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 인터뷰

[예술생활]당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코치 박현진 2011. 10. 24. 10:48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지루한 틈을 타 모바일 접속으로 메일을 살폈다.
늘 받아보는 미술관련 소식지가 있는데 나랑 인연이 닿으려고 했던지
그 많은 텍스트 중에 유독 한 전시명이 눈에 띄었다.
'당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마침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재도구 일체가 갖추어진 "집"을 무료로 당신에게 임대합니다! - 주택 임대 프로젝트

스마트 하게 바로 전화를 걸어 신청했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예약 가능한가요? 제가 그날 임대하겠습니다.
혼자서 즐기고도 싶었으나 이런 기회를 행복하게 활용할 사람을 초대하기로 했다.
스마트한 시대에 전화를 개통하지 않은 친구. 그녀와 함께라면 이 공간을 유쾌하게 즐기고도 남으리라. 



그날 나와 통화한 분은 작가 본인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고,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전화로 예약한 유일한 사람이었다며 반가워했다.
임대계약서를 작성했고, 싸인을 하고 이 집의 주인이 되었다. 공간을 즐기는 부분을 촬영해달라는 협조요청을 받았다. 





집은 정말 1인이 사색하기에 딱 좋은 구조였고, 2층으로 되었다.
1층은 침실과 간단한 살림도구, 세면대. 사다리로 이어진 2층은 해먹이 가로질러 설치되었다.
튼튼한 집은 아니었으나, 구석구석 견고했고 따뜻했다. 
어릴적 책상과 의자를 지탱해 홑이불과 빨랫줄로 어설프게 텐트를 치고 그 밑으로 숨어들어가 안락함을 즐기던 때도 생각났다.  
곧 나는 이 집의 주인으로서 적응을 하여 내가 초대한 친구를 기다리고, 친구를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끓였다.




수년만에 만나 쌓인 수다를 풀며 아크릴 창으로 넘어오는 빛을 느끼며 이 공간을 만끽할 즈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수다 끝에 허기를 느끼며 나가사키라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거 먹으면 안될까?
집주인인 나 살짝 고민한다. 이거 너무 체험에 집중하는거 아닐까?
에라이 모르겠다. 과감히 살림을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내 집에서 전자 코펠에 끓여먹는 나가사키라면을 끓여 접대하겠어.
이런 체험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혼자 왔다면 여기서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었을까?
나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즐겨주기로 결심했다.




배도 부르고 식후 차 한잔을 끓이며, 나는 작가를 내 집으로 초대를 했다.
작가가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경위도 듣고 이렇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준 작가에게
우리가 느낀 감상도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다음은 채지영 작가와의 대화를 문답으로 기록했다.




센티- 제가 동행인이 있다고 했을 때 당황하신 것 같아요.
작가 - 제 의도는 혼자 사색할 자기만의 공간을 느껴보라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어요.
그래서 1인용으로 제작이 들어갔어요. 늘 제 작업에만 빠져있다보니 저만 당연히 1인 참여임을 인식했나봐요.
메일링 원고에 반드시 1인 참여라는 오라는 이야기가 빠져있더라고요. 

센티 - 저는 제 방은 있지만 집은 공동으로 사용하기에 저만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할수가 없었거든요.
밖에서 만나게 되는 카페같은 장소보다는 이런 공간에 잠시나마 소유해 보는게 의미가 깊네요.
저만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소망을 이룬 셈이네요. 


센티 - 왜 이런생각을 하신거예요?
작가 - 의외로 사람들이 사색을 할만한 여유공간이 없더라고요.
저 부터가 그랬고. 개인공간 최소한의 넓이를 생각해봤더니 딱 주차할 공간 한블록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 공간을 짓자. 라고 해서 시작한거고 그게 일반인에게도 체험할 기회를 주자로 확대된거에요.

이 집을 직접 제작하신건가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고요, 네 제가 꼬박 반년을 들여 제작한 집이에요.
처음에는 시골에서 짓기시작했어요. 집이란게 고정된다는 관념을 탈피해보자 이동식 주거를 짓기로 했어요.
그래서 바퀴도 달고 마을마다 다니면서 체험할수 있도록 구상했지요.

전시가 쉽지 않았을것 같아요.
네 아무래도 전시공간 확보하는게 어려웠어요. 실외가 되니 오픈시간을 정하기도 애매하고
전기를 끌어써야 하는데 안전문제도 있고... 겨우 이 갤러리 큐레이터 분이 제 사정을 듣고 배려해주셔서 진행하게 되었어요.

센티 - 참여자들이 많은가요? 저같이 전화 문의는 어때요?
작가 - 메일을 보고 전화를 주신 분은 아마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것 같아요.
이길을 지나다니면서 여러분들이 문의는 하시는데 체험하기는 많이 주저하세요.
혹은 잠깐 둘러보고 지나가시는 분들도 많고요. 전화하시고 예약하시니까 저로선 신기했어요.

센티 - 그럼 지나가다 만나게 된 사람들 중 가장 인상깊은 분이 있다면요?
좀 있다 오실분인데 오늘 예약하고 가셨거든요. 중년의 남성분이신데 집에서 고요함을 느낄수가 없대요.
아내는 항상 TV를 틀어놓는데 볼륨을 크게 튼대요. 그래서 볼륨을 줄이는 문제로 갈등이 있다네요.
마침 이 프로젝트를 보시고는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두시간이라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센티 - 저는 여기가 정말 아늑하고 좋아요. 아마 혼자 왔다면 라면까진 못끓여먹었을것 같고,
침대에 누워서 잠깐 졸았을거 같아요. 정말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드려요.

작가 - 여러분이 제가 본 중에 가장 자유스럽게 시간을 즐긴것 같아요. 저도 감사해요. 

  
이렇게 대화를 마치고 라면국물로 얼룩진 코펠 설겆이를 마치고 정리할즈음
중년의 남성이 노크를 한다. 자기만의 공간이 절실한 그분인 듯하다.
우리의 흔적은 지우고, 당신의 집은 새로운 세입자를 받아들였다. 
그 분이 짧게나마 자기만의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채지영 개인전
당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Welcome to your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