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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획&기록/한국

연말 특집_동해까지 와서 히치하이킹

매년 연말 상 퍼주는 시상식 보며 통닭 뜯는 것도 더는 못하겠다 싶을 때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 한가지가 떠올랐다. 

늘 은밀한 소망으로 간직하고 있던 '떠나 있기' 이다.
조용한 산사에 방 한 칸 빌려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책 읽고 정리도 하고 나만의 시간 갖기.
오래전 처음 템플스테이란걸 경험한 삼화사가 떠올랐다.

이 절의 특징은 템플스테이처럼 빡빡한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말그대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도록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새벽, 저녁 예불과 세끼 식사 시간만 지키면 된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동해까지 3시간 40분.
고속도로의 로망. 휴게소.
버터를 발라 철판에 익힌 알감자도 먹고 옥수수도 뜯어가며 설레었다.  
동해는 당연히 종착점이겠지 하며 멍 때리며 
중간에 사람들이 모두 내리는데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불안함도 없었나. 이렇게 대단한 낙관주의. 단세포. 

종착역에 내린 곳은 삼척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며 눈에 보이는 대로 관광안내소를 들어갔다. 
'저 삼화사에 가는데요'
'그럼 동해서 내리셔야지....왜 여기서 내리셨어요.'
그러게 나도 어이다 없다. 이 무한한 낙관주의.
결국 근처 정류장에서 21-1번 버스를 타고 부평파출소 건너 12번대 버스를 타란 정보까지 들었다.
기사 아저씨에게 목적지를 확인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부평 파출소 정거장은 없었다.
중심을 잡으며 기사아저씨게 다가가 확인한 바.
'아니 한참 전에 지났구만, 간판 못봤드레?' 
결국 부평파출소가 나타나면 알려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은 내 잘못.
 
다시 돌아가 묻고 물어 버스 탑승. 이번엔 무사 안착.
살살 배는 고파오고 아무래도 삼화사까지 가는 버스는 오래 전에 끊겼을 듯한 불길한 예감.

노점에서 오뎅하나를 막 빼어먹고 돌아서는 아저씨게 물었다.
'저..삼화사 가려면 어디서 버스를 타야해요?' 
'이 시간에 버스 없을 거래요. 나도 삼화사 다니는 사람인데...
나도 마침 내가 무릉계곡까지 가는데 데려다 줄수 있더래요.'

아 염치 불구하고 아저씨 봉고 트럭에 탔다. 
붕어빵도 건네주니 역시 두마리 덥석 물었다.

'난 나쁜사람 아니니까니 안심하더래요.'
'여기가 쌍용 시멘트래요. 이거 세계에서 젤 큰그래요.'
'인제, 춘천,화천. 이런데가 춥지 해안가는 괜찮드래요.'
'수행하는 분인줄 알았더래요. 근데 수행하는 분도 아니면서 이 시간까지 절에는 왜 가드래요?
대단히 복잡한 일을 하시나봐요. 여기까지 와서 머리를 식히려는걸 보니'
'아 그렇게도 절에 오기도 하나보더래요...'

이 시간에 젊은 여자가 대체 절을 왜 가는지 무척 궁금해하며
졸지에 사연 많은 여인이 되었다가, 잘못 내려 밤거리를 헤매는 서울 여자가 되었다가,
이도 저도 아니고 절에 놀러 온 여자로 결론 날 무렵. 도착한 무릉계곡.
새해 전전날을 우울함 가득안고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밤을 세울 뻔 했으나
동쪽에서 귀인을 만나 다행스럽게 피할 수 있었음을 감사드렸다.  

자그마한 터에 옹기종기한 건축물을 발견하고 드디어 안도한다.  
비로소 산 그림자를 넘어 보이는 맑은 별빛 하며
처마 밑의 매달린 풍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어둠만이 고요한 가운데 창호지 사이로 불빛이 어슴프레 비쳐오는  곳.
나는 여기서 이틀 밤을 오롯이 보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