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일)
민박집에서 같이 지내게 된 아가씨들 둘 한테 60유로 빌림. 그리고 자연스럽게 같이 외출을 했다.
일단 나의 바게트 로망을 따라 그들에게도 각자 빵 하나씩을 엮었고,
피카소 미술관으로 출발. 3시부터 무료이므로 두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바게트를 먹으며
주변 산책을 하기로 했다. 광장 하나 발견하고 노닐다가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39번 버스는 해변가를 지나간다. 옳다구나 싶어 거기서 내리기로 합의를 봤다.
에스프레소 그랑데를 훌쩍 들이켜며 해변으로 고.
그런데 11월의 해변에 올누드의 선테너들이 널리고 깔렸다.
몇몇 남자들은 자랑스러운 남근을 앞에우며 어슬렁 거리를 활보중인데,
한때 우리 동네를 종종 어슬렁 거리던 아담이 겹쳐진다.
이런 환경이 가능한 이동네 제주도 누드비치도 들어선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마 그렇게 되면 우린 누드들 대신 검은 선글라스와 카메라로 넘쳐날걸.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다. 너무나 위풍 당당한 그것을 앞세우고.
"사진 찍고 싶니? 공짜로 찍어줄게"
"응, 고맙지만 난 사양하겠어"
용감한 아가씨 사진을 찍겠다고하네.
▲ 11월의 해변 옷차림은 이렇게 극과 극이다. 올누드 vs 점퍼
모래 밟고 노닐다가 피카소 미술관으로갔다.
천재답게 애로틱하고, 천재답게 다작이고, 천재답게 변화무쌍하다.
그의 데생도 데생이지만 수많은 동판작품이 나는 참 좋다.
에칭의 다양한 농담으로 만들어낸 그 느낌이 좋아서 한참 그 부스에 있었다.
스페인, 피카소를 자랑스러워 할 만도 하다.
저녁은 테이크 아웃 누들로 아까 그 공원에서 먹고. 탱고를 보러 이동.
흥겹긴 하다. 그러나 집시의 애환을 담은 느낌보단 흥겨운 민족의 축제를 보는 듯하다.
한가지 더.
무용수는 예뻐야 한다.
살찌고 엉덩이가 집채만한 무용수,
타히티 여인인지, 가무잡잡한 중국인인지 알 수 없는 더구나 우락한 표정을 지어 도저히 집중 할 수 없더라니.
이틀 전의 7유로짜리 드라마틱한 표정의 무용수가 그리웠다.
문득 억울하니 경찰 레포트라도 받을까 싶어 경찰서로 갔다.
의례히 외국인이면 날치기 신고 하러 온 것 인양 의례히 물어댄다.
"카드 정지 신청 했니?"
"날치기 얼굴 봤어? 얘,얘 내가 묻는말에 예스 노로만 답해불래?"
"그럼 사진 100장 봐야하니깐, 내일 12시에 다시 와."
이 호모 같은 자식.
"파든미?"
"당신이 그랬자나. 그넘아 얼굴 기억한다매. 오늘은 불가능하니깐. 낼 오라니깐."
코 높은 코쟁이는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키도 크다) 매우 과장된 영어를 입술에 담아
매우 천천히 움직여 발음한다. 슬로우모션처리된 그의 입을 바라보고 있자니,
순간 오래된 비디오를 보는 듯한 착각에 멍해졌다.
머릿속으로는 핑크 돼지 똥꾸멍을 연상하며...
"니말은 알겠지만, 난 내일 돌아가야 해. 어쨌든 레포트가 필요하니 그것부터 작성해줄래?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다시 숙소로 컴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내일은 현금을 쥐고 파리로 가야한다....
내 사정을 다들 아는지라 그래도 며칠 같이 있었던 한국 언니라고 동생들이 많이 애를 쓴다.
미국 유학중인 누리양도 집에 전화해주고.
아 다들 고맙다. 한국에 오면 이 언니가 밥이라도 사주겠숴요.
2009 산티아고 - 바르셀로나 -파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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