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햇살이 뜨거울 때 유기농 귀촌 여행을 떠났다.
모기에 종아리를 뜯기느라 한동안 고생했지만, 꽤 낭만적인 귀촌 체험이었다.
우연히 한 청년을 알게 됐고(방년 25세 꽃띠 청년) 그와 뜻이 통하는 청년들이 귀촌해서
저들끼리 술도 빚고 마을 사람들과 창작활동도 하고 산다고 했다.
다들 서울로 서울로 하는 마당에 이런 기특한 일이 있나.
얼른 그 마을도 탐방해보고 나를 비롯해 내 주변의 공해에 찌든 이들에게
도시탈출의 기회를 선물하고자 귀촌체험 여행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실 가듯 이 마을에서 지내다 가고 싶다'가 이 콘셉트었다.
비비정 마을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에 있는 마을이다. 전주8경중 하나라는 정자 비비정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 신문화공간조성사업으로 선정된 마을이기도 하다.
음식교육을 통해 할매레스토랑 창업, 전통 가양주 기법을 담은 작은 양조장 창업,
마을 공동체 농산물 수확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한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터벅터벅 걸었다. 곧 마을 사무실이 보이고, 듬성듬성 텃밭이 나타난다.
농사로 마을을 유지하지 않는 마을이라 흔히 생각하는 농촌풍경은 펼쳐지지 않는다.
고기반찬이 없어서 어째? 라는 부녀회장님의 염려가 무색하게 우리는 밥을 두 공기씩 비워낸다.
고기반찬 없어도 이토록 맛깔나는 것을.
밭에서 바로 수확해 만든 나물들. 특히 파릇한 상추잎에 싸먹는 재미에 푹 들린다.
게다가 회장님 표 쌈장은 어찌나 중독성이 강한지.
점심을 먹고 마을 이곳저곳을 산책한다. 조그만 마을에 구석구석 손이 가 따뜻한 마을의 느낌을 준다.
작은 벽화부터 마을 주민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벽화가 인상적이다.
마을의 뒤곁 이 마을의 이름이 된 비비정이 바로 이 정자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마침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정자 그늘에 더위를 잠시 피한 마을 어르신들도 만났다.
삼례천을 가로지르는 철도 지금은 폐기되어 쓰이지 않고 있다.
고새 정이 들었달까. 마을 여기저기 둘러보는 가운데 살짝 사라진 꽃띠 청년은 두 손에 무언가를 쥐고 돌아왔다.
이장님 댁 울타리에서 산딸기를 채취해 전해주었다. 앗 그런데 옷이 예사롭지 않다.
일할 때는 세상에서 몸빼가 가장 편하다는 스키니한 몸매의 소유자인 이 청년 덕에 몸빼의 재발견을 했다.
서울로 돌아온 여인들이 몸빼를 하나씩 샀다는 후문이 전한다.
전통 가양주 만들기
집에서 담그는 술을 가양주라고 한다. 집집이 담그는 장맛이 달랐듯 술맛도 달랐다.
일제 강점기 금주령이 내리면서 가양주 제조법이 많이 손실되었다.
현대에 와서 전통주 주조법이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쌀, 누룩, 물로만 만들어진다.
술을 담그는 과정은 꽤 단순하다. 불린 쌀을 씻어 찌고 식힌 후 누룩을 잘게 부숴 물을 넣어 치댄다.
그리고 항아리에 담고 숙성시킨다. 그러나 이 단순함에는 엄청난 노동이 숨어있다.
우선 쌀을 씻어내는 과정이 만만찮다. 멥쌀을 쌀뜨물이 나오지 않게 씻는다.
어찌나 박박 문질러 씻어냈던지 1/3은 깎여나간 것 같았다.
쌀을 잘 씻어 쪄낸 것을 고두밥이라고 한다.
이를 깨끗한 나무주걱으로 대나무로 공간을 띄우고 깔아놓은 모시 천에 살살 펼쳐 식힌다.
밥도 먹었으나 왠지 투명한 채로 고들고들하게 말라가는 쌀이 먹고 싶었다.
살짝 떼어내 맛을 보니 쫀득쫀득하고 달곰한 것이 한 공기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미생물들이 발효하게 되므로 매우 엄정한 살균소독이 이뤄진다.
고두밥이 닿는 모든 그릇은 뜨거운 증기로 소독하는 것은 물론 쌀을 만지는 손에는 어떤 화학약품이 묻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주변엔 세제가 없다. 손도 물로만 박박 씻어내야 한다.
매니큐어를 발라 멋을 낸 사람은 과감히 도가에서 추방된다.
비닐장갑이라도 끼면 안 되나요? 두 눈을 깜빡이며 가양주 체험을 간절히 원하는 여성 있었으나
술의 맛이 좌우된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고두밥이 다 식으면 물과 술맛의 핵심인 누룩을 잘게 부숴 손으로 잘 치댄다.
손바닥에 힘을 줘 꾹꾹 눌러주면 어느새 누룩과 고두밥이 끈끈하게 엉겨붙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술독에 담아 한 달간 숙성실에서 발효시킨다.
고들한 밥에 누룩을 잘 섞어 독에 담고 물을 붓는다. 술 한 독에서 무려 4가지 종류의 술이 나온다.
어느 정도 발효를 거치면 대나무에 한지를 발라 만든 '용수'라는 도구를 박는다.
기둥 안에 차오르는 맑은 술을 떠낸 것이 약주라고 불리는 '청주'다.
그 후에 떠낸 술이 탁주로 막걸리의 원액이라 할 수 있고, 탁주에 물을 섞은 것이 막걸리,
그리고 남은 이들을 증류해 만드는 것이 소주다.
도가에서 추방된 여성들은 이렇게 평상에 누워 시위하다 낮잠 한숨을 즐긴다.
저녁과 캠프파이어
저녁은 백숙이다. 고기반찬 없어 어째 하던 부녀회장님이 백숙을 내어주고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센스쟁이 꽃띠 청년은 탁주를 내놓는다. 참 적절한 타이밍이다.
조금 전 우리가 만든 술이 한 달 후 바로 저렇게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남성 동지가 엄마정신을 발휘하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살점을 팍팍 분리해주었다.
백숙의 별미 닭죽까지 맛보며 이날 저녁의 포식은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저녁을 먹은 후 밤에는 캠프파이어를 한다고 알려주던 그가 어깨에 대나무 장대를 매고 나타났다.
그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은 바로 생닭 한 마리.
모닥불에 뭔가를 굽게 된다면 당연히 닭이어야 한다고 꽃띠 총각은 심한 배려를 했을 것이다.
경험상 바비큐는 내장을 통해 똥꼬로 관통해야 하건만 바비큐는 처음이었다보다.
꽃띠 총각은 닭 옆구리를 과감히 뚫었다.
그래서 모닥불에 대나무 봉을 아무리 돌려도 닭은 초지일관 사람이 철봉에 매달린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녁 백숙에 배부른 일행이 더는 닭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무렵, 꽃띠 청년은 대안을 마련했다.
올해 갓 수확했다는 씨감자를 한상자 들고 와 은박지에 싸서 굽기 시작했다.
밤새 수다 떨다가 아침은 솟대 만들기
모기에 물리며 모닥불 앞에서 수다에 빠져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느지막히 잠이 들었다.
아침 먹고 산책을 하는 가운데 꽃띠 청년은 또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솟대 만들기 체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자연공작을 언제 했던가. 다들 유년기의 공작생활로 돌아가 자기만의 솟대를 만들기 여념 없다.
갓 뜯어온 나물로 차린 엄마표 밥상, 친구가 뜯어주는 닭 한마리, 내손을 빚은 가양주, 통닭바베큐를 가운데 둔 캠프 파이어...
이만하면 꽉찬 농촌의 1박 2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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