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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생활의 발견

숙고한 텍스트가 날개를 다는 순간

여름 한달 남짓 여행사는 전쟁이다. 지금은 대목이기 때문이다.
각 여행사 메일을 받아보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메일은 대략 이런 단어로 점철된다.
'마지막 기회' '좌석확보' '마감임박' '돌발특가'

이벤트 프로모션의 경우도 별다른 건 없다.
여행사들 몇군대만 둘러봐도 요즘 개봉한 영화가 무엇인지, 잘나가는 트렌드 드라마는 뭔지 다 알겠다.
좋은 건 잘 따다쓰자는 명분으로 패러디가 있으니 생각 적게하고 빨리빨리 돌리기에는 참 편한 방법이다.
나도 했던 업무중에 프로모션 컨셉을 정하고 카피를 쓰고 디자인에 반영하고 그럴 때가 있었는데 
합리적인 가격과 젊음을 내세우는 회사 분위기 덕에 그 방법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여행사 팝업도 마찬가지다.  위의 주로 쓰이는 단어에 무척 저렴해 보이는 숫자가 나란히 노출된다.





그런데 어느 여행사는 팝업을 이렇게 쓴다. 




문득 예전부터 카피가 예사롭지 않다고 여겼다. 이 카피는 누가 쓰는 것일까. 
속삭이 듯 말하나 오랜 고민을 담은 듯한 문구.
슬쩍 질투 날 정도다.





이 여행사 사이트 분위기가 다르다고 느낀건 이 프로모션 페이지를 보고나서였다.

처음엔 시 한구절을 인용한 줄 알았다.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 광고보드에 시기마다 선보이는 시 한 구절처럼 인상 깊었다.
봄의 싱숭생숭함을 어찌 이렇게 표현했을까. 이런 걸 표현할 줄 아는 감성에 또 질투가 난다.




하하. 젊은 처자의 마음을 어쩜 이렇게 콕 찝었나.
언젠가는 힘든 친구에게 아로마의 위로를 건네줄수 있는 팁을 건졌다.




이것은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쓸수 없는 여행자의 시선이다.
홀로 간 여행지에서 느끼는 쌉쌀한 고독과 그럼에도 저릿하게 지려오는 자유라는 해방감.
이 두가지 사이에서의 울렁거림.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았을까.
엄마랑 걷고 싶다.





잠시 머물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의 여행자.  
머뭇머뭇 아쉬운 맘에 슬쩍 뒤돌아 트레비 분수에 동전 한두닢 던졌을 마음이 그려진다.


전면적으로 '나 싸요' 하는 티를 내세우지 않고,
빨갛고 굵고 큰 숫자를 써서 가격 노출을 전면으로 보이지 않고,
여행의 설렘을 지긋이 자극해주는 전략.
웬지 한번 더 그 여행지를 가고싶게 만든다.

숙고한 텍스트가 날개를 다는 순간. 고객의 행동은 클릭이다.  







일일이 나열하지 못한 카피들은 이 링크로 대신한다.
http://verygoodtour.co.kr/Event/EventMain.aspx?menuCode=19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