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실험실에 있는 것을 견딜수가 없으니 관심은 과생활 밖으로 향했다.
한창 대학 동아리에서도 신입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선배들을 따라 동아리 순례를 하는데
유독 봄바람에 실려오는 향을 따라 움직인 곳이 서예동아리방이었다.
벽에 는 연습한 글을 걸어 놓은 화선지가 날렸고, 한쪽에선 먹을 갈고 있었다. 그 향에 반했다.
사실 서예 자체가 좋았던건 아니고 사람들이 좋았다.
수업 끝나면 바로 동아리방으로 가서 수다를 떨거나
날적이라 이름불리는 공용 낙서전용 노트에 글을 적었다.
한 감성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누군가는 그날의 감상을,
마음에 담고 있는 고민을 적었고, 누군가는 답을 했다.
나도 글 쓰고 답하는걸 즐겨했다.
전공수업에서 도피하듯 동아리 방에서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과 수업은 고등학교의 재판이었다.
10대의 아름다울 한 토막을 뭉텅 고스란히 날려보낸 수학 시간.
그 때의 상실감을 스무살에 와서도 반복하고 있었다. 한 학기를 어떻게 견뎠나 모른다.
그렇게 여름 방학을 지나고 목적없는 휴학을 한다.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하는지 고민한다.
그 와중에 그림은 한번 그려보고 싶어서
대학부설 평생교육원 취미미술반에 등록해서 그림도 배워본다.
그때 아크릴, 유화라는 그림 도구들도 접하게 되고 누드화도 처음 접한다.
(몇년 후 이 때 모델이 되었던 언니와 재회할 일이 생긴다. 세상은 좁다.)
- 위 사진은 본 내용과 아무관계 없음 -
꽃그림을 즐겨 그리는 청담동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스무살의 방황하는 휴학생이 들어있다.
내가 생각하는 잘 그리는 그림은 사물을 보고 똑같이 그려내는 수준이었고, 그것을 욕망했다.
평생교육원 수업을 맡은 교수님은 현직 추상화가였기 때문에 나에게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을 그리라'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해댔다.
결국 미대 입시 준비를 하던 친구를 꼬셔 그에게 소묘를 사사받는 것으로
내가 그리고 싶어하는 그림을 알게되고 자연스레 일요화가 코스프레 생활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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