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31
팜플로냐-레이나 : 23.5km
오늘은 페르돈 고개를 넘어야 한다.
길은 평탄하고 오늘의 날씨는 덥다.
수확을 다 끝낸 밭은 황토빛 일색이고 하늘은 맑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눈인사를 나눈 순례자와 말을 걸어온다.
호기심이 가득 담은 표정으로.
이 길을 걷는 스페인 사람들은 몹시도 궁금해했다.
동양 여자들이 어떻게 알고 이곳 까지 왔는지.
너는 이 길을 왜 걷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오지만,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걷고 싶어서라는 늘 하던 말 대신 오늘은 다른 말을 해본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봤어. 그리고 이곳으로 왔지."
한 달의 휴가를 내고 생활하기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서 이곳으로 온 이유?
'그냥' 대신에 이유를 꼭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700유로 달랑 들고 20여일을 지내기에 산티아고는 적합했다.
일상의 반복으로 익숙해진 게으름을 비우며 몸으로 견뎌내는 여행을 동경했다.
드디어 '거친섭생주의자'가 될 진정한 기회다.
대부분 섭생은 바게트와 과일 몇 조각의 소박한 식사였다.
그리고 국적과 인종과 언어를 넘어 '카미노' 단 한가지 단어로 모인 공동체를 겪어보고 싶었다.
평생 만날 일도 없을 그런 세계의 사람들이 카미노라는 길을 찾아 길 위에서 만나는 것.
Buen camino는 그 한마디로 미소지을수 있는 마법같은 인사다.
나의 피로회복제는 코카콜라와 에스프레소였다
걷다보면 정신이 멍해질 때가 있다.
내가 걷는지 발이 걸어지는 건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럴땐 카페인이 명약이다.
몽롱한 아침엔 에스프레소, 태양이 불을 뿜은 오후에는 시원한 콜라.
물집 잡힌 발을 힘겹게 옮기는 순례자를 위로해 주는 것은
한 잔의 에스프레소이거나, 자판기에서 갓 뽑은 차가운 콜라 한 잔일지니.
누가 알았으랴. 콜라마실 생각으로 이 고개를 넘어가게 될줄이야.
▲ 푸엔테 라 레이나. 그리고 중세의 거리가 살아 있는 작은 마을. 다리 11세기에 지은 로마교가 이 마을의 대표유적이다.
물집이 잡혔다. 진즉 잡힌 새끼발가락을 제외하고 오른 발 뒷굼치에 잡힌 물집.
굳은 살안에 잡혀있어 터뜨리기도 곤란한 위치다.
순례를 시작한지 사흘째. 이 길은 매번 새롭다.
거리마다 어느 길에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개성이 있는 곳이다.
최대한 이 길에 머물 시간을 가늠해 보니 채 20일이 되지 않는다.
이 길을 오롯이 전부를 걸을 수 없는 시간이 애석할 정도로 아쉽고 아쉽다.
언제고 이런 휴가를 또 내어 오롯이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래서 오늘 하루도 눈을 크게 뜨고 풍경을 담고, 길 위의 인연을 소중히 마음에 담는다.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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