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년 전이다. 모 신문사 편집기자로부터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용기를 내어 내가 쓴 여행에세이를 보여드리고 피드백을 부탁한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코멘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물론 기자님은 직업적 소명 의식으로 솔직은 해야겠고, 기대에 찬 눈으로 피드백을 갈구하는 제자의 기를 꺽자니 괴로운 맘도 드는지라, 매우 고통스러워 하시며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렸다.
1. 딱 여행 에세이네. 여행에서 감성. 그것도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쓰는 센티멘탈 아무소용 없다.
2. '여행문화기획자'라는 타이틀을 좋은데, 그거랑 전혀 안맞는 글이자나. 컨셉이 없는거야. 이건.
3. 너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글, 너 아니면 안되는 글을 써라. 이런건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글이다.
4. 꼭 교훈을 주어야 글이 되나. 그냥 여행 기획하던 에피소드 하나만 써도 된다. 얼굴에 점이 있다면 그곳에 90%를 할애할 것. 나머지 10%는 전체 조감을 보여줘도 된다.
그 뒤로 여행문화기획자 어쩌고 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며 꼭 글로 기록을 남겨야 하는 업무를 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위의 4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쓰기는 엄두도 못내고, 그냥 있었던 사실을 위주로 썼던 것 같다. 약간의 공포심도 생겼는데 독자가 확실하게 정해지는 글은 더 쓰기가 힘들다. 인터뷰가 그렇다. 인터뷰를 한 사람은 반드시 그 글을 볼 것 이므로 나는 인터뷰를 즐기면서도 인터뷰가 무섭다. 그러고 보니 오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경험치'만 늘어난 듯하며, 이제는 경험치와 글쓰기 수치를 맞춰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즈음이다.
원고지 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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