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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획&기록/한국

옛 동네 여행하기 - 내 기억속의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직도 거대할까?

언젠가는 열한살까지 살았던 동네를 가볼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릴적 상상과 그토록 다른지, 하늘같던 초등학교 운동장은 얼마나 쪼그마한지,
고무줄놀이 하던 골목길은 또 얼마나 아기자기했는지 기억속의 느낌 그대로인지...
서울에서 나고 자랐기에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가보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십년이 넘도록 찾지 않았던 것은 그냥 좀 더 오랜 시간 상상놀이를 즐겼던 것 아닐까.

나는 이태원과 무척 가까운 동네에서 살았다.
지금은 핫플레이스가 된 곳이지만 이십년 전 어린이였던 내겐 무척 낫선 동네였다.
까만 사람들이 자주 보였고 온몸이 황금 털로 뒤덮힌 외국인들이 많았다.
게다가 온몸을 천으로 감싸는 것도 모자라 머리에까지 터번을 쓴 또 다른 외국인들도 넘쳐났으니까.
학교를 마치고 교문 밖으로 나온 어린이의 눈에는 참 이상한 동네였을 것이다.

이십여년이 지나 나는 우연하게도 이태원 근처에 살게 되었다. 
수십년 묵혀두었던 상상놀이를 더는 방치할 수 없어서 드디어 옛 동네투어를 결행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나의 살던 고향은'프로젝트다.
이왕 수십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려면 혼자 가는건 심심하다. 
적절한 동행이 필요하다.
동행이 할 일은 그저 나의 기억을 믿어 줄 것. 
그래서 골목골목 길치의 면면을 보이더라도 짜증내지 말 것.
어린 시절의 기억을 추억함을 들어줄 것. 등이었다.

그 동행자로 나는 Y와 함께했다. 
둘은 일상에 지쳐 스트레스가 쌓일만큼 쌓였고, 진득하게 걷는것에 굶주렸었다.
편안 옷차림에 몇시간을 걸어도 끄떡없을 운동화를 신었다.
운동화 끈을 동여매 추억찾기에 흠뻑 빠져들 것을 다짐한다.



잔병치레 유달리 많았던 내 덕분에 자잘한 매상을 많이 올려주었던 부엉약국은 있는지, 
매일 두부 한 보, 콩나물 이백원어치를 사러 갔던 도깨비 시장은 아직 남아 있는지,
유독 좋아했던 동네의 미끄럼틀은 그대로인지...
이런것들을 조잘조잘 떠들어대고 기억을 더듬어 골목길 구석구석을 더듬어 보고
그러다가 내가 말했던 것이 나오면 같이 환호하고. 그러면 족했다.





이태원의 초입에는 이런 빅사이즈 옷이 많다.
이태원의 겉면만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빅사이즈 패션만 보다 돌아간다.
그 속에 숨은 깨알같은 빠숀의 세계는 맛보지도 못한 채.




초등학교 운동장은 겨우 한 뼘이었다.
타이어 위에서 균형잡기 하던게 기억난다. 그때와 다른점은 균형잡는게 어렵지 않다는 것 정도?
그때도 무성해보이던 등나무는 제법 굵어져 외국인의 시원한 독서에 보탬이 되었다. 







오오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신비했던 이슬람 사원. 
노을이 질때 유난히 돋보였던 돔이었다.




뭐니뭐니해도 이슬람 사원의 특이점은 사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다른 세상이 된다는 거다.
더위에 짧은 바지를 입고 갔더니 문앞에서 제지당했다. 
당당히 치마를 빌려 두르고 사원 한바퀴를 산책했다. 





이태원은 음식으로 구역을 나눠도 될 정도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공간으로 나눠졌다.
이왕 이태원에 온거 우린 양키 스타일로 가기로 했다. 
메뉴를 보는 순간 죄책감이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칼로리의 햄버그 세트를 시켰다.
오 기름샤워를 막 마치고 나온 순수감자튀김이여, 치즈와 베이컨의 폭탄열량을 자랑하는 햄버그여... 




그렇게 칼로리폭탄을 섭취하고 나서 우린 곧 코리안 홈시크에 빠졌다.
이태원에서 얼마나 있었다고 향수병 타령인가. 그냥 솔직하게 먹고싶었다고 말하자.
옛날 팥빙수라는 간판을 보고 발길을 도저히 지나칠수 없었던 것이다. 
오기사란 필명으로 일러스트 건축기행을 주로 집필한 건축가가 디자인 했다는 카페였다.
팥빙수 이름도 '순결한 팥빙수'였는데 설탕으로 떡을 치지 않아 팥이 담백했다. 

옛동네 추억여행도 4시간이 걸린다. 
오래전부터 벼르던 것을 해내고 나니 미션 하나를 완수한 느낌이다. 
내가 성장할때까지 우리집은 이사를 딱 두 번 갔다.
그나마 한번은 아파트 앞동으로의 이전이다. 
이런 옛동네 찾아가기는 나에겐 이태원 딱 한곳밖에 없다. 
몇군데 있었으면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을 텐데. 
유년의 추억이 있는 그곳을 훌쩍 성인이 되어 돌아보는 것은
머릿속의 타임머신을 타고 떠난 여행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