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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랜드 칼럼

[나쓰기 #4] 질풍노도 가벼운 노동으로 견디기




마침내, 뭔가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그림을 그리자. 그런데 입시미술은 안되겠다.
종합적인 예술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용케 찾아낸 것이 '무대미술'이라는 종합 장르의 예술이었다.


희곡을 읽고, 시각적으로 해석해서 공간을 상상하고,

연출과 배우와 조명과 소리와 무대위의 소품과 조화를 이뤄내고

그러려면 그림을 그릴줄 알아야겠지.  


아무것도 모르던 때는 저 일을 하려면 일차적으로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가르쳐 주는 학교를 가야 하는구나.


딱 두군데 있었다. 관련 경력이 2년 이상 있어야 하는

무대미술 아카데미 그리고 일반 대학과 비슷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내가 도전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곳은 후자였다.

실기시험을 보고 그걸 통과하면 되는건가?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6개월간 학원비를 마련하겠다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틈틈히 무대예술이라는 장르를 탐구하기 위한 연극공연을 찾아본다.

이 때의 나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희곡'이 연극무대로 공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다닐때 학교만 등교하지 말고 미리 접했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동안 입시학원을 다니려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문고에서 데이터베이스 입력하기도 하고, 레스토랑 서빙,

심지어 '국샘'이라 불리며 보습학원에서 국어강사도 했다.


21세. 2월 8일. 년도는 가물해도 날짜는 잊혀지질 않는다.

입시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수능을 치는 입시생도 아닌, 독특하게도 한여름에 실기시험을 치뤄야 하는 때라
내가 실기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6개월 남짓이었다.

2절 스케치북에 연필을 깎아 어깨를 사용한 가로로 선긋기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세로로 긋고, 다음날은 삼각뿔을, 축구공을, 타이어를....
아침부터 나가서 종이 3장을 연필로 까맣게 그려나갔다.
어제보다 조금 발전한 내 실력에 희열을 느낀다.

새끼 손가락으로 고정하고 그리는 습관으로 나중엔 새끼 손톱이

종이결에 닳아서 피가 베어 나올 정도였다.

시간을 투자한 만큼 정비례하는 그 짧은 기간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