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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 인터뷰

생과 사를 묵묵히 돌파하는 남자,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를 만나다 by퍼스널브랜드PD 박현진


생과 사를 묵묵히 돌파하는 남자,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를 만나다

by 퍼스널브랜드PD 박현진 



새벽 응급실 응급외상환자가 실려왔다. 밤 늦게 연락받고 달려와 참담한 현실을 만난 보호자는 망연자실 울고만 있다. 응급센터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의 한 의사가 보호자에게 다가온다.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긴장묵직한 진중함이 섞인 어느 의사의 목소리.
그 한 마디의 여운이 깊었나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나중에서야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 의사가 이국종 교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국종 교수는 MBC 의학드라마 '골든타임'의 등장인물 '최인혁' 교수의 모델로, 2011년 1월 '아덴만여명 작전' 당시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총을 맞고 생명이 위태로웠던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증외상환자를 주로 집도하는 그는 EBS 다큐멘터리 '명의 3.0', MBC 다큐멘터리 '골든타임은 있다' 등을 통해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사단법인 1090평화와통일운동 TEK 봉사단 멤버이기도 한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센터장 이국종 교수를 만났다






Q: 중증외상환자들이 일반 환자들과 많이 다른가요?
이런 환자들은 보통 밤에 많이 발생해요. 매우 곤란한 상황이에요. 밤이 되면서 꺼졌던 모든 것들을 다시 켜야 하니까요. 중증외상환자들은 거대한 중장비, 즉, 커다란 시스템이 움직이는 거에요. 예를 들어 ‘응급환자’도 일반적인 응급환자는 치료받고 약 받고 아니면 주사를 맞고 퇴원하는 거죠. 약물로 치료하는 건 의사 한 명이 해결할 수 있어요. 중증외상환자들은 수술 시스템을 돌려야 해요. 수술 방의 장비, 기계도 켜야 하고, 집도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마취과 의사 등 다른 인력들도 투입 되야 하고요. 병원이라는 하나의 큰 시스템을 다시 작동시키는 거죠. 중증 환자 한 명을 치료할 때 수술을 하느냐 안 하느냐 그 차이가, 곧 병원 하나의 시스템을 움직이느냐 안 움직이느냐의 차이가 되는 거죠. 중증환자는 조직이 으깨지고 터진 상태에서 수술하기 때문에 수술의 강도가 무척 세요. 자동차가 고장 나면 부품을 바꾸면 그만인데 사람의 내부장기는 그럴 수 없잖아요. 다 부서지고 끊어진 걸 어떻게 해서든지 치료를 해야 하고. 그러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어요.



Q: 어떻게 중증외과를 선택하셨나요?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외과로 갔어요. 같이 하자 그러더라고요 전망이 좋은 학과를 갈까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성격이 급하니까 차분한 내과 의사는 전혀 안 맞는 것 같고, 성형외과 쪽도 마음이 있었는데 저 말고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겠다 싶더라고요. 아버지가 6·25 때 지뢰를 밟아 눈과 팔다리에 부상을 입은 장애2급 국가유공자인 이유도 있었고요. 



수술직후 바로 약속장소로 들어온 이국종 교수와는 도시락을 먹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이국종 교수



Q: 의사로서 수술을 하는 훈련은 어떻게 하나요?
외국 유학 다녀와서 제 방법대로 외상수술을 하니까 연세 많으신 교수님들이 혼을 냈어요. 의사들이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그런데 그게 의학의 본질을 지키는 safety line같은 거에요. '젊은 의사들이 함부로 이상한 짓을 하면 안 된다.'라는 말과 같아요. 왜냐하면 어떤 수술방법이나 치료, 약물 같은 게 검증도 확실히 안 되어있는데 젊은 의사가 한두 번 해보고 훨씬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생각하고 함부로 쓰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교과서적인 치료 원칙에서 함부로 벗어나면 안 돼요.
우선 기초와 기본을 탄탄히 쌓은 다음에 나중에 숙련이 되었을 때 자신만의 form을 만들어야 해요. 기본도 안 된 상태에서 처음부터 자기 멋대로 수술하면 처음엔 실력이 늘어나는 듯 하다가 나중엔 더 이상 늘지 않아요. 처음부터 자기가 직접 수술을 집도할 순 없고, 많은 윗사람들의 수술을 보고 배워야 해요.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는 거에요. 제대로 적성을 찾지 않은 채 '나는 외과의사가 되어야겠다.'라고 함부로 생각할 수도 없고요. 공부하고, 쉬지 않고 윗사람 수술에 수술보조로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혼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면서 배우는 거죠.
한 사람의 의사가 만들어지기까지 5-8년이 걸려요. 외과 쪽은 더 길어요. 손으로 자기 손에 감각을 익혀야 하니까. 내과 의사들은 공부를 많이 하고 환자 외래진료만 보면 되는데 외과 의사들은 그게 기본인데다가 남의 몸에 칼을 대는 거잖아요. 만만치 않죠.


Q: 가장 인상 깊었던 환자가 있나요? 이를테면 첫 수술을 맡은 환자거나…
‘첫 수술’의 느낌, 그런거 없어요. 얼떨떨한 상태에서 투입이 되니까. 석 선장님 기억에 많이 남죠. 그런데 사실 돌아가신 분들이 더 기억에 남아요. 속된 말로 아주 미치겠어요. 간 기능 해결하면 콩팥기능 망가지고, 그 다음에 폐가 망가지고, 폐 기능 해결했다 싶으면 갑자기 감염성 병균 때문에 고생하고….
누군가 죽는다는 건 언제나 고통스러워요. 어떤 환자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브도 반납하고 심지어 신정, 연휴도 쉬지 못하고 매달렸거든요. 그런데 돌아가신 거에요. 몸이 힘든걸 떠나서 심적으로 괴로워요.




Q: 환자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세요?
통상적인 의사들이 하는 일과는 많이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사전에 환자들과 교감을 나누잖아요. 누가 수술할 의사인지 미리 서로의 신상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기본적으로 의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죠. 저에게 오는 환자들은 중증 외상 환자이기 때문에 의식이 없이 와요. 저와 교감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에요. 환자 보호자 분도 절반은 연락이 안 되고 나중에 연락되어도 수술중인상태이고 수술을 마쳐도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요. 저하고 교감을 나눌 정도면 저에게 올 분들이 아니죠. 제가 하는 소통이라면 일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듣는 거죠. 





Q: 20년간 의사로서 사셨는데, 시간을 견딘 지혜가 있다면요?
하루하루를 살아냈어요. 주어진 일을 하면서. 힘들긴 힘들어요. 죽을 만큼. 이거 말고 다른 일들도 다 힘들잖아요. 환자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많지 않아요. 그 외 다른 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도 많죠. 사직서를 품에 넣고 다니는 거? 그것도 사실은 사치에요. 어떻게 자기가 그런걸 가지고 다닐 수가 있어요? 짤리는거지.



Q: 의사로서 최고의 때는 언제인가요?
지금이 절정이에요. 수술 실력도 그렇고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엔 노안이 와서 좀 힘들어요. 이제부터 점점 체력이 떨어질 거에요. 지금이 마흔 일곱이니까 앞으로 5년 후까지만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어느 외과의사나 나이가 들수록 스킬은 늘지만 체력이 점점 안되잖아요.



Q: 교수님을 이 자리에 있게 한 멘토나 스승이 있나요?
주위 사람들이 다 멘토예요. 저는 오히려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제일 많이 배워요.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요. 의사와 간호사의 직급이 위, 아래로 구분되는 게 아니에요. 하는 일이 다를 뿐이죠. 일하다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아요. 어떤 간호사는 임신 8개월임에도 불구하고 헬기 출동을 마다하지 않아요. 그리고 경기소방 항공대 파일럿 분들 비행하다 보면 위험한 상황이 많아요. 헬기가 번개에 맞아 불시착을 마주할 때도 있고, 정말 목숨을 걸고 일해요. 각자 바쁜 일을 하면서 동료가 헬기 타고 출동할 때 다들 나와서 이륙하는 거 봐주고 그런 끈끈함이 있어요.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이고 멘토에요.



Q: 의사를 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에요?
환자분들 살아서 나갈 때 매번 그런 생각이 들죠. ‘의사 하기 잘했다.’ 라기 보다는 기쁜 거죠. 심장이 멎은 상태에서 심장 마사지를 해가며 수술 방에 들어가요. 정말 끌고 들어간다는 표현을 써요. 세상에 아무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환자와 저 딱 둘이 있어요. 제 손에서 끝을 내야 해요. 제가 밀리면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제가 좀 더 잘하면 환자가 살 수 있는 두 가지 상황밖에 없어요. 어떤 분은 극적으로 회생하거든요. 그러면 지옥에서 끌어올리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이 사람은 살았구나 하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만 저희가 하는 게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사실 의사라는 직업이 저라는 그릇으로 담기엔 너무 큰 일이에요. 남의 목숨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잖아요. 부담감이 커요.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세요. “별 볼일 없는 수많은 의사들 중에서도 네가 참 하바리인데, 그런 별 볼일 없는 네 주제에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 정도 임팩트를 낸다는 자체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하세요.



Q: 1090 평화통일운동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통일을 할 땐 마음이 통해야 하잖아요. 북한에서 스스로 ‘우리의 사회보다 남한의 사회가 더 좋아.’라고 스스로 느끼게 해줘야 하는데 제일 좋은 게 의료에요. 왜냐하면 의료가 제일 노동집약적이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섞여서 일하기가 제일 좋은 곳이기도 하구요.
아주대 의료원 이 좁은 면적에서 3,000명이 일해요. 그래서 통일을 준비할 때 의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대북의료지원은 약과 의료장비를 보내주는 식이었어요.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장비가 없는 일반 병실은 그저 숙박시설에 지나지 않아요. 남한식 병원을 북한에 지어서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곳에 남한 의사, 북한 의사, 남한 간호사, 북한 간호사 절반씩 배치해서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남한 의사들이 직접 진료하고, 수술을 잘 해서 환자를 살려내면 분명 소문이 일파만파 커질 거에요. 그 시스템 안에서 남한 사람들이 뭘 입고, 뭘 먹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병원 안에서 다 볼 수 있을 거에요. 그게 제가 의사로서 제안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Q: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김훈의 칼의 노래요. 한 글자도 놓고 싶지 않아요.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희망이 없는 세상을 희망 없이 돌파하는 한 사내의 이야기.’라고 저자가 직접 쓴 글이 있어요. 희망을 별로 떠들지 않고, 희망을 말하지도 않고, 세상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세상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이요. 누구에게나 다 적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창한 사명이 아닌 거죠. ‘그렇게 희망이 다 없어진 가운데에서도 조금씩 돋아나는 또 다른 희망의 새싹을 얘기하고 싶었다.’ 이런 문장도 기억에 남아요.



Q: 요즘 청년세대가 희망이 없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런 청년들에게 들려줄 말씀이 있으신지?
더 열심히 해야 해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아요. 유사 이래 청년들이 힘들지 않다고 한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청년들이 자기들 뜻대로 다 해 본 시절도 없었어요. 먹고 살려면 자기 몸 움직여서 뭘 해야죠. 누군가가 잘 되는걸 걸 보면서 괴로워할게 아니라, 그렇게 된 이면을 볼 줄 알아야 해요. 그 사람은 뭔가 쌓인 게 있고, 더 노력한 게 많을 거예요. 외국어 스펙이 서너 개가 필요하다 싶으면 하면 되는 거에요. 왜냐면 쌓아놓은 실력은 어디 가질 않으니까요. 중국사람들에게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표현이 없대요. 남과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남겼다. 타인의 삶이 멀리서 보면 멋지고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그 가까이에는 미처 몰랐던 힘겨움과 고난이 가득 숨겨져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라마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될 정도로 유명한 의사라는 명성 이면에는 수면부족과 과로로 인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현실의 의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응급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므로 병원 반경 1km를 벗어나지 않는 사명감이 가득한 의사였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오늘도 묵묵히 삶을 걷는 의사. 대한민국에 이런 의사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함께한 인터뷰이 (호창생략) 좌로부터 장근우, 박현진, 이국종, 조연심



사진: 심재창 포토그래퍼 

인터뷰: 1090 청년분과 조연심, 박현진, 장근우

인터뷰 글 정리: 최유정, 이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