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희망 '직업'을 써서 내라. 3순위까지. 공교육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씩 받아봤을 진로조사. 중학교 1학년 14살. 나는 설문조사란에 '시인'이라고 적었다. 나머지 2,3순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적어낸 대부분은 과학자, 교사, 약사, 회사원이 대부분이었을터. '시인'이라 적어 낸 눈에 띄었는지 담임 선생님은 '우리반에서 시인을 직업인으로 쓴 애는 너 뿐'이라 했다. 이즈음의 또래 소녀들이 그렇듯 나도 그런 소녀였다. 한국 단편 소설집을 읽고, 시를 읽고, 봄에는 꽃잎을, 가을에는 낙엽을 주워다가 책갈피에 끼워넣는. 웃음 많고 수다 많던 소녀였다. 그 아이가 '시인'을 이라고 적은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살 수 어른이 될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서이지 않았을까? 

6년 후 스무살. 3월의 봄학기. 소녀는 스무살의 새내기가 되었다. '지금부터 나가서 은행잎을 따오도록'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내린 지시였다. 아 은행잎을 따오라니, 대학의 수업이 이렇게 낭만적인가. 똑같이 생긴 은행잎을 걔중에서 더 예쁜 은행잎을 확보하겠다고 눈에 불을 켰다. 우르르 한손 가득 은행잎을 들고 강의실로 다시 들어갔고, 이내 교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징코산 추출 시범을 보이겠다.' 한동안 은행잎에서 추출한 징코산의 약용화가 대중화되던 시점이었다. 나는 은행잎을 고이 따다 책갈피에 끼워넣는 대신 은행잎을 짓이겨 여러차례 화학공정을 거친 후 필요한 성분을 추출해내야했다. 그렇다,내가 있던 곳은 실험실. 내 전공은 식품공학. 내가 4년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수학, 물리, 화학이었던 것이다. 진로 적성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로 집어 넣은 원서 하나로 결정난 내 전공. 공교육의 피해가 고스란히 낭만으로 넘쳤어야 할 스무살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때부터였다.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은. 

4.4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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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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