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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랜드 칼럼

당신이 살아있다는걸 어떻게 증명할테요? 당신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자기다움'을 펴낸 권민씨가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이다.불편하다. 어떻게 증명할까? 살아있었을 내 시간을. 그래서 생각해봤다. 내가 살아있었다고 믿는 어느 해로 돌아가보자.2009년 10월, 나는 살아있었다. 그때 나는 순례길로 알려진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떠났다. 15kg 가까운 배낭에 침낭과 온갖 짐을 다 지고 몸 하나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익숙한 공간에서 3주 이상을 떠나 익숙하지 않는 방식의 여행을 선택했다.관광에 쓰는 시간보다 쉬는 일이 많아야 하는 여행이었다.그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느리지만 내것을 만들어가는 여행이었다. 땀 범벅이 될만큼 걷고 신발 밑창과 발바닥이 붙은 느낌이 들때쯤 그날의 걷기 일정은 끝난다.내 짐 무게의 반 이상은 넷.. 더보기
[나쓰기 #6] 돌아가는 길을 발견하다 결국 입시에 3번 실패하고 결론을 내야 할 때가 왔다. 대학 졸업장을 위해 공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고졸학력을 갖기도 싫었다. 고민했다. 궁지에 몰리면 별 아이디어가 다 떠오른다. 미술학원에서 내가 다니는 대학 실기를 준비하는걸 봤다!. 우리 대학에도 미대가 있다. 과를 옮기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실기력은 입시한만큼 쌓였으니 실기 테스트가 있다면 응할 마음도 있다. 2학기 등록기간을 앞두고 전과를 필사적으로 알아보았다. 최소 1년 이수의 학점이 필요했다. 한 학기 21학점을 공대 수업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미대 수업을 듣고 싶었고, 학칙을 보니 전공 선택은 타 학과생에게도 열려있었다. 21학점 7과목을 모조리 조형대학 전공 선택과목으로 채운다. 학점상으론 2학년이 안되지만 2학년 수업에 들어갔다... 더보기
[나쓰기 #5] 집착하되 집요하지 못한 시험은 1차가 연필소묘, 2차는 혼합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색체였다. 2차는 3일간 치뤄야했다. 요즘 입시도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는 꽤 파격적이었다. 시험 자체가 난이도가 높았기에 첫해에 6개월 만에 1차를 통과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첫번째 실기를 보고 나온 내 실기 수준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이나 얼굴이 화끈하다. 주제는 '본인의 손을 중심으로 현장 공간을 연출해 그리라'는 것이었다. 소묘를 겨우 할 줄 아는 실력으로 공간연출이라니. 말도 안되는 그림을 그리고 당연히 1차도 떨어졌다. 2년은 준비해볼 요량으로 시작한터라 바로 내년 시험을 준비한다. 한 해는 빨리도 돌아와 입시 현장. 두번째 나타나자 시험 감독하러 들어온 조교님이 늘었네요. 라고 아는체를 한다. 조교가 알아볼 만큼 실력은 일.. 더보기
[나쓰기 #4] 질풍노도 가벼운 노동으로 견디기 마침내, 뭔가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그림을 그리자. 그런데 입시미술은 안되겠다. 종합적인 예술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용케 찾아낸 것이 '무대미술'이라는 종합 장르의 예술이었다. 희곡을 읽고, 시각적으로 해석해서 공간을 상상하고, 연출과 배우와 조명과 소리와 무대위의 소품과 조화를 이뤄내고 그러려면 그림을 그릴줄 알아야겠지. 아무것도 모르던 때는 저 일을 하려면 일차적으로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가르쳐 주는 학교를 가야 하는구나. 딱 두군데 있었다. 관련 경력이 2년 이상 있어야 하는 무대미술 아카데미 그리고 일반 대학과 비슷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내가 도전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곳은 후자였다. 실기시험을 보고 그걸 통과하면 되는건가?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6개월간.. 더보기
[나쓰기 #3] 스무살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도저히 실험실에 있는 것을 견딜수가 없으니 관심은 과생활 밖으로 향했다. 한창 대학 동아리에서도 신입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선배들을 따라 동아리 순례를 하는데 유독 봄바람에 실려오는 향을 따라 움직인 곳이 서예동아리방이었다. 벽에 는 연습한 글을 걸어 놓은 화선지가 날렸고, 한쪽에선 먹을 갈고 있었다. 그 향에 반했다. 사실 서예 자체가 좋았던건 아니고 사람들이 좋았다. 수업 끝나면 바로 동아리방으로 가서 수다를 떨거나 날적이라 이름불리는 공용 낙서전용 노트에 글을 적었다. 한 감성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누군가는 그날의 감상을, 마음에 담고 있는 고민을 적었고, 누군가는 답을 했다. 나도 글 쓰고 답하는걸 즐겨했다. 전공수업에서 도피하듯 동아리 방에서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과 수업은 고등학교의 .. 더보기
[나쓰기 #2] 은행잎의 징코산을 추출하라굽쇼? 미래 희망 '직업'을 써서 내라. 3순위까지. 공교육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씩 받아봤을 진로조사. 중학교 1학년 14살. 나는 설문조사란에 '시인'이라고 적었다. 나머지 2,3순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적어낸 대부분은 과학자, 교사, 약사, 회사원이 대부분이었을터. '시인'이라 적어 낸 눈에 띄었는지 담임 선생님은 '우리반에서 시인을 직업인으로 쓴 애는 너 뿐'이라 했다. 이즈음의 또래 소녀들이 그렇듯 나도 그런 소녀였다. 한국 단편 소설집을 읽고, 시를 읽고, 봄에는 꽃잎을, 가을에는 낙엽을 주워다가 책갈피에 끼워넣는. 웃음 많고 수다 많던 소녀였다. 그 아이가 '시인'을 이라고 적은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살 수 어른이 될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서이지 않았을까? 6년 후 스무살.. 더보기
[나쓰기 #1] 내 거짓말을 찾아봐 나에 대해 100개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과연 100가지가 나올까 지금으로서는 염려가 되지만 한 번 파보기로 결심한다. 땅 파듯 야곰야곰 파나가다 보면 천연암반수 터지듯 이야기 거리가 나올지도 모를 일.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수많은 선택이 있었고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나다. 일상에 묻혀있던 순간의 선택을 추적해 보기로 한다. 추적은 게임의 형식을 빌린다. 나에 대한 소개를 9가징 팩트로 나열한다. 딱 한 가지 거짓말을 채워 넣는다. 거짓말 찾기 게임이므로 거짓말은 찾기 어려울수록 게임의 흥미도 높다. 다른 이들이 그 교묘한 거짓말을 찾기 위해 유도 질문을 한다. 거짓말을 찾느라 대화를 나누며 미쳐 알지못했던 거짓말쟁이의 모습를 발견한다. 게임에 시동을 건다. 여행사에서 근무할 당시 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