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국민을 알의 세계로 전도한 TV프로그램이 있다.
얼핏보면 바둑 대국을 펼치는 장면 같지만 똑 떨어진 1:1 비율의 가리마를 타고
게다가 어깨까지 오는 생단발머리를 한 최양락의 방정맞은 해설하며
규칙적인 배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흑백이 어지럽게 흩어진 대국판. 이거 뭔가 수상하다.
더군다나 바둑판 위의 알들이 튕겨질때 쯤 시청자들은 뒤집어지고 만다.
유명 연예인이 나와 시종 심각한 표정으로 손가락 운동을 하고 있으니.
이 프로의 웃음은 바로 심각성에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은 아무런 강제행위가 없다는것이 아이러니다.
말을 한다고해서 벌칙을 받거나 패널티를 당하지 않는것이다.
개그프로라 할지라도 대국규칙과 전문용어가 존재한다. 흑,백 8개의 알로 대국한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알은 튕겨서 상대의 알을 먼저 전부 떨어뜨리면 이긴다.
왼손 오른손 구분은 없으며 어떤 방법을 써도 튕기기만하면 된다.
여기서 알까기만의 전문용어가 있는데 이른바 꽥, 논개타법, 일타쌍피, 떡상태가 있다.
꽥은 상대알은 쳐보지도 못하고 자기혼자 튕겨나갔을때의 처참함을 한마디로 표현한것이고,
논개타법은 흰알 검은알 동시에 떨어져나가 내가 죽더라도 너를 죽이겠다는 처철한 수이고,
한개의 알로 상대의 알 2개를 떨어트리니 가장 고난이도의 승리타법이고
떡상태는 소심한 튕김질로인해 떡처럼 찰싹 붙어버린 처참한 상태를 이름이다.
해설사의 과장된 목소리와 함께 화면에 떠있는 팝업글자들을 보고 있으면
그럴싸하게 만들어낸 알까기 용어에 감탄을 하게된다.
이 개그프로가 만들어진 과정을 생각해봤다.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가 프로기사들의 바둑대국을 시청했다.
바둑대국을 패러디해볼까?
'바둑을 두지 않고 깐다.' 가 패러디의 핵심내용으로
나머지 전문용어, 경기형식, 주변상황은 모두 같다.
구체적인 기술이 필요없는 행위를 '프로알까기'로 포장하면
웃음이 가신 상태의 심각한만 남는다.
카메라는 심각한 표정의 선수들이 알을 까는 장면을 잡는다.
그래서 심각하게 웃긴다.
바둑을 두지 않고 튕긴다.는 게임의 규칙을 정한 후
이 모든 내용이 나왔을것이다.
핵심컨셉 하나만 잡으면 나머지는 술술 풀리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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