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림 그리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의자에 앉아 그림을 째려보며 한참을 있다 지치면 잠을 자기 시작한다. 한 두 시간 자고 일어나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않고 벌써 몇 시간이 흘러가서 시간은 돈이라고 속으로 말한다. 마지못해 일어나 그림을 끌적거리면서 발작적으로 비명을 가끔 지른다. 어쩌다 영감이 떠올라 기분이 좋을 때도 비명을 지른다. 그것은 그림 그리기가 졸라게 어렵기 때문이다."
10년쯤 전 박이소씨 유작전에 갔다가 그의 작업노트에 있던 글을 발췌해 옮겨놓았다. 사진을 통해 본 작가는 모범생의 외모를 가졌기에 다소 과격한 표현이 의외였다.
작가라는 사람의 작업노트에 휘갈기듯 고백한 그림 그리기의 어려움에 위안을 받았다. 글쟁이는 아니어도 내 생각을 담은 똑부러진 글을 잘 쓰고 싶었던 나에게도 글쓰기는 졸라게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이소 작가처럼 뭔가를 써야할 때는 한참을 멍때리다가 잠도 잤다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영감이라는 그 분이 내려오신다. 그러면 나도 발작적으로 좋아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아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기쁨은 고통에 비례한다.
2.9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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