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를 모시고 치과에 방문했다. 엄마의 치아는 치주질환을 동반한 심각한 상태로, 수십 년을 치과 가기를 두려워하며 방치하다가 치아를 모조리 빼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어서 작년에 대대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큰 수술이라 몇 군데 병원을 찾던 중 멘토 코치님께 치과선생님 한 분을 소개받았다. 치과를 운영하는 치과의 이기도 하고 코치이기도 했다.
엄마는 극심한 치과 공포증을 가졌는데, 그렇기 때문에 치아가 이 지경이 되도록 치과를 못가셨던 거였다.
"치과가 무섭다고 하셨는데, 어떤 무서움이 있나요?"
"드릴로 잇몸을 다 뚫고, 피가 많이 날거고"
"네, 그러고요?"
"혈압도 떨어질거고."
"네, 혈압이 떨어지고, 또요?"
"드릴이 입 안으로 들어와, 이빨이 부러져 튕겨 나갈 것 같고..."
"네, 그리고요?"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겠네요. 피가 막 폭포처럼 쏟아질거 같고..."
이런 대화를 주고받더니 엄마도 과장된 공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셨다. 그 선생님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된 건 '경청'을 무척 잘 하셨기 때문이었다. 경청은 알아차림이다. 환자의 말 뿐만 아니라 몸짓, 감정을 듣고 의도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수많은 환자를 치료한 노련한 경험과 코치로서의 자세가 더해져 편안한 진료를 유도했다.
작년 6개월 동안 치료했던 아랫쪽 치료가 끝나고 올 봄부터 윗쪽 임플란트를 의논하러 오늘 치과를 방문했다. 윗쪽에 본인의 치아 두 대가 남아있었는데 그 치아를 살릴 것인가 뽑을 것인가를 논의해야 했다. 다 뽑고 임플란트 처리를 하면 가장 간편한 상황이다. 만약에 두 대의 치아를 살리려면 그 치아를 피해 대안을 찾아야 하므로 치료가 좀 더 복잡해 진다고 했다. 엄마는 대답을 망설이셨고, 그사이에 나는 어차피 몇 년 후에 그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또 수술 받아야 할 것이니 첫번째 방법이 낫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내던 입장이었다. 그때 불쑥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따님의 생각하고, 엄마의 생각이 달라요. 따님 생각은 합리적인데, 엄마 마음과는 달라요. 치료방법을 결정할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순간 아차했다. 나에게 치아 2대는 뽑는게 합리적인 요소지만, 엄마에게는 이제 자신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치아 였던 것이다. 합리성을 따지느라 엄마의 마음을 경청하지 못한 것이 그제야 의식이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 두 대의 치아를 두고 고민했을 엄마를 생각해보니 이 글을 쓰는 이제와 울컥하다. 코치로서, 갈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는 날이다.
6.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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