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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생활의 발견

두번째 마라톤을 마치며 (10'23)

2016.02.28. am6:25 - pm 4:48 (10'23)

두번째 42.195 km 마라톤을 하며



내 인생에 경험할 일 없을거라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마라톤이었다.

설연휴에 얼결에 풀코스 마라톤에 참여해 

무려 11시간 넘게 '걸음'으로서 완주를 하고 난 후, 나는 매우 멀쩡했다. 

그리고 의외로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였나보다 20일 만에 다시 마라톤을 걷게 된 것은. 

이번엔 편의점을 최대한 들르지 않고, 오랫동안 한 곳에서 쉬지 않음으로 

무려 1시간을 줄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품었다.



같은 코스, 같은 시간대 였음에도 훤하다. 

그 사이 해가 조금 더 길어졌다. 

흐린 날씨여서인지 해가 뜨는걸 한참 후에 봤다.


이번에는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10키로쯤 걷고 나니 오른 고관절, 왼 무릎 관절과 발등이 아팠다.

마치 관절 마디마디가 자리를 잘못 잡을 것 같은 느낌으로. 

잠시 차를 타고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이 났으나 몸을 살살 달래며 걸었다.


한 번 지났던 길이라 길의 끝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다지 먼 길로 느껴지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았다면 정말이지 뛰었을 것 같다.





"어... 눈이 올 것 같은 날씨다. 예보에 눈소식은 없었는데..."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길 예측하지 않은 폭설이 쏟아졌다. 

약 10km를 남겨둔 지점에 있던 편의점에서는 우산도 우비도 팔지 않았다. 

이 정도 폭설이면 옷이 젖는 건 순식간이었던 나는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 가게에 들어가서 우산을 빌리는거야!"


내가 서울에서 왔다는 것도, 여기는 강원도라는 것도, 

우산을 어떻게 돌려줄 것인지도 계획에 없이 

눈에 젖은 생쥐꼴로 당당히 우산들 빌려달라는 손님을 보고 사장님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냥 구매한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을 그때는 도저히 생각을 못했다.






나와 파트너를 딱하게 본 사장님은 나에게 이거라도 쓰고 가라며 넓은 비닐봉다리를 주었다.

무려 고어텍스를 입고 우비 따윈 필요 없었던 나의 러닝메이트 새롬은

비닐봉지를 띁어 일회용 우비를 만들어 씌어주었다.


비닐봉다리에 몸을 구겨넣은 채 눈을 맞으며 걸었다.

꼴찌인 나를 위해 맨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주었던 나의  러닝메이트가 말한다.  

"눈도 오고 힘든데 그냥 택시타고 들어갈까?"

"아니"


나는 나를 그때 알았다. 

나는 이렇게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재미있어 한다는 것을, 

택시와 비닐봉다리 사이에서 비닐봉다리를 선택한 내 선택을 사랑한다는 것을,

비닐봉다리로 만든 우비를 입고 펑펑 내리는 눈을 맞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즐기는 사람이란 것을. 

그리고 일상을 여행처럼 즐긴다는 것의 의미를 안다는 것을...



PS. 나와 끝까지 함께 걸어준 새롬이 있어서 든든했다.  








2016/02/11 - [일상의 성장/생활의 발견] - 42.195km 마라톤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