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유럽은 해가 길다. 6시부터 동이터오고 저녁 10시가 되야 해가 진다.
9시에 일어나도 아침 7시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도 어제처럼 말가라 주변지역으로 버스여행을 한다.
오늘은 유럽인들이 휴양 일순위로 꼽는다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찾아 가는날이다.
이름만들어도 얘내들이 올매나 지들의 휴양지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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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콘 데 유로파. 유럽인의 발코니. 동양인은 가뭄에 콩나듯 보이는 유럽인들 휴양지 맞다.
마을을 지나다가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면 파란 바다가 펼쳐지는데
그 푸른기운이 발코니까지 올라와 비치는 느낌이지만
이미 해변은 말라가에서 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은 있지 않았다.
인포메이션 센터는 마침 2시에 닫고 6시나 되어야 문을 연다.
그 사이 시티맵 달랑 하나 구하고 나니 딱히 외곽을 나갈 방법이 없더라.
그래서 잉여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식사도 하고 해변에서 태닝도 하고. 4시간 생각보다 후딱 간다.
이 동네는 동굴이 좀 유명하고 황소를 그린 벽화도 발굴 되었다.
황소 한 마리 영접하고 올란다. 나는 동굴관람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서늘한 기운도 그렇거니와 빛 하나 없는 어둠을 형광등에 의지해서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괜히 동굴에서 길을 잃는 상상이나 해대고.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마드리드 미술관에 고히 복제되었다고 하고,
이거라도 보자 싶어갔는데 동굴을 아무리 뒤져도 안보여.
물어봤다. "프록테씨옹~ " 이란 답이 돌아왔다. protection 이란 소리지.
원형이 발견된 자리에 원형은 없고 아우라만 남은 세상이여.
그래 이건 못 봤으니 가이드북에서 그렇게 입이 마르게 칭찬한 쿠에바 드 아귈라를 보러 가주겠어.
쿠에바 드 네르하가는길에 산책로로서 현대적 수도관이라고 하니깐,
그런데 가도 가도 길이 안나오고 차도 따라가기도 슬슬 벅차다.
영어가 가능할 법한 젊은 커플에게 물을 것. 특히 남자한테 물어봐야 한다.
특히 연인 앞에서 좀 친절한 남자가 되고 싶은 남자가 적극적으로 알려준다.
이번에도 역시 바디 랭귀지 98%로 답을 들었다.
저기 로터리를 돌아서 다시 왼쪽으로 가서 쭉...가는거야. 걸어가면 십분은 걸릴텐데? 그래도 걸을래?
순간 망설였으나,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순 없다는 생각으로 십 분 가량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
아, 이때의 심정은 다시 까미노에 온 느낌.... 수영복에 카메라 들고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길도 잘못 들고 몇 문의 마을 노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순간.
휑한 도로 안쪽에 낡은 건물 하나 서있다. 가이드 북 몇 줄에 나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수십여분 걷지만 않았어도 만족했을만한 구경거리였던 Puente de Agila
돌아가자니 한없이 높기 만한 언덕길이 떠오르며 이쯤에서 꼼수를 피우기로 작정했다.
마침 같은 관광지를 허무하게 바라보는 차량 운전자 가족이 곁에 있었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웬지 아이를 둔 부모는 친절할 것 같다.
외관을 딱 봐도 100% 관광하다 길을 잃은 불쌍한 동양의 젊은 여성의 분위기니..
그런데 4인승 차량에 공항 가는 길이라 어렵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기서 실망하지 말자. 안되면 한 삼십분 왔던 길을 기를 쓰고 올라가면 된다.
물론 돌아가서는 가이드북을 찢어발기겠지만.
(굳이 가이드북 명을 밝히지 않겠다. 굳이 번역하면 ‘그냥 쫌 가.‘ 라는 뜻의 제목이다.)
도로를 서성이다 아무도 세워줄 것 같지 않아 울적하게 왔던 길로 방향을 트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아마 농기구 수리공으로 보이는 노인이 모는 차량이다.
= 처자가 이곳에서 고생이구먼 어디로 가오? 내가 태워다 줄께
+ 쿠에보 네르하까지만 부탁해요.
= 근데 여기까진 어쩐일이여.
+ 로마 수도교 보러왔어요. 너무 힘들어요.
= 동굴에서 좀 멀긴 하제. 어디서 왔는가?
+ 한국이요. 이년 전에 산티아고 여행하고 이번에 다시 왔어요.
어느새 순간 바로 내가 왔던 자리다. 아주 고마워하며 내린다.
그분 나한테 묻는다. 돈을 꺼내면서.
앗 돈을 내란 소린가? 싶어 살짝 실망했는데,
듣고 보니 이 소리다. 말라가까지 갈 돈이 없는 거면 내가 태워다 줄까?
지나친 신세는 지지 않는 편이 여행자의 미덕이다.
겨우 돌아온 곳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런 시간을 다 놓쳐버렸다.
관광지는 다 마감. 하나 있던 레스토랑도 뒷정리를 할 무렵...나는 택시라도 잡아달라며 사정중이다.
그런데 오기로 한 택시는 소식도 없고. 나는 또다시 얻어타기로 결심한다.
이번엔 공갈젖꼭지를 문 아이가 있는 부부. 아기엄마에게 가서 사정을 이야기 한다.
물론 아기는 귀엽고 예쁘니깐 사랑스런 눈길 한번 던져주면 효과는 직방이다.
역시 내가 처한 상황에 깊히 공감하는 그녀. 남편을 부른다. 앗싸. 난 갈 수 있어.
남자는 친절하고 기꺼이 조수석을 내어준다. 일단 대화의 물꼬는 이렇게 튼다.
"your baby so cuti."
이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이 남자 좋아죽는다.
마드리드에서 온 부부는 네르하를 거쳐 다른 마을에서 숙박한다.
적당한 지점에서 내리기로 하고 마드리드 이야기로 이야기 방향을 전향한다.
+ 앗. 나도 내일 마드리드로 가는데, 마드리드 뭐가 젤 좋아요?
= (마드리드 축구) 미안하다. 축구는 내가 할 말이 없는 분야다.
+ 프라도 미술관 기대하고 있어요.
내일, 마드리드.... 이 때만 해도 나는 곧 다가올 재앙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무사히 도착하여 티켓을 끊고 무려 9시 10분...남은 30여분 마을을 좀 산책한다.
빵 하나 오물거려야지 싶어 들어갔다.
+ 혹시 한국에서 왔니?
= 응
+ 어느 도시에서 왔는데? 서울?
= 응. 서울.
+ 우와, 나도 지난 6,7월 한국에 갔었는데, 굉장했어.
= 나도 이년 전에 산티아고 까미노를 여행했어.
+ 산티아고는 여기랑은 완전 달라. 거긴 북쪽이고 여긴 안달루시안이야.
(여기서 기죽지 않아. 안달루시아 쫌 사랑해주는 멘트 날리고)
= 어. 알아. 난 스페인이 좋고 그래서 이번엔 다른 도시로 온거야. 말라가, 론다, 네르하.
+ 와, 대단한대.
= 나도 부산, 서울 둘다 갔었어.
호텔에 겨우 올아오니 내 방 키는 작동이 안된다. 애써 불안을 잠재우며 로비로 간다.
+ 작동이 안되는데요
= 손님, 오늘이 체크아웃인데요.
+ 무슨 소리에요. 3night 인데.
= 그러니까요. 30,31,1 일. 그리고 오늘 2일 체크아웃.
+ 오 마이 갓......
순간 하룻밤 숙박비, 마드리드행 열차표가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면세점에서 긁어보지도 못한 내 카드...가..
이곳에서 긁히고 있었다.
그래, 론다와 말라가가, 히치하이킹 두 번이나 하게 해준 네르하가 아름다음에 반해 정신줄을 높은 값이라고 치자.
스페인 초입에서 난 벌써 갈등에 휩싸여야 했다.
이 여행기의 시작부분에서 나는 스페인에 다시 가라면 론다엘 가겠어. 라고 했다가,
아니야 바르셀로나 인 것 같아. 아니야 아니야 이비자가 최고야... 오늘처럼 하룻밤 더 머물게된 말라가가 최고였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답안 나오는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스페인은 사랑스러운 곳이다. 그냥 이렇게 즐기면 되지 않겠나.
2011.07.27 (16N/17D)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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