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1차가 연필소묘, 2차는 혼합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색체였다.
2차는 3일간 치뤄야했다.
요즘 입시도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는 꽤 파격적이었다.
시험 자체가 난이도가 높았기에
첫해에 6개월 만에 1차를 통과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첫번째 실기를 보고 나온 내 실기 수준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이나 얼굴이 화끈하다.
주제는 '본인의 손을 중심으로 현장 공간을 연출해 그리라'는 것이었다.
소묘를 겨우 할 줄 아는 실력으로 공간연출이라니.
말도 안되는 그림을 그리고 당연히 1차도 떨어졌다.
2년은 준비해볼 요량으로 시작한터라 바로 내년 시험을 준비한다.
한 해는 빨리도 돌아와 입시 현장.
두번째 나타나자 시험 감독하러 들어온 조교님이 늘었네요. 라고 아는체를 한다.
조교가 알아볼 만큼 실력은 일취 월장한다.
가볍게1차 통과. 그러나 2차의 혼합재료를 다루기에는 어설펐다.
2차에서 똑 떨어진다.
'고흐의 사진을 보여주고' 올드팝 '빈센트'를 들려주고
3일간 6장의 그림으로 스토리텔링하라.
스토리는 기막히게 만들었다. 손이 못따라줘서 그렇지.
2차 면접을 통해 스토리를 설명하는데,
그제서야 내가 뭘 그렸는지를 파악한 면접관의 안타까운 눈빛을 읽는다.
실기력을 올려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 시험을 볼 때 조교가 이제는 먼저 와서 아는체를 한다.
'현진씨, 정말 많이 늘었네요.'
연속 세번 실기장에 나타난어느 집념의 학생이 눈에 띄었겠지.
그래 나도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세번째는 힘들었다. 학원비용도 많이 배려를 해주어
부담을 덜었음에도 재료비는 벌어 써야 했기에.
결론적으로 휴학생 신분으로 치른 세번의 입시는 실패했다.
세번까지 가볼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에 선택한 사항이고
이 일을 하게되면 예술을 즐기면서 생활도 할수 있을 거란
막연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름으로는 여러 경로로 수소문해
2,3학년에 재학중인 선배들을 찾아가 그림 평가를 받아보기도 했고,
이미 무대미술 분야의 직업을 갖고 있는 졸업생을 찾아가 상담을 청해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지금 갈길을 찾고 있다면 나처럼 그 분야 선배를 찾아가 인터뷰를 해보라.
300프로젝트의 인터뷰 시도를 나는 이때부터 시도했었다.)
정말로 간절했다면 아마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라도
강남의 명문으로 소문난 입시미술학원에 합숙이라도 하러 갔을 것이다.
집착은 했지만 집요하진 못했다.
누구는 배수진을 치고 죽기살기로 덤빈다지만 내 생에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정도 했으니, 난 할만큼 했다라는 약간의 미련이 남는 정도까지
무려 세 번의 시험을 보고서 마무리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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