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
W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다음 인터뷰는 어르신을 소개하겠다 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 나는 그들과 함께 북한산 둘레길에 서 있었다. 걷다 만난 인연 이왕이면 걸으면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800km걸은 길 위의 동지. 나는 그 길의 키워드로 함께 한 인터뷰어. 이미 사진으로 한 번 만났기에 익숙했다. 첫 만남에 명함을 드리는 나와 달리 어르신은 직접 만드신 엽서를 건내신다. 직접 찍은 사진에 어울릴만한 텍스트를 담아주셨다. 인터뷰라는 거창한 형식은 다 떼고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
기업에서 전략기획실 임원으로 은퇴 하시고 현재는 기업 컨설팅과 플래닝 강연을 하고 계시다.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하시며 내가 생각할때의 은퇴후 2의 인생을 멋지게 사는 분이다. 걸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산도 한번씩 보고 막걸리와 손수 챙겨주신 초콜릿 바, 그리고 W는 달콤한 사과를 챙겨왔다. 새삼 인생을 바꾸는 여행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나는 이렇게 둘레길도 가보고 좋은 이야기도 듣는다. 이 작업을 하기 참 잘한것 같다.
손두부를 만드는 집을 안내하신다. 얽기설기 거칠을 표면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한 두부가 나왔다. 고소하면서 깊은 맛이 그만이다. 얼큰한 국물에 후루륵 잘 넘어가는 순두부찌도 일품이었다. 본격 인터뷰는 두부로 만든 저녁을 먹고 차 한잔을 하며 진행했다. 우리 둘은 어느새 인생상담을 하고 있었다. 직장이야기, 인생의 비전 이야기, 꿈 이야기, 가족간의 이야기.... 인터뷰 이전에 상담이 되어선 곤란하다. ㅎㅎ 다시 인터뷰로 돌아갔다 오기를 여러번... 이렇게 지났다.
▲ 어르신은 다음길을 살피시고 방향을 알려주시고 잠시 뒤돌아 우리들을 기다렸다. 이 사진도 그러는 중에 촬영한 사진일것이다.
산티아고에서 끝내 버림(?)받지 않고 일행과 같이 완주했다는 W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적이 있었나?
거대한 덩치의 어떤 남자였는데 너무나 힘겹게 길을 걷는 거에요. 아 저사람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글쎄 독일에서 2000키로를 걸어 와서 800키로를 더 걷는다는 거예요. 독일인이었는데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위해 치유의 길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회복을 기원 한다는거에요. 그때 나는 뭉클한거에요. 나는 평생 내 형제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생각해보니 없는거에요. 나 혼자 살기 바빴지.
또 한번은 유모차를 끌고 순례하는 엄마. 그 높은 피레네까지 끌고 온거야. 5살 정도의 아기가 타고 있는데 한번도 그 아이가 걷는걸 못봤어요. 그저 내가 관찰한 것일 뿐이지만 아이를 위한 모성 아닐까 싶어요.
세번째는 나란히 지팡이 한 개를 앞 뒤로 지고 걷는 사람들이었죠. 뒤에 오는 사람이 시약자더라고요. 둘이 친구 사이더라고요. 장애인 친구를 위해 시력이 정상인 친구가 같이 순례를 해주는거였어요. 내 친구를 위해 어려움을 동행한 적이 있었나.. 내가 한일이 뭐가 있을까. 솔직히 없더라고요...
나는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중이에요.
어느날 부턴가는 인생의 산을 내려오는 일을 지나 정리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걸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 정리를 하고 싶었어. 걷다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난 도통 즐거웠던 일들이 안 떠오르는 거야. 반추되는건 모두 안좋았던 기억, 원한 사무치는 기억, 슬펐던 사건.... 모조리 이런것만 기억이 되는거였어요. 얼마나 처절했는지. 살면서 좋은 기억 없었겠어요? 난 좋았던 건 그냥 흘려보내고 회한만 남겨놓은거야. 그걸 깨닫고 회환의 눈물을 꽤 흘렸어요.
행복이란게 뭘까요?
너무나 아픈 기억만 나왔어요. 나는 이북 사람이에요. 홀홀 단신으로 목숨만 살아서 온 사람들이에요.
낙동강을 못넘고, 인민군에게 잡히면 바로 죽임을 당하자나요. 그래서 죽느니 싸우겠다고 군으로 가셨어요. 가족들 유품을 찾는다고 왔다가 만난거에요. 그래서 거제 포로수용소 옆에 단칸방을 마련해서 살림을 만든거에요. 그때부터 어릴적 기억이 나요.
국민학교 6학년때까지 밥을 못먹었어요. 쌀을 소화할 기능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물었어요. 이남으로 넘어오니 뭐가 좋습니까? 따뜻해서 좋더라, 두번째는요? 내가 숨을 마음대로 쉴수 있어 좋다. 5호 감시제 이런걸 듣고 살아온 거에요. 그런기억들이 많이 남았었죠.
이게 환상인지 직접 본건지 모르겠어요. 계속 따라다니는 기억이 있어요. 포로수용소에서는 삽으로 밥을 퍼줘요. 나는 수용소 밖에서 안을 들여다 봤는데 포로랑 나랑 눈이 마주쳤어요. 내가 6살때인가.... 그런데 포로가 씩 웃는거야. 당시에는 눈이 마주친게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성장하면서 그 장면이 가끔 떠올라요. 그 때의 그 포로의 눈빛은 행복함 아니었던가. 밥 한그릇에. 그 눈이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이 났어요. 행복이 무엇인가.
훗날 아이가 이 추억을 떠올렸으면...
산티아고 걷는게 큰 감동은 못 느꼈어요. 올레에서 많은 생각을 했었지. 나는 아이에게 뭔가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제대하고 유학을 떠날 건데 3개월 정도 남은 기간에 멀할까 보니 산티아고 생각이 나는거에요. 나는 플래닝으로 강의도 하고 컨설팅도 하는 전문가인데 계획은 아들이 다 짜라고 한거예요. 나는 관조만 했지 그게 참 어려운 일이예요. 참견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안해야 하니까. 난 책도 지도도 의도적으로 안 챙겼어요. 내가 알면 아들에게 이건 아니야, 저건 아니야 라고 참견할 것 같아서. 나는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런데 내가 모르고 온게 너무 행복했어요. 답답함을 누르고 아이에게 다 맡겼어요. 내가 사업전략을 평생 하던 사람인데, 모든 걸 아들에게 맡겼어요. 나는 훈수조차 두지 않으려고 아예 알 생각을 안했죠. 나중에 내가 없겟지만 그때가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면 좋겠다.. 싶어요.
내 나이에 우리 부모가 무엇을 생각했을까. 내 아들이 26살인데 내가 아들을 보면 저거 세상을 잘 헤쳐나 나갈까 싶잖아요? 근데 내가 그무렵때를 떠올려보면 또 달라요. 그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으니까. 내가 대한민국 육군 장굔데, 내가 상장 기업 임원인데.... 그런데 우리는 또 그렇게 생각 안하자나요. 내가 26살일때 우리아버지가 나를 봤을때를 생각했었죠. 지금 내 맘과 같았겠죠. 가끔 그런생각을 해보면 부모가 어땠겠다. 하는 생각이 들거에요.
▲둘레길 첫시작을 기념하며 사진. 이런식으로 인터뷰를 하게 될줄 몰랐다. 둘레길 체험도 하며 인생이야기도 듣는 나는야 행운의 인터뷰어
오리.지.날 정신의 패러글라이더 - 오리도 지랄하면 날 수 있다.
나이 55세가 되니깐 안방 노인네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패러글라이딩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아내가 너무 반대를 했는데 어느날 TV를 보는데 여든의 할머니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는거야. 그거 보여주면서 너무 하고 싶어했더니 그렇게 하고 싶은거냐고 허락을 해주더라고요. 휘어진 새끼손가락을 보인다. 이게 자연 앞에서 교만해서 생긴 상처에요. 바람을 타면서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바람보다 욕심을 냈죠. 순간 기류에 휩쓸려서 끌려갔어요. 여기에 지금도 쇠가 박혀있어요.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제비가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 그 원리가 다 보여요. 제비가 강남간다고 하자나요? 그 강남이 동남아예요. 비행기 항로 아세요? 비행기가 홍콩 갈때 어떻게 가요. 홍콩노선은요 여기서 강화, 서해안 따라 여수에서 대마도로 해서 홍콩으로 들어가요. 해안선을 따라갑니다. 우리 항로들이 전부다 해안선을 따라 섬과 섬을 이어요.
그 쪼그만 새한테 인간이 다 배워요. 군대의 배열 있죠? 그 원리도 새들에게서 나온거에요. 맨 앞에 있는 놈이 우두머리고요 그 앞에 있는 애를 항도라고 불러요. 길잡이 역할 하는. 대형 옆에 떨어져서 한마리씩, 맨 뒤에 떨어져 한마리. 이게 척후병으로 적이 침범하면 알려주는 놈들. 세계의 모든 군대가 이런 원리입니다. 제일 가에 있는 놈이 튼튼하고 안으로 갈수록 노약자, 어린아이들이에요. 가운데는 부력이 생겨서 조금만 움직여도 날 수 있어요.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검색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234769
ⓒ 문경시 제공
반나절 산행과 식사 찻잔 토크를 하면서 얻은 인상. 삶을 참 멋지게 사는 건강한 어른이다.
사람이 마음이 급해서 움직이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으면 가만이 있어보세요.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입겁니다.
난은 물만 줘야 꽃이 핍니다. 영양제 주고 그럼 꽃이 안펴요. 그러니 지금 조금 힘든 일은 꽃을 피우는 과정이라는 위안의 말씀도 주신다. 인생 레슨을 받은 셈이다. 오리지날 정신을 알려주셔서 필자를 배꼽빠지게 하셨고, 백두대간은 진작에 주파하셨고, 올 여름엔 스킨스쿠버에 도전하러 필리핀으로 떠나신다는 무척 멋진 계획을 갖고 계시다. 분명 바다속 세상을 만날때도 겸허한 마음으로 물속의 생물들과 조우할 테다. 이번엔 어떤 세상 이야기를 꺼내놓으실까.
여름이 지나 그의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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