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7
나헤라-칼즈 : 21.2km
출발부터 비가 올 듯한 하늘이기에 초반부터 판쵸를 뒤집어 썼다.
오늘 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한시간 반 만에 아스포르 마을에 도착했다.
아침을 치즈와 빵과 함께 마치고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셨다.
작디 작은 잔에 설탕 가득 한 스푼 넣으면 쓰고 달콥 쌉싸름한 깊은 맛에 중독된다.
걷다가 카페가 보이면 몸은 자동 반사로 들어간다.
산길에 들어서자 빗발이 거세지고 바닥은 순식간에 질척거린다.
처음엔 물이 닿지 않도록 신경 쓰다가 발바닥부터 빗물이 들어차고 부터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그냥 막 걸었다. 발은 시려워도 걷다보니 열기가 생기면서 견딜만해졌다.
손과 귀가 시려워서 장갑 모자, 갖고 있던 옷을 다 꺼내 입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막 겨울이 된 듯 한데 고개 넘어 보이는 곳은 해가 쨍쨍하다.
얼른 그 그곳으로 가고 싶다. 어릴적 읽은 햇님과 바람의 우화가 생각난다.
바람이 몰아칠수록 판초자락 꼭 붙들어 매며 장갑 모자 다 챙겨입은 내 모습은 꼭 우화속의 나그네였다.
어제까지 통증에 시달리던 발바닥의 물집은 이제는 거짓말 같이 굳은살이 되어서 더는 아픔을 못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처음으로 편한 발걸음이 되었다.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시설이 꽤 괜찮다.
장을 보고 오니 거북이 부자들을 만났다. 어제부터 자주 마주친다.
아들분이 한식을 해먹을 거라며 초대해주었다.
오늘도 라면스프로 어떤 요리를 해먹을까를 고심하던 차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닭도리탕을 시도하려나보다. 나의 귀중한 신라면 스프를 주었다.
거북이 어르신은 고추장에 쌈을 싸드실 요량인지 양상추를 사들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와 프랑스에서 온 폴 아저씨와 넷이서 식탁에 모였다.
코리안 치킨 숩이라고 소개하고 닭볽음탕과 흰 쌀밥을 조금 덜어주었다.
매워서 먹지 못할 거라고 염려한 우리와 달리 프랑스인 폴 아저씨는 매우 즐거워하며 음식을 맛보았다.
양상추에 밥과 고추장을 얹어서 코리안 스타일을 강조하시던 어르신을 따라
모두들 코리안 스타일 흉내 내기 바빴다.
멀리 이국땅에서 이런 쌈을 먹게 될줄이야.
흐뭇하게 프랑스인 폴 아저씨의 코리안 쌈 스타일 흉내를 바라보았다.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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