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19 3

설겆이와 서글픔

주말에 집에 갔을 때였다. 늘 그렇듯 엄마가 식탁을 차리고 우리는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우리집엔 여자가 셋이다. 슬그머니 동생과 나는 설것이는 누가 할 것인가에 신경전을 벌였고, 서로 암묵적 동의하에 눈치껏 미루기로 했다. 결론은 엄마가 하게 두자. 는거였다. (참 싸가지 없는 나쁜 딸년들이다.) 밥을 먹고 물러나자, 개수대에 쌓인 설겆이를 본 엄마는 늘 같은 잔소리가 이어졌다. 먹었으면 잘좀 치워라, 다 큰 가시나들이 설것이 쌓아놓는 꼴이라니.... 아무도 없는 빈집에 외출하고 돌아와서 저걸 보면 얼마나 서글픈지 아니? 이날의 잔소리는 며칠을 내 맘을 떠나지 못하였는데, 하나의 단어 때문이었으리라. 서글프다.... 밀린 설겆이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귀찮아서 짜증나는것을 넘어 서글픔으로 채워지다니. 묘..

일상의 기록 2011.04.19

말을 잘 한다는 것

넌 경청의 자세가 부족해. 라고 둘도없는 친구가 내게 충고를 했다. 친구이니깐 이런말을 할수 있기도 했고, 친구이니까 경청을 못해주기도 했다. 말하기 좋아하고, 말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게 습관인 나에게 (친구에게 만큼은) 경청의 미덕을 살리긴 힘들어서였다. 나는 수다쟁이였다. 스스로 말을 잘 한다고 여겼고, 온갖 의성.의태어를 선보이며 희한한 비유와 흉내를 내면서 참 창조적인 말발이라고 착각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 도취되어 뱉어내는 말에 처음에는 재미있게 듣다가도 곧 지치는거다. 말을 맛깔스럽게 잘 한다는 것과 콘텐츠가 많아 말을 잘 하는 것은 참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수다를 다양한 표현의 배합으로 떠들어대는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말을 펼칠 수 있는 것..

벚꽃은 어디에 있었나

4월. 벚꽃은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은 삭막한 곳이라 벚나무 따위 심어질 리 없다고 지레 단정했다. 어떻게 하면 만개한 벚꽃 무더기를 볼수 있을까 고민했다. 주말 절정이라는 곳 찾아 벚꽃무더기 아래서 봄을 만끽하는 소소한 소풍놀이를 마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아파트 정문. 세상에! 거기에 벚꽃이 우르르 피어있었다. 매일 출근할 때 눈길도 두지 않았던 내 등 뒤로. 그렇게 조금씩 저 홀로 꽃 구름을 만들어 놨던 것이다.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생의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만 파랑새를 찾아 밖으로 떠돈게 아니다. 벗꽃은 바로 내 곁에 있었다. 행복은 저대로의 행복으로 놓여있다.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일상의 기록 201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