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동생과 종로거리에 나갔다.
점심 메뉴는 스파게티로 정하고 동생이 추천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갔다.
직원들의 서빙 태도나 음식의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한 여직원이 실수를 했다.
테이블을 정리한 쟁반을 들고 이동하다가 내 앞에서 넘어졌다.
문제는 발사믹소스와 올리브오일이 내가 고이 접어 의자에 걸어둔 외투 위로 엎어진 것이다.
순간 당황한 직원은 외투를 갖고 주방으로 다급히 뛰어갔다.
새로 사서 기분좋게 입고 나온 옷의 봉변.
세탁은 추후의 문제고 그 옷을 입고 오늘 나머지 일정을 보낼 생각에 괴로웠다.
시큼한 발사믹의 냄새와 얼룩이 남을 오일의 얼룩이라니...
잠시 후 여직원은 그 옷을 가져와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충 얼룩은 닦아드렸습니다. 옷은 빨아보시구요,
세탁비는 저에게 연락주시면 계좌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태도는 매우 공손했으나, 나는 매우 불쾌해졌다.
"아 그러니까, 이 옷을 제가 그대로 입고 제가 제 비용으로 세탁을 직접하고
그 비용에 따른 청구를 전화로 드리란 말씀이신가요?"
그녀는 비용이 얼마일지 예상할 수 없으니 그런다고 하며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다른 테이블의 주문을 받으러 총총히 떠났다.
기본적으로 드라이크리닝 1회 비용이 일만원 미만일텐데
그 만원을 받자고 그 종업원에게 전화를 하고 여차저차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계좌번호를 알려줘야 하는 엄청나게 귀찮은 일을 해야만하는거다.
그리고 입기엔 이미 불편해진 옷을 입고 세탁소까지 직행해야 한다.
이런식의 어이없는 방법은 분명 여종업원 혼자 내린 결정이라 생각하고 매니저를 불렀다.
종업원이 이런실수를 했고, 나는 이렇게 불편해졌는데,
세탁비을 받기위해 나는 귀찮은 전화까지 해야한다.
사실 이런 방식은 내가 생각할때 상식 이하같다.
내 말을 듣고 난 매니저의 답변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여종업원의 대답과 똑같았던 것이었다.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엎질렀다. 옷이 엉망이 되었다. 고객은 하던 식사를 멈추게 되었다.
여종업원은 사과를 하고 정말 죄송하다며
레스토랑의 로고가 인쇄된 봉투에 세탁비를 담아 건낸다. (만원이다.)
그리고 명함을 같이 동봉했으니 다음에 찾아주시면 더 신경써드린다고 말한다.
매니저가 나와 일정 기간 내에 사용가능한 서비스 쿠폰을 건내며 (불과 몇천원짜리라도)
다음에 오실 때 이용해달라고 한다.
고객은 비록 종업원의 실수에 옷은 엉망이 되었지만, 기분좋게 털고 나온다.
그들이 지출한 비용은 일만원과 사용할지 안할지도 모를 몇천원짜리 쿠폰이다.
그들이 얻게 될 것은 이 태도에 감동한 고객의 입소문과 단골일 것이다.
일이만원짜리 지출에 비할바가 있을까.
광화문 한복팍 목 좋은 자리에,
블로그 맛집으로 꽤 퍼날렸을 레스토랑에서 일어난 일이다.
레스토랑 사장이 안스러웠다.
이정도 해결력을 가진 사람을 매니저라고 고용했으니 말이다.
이럴 때 잘 대처하라고 매니저가 존재하는거 아닌가.
써빙하는 대빵이 매니저는 아니란 말이다.
ps. 그나마 다행인건 손님 식사값에서 만원 빼드리겠습니다. 라는 망언은 안했다는거.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누런 갱지봉투에 만원을 담아줬다.
난 이제 다시는 그곳에 밥먹으러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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