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특정 상품이 갖는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가 이런 조건 속에서 가치의 일부를 (이윤이라는 딱지를 붙여) 가져가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자의 시간을 빼앗는 방법밖에 없다.
-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사라.
- 인간이라는 존재를 기업의 이윤추구라는 목적에 철저하게 종속시켜야 하는 자본가로서는 '영혼'을 가진 규격외 노동자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영혼을 지닌 사람은 타인의 목표와 사정에 자신의 삶을 종속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 다양성이 배제된 사회에서는 그 어떤 변화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모색하다가, 삶에서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한 인간의 모습이 이러한 것을. 물론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삶을 내가 진정 원하는 시간으로 채우니 하루하루가 보람차고 행복했다.
- 무경쟁 환경을 통해 생존 가능한 블루오션 생태계가 조성된다.
-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이 행복한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행복을 보며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운다.
-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느낌을 아는가? 감히 얘기하는데, 나는 안다. 매일매일 작가로서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나 스스로 통제한다. 이 해방감과 충만함을 맛본 사람은 다시 시간의 노예로 돌아갈 수 없다.
- 인생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에 나는 항상 돈이 아닌 시간을 선택했다.
3-4년 전 쯤 회사를 그만두고, 투자 받아 기세 좋게 창업 했던 일도 접고,
소속도 애매한 상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생활이 있었다.
'먹고사는 일이 해결 되도 지금 하는 일을 할거니?' 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다.
별 망설임 없이 yes라고 했었다.
직장에서 월급 따박 따박 받는 생활을 포기하는게 쉽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쉬웠다.
병가를 2주 가량 낸 기간동안 월급은 한달의 내 시간을 맞바꾼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해 졌기 때문이다.
그 짧은 기간에 나는 회사에 있지 않은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가능성을 봤다.
지금은 나라는 브랜드로 일인기업 대표이고
불안하지만 곧 열릴 꽃봉오리라 생각하고 처절한 생존중이다.
어느날 로또 일등으로 당첨 되어서 먹고 사는 일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해도
나는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성찰하거나 성찰하게 하는 코칭을 하고,
개인이나 기업이 자기다움을 찾도록 돕고,
딴진과 뻘짓을 기획하고, 놀이하는 인간으로 살 것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엄청 맛있는 밥을 잘 사주는 선배가 될 것이다.
시간의 주인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꿈을 아직까지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