 지식, 개인적으로 사색하면서 쌓는 지식들이 어떤 자격증이나 학위보다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를 카페와 블로그에 공유하면서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콘텐츠 소스도 확보하고, 질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사를 받는 셈이니까요.


 

광고인 본인의 영역 칼럼 100을 달성하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대표 칼럼을 3개 소개해주세요 

첫 번째는 [광고쟁이의 꿈 찾는 법](링크) 이 칼럼이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분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 강연 소스로도 활용했습니다.

두 번째는 [취업의 마음가짐, 후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링크) 입니다. 이 칼럼은 제가 진심 어린 마음에서 후배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기에 기억이 남습니다.

세 번째는 [ADMAN Theory](링크) 라는 연재물입니다. 광고에 관해 여러 서적을 참고해 정리도 하고 제 생각도 붙여서 재가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신 있는 것은 전문적인 정보를 쉽게 해석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전달하는 것입니다. 제가 머리가 나빠요(웃음). 그래서 제가 이해한 내용을 쉽게 정리한 칼럼이라면 마케팅을 잘 모르는 소상공인이나 비전공자 또는 마케팅에 관심 있는 대학생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론과 실제는 분명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이론을 기본으로 실전이 합쳐질 때 강한 시너지를 창출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감히 이론을 정의해서 소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공신력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쉽게 정리해서 작성하고 있습니다.



페이지 이미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본인만의 형식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이들은 그래픽 도구를 다루지 못한다고 고민하기도 하는데 광고쟁이님처럼 깔끔하고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비결을 공유해주세요 

저는 포토샵을 배운 적도 없고 따로 자격증을 딴 적도 없어요. 우리는 블로거잖아요? 어린 시절 미니카 설명서 보고 조립하고 몇 번 부숴보기도 하고 했듯이, 이것 저것 건드려보고, 모르는 건 포토샵 관련 파워블로거 검색해서 찾아보고 따라 해보시면 어떨까요?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블로그나 인터넷만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공유시대에 모른다는 말은 찾아보거나 해보지 않았다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블로깅을 하던 분이었어요. 100개의 칼럼을 달성하고 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었인가요?

저 자신의 의견을 남들과 공유하면서 상대방의 의견도 듣고 다른 점을 고민해보고, 또 서로의 장점을 융합하는 능력이 많이 길러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의 정체성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래서 저 자신을 다졌으니 이제 책을 더 많이 읽으면서 배우고, 남들과 직접 대화(인터뷰)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자 합니다.


300프로젝트를 다른 이에게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하신다면 어떤 이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네 물론이죠. 일단 블로깅을 하시는 분이거나 광고 일을 하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작가를 꿈꾸는 제 여자친구입니다. 현재 출판업에서 책을 홍보하고 읽고 평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이 프로젝트가 큰 도움될거라 생각합니다. 딱 맞지 않나요? 칼럼, 인터뷰, 책리뷰.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할 일들이잖아요.

 

 
 

300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점은 무엇인가요?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글의 양이 줄었을 때입니다. 올 상반기 (6월까지) 100개의 칼럼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잡았었는데 사업과 겹치면서 글을 올리는 양이 많이 줄었죠. 그렇다고 칼럼이란게 ‘양산’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니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자는 생각에 짬 나는 시간마다 사색에 잠겼습니다. 광고도 많이 보고 내 의견을 담기도 하고요. 결국 목표를 달성해서 기쁩니다.


나에게 300프로젝트란 무엇이다. 라고 정의한다면요?

지금 당장은 300만원, 몇 십 년 후엔 300억짜리가 될지도 모를 프로젝트!

 

인터뷰어_박현진  sentipark@gmail.com



인터뷰 기사보기: http://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17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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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만 재외동포의 허브 재외동포신문(회장 이형모)과 브랜드매니지먼트사 (주)엠유(대표 조연심) 공동주관으로 진행되는 글로벌 인재양성을 위한 300프로젝트. 100권의 책을 읽고 해당 분야의 지식을 축적하고, 100명의 인터뷰를 통해 인생의 지식을 쌓고, 100개의 칼럼을 통해 전문가적인 안목을 키운다. 1년 300명만이 참여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 현재까지 약 200여 명의 참여자가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2013년의 절반을 앞두고 부분 100편의 목표치를 달성한 참가자가 나타났다. 엠유는 이 지면에서 그들의 목표달성 전략과 노하우를 인터뷰로 다루었다. 다음은 칼럼 100편을 완성한 달선생 박월선 씨와의 인터뷰이다.  

 


 
▲ 칼럼 100을 달성한 달선생 박월선

300프로젝트 중 칼럼 100개를 달성하셨습니다. 자기소개와 300프로젝트와 관련해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지긋지긋하게 다녔지만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학생들과 함께한 지 16년째이며 담임교사로서 학생들과 가까이 지내다가 최근에는 교과전담을 하게 되면서 교수법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300프로젝트에서 티칭칼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인가요?

300프로젝트의 칼럼, 책, 인터뷰를 모두 ‘교육’이라는 큰 주제로 잡았습니다. 제대로 이 분야에 한번 빠져보고 싶었어요. 사실 얼떨결에 초등학교 교사가 된 탓인지 교사로서의 정체성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저한테 강제성을 줄 수 있는 300프로젝트는 저 자신과 교직과의 탐색 기회이자 앞으로의 교직 생활을 위한 기저가 될 것 같았습니다. 특히 티칭 칼럼은 제가 그 동안 해 왔던 것들을 정리하고자 했었구요. 교사이고, 교육 분야이므로 칼럼 이름 앞에 ‘티칭’을 붙였었습니다. 그런데 300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선배님들을 만나고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되면서 아이들이 배우는 건 교사의 가르치는 내용이 아닌 교사 자신이라는 것, 가르친다는 의미가 ‘지식 전달’에 많이 치중해 왔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티칭칼럼’이라는 이름의 칼럼쓰기는 여기에서 마치구요. 앞으로는 주제를 중심으로 시작해 볼까 구상 중입니다.  

 


 
 

‘좋은 선생님 보다 행복한 선생이 되고 싶다 ’, ‘엄한 교사와 친절한 교사 중 누가 오래 살까?‘ 처럼 교사의 태도에 관한 칼럼이 있네요. 달선생님이 지향하는 교사상은 어떤 것이에요? 

누구에게나 인정받으며 좋아해 주는 선생이 되는 것보다 이제는 제 스타일의 교사상을 찾아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모두에게 완벽하고 좋은 선생님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런데 특히 초등학교교사들은 어렸을 때부터 모범생이었던 경우가 많으므로 나보다는 학생, 학부모, 학교의 기준에 맞추어 완벽한 교사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심지어는 사회의 관습이나 규율까지도 맞춤으로써 도덕적인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저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교사라는 직업을 절실히 원했던 것도 아니면서 좋은 교사에 집착하다 보니 교사로서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교사가 아이들에게도 절대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행복해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도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줄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교사로서의 당위와 의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지금은 아이들이 웃을 때 같이 웃으며 함께 배우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저 자신이 되고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대표 칼럼을 3개 소개해주세요.

5번째 글 – 나는 ‘좋은 선생님’보다는 ‘행복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링크)
좋은 교사, 훌륭한 교사가 되기를 드디어 포기하겠다는 선포와 같은 글입니다. 부담이 줄어든 것 같지만 관계 지향적인 성향이지 못해서 행복한 교사가 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웃음) 이 글을 쓰고 나서 블로그 프로필을 ‘수업의 전략적인 기술과 방법을 모아가는 곳입니다’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해가는 행복한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로 바꾸었습니다. 

8번째 글 – 깨진 유리창의 법칙으로 질서와 책임 가르치기 (링크)
저의 글들은 거의 댓글이 없는데요. 이 글은 올리자마자 반응이 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생활지도의 접근 시각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활용한 것은 저만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책을 참고로 해서 썼던 다른 글들보다 더 애착이 갑니다. 

61번째 글 – ‘평가’가 제대로 된 ‘평가’이려면 (링크)
이 글은 못 써서 기억에 남는 글입니다. 매일매일 글을 쓰다 보니 어떤 때는 2시간이 넘어도 글이 써지지 않는 때가 더러 생겼습니다. 이 글 쓸 때가 딱 그때였습니다. 자료는 모았는데 가닥이 잡히지 않고 어디에서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교육평가개론서의 요약설명글이 돼버렸습니다. 자정이 되기 전에 올려야 했으므로 그대로 올리기는 했지만,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없던 두통까지 생긴 날이었지요. 무엇보다 아침 두 시간, 저녁 4시간을 투자하고도 글 하나를 제대로 못 쓴 나 자신이 너무 짜증이 났었나 봅니다. 제 칼럼 글에는 없지만, 비밀 글로 그날 기분을 풀어쓴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은 10분 만에 후다닥 써 버렸어요. (웃음) 덕분에 자신이 겪은 일이 쓰기 쉽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칼럼을 100일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과 극복한 방법을 공유해주신다면요?

칼럼 쓰는 데 딱 100일이 걸린 건 네이버 블로그의 100일 미션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몇 달간은 자유롭게 해봐야지 하고 저 자신에게 자유를 주었는데 잘 안되었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책 읽기는 그런대로 진행되는데 글쓰기를 하지 않은 제게 칼럼은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절대 못 쓸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강제적인 100일 미션을 활용했습니다. 

3월에 미션을 시작했는데 교사로서 3월은 엄청나게 바쁜 달이거든요. 이렇게 글을 쓴 적도 없었고 습관도 안 되었고 첫 달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일단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아침에 일찍 출근했습니다. 적게는 1시간 많게는 2시간까지 시간을 확보했고요. 출근하자마자 글쓰기 위한 준비 및 자료를 찾았습니다. 다른 건 안 했어요. 그리고 퇴근하고 2시간 정도를 더 투자해 찾은 자료들을 정리해 글로 만들었습니다. 

21일이면 습관이 구축된다는데 전 30일이 지나니 글쓰기가 약간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써나가면 될지 조금씩 방법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엔 어떤 분야의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몰라 제목 정하기부터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쓰고 싶은 내용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300프로젝트 게시판에 비공개 게시판을 한 개씩 더 만들어서 연습장과 자료수집 게시판으로 활용했습니다. 블로그에 글 쓸 주제가 생각나면 제목이라도 써 놓고, 자료가 보이면 그 즉시 스크랩해 놓고 대강 생각나는 대로 써 놓기도 하고 시리즈일 경우에는 내용을 분할해 정리해 놓기도 했고요. 이렇게 소재와 꺼리를 축적해 놓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거기에서 하나씩 골라 정선해서 글을 하나씩 올렸습니다. 

너무 잘 쓰려 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된 점 중 하나입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대신 퇴고의 과정을 거치면 어느 정도 글의 틀은 갖추어졌습니다. 지방에 가거나 꼭 참석해야 하는 가족행사, 도저히 쓸 상황이 안 될 때는 블로그의 예약기능을 활용해서 미리 써 발송해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 했고요. 

저의 성향이 한 가지 분야를 파고드는 걸 선호한다는 걸 칼럼 쓰는 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인터뷰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지만 그렇게 해보니 찔끔찔끔 손만 대다가 진도를 못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처럼 성향에 따라 3가지를 함께 하는 것보다 1가지를 꾸준히 하면 좀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가족에게 사전에 동의를 구하거나 지원을 받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전 남편이 교사가 아닌 회사원이지만 저의 블로그 이웃입니다. 제가 쓴 글을 읽어주고 코멘트도 해 주기도 하고요. 집안일보다도 하루 칼럼 쓰기를 늘 먼저 완료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줍니다. 올해 남편의 목표가 ‘달 선생의 300프로젝트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기’였는데 목표를 잘 실천하고 있는 기특한 남편입니다.  

100개의 칼럼을 달성하고 난 후 느낀 점, 달성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큰 변화는 신체적인 변화입니다. 블로그 미션하는 동안 소화가 안되어 고생했는데 미션이 끝나고 내시경 검사를 하니 의사선생님이 약을 한 달 먹으라고 하시네요. 블로그 미션을 활용한 건 좋았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저를 매우 힘들게 한 것 같습니다. 블로그 미션 부작용입니다. (웃음)

사실 칼럼은 순서 없이 뒤죽박죽 쓴 것 같아 아쉬움이 많습니다. 시간적 압박으로 어쩔 수 없던 부분이라고 스스로 위로합니다만 다음에는 소분야를 정해서 어느 정도 목차를 정한 후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만 100일 동안 이렇게 꾸준히 한 가지를 파고들며 노력한 점, 글쓰기를 이렇게 열심히 한 것은 처음인지라 뿌듯합니다. 그리고 300개 중에 100개를 끝내서 일단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나에게 300프로젝트란 OO다라고 정의한다면요? 또 이 프로젝트를 추천한다면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은가요? 

나에게 300프로젝트란 ‘여행’입니다. 새로운 곳을 걷고 보고 느끼며 다니는 여행처럼 새로운 책을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롭게 느낀 점을 기록합니다. 저는 교사로서 15년이 지난 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신규교사들에게는 300프로젝트를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적응하기도 무척 어려운 시기입니다. 대신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여유가 생기는 시점인 5년 차부터는 그동안의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여행한다면 주체적인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도 필사해서 읽고 교사인터뷰를 다니고 있네요. 앞으로 300프로젝트완성을 위한 계획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인터뷰 도전 건수가 많이 부족합니다. 저에게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고 제일 어렵습니다. 조금씩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100권의 책에 도전합니다.  

인터뷰어_박현진(sentipark@gmail.com)



인터뷰 기사보기: http://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4195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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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포럼 306회] "인터뷰 잘 만드는 사람" 김명수 저자 만남 생방송 토크
2013.06.26 PM7:30
@압구정 안국빌딩 6층 
 




인터뷰라는 행위가 좀 매력있다.
일년 전 퍼득 누군가를 인터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멋도 모르고 실행했다.
그때 나는 인터뷰라는 신비한 장르에 빠져들었던것 같다.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수 있다는 집중력.
누군가가 나를 향해 나만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
그래서 천명의 보통사람을 인터뷰한 저자의 토크쇼를 발견했을 때, 꼭 가봐야겠다 싶었다.





1000
명을 인터뷰 하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 두어시간의 깊은 시간을 갖는다.
평생에 단 한번만을 만날수도 있지만 그 밀도는 어마어마하다. 
작가는 
인터뷰어는 천직이라고 생각. 그러나 돈이 안됐다고 한다. 그래서  직업이 개였다.
막노동, 운전 (심지어 대형차 운전면허도 있다.) 내 이름 김삼순 등의 드라마에 엑스트라도 불사. 

경비원이 너무 하고 싶엇다.
인생이 추락했을때 아무것도 없을 할수 있는 일이다.
그 일이 해보고 싶었기에 경비가 되는것을 목표로 계획을 짠다.

가장 비싼 동네 압구정, 평당 4,500 되는 가장 비싼 한양아파트의 경비원을 목표로 면접 봤다. 
덩치도 있고, 경력도 있어야 하는 경비일에 체력적으로는 무척이나 불리한 저자였는데
웬걸 
경비원 스펙으로 가장 딸리는데 합격했버렸다.

건장한 체력, 몸으로 하는 일을 저자는 머리로 해보겠다고 결심.
소통하는 경비로서 주민들의 마음을 잡았다.
이듬해에는 무려 50명이나되는 경비를 제치고 단 한명만 선정하는 올해의 모범 경비로 뽑히기까지 한다.




질문이 중요하다. 
나는 가장 질문을 안하는 인터뷰어다
이미 자료는  조사하고 왔고, 그냥 차만 마셔도 완벽한 인터뷰기사를 쓸 수 있다. 
그저 얼
한번 보고 확인하고 가려고합니다
하나도 안할거에요. 그 말 한마디가 무장해제를 시킨다. 
나는 벙어리라도 앉아 있어도 기사 만들어내니까. 차만 마셔도, 강아지랑도 인터뷰 되요.
처음엔 인터뷰 당할까 긴장하나 나중엔 긴장이 풀리더라
 
 
 

인터뷰 잘 만드는 사람
국내도서
저자 : 김명수
출판 : 중앙생활사 2012.04.26
상세보기

 

자기소개가 필수인 시대 어떻게 나를 알릴 수 있을까.
짧은 자기의 카피를 만들어봐라
작가는 스스로를 '밝은 세상을 꿈꾸는 인터뷰전문기자' 라고 소개한다. 
그러기에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책을 쓰고....
이렇게 점차적으로 그 핵심내용에 설명을 덧대어간다.
 

인터뷰는 내면을 보는 대화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면서 겸손을 배운다.
잘났을 때 자만하지 말고 못났다고 위축되지 말자
녹음기
 쓰지 않고 메모를 한다. 녹음기는 사람냄새가 안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옮긴다. 24시간 안에 원고가 나온다.
게다가 문장을 기록하지 않기에 인터뷰할때 '단어' 가장 집중한다.
그렇게 해서 빠른 시간안에 잠깐의 짬도 모조리 이용해서 주변의 내용을 적는다. 
글의 재료료 소소로운것을 적는다. 느낌, 분위기. 그때의 상황을 전부.
A4 2 정도의 인터뷰 기사를 쓰는데, 20장의 분량이 나온다. 이 과정 자체가 엄청난 노동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용을 뺀다. 두 장이 남을때까지


오늘 작가가 인터뷰를 대하는 태도를 정리하자면
사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예의다.  
그러기에 좋아하는 인터뷰를 하기위해 생계를 책임지는 하나의 직업을 더불어 갖고,
녹음기 없이 메모로만 인터뷰를 하고 20장의 페이지를 쓸 수 있다.  


아, 듣고나니 더 자신이 없어진다.
그만큼 정성과 에너지를 쏟을 자신도 없거니와,
한 사람을 다루는 글을 아무렇게나 내보일 수 없다는 책임도 따르니까. 
저자는 인터뷰 직후 24시간 안에  기사를 쓴다는데, 
나는 몇달 째 공개하지 못한 인터뷰만 3건이 넘는다.
이번주에는 기필코 그들의 이야기를 밖으로 공개하리라.....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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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블로그에 티칭칼럼을 연재하는 걸 잘 보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잘 틀리는 오답 노트 자료를 만들어 알려주기도 하는 등 수업에 공이 많이 들지 않나?

원어민 영어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준비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문장의 마침표를 잘 빼먹는다고 한다.
영어는 마침표가 없으면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기에
세심하고 꼼꼼하게 가르치려고 한다.
한국 아이들도 빨리 배우고 잘하는데 많은 아이가 문장부호를  빠뜨린다.
빠르게 결과를 내는데 익숙하나 꼼꼼한 완성도가 부족한 게 한국 교육인 것 같다.

내가 워낙 성격이 꼼꼼하다 보니 애들이 잘 틀리는 내용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해서 보여준다.
아이들 자극하고 틀리더라도 시도하게끔 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작은 것에
 트집을 잡는 게 옳은지 생각하기도 한다.



교육환경이 스마트하게 바뀌었다. 교육하는데 편한가?
교육 환경은 정말 좋다.

예전엔 음악 시간에 오르간을 교사가 연주해야했다.
지금은 스마트 교실이다. 컴퓨터로 다 된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얻을 지식은 인터넷으로 찾으면 다 된다.
미래의 교육은 컴퓨터로 하게 될 것 같고,
교육은 아이를 돌보는 것이 강화될 것이다.
교육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교사를 중심으로 교사를 바라보게 했다면
요즘은 교사가 학생을 보는 것으로 중심이 바뀌었다. 





300프로젝트를 시작하고 티칭칼럼 100개에 도전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pws342)



교육쪽 범위가 넓다고 하는데 어느쪽으로 촛점을 맞추고 있나? 
초등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 보다는 인성교육까지 맡아 하고 있다.
청소, 급식, 도덕성… 교과 외의 활동시간까지.
부모보다 아이를 더 많이 보는 게 담임 교사다 .
아이들의 기본적인 사회성을 다 가르친다.

교과지도와 학급경영을 담임이 다 한다.
그러다 보니 준비가 많이 필요한 과목에 한해 교과전담이 생겼다.
담임 10년하고 우연히 교과전담을 맡고 깨달았다.
나는 담임보다는 한 과목을 완벽히 준비하는 교과전담에 맞는다는 것을.
하나로 파고드는 완벽주의적 성격이라 모든 교과를 다 준비할 수가 없었다.
두 마리 토끼는 못 잡고 그걸 못하면 병이난다.
그런 나에게 담임이란 건 
 끝도 없는 블랙홀같았다.
초등선생은 관계지향적이더라.
논리와 체계 잘 가르치는 나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으로는 잘 맞지 않는 보직이었다.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나?
뭐든 묵묵히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공부하느라 고등학교 친구도 없었다. 수능 1세대로 학력고사와 격차도 생겼다.
돌이켜보니 못 논게 아까웠다.
재수는 형편이 안 되고.
 진로를 선택해야 했는데 교대 아니면 사대나 법대를 선택해야 했다.
어떤 직업은 가져야겠고, 초등학교 교사를 보니
방학이 있더라.


그래서 대학 가서 놀아봐야지 했는데,  대학은 내내 상대평가제였다.
이 평가로 교직으로 진출할 때 점수가 반영돼서 또 못 놀고 공부했다.
게다가 교과에 있는 건 다 할 줄 알아야 했다. 심지어 농구도 배워야 했고.
피아노 치면서 졸아봤나? 적성에 안 맞으면 그렇게 된다. (웃음)

교사가 돼서는 또 이 일에 전력했다.
스스로 5년간 체벌 없이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 능력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5년 지나고 스스로 반지를 선사했다.
그렇게 27살이 되었다.  그러고 나니 못 놀아본게 너무 억울했다.
못 놀아본 게 한이 되어 방학마다 여행을 다녔다.
겁 많고 소심한데 혼자 여행했다. 34일 유럽여행으로 자신감을 얻었고,
일상에서도 교사 아닌 다른 이들을 만나 색다른 체험을 채워갔다. 




되고 싶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 일에 상당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티칭 칼럼도 쓰고 있는데 애착 있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불안이라고 표현한다.
딱히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걸 그만둘 생각이 있느냐. 라는 물음엔 그렇다는 답은 안 나온다.
교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아직 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다.
맘을 편히 가져야지, 남들은 들들 볶지 않아도 잘 사는데 나는 왜 볶나 이러면서 자책도 많이 한다.

어떤 삶이든 정답은 없다.
스스로 '너는 왜 사니' 라고 질문을 했는데 그에 대한 답이 딱 하고 나오지 않더라.
그럼 난
죽지 못해 사는 건가? 싶었다.
무언가를
즐기지 못한다는게 느껴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천성이 열심인 사람이다.
어느 직장에서라도 본보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교사로서 롤모델이 되려는 것 같다.
큰딸로서의 본보기가 되는 것을 크게 생각해서 장녀의 책임을 지려고 했고,
중고등학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려 했고,
지금은 교사로서 열심히 한다.
인정에 대한 욕구가 크다. 교사로서도 가르치는 것 보다 업무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인정받으려 노력하는데 몸이 힘들다. (웃음)

300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하는 이유도 그 일환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실패에 대한 불안. 본보기에 대한 집착. 현재에 안주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들. 
그냥 내 성향으로 풀어가자.
잘하는 건 반복의 탁월해지자. 300프로젝트로  단련시키고 해보자한다.

나에게
교직은 소재다.
현진씨(인터뷰어)도 여행문화기획자로서 여행은 소재고 그 핵심 배경은 기획하는 것 아닌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계획하고 실행하는 걸 잘하고.
담임보다는 교담이 잘 맞고, 그 일을 칼럼으로 정리한다.
해야 할 과정이 보이고 결과도 명확해서 내 성격에 맞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300프로젝트를 달성해보자. 이것도 내 성향대로 올인하고 있다.
티칭칼럼을 100회 쓸 거다.
이것 때문에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한다.
아침, 점심시간을 쪼개서 칼럼을 쓴다.

교사로서의 미해결 물음은 훌륭한 교사를 인터뷰해서 그들에게 얻는다.

요즘의 화두는 어떻게 축제처럼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이다.
일과 생활과 취미의 일치화.
다른 무언가가 필요 없는 단계의 사람들의 성과는 높다는 걸 알았다. 주위에 끼치는 영향력도 크더라.

일로 규정하지 않아도 즐기는 어떤 방법들을 생각하는 중이다.
결혼해서 좋은 점은 남편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잡아주는 거다.






그녀를 박현진의 쇼쇼쇼에 세울 소개말이 떠올랐다.

곧 있으면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여러분은 스승의 날 찾아뵙고 싶은 스승이 계신가요?
저는 오늘 초등 교사로 근무하는 박월선님을 쇼쇼쇼의 게스트로 초대했습니다.
이분을 만나서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어 소개를 하려 합니다.
처음 교사가 되어 체벌 없이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 능력을 만들자.
라고 결심하고 5년이 지나 스스로 반지를 선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선생님이라면 성인이 되어 찾아올 제자들이 많을거란 확신이 듭니다.

일과 생활과 취미의 일치화를 꿈꾸는 교사 16년차 베테랑 선생님.
박월선님의 쇼쇼쇼를 열겠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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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8
오후 7:30~9:30
@강북청년창업센터

온라인 포트폴리오로 아웃품 내기위한 300 프로젝트.
인터뷰100개, 칼럼100개, 리뷰100개.
참여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인터뷰 특강이 진행됐다.



전문 인터뷰어가 아닌채로 여러가지 시도를 통해 인터뷰어로 성장하는 과정을 들려준 조연심 대표
현대는 다 열심히 산다. 유니크한 삶이 주목받는 시대다.
여성리더십도 선덕여왕 리더십 이런게 아니었다. 3M 리더십으로 정리했다.

멀티젠더 Multigender(Multiple+Gender)
맥너지 Maknergy(Make+Synergy)
미다스팩트 Midaspect(Mida+Respect)

전문가는 전문가와 일하려 한다.
핵심에 집중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일에 관해서는 예측가능한 사람이 되라.
그리고 스토리를 만들어라. (지금 고생도 스토리 한 꼭지가 된다.) 
사회적 네트워크 확장하고, 한일을 끊임없이 기록하라.

위의 실천 과제의 일환으로 인터뷰에도 도전했던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1. 재능을 기부하며 훈련을 쌓아라
- 포리라운드 전문가 네트워크에서 외부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
- 항공타임테이블의 여행사 사장들을 정기 인터뷰를 했다.
- 무대를 내가 만들었다.

2. 일관된 질문을 하라
- 기준을 잡는 인터뷰를 하라.

3. 협업하라
- 디자이너 제작자와 협업해서 인터뷰기록을 이북으로 만들었다.
- 사진가, 디자이너, 영상..등의 다양한 재주를 협엄해서 1인터뷰 2결과물을 내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록될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는것이다.




pqr공식
People - 섭외
매일, 블로그 방명록, 페이스북 메시지를 활용한다.
자신의 소개를 정중하게 한다.
섭외 목적을 밝힌다.
날짜와 시가을 요청한다.
인터뷰 예상 질문을 미리 보낸다.


Question -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인터넷에 있는 뻔한 질문은 삼간다.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말을 묻는다
일관된 질문을 만든다
너무 가볍지 않게, 너무 무겁지 않게

Record - 기록
메모의 기술
녹음기 활용
인터뷰 후 즉시 기록
블로그에 포스팅 전 메일로 확인요청(피드백 하는 과정에서 친해진다)
사진자료 요청
중요한 것은 기록하고 놓치지 않는다.





이근미 (월간조서 객원기자, 저자)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안만나본 사람이 없다는 이근미 저자다.
기자출신의 정통 인터뷰어로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어제 이근미 저자님을 만나 궁금한점을 먼저 말씀드렸고 대부분 나와 같은 궁금점들이 있었을거다.

- 대체 인터뷰어는 얼마나 유식해야하는가
- 인터뷰의 에티켓은 어떤것인가
- 글을 얼마나 잘써야 하나
- 다양한 인터뷰이가 있을텐데 기가 쎈사람은 어떻게 맞추나

이 궁금함을 토대로 저자 강연을 풀어갔다. 

에티켓
노트북 대신 손에 들어가는 작은 노트를 들고간다. 녹음은 하지만 마음이 불안하니 핵심 내용은 적는다.
인터뷰이의 눈을 항상 주시한다.
리액션이 중요하다.
가급적 무채색 옷을 입는다.
한번 더 여기를 남겨 한번 더 만나라.

인터뷰어의 자격
대한민국 현대사를 알아야한다.
선입견을 버려라.
모든것을 지켜보고 마지막에 판단하라.

나만의 색깔을 갖자
평생 글을 쓰고 살고 싶으면 기자가 되는것도 좋다.
- 인터넷 매체 등 찾아보면 많다.
- 종이 매체가 좋다. 데스킹이 있기에 글쓰는 법을 자동적으로 알게된다.
- 계속해서 블로그에 쓰고 어필한다.

김재동이 신문사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인터뷰를 하되 직접 질문지 만들고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만나라고. 
그러자 새로운 인터뷰가 나왔다. 우선 기자들과 질문이 달랐고 독특하고 자유로운 사고가 돋보였다.
그게 바로 책으로도 엮인 김재동이 만나러 갑니다 였다.

글이 너무 다듬어지면 재미가 없다.
훈련은 기자처럼, 자기만의 개성도 반영.


인터뷰어로서 나에게 질문을 해보자
처음 만난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 할수 있는가?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무기가 있는가?
기 눌리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가? (기사를 쓴다는 목표가 명확해야함) - 분위기를 만들어가자.
밀리려고 할때 부드럽게 화제를 전환할 수 있는가?




섭외의 달인 - 매체의 홍수 속에서 셀프 구명보트를 마련하라.
- 동급 최강을 찾아라.
- 열결고리르 찾아라
- 정성스런 설문지로 마음을 녹여라
- 오뚝이 정신으로 일어나라






늘 그렇듯 단체컷으로 마무리.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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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왜 하는걸까.

누군가와 일상적인 대화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인터뷰라는 툴을 사용하면 좀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인터뷰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상대를 열심히 관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맞는 질문을 고심해서 만들고, 또 질문 받는 사람은 곰곰히 생각해본다.
서로 관찰하고 생각하고 더 깊이 알게되는 쌍방향 윈윈 소통 전략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 내가 갖고자 하는 브랜드인 '여행문화기획자'라는 것이 명확하다면
만나야 하는 사람도 명확해진다.
그들을 내 블로그 공간에 소개를 하는 것이다.

브랜딩은 내 삶과 무관하지 않다. 내 삶을 기획하는 것이다.
내가 여행문화기획자로 살기로 작정햇다면 그에 관련된 일을 계획한다.
어떤 내용으로 어떤글을 쓸지. 계획을.

인터뷰도 그러하듯 일도 그렇게 대해라.
조연심 대표의 일을 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돈이 되거나 vs 브랜드에 도움이 되거나.
닥치는대로 일을 하지 말것!!!

산티아고 고객경험 인터뷰인 '용기를 주는 레시피' 코너와
40라운드를 통해 쇼쇼쇼 PD를 하면서 인터뷰 경험이 좀 쌓였다.

조연심대표가 말하는 인터뷰의 기술이란,
1. 내가 궁금한것
2. 인터뷰이가 말하고 싶은것.
이 둘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전조사가 분명해야하고 질문지 질문이 명확하기에 시간이 짧아도 성과가 있다.

나의 소소한 노하우를 떠올린다면그가 하는 일을 관찰하고 변화 시점마다 물어봤다.
그리고 물론 내가 궁금한것도 많이 물어봤고. 그 배경을 많이 질문햇던것 같다. 
그 사이사이 본인이 흘리듯 말 한 내용에서도 자랑할만한 포인트를 찾아냈다.
  
 아, 이번주도 인터뷰 3인을 해야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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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정은
    2012.08.29 13: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빠이팅! 무언가 해야할 일이 있다는건 성장하고 있다는 것?!^^

브랜드 네트워크 40라운드에서는 한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한다.
친목도모도 하며 알뜰한 프로그램도 살려 서로의 브랜드를 공고히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 중 나는 '박현진의 쇼쇼쇼'라는 코너를 맡았다. 
게스트를 섭외해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일과 브랜드에 관한 내용을 들어보고 '미리인터뷰'란 제목으로 포스팅한다.
정기모임시는 내 나름대로 정리한 특징을 소개하고 게스트가 준비해온 15분짜리 짧은 모노드라마를 감상한다.
내 역할은 일종의 모노드라마 쇼의 PD개념이라고 볼수있다.
 
 


지난 6월 독서교육 김창화 대표와의 인터뷰를 다음뷰의 '교육'카테고리로 보냈고, 20개의 추천을 받았다.
수백개씩 추천을 받는 파워블로그와는 달리 내 포스트의 추천 20개는 꽤 높은 수다.
지난 6월 인터뷰 보기 http://sentipark.com/497



 


들어가서 이유를 살펴보니, 트위터 상의 뉴스, 독서관련 트위터러가 트윗을 해두었다. 
박현진의 쇼쇼쇼, 작은 성과를 보고한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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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반항 청소녀였다.
인생을 바꾼 3가지 사건을 이야기하는 첫 스타트는 그녀의 학창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엄청 안했어요. 선생님이 시키면 무조건 반대로 하고 샘하고 싸우는 그런애였죠. 숙제 안해서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고등하교 때 지각해서 손바닥 한 번 맞은 것이 학창시절 최대의 수치로 기억하는 나는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안맞기 위해서라도 대충 해가면 안댔나? 맞으면 아프니까."
"몰라요 그냥 싫었어요. 선생님이 먼가를 하지마, 하면 저는 왜냐고 물었거든요. 근데 무조건 하지말래요. 그럼 하는거에요. 저는."
오, 그녀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좀 더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그러다 그녀도 고교에 진학해야 했다. 공부를 안 한 그녀 실업계를 가느냐의 기로. 과감히 우겨서 인문계로 진학했다. 
고교로 진학해 첫날 반장선거를 하는데 성적순대로 예닐곱명이 후보로 선출됐고, 
가나다 순으로 지정되는 출석부 상 'ㄱ'이 제일 먼저 나온바 1번으로 서기를 맡게 되었다. 교실 앞으로 나온 반장 후보들과 정은양. 
"얜 아냐." 
담임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이 아이는 반장 후보 즉 순위 안에 든 성적 좋은 모범생이 아니라는것을 지적했고,
이 말 한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1학년 담임 선생은 매우 솔직한 자로 이른바 마방진 전략을 적절히 펼칠줄 아는 고도의 심리술사였다.
30여명의 정원에서 9명의 순위를 뽑아 한가운데 앉혀놓고 특별한 관심과 예쁨을 주는 거였다.
좀 유치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 마방진에 그녀도 걸려들었다.



얜 아냐 사건 이후 공부를 조금 하고 첫 중간고사에 저 핑크빛 자리에 앉고 부터는 공부를 잘하면 좋은거구나 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공부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느라 저런 좋은 점은 느낄수조차 없었다니 굉장한 극적변화라 할수 있겠다.

그때부터 참으로 재밌는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독거노인을 위한 밑반찬 만들기, 질서 지키기 캠페인 등등 다양한 봉사활동과 선도부 활동까지. 
무척 바쁘고 즐겁게 살았단다. 내신으로 수시까지 입학했다니 진정 모범생다운 학창시절이다.

그러다 대학 1학년  캘리포니아 오리곤 대학에서 대학 문화 교류 3주 과정을 마치고 나머지 2주동안 캘리포니아 곳곳을 여행했다.
세계가 넓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 다음해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떠났다.
향수병, 공부, 방황을 다 거쳐 돈벌고 여행가고 하기를 일년. 주키니 , 바질, 사과. 딸기. 포도농장 등 안가본 농장 없다는 그녀. 
막판에는 농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친구들과 친해서 매일 저녁 맛있는 밥먹고 지내느라 돌아올때는 오히려 10kg 찔 정도였다. 
혼자서 내 선택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을 깨닫고 어렴풋하게 홀로서기의 맛을 본다.
지금도 후배들을 만나면 대학에서 스펙만 쌓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며 휴학하며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 후 대학 특강으로 지금의 멘토 조연심 대표를 만났다.
공대생으로 컴퓨터와 씨름만 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소프트한 멘토강좌는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자기 이름으로 산다는 것에 큰 자극을 받고 취업만이 능사는 아니란것을 다시금 절감.
열심히 조대표를 쫒아다니다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그 후의 그녀의 생활은 우리가 지켜보는 대로 온라인브랜딩디렉터 강정은으로서의 삶이다.

누구나 한번씩 일생의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작은 말 한마디일 수 있고 정말 크나큰 충격일 수도 있다.  
어느날 듣게 된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변화.
17살 이후로 양껏 욕심부려가며 알차게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가 즐거웠다. 
오늘의 그녀를 있게한 키워드 3가지는 무엇일까?
이정도 힌트라면 다들 예감했을거라 믿는다. 그럼 5월 16일 오후 7시에 모여서 들어보기로 하자.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PS. 앞으로 남은 박현진의 쇼쇼쇼를 통해 허심탄회한 과거를 꺼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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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W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다음 인터뷰는 어르신을 소개하겠다 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 나는 그들과 함께 북한산 둘레길에 서 있었다. 걷다 만난 인연 이왕이면 걸으면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800km걸은 길 위의 동지. 나는 그 길의 키워드로 함께 한 인터뷰어. 이미 사진으로 한 번 만났기에 익숙했다. 첫 만남에 명함을 드리는 나와 달리 어르신은 직접 만드신 엽서를 건내신다. 직접 찍은 사진에 어울릴만한 텍스트를 담아주셨다. 인터뷰라는 거창한 형식은 다 떼고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 



기업에서 전략기획실 임원으로 은퇴 하시고 현재는 기업 컨설팅과 플래닝 강연을 하고 계시다.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하시며 내가 생각할때의 은퇴후 2의 인생을 멋지게 사는 분이다. 걸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산도 한번씩 보고 막걸리와 손수 챙겨주신 초콜릿 바, 그리고 W는 달콤한 사과를 챙겨왔다. 새삼 인생을 바꾸는 여행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나는 이렇게 둘레길도 가보고 좋은 이야기도 듣는다. 이 작업을 하기 참 잘한것 같다. 

손두부를 만드는 집을 안내하신다. 얽기설기 거칠을 표면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한 두부가 나왔다. 고소하면서 깊은 맛이 그만이다. 얼큰한 국물에 후루륵 잘 넘어가는 순두부찌도 일품이었다. 본격 인터뷰는 두부로 만든 저녁을 먹고 차 한잔을 하며 진행했다. 우리 둘은 어느새 인생상담을 하고 있었다. 직장이야기, 인생의 비전 이야기, 꿈 이야기, 가족간의 이야기.... 인터뷰 이전에 상담이 되어선 곤란하다. ㅎㅎ 다시 인터뷰로 돌아갔다 오기를 여러번... 이렇게 지났다.




▲ 어르신은 다음길을 살피시고 방향을 알려주시고 잠시 뒤돌아 우리들을 기다렸다. 이 사진도 그러는 중에 촬영한 사진일것이다.
산티아고에서 끝내 버림(?)받지 않고 일행과 같이 완주했다는 W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적이 있었나? 
거대한 덩치의 어떤 남자였는데 너무나 힘겹게 길을 걷는 거에요. 아 저사람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글쎄 독일에서 2000키로를 걸어 와서 800키로를 더 걷는다는 거예요. 독일인이었는데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위해 치유의 길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회복을 기원 한다는거에요. 그때 나는 뭉클한거에요. 나는 평생 내 형제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생각해보니 없는거에요. 나 혼자 살기 바빴지. 
또 한번은 유모차를 끌고 순례하는 엄마. 그 높은 피레네까지 끌고 온거야. 5살 정도의 아기가 타고 있는데 한번도 그 아이가 걷는걸 못봤어요. 그저 내가 관찰한 것일 뿐이지만 아이를 위한 모성 아닐까 싶어요.
세번째는 나란히 지팡이 한 개를 앞 뒤로 지고 걷는 사람들이었죠. 뒤에 오는 사람이 시약자더라고요. 둘이 친구 사이더라고요. 장애인 친구를 위해 시력이 정상인 친구가 같이 순례를 해주는거였어요. 내 친구를 위해 어려움을 동행한 적이 있었나.. 내가 한일이 뭐가 있을까. 솔직히 없더라고요...



나는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중이에요.  
어느날 부턴가는 인생의 산을 내려오는 일을 지나 정리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걸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 정리를 하고 싶었어. 걷다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난 도통 즐거웠던 일들이 안 떠오르는 거야. 반추되는건 모두 안좋았던 기억, 원한 사무치는 기억, 슬펐던 사건.... 모조리 이런것만 기억이 되는거였어요. 얼마나 처절했는지. 살면서 좋은 기억 없었겠어요? 난 좋았던 건 그냥 흘려보내고 회한만 남겨놓은거야. 그걸 깨닫고 회환의 눈물을 꽤 흘렸어요.

 



행복이란게 뭘까요?

너무나 아픈 기억만 나왔어요. 나는 이북 사람이에요. 홀홀 단신으로 목숨만 살아서 온 사람들이에요.
낙동강을 못넘고, 인민군에게 잡히면 바로 죽임을 당하자나요. 그래서 죽느니 싸우겠다고 군으로 가셨어요. 가족들 유품을 찾는다고 왔다가 만난거에요. 그래서 거제 포로수용소 옆에 단칸방을 마련해서 살림을 만든거에요. 그때부터 어릴적 기억이 나요. 
국민학교 6학년때까지 밥을 못먹었어요. 쌀을 소화할 기능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물었어요. 이남으로 넘어오니 뭐가 좋습니까? 따뜻해서 좋더라, 두번째는요? 내가 숨을 마음대로 쉴수 있어 좋다. 5호 감시제 이런걸 듣고 살아온 거에요. 그런기억들이 많이 남았었죠.
이게 환상인지 직접 본건지 모르겠어요. 계속 따라다니는 기억이 있어요. 포로수용소에서는 삽으로 밥을 퍼줘요. 나는 수용소 밖에서 안을 들여다 봤는데 포로랑 나랑 눈이 마주쳤어요. 내가 6살때인가.... 그런데 포로가 씩 웃는거야. 당시에는 눈이 마주친게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성장하면서 그 장면이 가끔 떠올라요. 그 때의 그 포로의 눈빛은 행복함 아니었던가. 밥 한그릇에. 그 눈이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이 났어요. 행복이 무엇인가. 



훗날 아이가 이 추억을 떠올렸으면...

산티아고 걷는게 큰 감동은 못 느꼈어요. 올레에서 많은 생각을 했었지. 나는 아이에게 뭔가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제대하고 유학을 떠날 건데 3개월 정도 남은 기간에 멀할까 보니 산티아고 생각이 나는거에요. 나는 플래닝으로 강의도 하고 컨설팅도 하는 전문가인데 계획은 아들이 다 짜라고 한거예요. 나는 관조만 했지 그게 참 어려운 일이예요. 참견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안해야 하니까. 난 책도 지도도 의도적으로 안 챙겼어요. 내가 알면 아들에게 이건 아니야, 저건 아니야 라고 참견할 것 같아서. 나는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런데 내가 모르고 온게 너무 행복했어요. 답답함을 누르고 아이에게 다 맡겼어요. 내가 사업전략을 평생 하던 사람인데, 모든 걸 아들에게 맡겼어요. 나는 훈수조차 두지 않으려고 아예 알 생각을 안했죠. 나중에 내가 없겟지만 그때가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면 좋겠다.. 싶어요.
내 나이에 우리 부모가 무엇을 생각했을까. 내 아들이 26살인데 내가 아들을 보면 저거 세상을 잘 헤쳐나 나갈까 싶잖아요? 근데 내가 그무렵때를 떠올려보면 또 달라요. 그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으니까. 내가 대한민국 육군 장굔데, 내가 상장 기업 임원인데.... 그런데 우리는 또 그렇게 생각 안하자나요. 내가 26살일때 우리아버지가 나를 봤을때를 생각했었죠. 지금 내 맘과 같았겠죠. 가끔 그런생각을 해보면 부모가 어땠겠다. 하는 생각이 들거에요.


둘레길 첫시작을 기념하며 사진. 이런식으로 인터뷰를 하게 될줄 몰랐다. 둘레길 체험도 하며 인생이야기도 듣는 나는야 행운의 인터뷰어


오리.지.날 정신의 패러글라이더 - 오리도 지랄하면 날 수 있다. 
나이 55세가 되니깐 안방 노인네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패러글라이딩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아내가 너무 반대를 했는데 어느날 TV를 보는데 여든의 할머니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는거야. 그거 보여주면서 너무 하고 싶어했더니 그렇게 하고 싶은거냐고 허락을 해주더라고요. 휘어진 새끼손가락을 보인다. 이게 자연 앞에서 교만해서 생긴 상처에요. 바람을 타면서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바람보다 욕심을 냈죠. 순간 기류에 휩쓸려서 끌려갔어요. 여기에 지금도 쇠가 박혀있어요.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제비가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 그 원리가 다 보여요. 제비가 강남간다고 하자나요? 그 강남이 동남아예요. 비행기 항로 아세요? 비행기가 홍콩 갈때 어떻게 가요. 홍콩노선은요 여기서 강화, 서해안 따라 여수에서 대마도로 해서 홍콩으로 들어가요. 해안선을 따라갑니다. 우리 항로들이 전부다 해안선을 따라 섬과 섬을 이어요. 
그 쪼그만 새한테 인간이 다 배워요. 군대의 배열 있죠? 그 원리도 새들에게서 나온거에요. 맨 앞에 있는 놈이 우두머리고요 그 앞에 있는 애를 항도라고 불러요. 길잡이 역할 하는. 대형 옆에 떨어져서 한마리씩, 맨 뒤에 떨어져 한마리. 이게 척후병으로 적이 침범하면 알려주는 놈들. 세계의 모든 군대가 이런 원리입니다. 제일 가에 있는 놈이 튼튼하고 안으로 갈수록 노약자, 어린아이들이에요. 가운데는 부력이 생겨서 조금만 움직여도 날 수 있어요.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검색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234769


ⓒ 문경시 제공





반나절 산행과 식사 찻잔 토크를 하면서 얻은 인상. 삶을 참 멋지게 사는 건강한 어른이다. 
사람이 마음이 급해서 움직이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으면 가만이 있어보세요.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입겁니다.
난은 물만 줘야 꽃이 핍니다. 영양제 주고 그럼 꽃이 안펴요. 그러니 지금 조금 힘든 일은 꽃을 피우는 과정이라는 위안의 말씀도 주신다. 인생 레슨을 받은 셈이다. 오리지날 정신을 알려주셔서 필자를 배꼽빠지게 하셨고, 백두대간은 진작에 주파하셨고, 올 여름엔 스킨스쿠버에 도전하러 필리핀으로 떠나신다는 무척 멋진 계획을 갖고 계시다. 분명 바다속 세상을 만날때도 겸허한 마음으로 물속의 생물들과 조우할 테다. 이번엔 어떤 세상 이야기를 꺼내놓으실까.
여름이 지나 그의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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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라는 행위에 관심이 많아진다. 나와 대화를 나눈 누군가의 시각이 활자화 되어 매체에 오른다.
회사에선 매달 베스트 직원을 뽑아 포상하고 인터뷰를 싣는데 늘 인터뷰 질문을 만들다가 
내가 대상자가 되고 보니 자문자답 인터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인터뷰이를 관찰하고 글로 표현한다는것이 결국 인터뷰의 본질이 아닌가.

돌아보니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문화여행을 만들겠다는 비젼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인가.





Q. 축하합니다. 짝짝짝 2006년 베스트 직원에 이어 2관왕이 되었는데 소감한마디 말해주세요 !!
2관왕이라니, 부끄럽습니다. 이달의 미션이 운이 좋게도 제가 한 활동과 잘 맞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은근 기분 좋네요. 요새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한 배낭에 글질하기를 두번째 취미로 삼을까 고심 중이었거든요.



Q. 배낭을 커뮤니티에 처음 도입할 때 참여했던 멤버이기도 한데 그때의 취지도 궁금하네요.
배낭이 도입되기 전에는 게시판으로도 교류는 활발했었어요. 하지만 개인의 공간이 아쉬운 생각이 들었어요.
배낭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2년 전엔  웹 2.0의 열풍이 대단히 떠들썩했었어요.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말이죠. 바로 여행박사가 추구하는 정책이잖아요.
고객간의 정보를 주고 받는 고객 간의 질답 게시판이라든가 칭찬&건의&불만게시판같이
컴플레인 글이 올라와도 절대 고객의 글은 임의로 삭제하지 않고 100% 오픈하여 개선해 나가는 것. 등...
여기에 개인의 공간을 제공하여 쉽게 참여할 수 있고 교류까지 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기에는 
블로그 만한게 없다고 생각해요.

배낭이 도입되고 나서는 새로운 툴이 적응이 안 되었던지 '도루 게시판으로 만들라'라는 요구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명실상부 여박 커뮤니티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툴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배낭 뿐만 아니라 지역정보와도 긴밀한 연결이 되어 있네요.
하하하... 본의 아니게 제가 하는 일의 설명을 하게 되네요.
지금은 지역정보를 하나씩 갖춰가는 단계이지만 여행사에서 이렇게 독립된 지역정보를 갖추고
운영해나가기는 쉽지 않다고 봐요.  여행박사에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고 리뷰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하지만 상품개발을 위한 답사 후의 흔적들을 남긴 직원현장체험기나 여행지 리뷰들을 보면 전문 리뷰어 못지않은
여행 플래너로 서의 사명을 갖고 만든 알짜배기 정보들이 많아요. 이것들이 배낭 안에만 묻히는 건 아깝잖아요.  
그래서 지역정보와 스팟 정보들에도 배낭과 긴밀한 연관이 되도록 하고 있죠. 물론 상품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요.
좋은 정보들은 담당자들이 알아서 본인 상품일정에 노출하고 있어요.

지역정보가 그 지역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를 정리해둔 인트로의 개념이라면
지도 스팟과 그에 따른 지역정보를 모아둔 배낭은 여행지에 가서 필요한 세세한 정보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Q. 지금 하는 일과 연관해서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면요?
앞으로 저는 정보만을 주는 콘텐츠에서 문화를 체험하고 문화를 갖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문화도 소비하는 시대인데 지금 우리의 미디어들은 관광지와, 쇼핑, 먹을거리 등 특정 스팟에 한해서만
열렬한 러브콜을 하고 있는 듯해요.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을 발굴하여 체험하는 여행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보면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본 교토의 기온지역에서는 게이샤의 화장과 의상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문화상품을 만들어 홍보하고 있어요.  막부시대 게이샤와 조선의 기생은
비슷한 문화적 유래를 갖고 있으면서도 일본이 이토록 보존하고 있는 반면 한국사회에서 기생의
존재는 희미하거든요. 그 나라에 갔으면 그 나라의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기회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문화코드의 자연스러운 이해와 체험을 통한 공감대형성으로 색다를 콘텐츠를 만드는데 도전하고 싶습니다.

이대로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문화를 파는 컬티스트 센티팍이 되어 있겠죠.








Q. 배낭이 여행박사의 잔치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던데?
그 말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배낭은 블로그이긴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통공간] 으로서 
여행박사 안에서 더욱 분명한 색깔을 갖게 되니까요.
보편적인 블로그 로서 검색엔진에서 검색결과를 우선순위로 노출되는 목적으로 한다면
설치형 블로그를 선택했거나, 애초에 포털에 자리를 잡는 게 맞죠.

잔치라고 는 하지만 아직까지 상다리 휘어지게는 차려 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박 색깔에 맞게 각종 양념으로 버무린 음식들을 내어 놓는다면 다들 숟가락 하나씩 들고 쫒아오지 않을까요?



Q. 나의 배낭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즉흥적으로 만들어 먹게 되는 제멋대로 만들어내는 쿠킹 이야기를 풀어놓은 '거친섭셍주의자' 폴더요.
어느 날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이룬다 라는 생각이 든 후 내가 먹을 것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시작된 포스트들 입니다.
물론 좌충우돌 비전문가의 솜씨인지라 요리라고 말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음식을 만들면서 발견하게 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뒤끝 스토리"라는 일정한 형식으로 남겨두었지요.
그러나 아직 실패한 요리는 없다고 자신하는 (결국은 다 먹었다는 이야기) No Recipe 메뉴입니다.



Q. 배낭관련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Eposode  01.  초콜렛 프로포즈 받기

고객 배낭인 중 한분이신 xamory분….어느날 제 배낭에 놀러오셔서는
'센티팍을 
남자로 알았다'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대체 왜요? 라고 했더니 .쎈 글발 때문에 남자인줄 알았다고...
어느날 TIT사업부에 손수 만드신 베이킹, 초콜릿을 한아름 보내주셨어요. ^^
포스트 보기
http://baenang.tourbaksa.com/liveinfo/79362/


Eposode  02. 
여박이 인형 받기

언젠가 여박이 콘테스트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각종 소재로 세상에서 하나만 있는 여박이를 만들었는데 그중 골판지 여박이가 눈에 띄는거에요.
갖고싶다는 욕망을 댓글에 드러냈더니 며칠 후에 진짜 여박이 인형을 보내주셨어요. 
포스트 보기
http://baenang.tourbaksa.com/liveinfo/50502/


Eposode  03.  대학생들과의 인터뷰

경기대 관광경영과 친구들이 기업탐방 일환으로 찾아왔었어요.
그 친구들 당 학기 레포트 주제가 IT와 여행업을 접목한 기업을 찾아 사례분석하는 거였는데
배낭 담당자도 만나고 싶다고 하여 만났지요.  열심 초롱하던 눈빛이 기억이 나네요.
그 친구들 지금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을텐데,  이 포스트 보시면 덧글 한 줄 달아주세요~







Q. 배낭이 어떻게 기능을 했으면 좋겠나요?
여행이라는 주제 하나로 시작된 커뮤니티 입니다. 지금은 매니아를 넘어서
공간을 마련해 드리는 일 이외엔 별다른 보답을 해드리지 못 드리는데  
여행지의 역사적 배경과 지식이 녹아 든 여행 칼럼을 꾸준히 써주는 분도 계시고,
항상 관심을 가져주고 소통을 해주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것이 여행박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여행, 취미, 사는 이야기...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 되어주면 좋겠어요.


http://baenang.tourbaksa.com/liveinfo/8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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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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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솔
    2014.07.03 22:3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많이 해본 분이시네요.
    부럽습니다.




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저... 이걸 가져왔어요.’
인터뷰 장소로 온 W가 인사를 마치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요즘 유행하는 사진 앨범이다. 웹사이트에서 사용자가 사진을 업로드해서 편집을 하면 그대로 책으로 제작되어 나오는 시스템. 신혼여행 앨범, 아이들 백일 사진 등 응용을 많이 하지만 가장 흔히 하는 것이 여행기록을 담은 내용이다.
‘9명의 사람들과 시작과 끝을 같이했어요. 그 친구들이 만들어서 선물로 줬어요. 너무 소중한 인연이에요.’
오늘 만난 W. (실명과 사진을 원치 않았으므로 W로 기재한다.)

‘올해는 나 스스로 나에게 준 안식년이예요. 10년 열심히 일했으니까.’
고객들 중 하필 그녀에게 인터뷰를 청한 건 바로 ‘안식년’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과 나잇대. 그리고 오래 일을 했기에 안식년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년 전 처음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그녀의 인상은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한번은 쉼표를 찍으려는 자의 홀가분함과 해외로 나가기를 즐겨하지 않은 자의 혼란스러움이 교차했다. 그녀는 해외를 나가기를 싫어했던 사람이 한 달여의 여행을 그것도 짐을 지고 떠나야 하는 여행을 선택했기에 좀 더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는 여기 더한 사람도 갔다 왔다고 다 해결 된다며 (다들 무모하다고 말렸다던) 그녀의 결정에 용기를 보탰다.

지난 번 인터뷰 이후로 질문을 별달리 준비하지 않기로했다. 첫 인사를 나누면 대화는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이미 수다 떨 주제는 마련되었고 두 번째 만난 사이라고 하기엔 참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는 이것이 정말 신기하다. 이번에는 그냥 ‘수다’를 떨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사진첩의 동지들로 이야기가 흘렀다. 세계여행을 계획한 30대의 미혼 여성 친구 둘, 60대의 은퇴한 어르신과 20대의 아들, 철저한 기획파 남성, 그리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성, 누구의 아내 엄마의 이름을 떠나 개인의 삶으로 걸어온 여인, 20대 초반의 혈기로 준비 없이 떠나온 배려 깊은 청년 그리고 청년만큼이나 무모하게 즉흥적으로 떠난 W. 





산티아고 길에서 도움을 엄청 받았어요.
처음부터 민폐였어요. 걸어본 적도 없고 체력도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8명의 보폭을 맞추기는 무리였죠. 그래 떨어져 나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근데 이 사람들이 너무 착한 거예요. 어떻게든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또 너무 미안한 거예요. 어떻게 나를 마음 아프지 않게 버릴 수 있게 할까. 밤새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침대에서 안 일어났어요. 난 도저히 갈수 없는 상태라는걸 보여줬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못 떠나는 거예요. 걱정 되서. 결정적으로 제가 지도가 없었거든요. 짐을 줄인다는 생각에 버려서는 안 될 지도도 버려 버린 거예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제가 어리숙했겠어요.

그래서 다음날 혼자 떠나신 거예요?

자꾸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내고 걷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택시도 없는 거예요. 겨우 걸어서, 제가 한 번에 알베르게를 찾아간 적이 없어요. 엉뚱한데 갔다가 아 아닌가봐 이러고 나와요.(웃음) 가까스로 알베르게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일행을 만난 거예요. 다들 비가 와서 많이 못 걷기도 했고 나를 두고 가는 게 마음도 무겁고 걸어지지도 않더래요. 그때부터 이건 운명이다. 각자에 페이스에 맞게 걷되 낙오 없이 끝까지 같이 가자가 된 거죠.

그룹이 참 재미났을 것 같아요. 연령대도 그렇고.

등을 보여주는 어르신이 있었어요. 제가 하도 못 걸으니깐 어르신이 한참 걷고 나면 제가 저 멀리 점으로 보인대요. 그러면 또 안가고 기다리세요. 내 등이 보여야 따라올 수 있다고. 그렇게 맞춰 주셨어요.
20대, 30대, 40대, 50대를 다 사셨잖아요. 이미 그 나이대의 생각들을 아시고 또 아닌 길로 갈수 있는데 그걸 다 지켜보시고 맞춰주세요. 그 나이 대는 그렇게 하게 되어있는 거라면서. 길은 어떻게든 목적지에는 가게 되었어요. 무얼 보고 가느냐. 이게 중요한 거라는 걸 알려주신 분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그냥 목표만 보고 간대요. 젊은 사람은 빨리 걷는 게 뿌듯한 거죠. 그러나 중년은 내려갈 준비도 해야 한 대요. 그러니깐 여유를 가지고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밤이 떨어진 걸 보고 포도도 따먹고 그렇게 느끼면서 걸으라고 하셨죠. 그러니깐 늦게 가는 게 억울할 게 하나 없는 거에요. 저는 제일 느렸기 때문에 유일하게 노을을 보는 사람이었을걸요.
800km를 걸으려던 게 아니었어요. 근데 걸었지. 어르신 덕분에 참 많은걸 깨달았어요. 나는 떠나는 것만 준비했지 어떻게 걸을까를 마음을 어떻게 먹을까 까지는 생각을 못했어요. 많은 조언과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분이죠. 



나는 부족한 걸 다 보여줘요.
저는 가장 좋을 때 항상 나와요. 결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고 해요. 성급하지 않게. 공돌이였고, 형부가 내 멘토였어요. 과학도도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에 폐기물 연구소 쪽으로 갔어요. 그런데 연구소는 안생기고... 일단 전문 기자로 활동을 했죠. 공학도긴 하니깐 기자들이 싫어하는 각종 세미나는 제가 좋아서 가고... 기사도 선배들이 좀 주고... 그랬죠. 거기서도 엄청 도움을 받았어요. 바라던 연구소는 안 생기고 더 다닐 수는 있었지만 원하던 길이 아니니 나왔어요. 

박수칠 때 떠나는 스타일이네요.

이직을 했었고, 사장이 첫 지시를 내렸는데 조달청 가서 멀 해오라는 거예요. 일단 조달청에 가서 수위아저씨를 찾다가 안내하시는 아저씬가 하고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갔어요. 
‘저기요, 첫 출근인데요, 처음 사장님이 시킨 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했더니 그 아저씨가 저 안쪽에 가서 멀 챙겨주더라고요. 그걸 회사에 냈더니 사장이 좀 제대로 해 왔구나 하더라고요. 그 뒤로 무슨 일 있거나 궁금한 일 생기면 전화를 해서 정보 받아오고 그랬어요. 다들 내가 그분과 통화해서 얻은 정보로 보고서 쓰고 그러면 놀라는 거예요. 근데 알고 보니 그분이 사무관인가 엄청 높은 직급의 사람이었어요.
난 그냥 수위 아저씬 줄 알았는데... 높은 사람이래. 너는 서열 모르니? 전 모르는데요. 진짜 그렇게 높은 거예요? (웃음) 저는 그렇게 한 거예요. 저는 늘 그런 거예요. 나중에 그분은 신문에도 나오고 엄청 높아졌더라고요.
첫 월급을 타고 그분을 찾아갔어요. 맛있는 거 대접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너가 무슨 돈이 있냐면서 칼국수 사달라는 거예요. 결국 칼국수를 사드렸어요.
프로젝트성 작업이 많았어요. 저는 거짓말은 못하니깐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너무 어리숙 하니까 업계 사람들이 다 도와줘요. 입찰을 들어가면 그냥 솔직하게 다 말해요. 그냥 계약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신기한 거였죠. 일은 재밌는데 너무 과한 거예요. 과로로 입원할 정도로.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으니까 떠나야겠다. 했죠.


이런 이야기까지 내가 왜 하는 거죠?

7년을 따라다닌 남자애랑 결혼을 해야겠다 했는데, 그 친구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개인적인 일이나 다음 이야기를 위해 사랑했던 이야기를 사정만 적는다.
사랑한번 진하게 못한 나는 이 이야기가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그런 감정이 부럽기도 해서 혹은 상실감에.) 



무슨 페로몬을 뿌린 거예요. 이런이 야기까지 하게 하고. 이상해 오늘..
머핀 드시고 저는 커피를 가져올게요.
잠시 휴식을 가져요 ^^

(이어서)
사랑의 상처도 있고 해서 도피처로 대학원을 갔어요. 남들이 안 쓰는 주제의 논문을 써서 상도 받고 유학도 쉽게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외국이잖아요. 나는 외국이 정말 싫거든요. 그래서 유학을 포기했어요.
그러다가 학원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말에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학비도 벌었는데 싶어서 학원으로 간 거예요. 거기서도 원장님을 잘 만났어요. 자기 수업의 반을 내어주고 저는 또 트레이닝을 한 거죠. 수학강사를 했어요.
(센티 여기서 잠시 움찔한다. 인수분해에서 포기한 사람으로서 W샘이 갑자기 다른 세상 사람으로 보인다.)

어쨌든 나의 이런 선택에 다른 사람들이 엄청 머라 했어요. 대학원까지 나와서 논문으로 표창도 받은 사람이 유학도 마다하고 학원 강사를 한다고. 나는 그냥 어쩌다가 대학원으로 간 거고 상을 받고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거거든요. 나한텐 그게 아쉽지도 않고 소용이 없는 거예요. 해석은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하죠.
(맞다. 내가 안 행복하면 남들이 보는 훌륭한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행복한 것이 먼저다.)

원래 교수가 꿈이었고요, 완벽한 사람만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꿈을 입 밖에 내지 않았죠. 사교육에 몸을 담았지만 저는 그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좋은 거예요. 게다가 학원에서도 엄청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특목고 반도 몇 년을 맡았고, 정말 신나게 달렸죠. 사십 전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어쩌다 보니 작은 학원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수학이라는 하드한 과목을 푸른 정원이 내다보이는 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또 다들 반대했는데 열심히 일을 만들어 학원을 운영했어요.
나는 리더로서 총대를 매는게 자신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내 강점이 못하는건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랬어요. 그래서 했죠. 그렇게
학원도 한 3년 하니깐 정상으로 올랐을 즈음 돌아보니 딱 십년이 되었더라고요. 쉬고 싶었고 그렇게 정리해서 나왔어요. 아름다울 때 떠나왔죠. 


나는 사람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란 걸 알았죠.

내가 행복한 것이 뭘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돌아보니 나는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년을 잡았어요. 내 몸은 항상 바빴어요. 늘 바빴고 시간이 없었고, 친구들 돌잔치가 있거나 몸은 못가니 부주를 했어요. 산티아고를 다녀오고 나서 남은 안식년 동안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했어요. 고마운 게 내 친구들은 나에게 와줬어요. 이제는 그들의 삶의 장소에서 한번 가서 봐야겠다. 해서 정말 찾아갔어요.

저라는 사람의 내가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를 한참 생각했어요. 나는 사람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에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나를 봐주었듯이 나도 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줘야겠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다른 꿈이 있어요. 공교육과 사교육. 스토리가 있는 학원을 만들겠다는 마음에 움직였죠. 
스펙. 중요하지 않아 스토리를 만들어. 니가 이걸 왜 하는지 왜 하고 싶은지 왜 말을 못해.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의사가 기술자.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스토리를 주고 싶어요. 그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요. 내가 행복해지는 건 고생을 해도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즐거운 이 사람이 이뤄내면 나도 돕는 거구나, 삶은 도움을 주고받는 거구나. 관점이 바뀌는 계기가 되는 거죠. 


그러니깐 내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내 나이쯤 되면 있는 사람을 관리하지 새 관계에 투자 하지 않아요. 그래도 내가 나온 이유는,  현진씨가 말한 것 때문이에요. 내가 도움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자는 말에 마음을 움직였어요.
예전에 지리산에 충동적으로 갔어요. 친구랑 갔는데 그 친구가 발목을 다쳐서 저 혼자 정상에 올라가게 된 거죠. 그런데 초짜가 초반에 막 올라가서 내려올 힘도 없는 거예요. 돈이고 짐이고 모두 친구한테 있고. 해는 져가고...
그러다 은인을 만났어요. 힘도 하나도 없이 주저앉아있는데 그분이 먹을 걸 줬어요. 저 양갱 정말 싫어하거든요. 근데 그걸 벗겨먹을 힘도 없어서 그분이 벗겨서 입에 넣어줬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먹었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양갱이 없는 거예요. (웃음) 거의 업혀서 내려왔는데 그분이 끝내 사례를 거절했고 고마운 맘이 든다면 다른 분께 같이 베풀어 주세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게 그 도움이 저는 또 산티아고에서 느낀 거예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생각해요. 

두 번째 이유가 있어요. 이년이 다 되가는 시점에 왜 박현진씨가 나한테 연락을 했을까. 생각을 해 봤죠.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쯤에서 나도 내 삶을 정리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는거죠.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가면 좀 더 담백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나도 말하면서 나를 정리하는 거니까...

최근에 일을 새로 시작했어요. 내가 어려울 때 나에게 와준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나도 돕기로 했죠.
이 사람들이 그리는 꿈이 좋아요. 나도 내가
내가 잘 될 때 박수 쳐준 사람들이 아니고, 내가 힘들 때 와서 도와준 사람들. 그 사람들하고 같이 가고 싶어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과 일을 하면 고생이 아니라 행복인거고요.
이 사람이 이뤄내면 나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돕는거구나...
이 친구가 나에게 '스토리가 있는 학원을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했고, 다른 화려한 제안들을 굳이 물리치고 이쪽에 합류했어요.
대치동은 정말 개인주의예요. 여기는 정말 돕고 돕는 구조예요. 함께 라는 마인드가 너무 좋아요. 이 사람들이 그리는 꿈이 좋아요.  개인적인 인생사까지 살펴보면서 함께 가는. 혼자 사는 건 힘들어요. 내가 이렇게 지나온 것도 도와줬기 때문이에요. 

산티아고 다녀온 전과 후 달라진게 뭐냐고 물었죠? 달라진건 없어요. 다만 사람이 인생을 사는데 있어 과거의 경험을 베이스로 미래를 사는 거거든요. 이제 돌아보니까 산티아고의 경험으로 내 다음 스템도 비춰지는 거예요.
산티아고에서도 아무것도 없이 갔다가 사람들을 만났고 좋았잖아요. 그 경험들을 미루어 앞으로 있을 일들을 헤쳐나가것도 좋겠다. 좋을 것이다. 라는거고, 선택 이후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거죠.
그게 내 행복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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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세 시간 넘는 인터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노트북 앞에 앉기가 쉽지 않았다. 대화 내용이 사라지기 전에 옮겨 적어야 하는데 왜 미루는 걸까. 세 시간의 이야기가 나는 너무 소중했고 이야기 듣는 게 재미있었는데도. 
아마도 내가 받은 이야기가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그 긴 시간을 일일이 되불러 적을 수도 없고, 어떤 부분을 발췌할 수도 없고, 흐름이 잘 전달되도록 만들어내야 하는데, 초보 인터뷰이로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십 여년의 인생 이야기를 아무 조건 없이 해주신 것도 고마웠다.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가 망설여진다. 

모든 사람들이 도와준다던, 운이 좋았다던, 자신이 가진 것 보다 더 높은 가치평가를 받아왔다던 그녀가 결코 운으로 살아온 게 아니었음 안다.
부족한 부분을 보이고, 도움을 요청하기를, 고마움에 크게 감사할 줄 아는 모습이 인간적이다.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아 준 그녀가 좋아졌다.

그럼 현진씨의 키워드는 뭐예요? 질문을 받던 그녀가 끝내는 나에게 질문을 해준 것도 고맙다. 
내가 정말 뭘 원하는가 하는 것. 지금 어쩔 수 없이 외롭다는 것. 글을 잘 써보고 싶은 것. 이 말을 차근차근 되집어 주었다.또 한
나의 외로움을 깊이 공감해주었던 것도. 내가 대여한 공간에 감탄을 해주었던 것도 감사하고 몇 달 만에 얻은 주말의 휴식 한 가운데 시간을 내어준 것도 감사하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던 고집스러움에, 
너의 꿈을 이루자고 같이 가자고 한다면 나의 꿈은 물어봐 주어야 한다는 상식에, 
현실의 가치가 '돈'이 으뜸이 되고 다른 가치들이 묻혀버리는 것에 안타까워 하는 마음에 동감한다.
이 년 전 잠시 맺은 인연을 되불러내어 나의 엉뚱한 인터뷰 요청에 답해준 이 인연이 욕심난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의 '인디언의 복음'이란 책에 실린 '늙은 인디언 양파 장수'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를 정리할까 한다. 



멕시코 시티의 큰 시장 한 그늘진 구석에 포타 -- 라모라는 나이든 인디언이 있었다.
그는 그 앞에 20줄의 양파를 매달아 놓고 있었다. 시카고에서 온 어떤 미국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요?"
"10센트입니다."
"2줄은 얼마요?"
"20센트입니다."
"3줄에는 얼마요?"
"30센트."
"그래도 깎아 주지 않는군요." 그 미국인이 말했다.
"25센트에 주실래요?"
"아뇨."
"20줄 전부는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20줄 전부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안 판다고요? 당신은 여기에 양파를 팔기 위해 있는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붉은 서라피(멕시코나 중남미에서 어깨걸이나 무릎덮개 등에 쓰는 색깔이 화려한 모포)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페드로와 루이스가 와서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인사하고 담배를 태우며 아이들과 곡물에 관해 얘기하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내 삶입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종일 여기 앉아서 20줄의 양파를 팝니다.
그러나 내가 내 모든 양파를 한 손님에게 다 팔아 버린다면, 내 하루는 끝이 납니다.
그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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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안영식. 그를 처음 본때는 2010년도 가을이었다.

산티아고 가겠다고 센티를 찾아 씩씩하게 들어와 몇 가지 확인을 하고는 예약을 마치고 돌아갔다. 한 달을 넘게 낯선 이국땅에서 잠자리를 지고 걷겠다는 사람치고는 질문이 무척 심플했다. 회사를 사직하게 되었고 갑자기 내켜서 떠나기로 했단다. 이유도 참 심플하다.
(이하 센티팍은 ‘센티’로 안영식은 ‘영식’으로 쓴다.)



▲  산티아고 완주자의 자랑 필수품인  증명서를 가져오라는 센티의 말에 기꺼이 가져와 자랑질 중인 인터뷰이.
센티는 생장-부르고스 구간만 경험했기에 완주증이 부럽다. 부러워. 



센티: 어떻게 지내셨어요?

영식: 산티아고 이후로 이탈리아에서 친구가 있어서 한 육 개월 머물렀고요, 제주도도 가서 올레길도 걸어보고...

다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거라는 일상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이런 답이 나온다. 이 남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슬쩍 궁금해진다.


센티: 그럼 그 후로 계속 여행을 하셨단 거에요?

영식: 네, 좀 더 그렇게 여행해보려고요.


센티: 혹시 여행을 계속하시려는 목적이 있나요?


영식: 제 이름으로 된 기행문을 쓰고 싶어요.


(기행문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하자. 음... 솔직히 부럽다. 센티를 이것을 생산적 무위도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노는 게 아냐 생산하는 거야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

센티: 참 그러고 보니 여행박사의 오랜 고객 이시랬죠?

영식: 네, 일본을 비롯해서 베트남, 터키, 그리스 등등 좀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포인트’가 생각만큼 안 쌓였더라고요.

(앞으로 이분 포인트 팍팍 드려야겠다.
일단 기분 좋아진 센티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한다. )

센티: 질문이 제일 없었던 고객이었어요.

영식: 여행은 내 여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산티아고도 기행문 한권 보고만 갔어요. 블로그나 맛집 이런 거도 안 찾아보고.  다른 사람이 짠 일정과 느낌을 그대로 따라 갈 것 같아서 저는 책도 지도 보려고 사는 편이에요.


센티: 제일 고생했던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영식: 첫날 피레네 산맥 넘을 때 거의 죽을 고생을 했고요, 제가 나름 군대를 산에서 보냈는데 피레네는 정말 죽음이더군요... 하필이면 비가 엄청 오는데 온몸이 생쥐가 되어서.

그리고 두 번째는 눈이 너무 온 날.. 산에 올라갔는데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또 얼른 내려왔던 기억이 있고...


▲ 보기엔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눈물나는 고생길인 눈보라길이었다고 한다. ⓒ 안영식





 2010년 11월 말 출발해서 완주했다. 잠깐 늦가을을 맛보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간 거다. 이렇게 눈이 쌓였다가 금새 녹아버린다고 한다. 참 신기허네.  ⓒ 안영식


영식: 기억나는 건 쌀을 싸서 처음 밥을 했는데 이렇게 잘 하는 줄도 몰랐죠. 찰진 밥은 물론, 누룽지, 숭늉까지 만들어 먹었어요.
참 엽서는 좋은 아이템이었어요. 모두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죠.

(나름 표현의 욕구를 나눈 센티의 작품이다. 아주 잘했다고 뿌듯해 한다. 엽서보기 )


센티: 인상 깊은 사람들은요?


영식: 음 오키나와에 살았던 일본인 애가 있는데, 샤미센을 들고 와서 연주도 하고 다녔고요, 꿈이 일본에서 스페인 바를 여는 거
래요. 그 친구 따라 바도 여러 군데 다녔어요. 바 인테리어도 꼼꼼히 보고 사진 찍고... 그랬던 친구..

또 18살짜리 캐나다 화가인데 대학 안가고 바로 전 세계 여행을 다니는 친구예요. 얼마전에 한국에 와서 제가 올레길을 안내하기도 했죠. 이런 저런 사람들 만나면서 삶의 여러 방식을 배웠죠.

(인터뷰 초반에 본인 이름으로 기행문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슬슬 다녀온 여행기록을 블로그에 남기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블로그를 보여 주었다. 블로그를 따라 여정을 한번 더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

영식: 블로그를 만들고 그동안 여행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하드가 다 지워졌어요. 복구도 안되게. 일단 작업 진행이 멈춰졌죠. 젤 아까운 게 터키인데...거긴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어요.


센티: 터키는 자유 여행하기 힘들지 않나요? 문화재도 많아서 가이드 설명이 있으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영식: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란 책을 읽고 갔어요. 현재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어떻게 함락했고, 문화재들을 어떻게 이슬람화 시켰고, 지명이나 문화 유적들이... 보이거든요. 굳이 가이드라는 게 필요 없어요.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저 나름대로 재구성 할 수 있고.


센티: 참 훌륭한 여행 방식 같아요.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음 훌륭한 여행 방식 같다. 센티처럼 취재 목적이 있어 가는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일정이 있다 해도 사전 조사 없이 소설 한권 읽고 가는 것도 여행 로망 중에 하나겠다.)



센티: 같은 사람인줄 몰랐어요. 머랄까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덥수룩한데 표정은 너무 해맑고
평온한 모습이네요.

영식:  맞아요. 이때는 정말 등 따숩고 먹을거리만 해결되면 부족한 게 없는 거예요. 이때 표정이 딱 그런 거죠. 

센티: 뭔가 의미를 만드는 말 같아서 이런 말은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영식: 네, 있어요. 욕심을 버리게 됐어요.


센티: 무슨 욕심이요?


영식: 한 번은 가게를 못 찾아서 아사 직전까지 갔었어요. 한 마을 슈퍼에서 애걸을 해서 장을 보게 해 줬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겨서 마구 산거에요. 물건을.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요. 그 다음날 걷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욕심 부린 것만큼 딱 그만큼 못 가겠는 거예요. 그 뒤로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센티: 저는 처음에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걸으면서 하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영식씨는 어떠셨어요?

영식: 도보여행은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얻게 되는거 같아요. 참 아쉬웠던 게 ‘나란 누구인가’를 생각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
거든요. 취업준비 때 자기소개서 쓰면서 일관된 자기 철학,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리를 못했던걸, 이제라도 여기서 생각한다는 게 다행인거죠.

센티: 같이도 걷지만 혼자서 걷게 될 때가 많은데요, 주로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영식: 걸으면서 저는 저의 과거와 대화를 많이 나눴거든요. 뭐 가끔 동수 놀이도 했고요. (웃음) 과거의 저는 더 좋은 고등학교를 가려고 애썼고, 대학도 더 좋은 곳을 가려고 재수도 했고, 취업도 더 잘하려고 했고... 이 모든 노력들을 돌아보니까 결국 더 돈을 잘 벌기 위한 거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나보다 좋지 않은 고등학교 다니던 친구 녀석을 대학에서 만나기도 하고 사회 나와서도 돈 좀 번다고 흥청망청 쓰는 애들 보면 적은 월급으로 살뜰하게 더 잘 사는 친구들하고도 별 차이가 없고. 사람이 한 단계에서 앞서간다고 해도 인생의 길을 또 가다보면 비슷해져 있기도 하고... 성공만 향해 달려가다가 건강을 잃고 병원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죽지 못해 살다가 죽는 경우도 있고, 평화롭게 생을 마감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 거 생각하다보니깐 아등바등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센티: 우아,, 엄청나게 도를 닦고 오셨네요. 근데 이런 생각은 이미 산티아고를 가실 때 어느 정도 생각한 거 아니었나요?

영식: 회사는 홧김에 그만뒀지만, 여행 다녀와서 바로 MBA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을 하던가. 그래서 더 좋은 직장에서 더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고 살겠다 였죠.

센티: 아 그럼 길 위에서 생각이 바뀐 거네요.

영식: 네 180도로 바뀐 거죠. 길에서 답을 찾고자 떠났죠. 저도 딱히 재취업이랄지 학문을 계속 할지 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데 있을 줄 알았던 답은 없고 길 위에 또 길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필시 기행문이라면 말 그대로 文이 중심일진데 요새는 사진이 주인이 된 듯하다며 같이 개탄하였다. 사람들이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라고 하는데 정작 내용은 안 봐요. 사진 몇 장 보고 잘 찍은 사진이면 이야, 나도 가야지...라고 하는 거에요.
 
일단 우리는 사직작가가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기꺼이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야기한 내용을 모두 적을 수는 없다. 안영식, 이 사람의 블로그에는 참 영양가 있는 감상들이 적혀 있으니 이곳으로 나머지 감상들을 교류해 보길 바란다. ^^




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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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식
    2012.01.30 20: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아...민망하네요^^;;;;
    • 2012.01.31 13:0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ㅎㅎ 원래 레시피 공개는 좀 민망합죠.
      어여 기행문 한 작품 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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