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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랜드 칼럼

[나쓰기 #6] 돌아가는 길을 발견하다

결국 입시에 3번 실패하고 결론을 내야 할 때가 왔다. 
대학 졸업장을 위해 공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고졸학력을 갖기도 싫었다. 고민했다. 
궁지에 몰리면 별 아이디어가 다 떠오른다. 
미술학원에서 내가 다니는 대학 실기를 준비하는걸 봤다!. 
우리 대학에도 미대가 있다. 
과를 옮기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실기력은 입시한만큼 쌓였으니 실기 테스트가 있다면 응할 마음도 있다.  

2학기 등록기간을 앞두고 전과를 필사적으로 알아보았다. 
최소 1년 이수의 학점이 필요했다. 
한 학기 21학점을 공대 수업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미대 수업을 듣고 싶었고, 학칙을 보니 전공 선택은 타 학과생에게도 열려있었다. 
21학점 7과목을 모조리 조형대학 전공 선택과목으로 채운다. 

학점상으론 2학년이 안되지만 2학년 수업에 들어갔다.
2학기 개강 첫 날. 실험실만큼이나 낫선 공간에 들어갔다. 
'공대학생입니다. 미대 수업이 너무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작업실 자리 한 켠만 내주십쇼'
없던 변죽이 생겼다. 
알뜰하게 모아 온 재료들을 꺼내고 수업을 들었다.
반쪽짜리 입시준비생으로 다양한 재료를 다뤄봤기에 학교 생활이 낫설지는 않았다.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100호 캔버스도 직접 짜보고, 유화를 처음 다뤄보기도 하고, 온갖 재료로 실험도 해본다. 
학기중 누드크로키 수업이 있었는데 
평생교육원에서 처음 누드모델로 만난 여성모델과 재회한다.

나는 타 과 수업을 청강하러 온 독특한 배경의 신기한 학생이었다.
학교를 이렇게 행복하게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학기였다. 
그 학기 나는 학점 우수 장학금을 받았다.





∆ 시각화하고 싶은 텍스트를 패러디로 표현하라. 



幼年
                              - 정병근
측백나무 냄새를 맡았다 
개미들이 하루종일 햇살을 끌고 갔다 
매미 소리가 한낮의 귀청을 찢었다
바지랑대 높이 빨래가 펄럭였다 
후두둑, 소나기가 오기 전에 
서둘러 교미를 끝낸 암사마귀가 
숫사마귀를 뜯어먹었다 
단 한번의 정사를 위해 
벌들이 공중으로 전 생애를 던졌다
버둥거리며 뒤집힌 몸을 일으켜 세우고 
쇠똥구리는 둥근 대지의 페달을 
부지런히 밟았다 거미는 발을 헛디딘 
잠자리의 체액을 거핌없이 빨았다
나무와 풀은 함부로 웃자랐다 
바위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강과 저수지는 자주 사람을 잡아먹었다 
수억만 리 물길을 뚫고 연어 떼가 돌아왔다 
멀리서 산은 팔짱을 낀 채 
양떼구름을 지키고 있었다 
하늘은 별 생각 없이 
핏빛 노을을 풀어놓았다





탐미적인, 스타일을 좋아라 하는 내 취향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