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획&기록/한국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 이태원 가정집 이야기

요즘 같은 세상에 생판 모르는 사람의 집으로 맘 편하게 놀러 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올 지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는 상태라면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건축을 전공한 안도영, 김정인. 두 청년은 백수가 되기로 하고 (멋지다, 백수결심)

이태원 보광동. 옥상이 있으며 한강과 남산이 보이며 넓은 거실이 있는 집을 발견 즉시 이사를 한다.
한 청년은 보증금이 있었고, 나머지 한 청년은 월세를 낼 수 있는 직장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있었다.
나무들 사 들고 와 옥상에 뚝딱뚝딱 흔들 그네와 원두막을 만들고 집들이를 연다.
옥상 구석구석에 각종 경작물도 심어놨다.
이 공간에 무엇인가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집들이는 소개의 소개, 꼬리에 꼬리를 물고 200여 명이 찾아가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언제나 열려있는 누구든 와서 자유롭게 놀다 가는 이태원 가정집 옥상이 탄생한다.


여기까지가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플랫폼인 위즈돔
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들의 소개와 취지가 무척 내 구미를 당겼지만, 덥석 남의 집에 놀러 가기로 한 이유는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을 이들은 일상생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4월에 지금의 오피스텔로 이사 와 옥상을 발견하고는 거기다 상추를 심었다. 
마음이 헛헛했는지 식물을 키우고 싶었고 이왕이면 '농사'비슷한 걸 경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도시농부 코스프레는 친구를 초대해 상추를 뜯어 한 끼 밥을 먹는 단계에 가서야 그쳤다. 
몇 뿌리 되지 않지만 직접 농사지은 채소에 밥을 해서 같이 먹는 행위와 장소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지….
도시농부 생활은 그때로 끝나 다시 팍팍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늘 공개되는 옥상이고 아무나 왔다가 가는 곳이어서 이렇게 음식을 해놓고 초대했던 적은 없었단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스트의 긴장이 역력했다.
이를테면 무료공개 서비스에서 처음 유료화할 때의 긴장이라고 할까.  




차려놓은 음식이 군침이 돈다. 남자 둘이 요리를 준비했다고 하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재료를 일일이 꼬치에 끼워 탄두리 소스에 재워 숯불 구이부터.
옥상에서 재배한 상추와 깻잎 치커리를 썰어 넣고 드레싱을 부은 샐러드.
여기서 난 채소로 전을 부쳐냈다는 것이다. 
이파리 하나하나 반죽을 묻혀 기름에 지져낸 모습을 생각하니 그 정성이 감동적이었다.
노란 카레에 밀가루 빵을 찍어 먹는 거라며 인도식 스타일을 강조한다. 

"버터를 잔뜩 넣고 조리해서 인도식 카레는 걸쭉해요.
한국 사람 느끼한 건 안 좋아하니깐 오뚜기 카레 가루 반, 인도 카레 가루 반 요렇게 섞고 버터는 조금만 사용했어요.
거기에 치즈를 넣는데 몽글몽글한 게 참 구수하거든요.
여기선 못 구하니까 두부를 잘게 썰어 넣었어요."

먼저 백수가 된 도영 씨는 반 년간 인도에 일하러 가서 어깨 넘어 인도음식을 배웠더랬다.
그것을 한국에 와서 한국식으로 맞게 표현해내는 재주라니. 놀랍도다.

"저는 식물, 음식담당이고 쟤는 동물, 설거지 담당이에요."
늘 이렇게 한쪽이 요리를 하느냐고 묻자 돌아오는 답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채소만 크는게  아니었다.
동물담당 김정인 씨가 있었다. 그는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운다. 거북이, 열대어도 키운다.

이 정도 궁합이면 룸메이트 서로 복 받았다.




이날은 한강에서 불꽃놀이 축제가 있었던 날이다. 

불꽃이 터지자 낯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인다. 손에 맥주, 오징어 다리 같은 안주를 들고.
이슬람 사원 다음으로 높은 탁 트인 조망이니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다. 
늘 열려있고, 와서 뭘 하든 자유라는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여름엔 옥상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겨울 되면 추워서 자주 못 올라올 일이 벌써 아쉽단다.
공간을 기꺼이 내주고 공유하는 독특한 마력을 지닌 이곳.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한여름의 옥상 오두막에서 수박을 먹었을,
푸성귀가 웃자랐을, 느릿느릿 지는 해를 멍하니 바라봤을지도 모르는데…. 

당당하게 직업을 백수라고 했으나 진짜 백수만은 아니었다.
수작업 악세사리를 만들면서 창작백수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악세사리를 보여달라고 하고 맘에 드는 팔찌를 샀다.

백수라고 써놓고 아티스트라고 읽어주겠다.
http://ando0.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