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여행칼럼

[월간 VIVID BNT] 굳은살이 구원이었다


[여행문화기획자 박현진 컬럼]
굳은살이 구원이었다
-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여행

흡사 인어 공주에게 내린 마녀의 저주라고나 할까?
“왕자를 만나는 방법을 알려주지. 인어의 지느러미 대신 육지로 나갈 수 있는 다리를 주마. 대신 너는 지금 이 순간부터 한마디도 말도 할 수 없다. 또한 발을 디딜 때마다 칼로 베이는 듯한 지독한 통증을 느끼게 될 거야. 그렇게라도 이 마법을 받아들일 테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거짓말처럼 와 있었다.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 3대 성지로 공인받은 곳으로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약 800㎞의 거리 곳곳에 1천800여 개의 기독교 유적이 늘어서 있다. 대부분 한 달을 오롯이 걸어서 간다. 몇 년 전부터 도보여행지로 각광받으면서 종교적인 순례목적뿐 아니라 자기 발견을 위한 순례여행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 공주에겐 사랑이라는 강력한 동기부여라도 있었지. 나는 만날 왕자도 없으면서 내 발바닥 전부를 물집에 내어주고야 말았다. 오,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뼛속까지 깊이 스며드는 짙은 고통!!! 게다가 나의 모국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 스페인의 시골구석에서 외로웠다. 왕자를 만났어도 말 한마디 못하는 인어공주 사정과 다를 게 뭐냐. 동화 속 마녀의 저주가 시공을 초월해 나에게도 적용되다니.

아침에 일어나 밤새 내 체온을 지켜준 침낭을 배낭에 고이 접어 넣고 출발한다. 온종일 걷는다. 육체의 에너지가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날 몸을 뉘일 수 있는 숙소가 보인다. 밥을 먹고 씻고 잠을 자고 나면 다시 새로운 하루를 견딜 힘이 생긴다.
화상이나 마찰열에 의하여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물이 집중되는 것이 수포 물집이다. 불난 곳에 물을 뿌리는 것과 같이 육체의 위험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자연의 섭리다. 아프니까 더는 무리하지 말라는 몸의 시위. 혹은 애원. 그러나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매일같이 걸어야한다. 늘 머리 속 한 구석은 ‘발이 아프다'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아픈것이 만성화 되어 고통에도 무뎌져 간다. 육체의 고통이 더 이상 정신을 지배하지 않을 때 조금 진지하게 순례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놀라운 발견을 했다. 물집이 생겼던 자리가 아물고 굳은살로 자리 잡았다는 것. 내가 멀쩡히 잘 걸을 수 있었던 건 뛰어난 정신력을 가져서도 고통에 익숙해져서도 아닌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준 이 굳은살 덕분이었다. 미용상으로도 보기 좋지 않아 늘 제거의대상이 되어야 했던 굳은살. 그것이 이 길에서는 나를 오롯이 걷게 해준 구원인 셈이었다.

인생에서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물집을 만들어내 고통으로 경고한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때 우리의 물집은 또 다른 역할로 변모한다. 스스로 굳은살로 진화하여 더는 예전과 같은 충격으로 상처받지 않도록 견고하게 보호하는 것. 굳은살은 영광의 상처이자 삶의 흔적이 아닌가. 

어쩌면 나는 앞으로의 삶에서 나는 물집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고통을 견디기를, 아픔의 흔적을 갖되 더는 아픔에 지배당하지 않기를, 그래서 한 뼘 더 성장하기를 원할 것이다. 굳은살이 만들어지는동안 나는 속으로 나와의 대화를 나눈다.
나는 왕자를 만나는 대신 이런 성찰을 얻었으니 마녀와의 거래는 소득이었다. 왕자와 이어지지 못한 인어공주는 거품을 선택했다. 나라면 걸음걸음 고통을 견디면서 끝내 단단한 굳은살을 만들어냈을거다.


글,사진 박현진 (www.sentipark.com)




이글은 김경호의 VIVID BNT News International 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