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도보여행은 식도락파의 입이 즐거운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거기서도 창조요리 활동은 변함이 없었다.
산티아고에서 즐겼던 간단한 음식과, 생존요리를 소개한다.


 코카콜라
카미노를 걸으면서 처음엔 콜라 생각이 간절했다.
실컷 걷고 나서 들이키는 콜라 한잔의 쾌감.
목구멍을 따끔하게 타고내려가며 가슴을 뻥 뚫는 듯한 콜라만 생각하면 아찔했다. 
콜라 혹은 환타 한 캔에 2유로 미만. 매일 마셔대는 콜라에 지출되는 돈이
슬슬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대체제가 나타났다.
바로 물에 녹여마시는 비타민. 2유로도 안하는데 수십알이 들어있다.
맹물에 두알 넣고 두면 뽀글뽀글 자동 탄산발생. 오렌지 환타맛이다.


 카페
카미노에 겨울이 찾아오고부턴 시원한 콜라는 더이상 구원이 될 수 없었다.
따끈한 에스프레소, 혹은 따끈한 우유를 넣은 카페 콘 레체 그란데 사이즈.


 또르띠아
스페인 전통 음식으로 생감자를 잘게 썰어 계란과 함께 오랜시간 약한불에 익혀만든 요리. 
두툼한 파이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웬만한 바에서는 샌드위치등과 함께 기본 메뉴로 있다. 출출할 때 요깃거리로 좋다. 





 일용할 양식 바게트
아침에 바게트를 하나 사서 배낭 옆구리에 끼고 있으면 맘이 든든했다.
거의 바게트와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딱딱한 것과 쫄깃한 속, 그 식감을 즐겼다.
슈퍼에서 작은 포장단위로 파는 잼과 버터를 사서 발라먹기도 했고,
가공된 초리스(유럽식 말린 육포)와 치즈를 끼워넣어 먹기도 하고 바게트의 변신은 무한하다.
바게트 말고도 식빵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양식이 있으니
바게트만 먹고 입천장 다 까지는 불상사는 없길 바란다.




센티표 쿠킹로망 초간단 생존레시피


좁쌀 파스타 라면수프 
재료 : 초리스, 라면스프(신라면), 파스타

레시피랄것도 없다. 위 세가지 재로를 넣고 그냥 끓여먹으면 된다.
한국에서라면 자취생의 찌질한 식단이 되었음이 분명할,
라면국물에 밥 말아먹는게 먼 이국땅에서는 로망이될 줄이야. 

친구가 챙겨준 라면스프 3개를 고이고이 간직하다가
언젠가는 뜨거운 물에 믹스커피대신 타먹으리다...라고 만 생각했다가
아주 우연찮게 발견한 파스타를 보고 요런 생존요리법을 생각해냈다.
파스타 이름은 모르겠고, 그냥 편의상 좁쌀파스타라고 부른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어슬프게 고기국물까지 우려내었다며 라면의 고급화를 외쳤다.
산티아고에서 라면스프는 필수다.





얼렁뚱땅 상치쌈
재료 : 참치캔, 양상치, 마늘, 양파, 볶음 고추장

라면스프만큼 필수품 볶음 고추장.  저 고추장과의 재회는 약 보름후에 이루어졌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모두 뺐기 때문이다. 
보름만에 고추장을 만났으니 그 기쁨 얼마나 컸으리오. 얼른 초간단 요리를 만들어먹었다.

이 요리(?)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주방시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참치캔을 따고 채소를 씻고 썰기만 하면 코리안 푸드가 완성되는 것이다.
주먹만하게 쌈을 싸서 매운맛에 눈물 찔끔 흘리며 먹는 장면을
외국인 친구들은 신기하게 바라봤다
들어는 봤나, 코리안 트레디셔널 소스~~고추장 !!





센티표 알뜰로망 샌드위치
재료: 이름모를 빵, 양파, 훈제슬라이스햄

바게트에 지칠만큼 지쳤다면 새로운 빵을 선택해보자.
방석만한 빵 발견. 1.5 유로라는 환상적인 가격. 더군다나 맛있어보이기까지.
상추쌈 싸먹고 남은 양파를 가지고 다음날 도시락으로 샌드위치 당첨.
바게트에 응용해도 훌륭한 도시락이 된다. 
초반엔 보이던 '바(Bar)'도 안나타나고 배고픔에 지칠 때,
와삭 베어무는 센티표 생존샌드위치야 말로 최고의 만찬 !!!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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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브루고스에서 하루종일 노닐기

어제는 피곤했던 모양인지 12시에 잠이 들었고
중간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워 입고 자던 스웨터를 벗느라
잠시 깨었던 것 빼고는 참 잘 잤다. 베드벅 걱정 없이 쾌적하게 잘 잔 날이다.
알베르게에서 또 묵는것은 불가능했고 8시부터 2시까지 알베르게가 문을 닫는 동안
짐을 맏기고 부르고스 시내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말수가 적었던 한 친구가 말을 건네온다. 안토니오다.
어제 타르코프스키의 안개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야속한 친구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며 블로그나 사이트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한다. 
서로 메일을 교환하고 이번 여행은 블로그에 잘 정리해 두어야겠다 생각한다.
이미 벌써 해외의 독자 하나가 생기지 않았나.

‘센티’혹은 ‘진’으로 통하는 나의 마지막을 앞으로도 계속 길을 가는 친구들이 작별인사를 챙겨준다.
“진, 부엔 카미노”
“음 그건 내가 해야 할 인사 같은데. 카미노는 앞으로 너희들이 계속 가는건데.”
“인생은 어차피 길을 걷는 거자나. 네 삶이 부엔 카미노 하길 바라.”

나의 산티아고 두 번째 프로젝트를 구성함에 꼭 필요한 스페인 우표를 구입해야 했다.
짐을 붙이겠다는 몇몇 친구들과 우체국에 들렀다.
그 와중에 안토니오는 나에게 그림까지 그려주었다. 그들과 우체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런 거 잘 안하지만 오늘로서 카미노가 마지막이라 남겨두고 싶었다.



산티아고 일행과 헤어지고 이곳에서 주말까지 머무르겠다는 안토니오와 조금 걷다가 헤어지고
나는 그동안 몸살이 날 만큼 하고 싶어 했던 일들에 착수했다.

일단 아무 계획 없이 거리 싸돌아 다니기. 그 동안은 알베르게에 등록하자마자
슈퍼를 찾아 헤메느라 멍 때릴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관광객 모드로 변신해서 천천히 놀아야했다.
일단 패션부터 바꿨다. 아침 쌀쌀한 날씨에 비행기 좌석에 놓고 내린 나의 핑크 점퍼가 유난히 그리웠다.
코트를 하나 사 입었다. 50유로 정도 했는데 실용적이고 꽤 따뜻한 것이 오래도록 입을 것 같다. 

볕 잘 드는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하면서 샌드위치 먹기. 이건 내 로망이다.
그것도 어제 만든 센티 스타일 햄 양파 샌드위치 아 드디어 여유롭게 로망을 실현하는구나.
또 밖이 환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 찐하게 들이켜며 책읽기.
나의 십자가에 무게를 더한 책 한권. 가져오길 잘했다.
시니컬한 문체가 어찌나 재미나던지 앉은자리에서 후딱 70페이지를 읽어버렸다.

브루고스에 발을 디딜 때부터 웅장하게 솟은 성당 관람하기.
어제는 너무 피곤하여 제대로 못 둘러볼 것 같아서 오늘로 미뤘다.
종교의 내용과 상징하는 바는 모르겠지만, 그 규모와 분위기는 봐볼만 하다.
순례자 여권을 내면 1유로 더 저렴하다.
12세기에 지어졌다는데 이곳 건축의 힘은 위대하다. 핸드폰이 울린다.
그동안 순례중에는 배낭 속에 핸드폰을 쳐 박아 두고 신경 쓸 수가 없었다.
해외로밍 안내 멘트를 듣고서도 전화벨을 울리는걸 보면 받아야 할 것 같다. 회사다.
"머하세요? 거기 몇 시에요?"
"왜요? 아 왜요???"
"그냥 살아있나 궁금해서요. 우리 술 마셔요~~ 여긴 아홉시~~요새 일 겁나 많아요. 빨랑 와요~~~"

2-3일에 한번은 인터넷을 할 줄 알았는데 센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으니
술 자시다가 슬쩍 궁금했나보다.

인터넷이고 핸드폰이고 통신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알베르게에 설치된 인터넷에 한글 지원이 안 되면, 이건 거의 환장이다.
어떤 알베르게는 한국어 인코딩이 지원되지 않아 외계어만 보다 끝내 메일확인을 포기 한 날도 있었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그동안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나보다. 모국어로 말하는 것에 들 뜬 듯했고 사람이 그리웠던 것 같다.
주저리주저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행운을 빌어줬다.

예전부터 찜해둔 조개모형 앙증맞은 목걸이를 기념품삼아 구입했다.
조개는 수호를 의미한다. 그래서 순례자들의 순례길에 수호를 비는 상징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다.
단순히 실에 엮은 작은 금속 조각일 뿐이지만 이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참 좋아할 것이란 생각이다.

이렇게 놀다보니 2시가 훌쩍이다.
어깨에 배낭을 메다가 주저앉을 만큼 무거워진 배낭을 지고 나서
그제서야 바르셀로나까지 버스로 얼마나 걸리는지를 안 물어 본 것이 생각났다.
호스피탈로 말로는 약 8시간이란다.
헉...그럼 나는 밤에나 도착하는 거야?
그냥 하루 밤 호텔에서 더 묵을까? 일단 터미널로 갔다.
오전 시간대 버스는 다 가고 11:45 버스가 남았다. 내일 아침 8시에나 도착한다.
이럴 땐 야간 버스가 최고다. 비용과 시간 둘 다 아낄 수 있겠다 싶어
다음날 아침 버스 대신 야간 버스를 예매했다.

이 모두 즉흥적이다. 여기와서 인터넷으로 알아본 한인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내일 예약을 잡았다.
비수기니깐 가능한 일이다.
코인 라커에 산더미 같은 배낭을 쑤셔 넣고 광장 한복판을 거닐다가 안토니오를 또 만났다.


▲ 걱정마, 나 좋은 사람이라니까.



"진, 어떻게 된 거야?"
"응, 계획 없이 노닐다가 밤에 바르셀로나로 갈려고."
"그렇구나, 타파스 먹어봤어?"
"아니 또띠아만 엄청 먹어댔어. 타파스 맛있어? 그거 먹어보고 싶다."

타파스는 작은 접시를 뜻하는데 조그만  음식들을 여러개 놓고 먹는 것을 뜻한다.
스시에 다양한 생선을 올려먹듯,
김밥에 온갖 재료들을 넣어먹듯,
이들도 그들의 주식인 바게트에 여러 가지 토핑들을 올려먹는구나 라며 내멋대로 생각해본다.



그렇게 간단하게 먹고 나오는데 안토니오가 급 제안을 한다.
너 피곤하지 않으면 내가 좋은 곳으로 데려갈까 하는데... 산솔.
브루고스 시내가 다 내다 보이는 곳이다. 손짓 발짓, 노트에 적어가면서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망설이는 것 같이 보였는지 그가 부연설명을 한다.
"걱정마, 나 굿 맨이야."
"미안, 나 좀 피곤해. 그리고 오늘밤은 버스에서 자야해서 힘들거 같아. 이만 헤어져야겠어.
타파스는 맛있었고 고마워. 이메일로 다시 만나자."

하루 동안 그와 뺨 인사를 세 번이나 했다.

오늘 하루는 한 마을에 자리 잡고 앉아 고스란히 시간을 보냈다.
상점이 열리는 시간, 시에스타 시간의 시작과 끝, 그리고 마무리까지 같이 했다.
그동안 순례를 마치고 진입한 마을의 쥐죽은 듯한 시간의 마을만이 맞아줬는데...  
자평하기로 꽤 성과있는 날이다.
하루를 연장하지 않아도 되고 야간버스를 타보는 경험도 해보고 숙박비도 아끼고...

그리고 지금 해가 지고 다시 마을은 활기를 찾았다. 가로등엔 불이 켜지고,
식료품점, 기념품 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 바에도 다시금 복작복작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카페에 앉아 나의 또 다른 로망을 실현하고 있다. 넷북으로 일기 쓰기.
역시 내 옆에는 카페 콘 라체 그랑데가 모락모락 따뜻한 향기를 퍼트리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금방 흐를 것 같다.

마지막 순례자 코스를 즐기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한인 민박의 한식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길로 뻗은 골목 중 한곳에 레스토랑을 봐둔 곳이 있다.
포도주 한 병이 같이 나왔다. 혼자서 홀짝홀짝 어느새 치사량을 넘고 말았다.
홀짝거리는 사이 어느새 반병이나 줄어있었다.
마실 때 기분은 좋았으나 버스에서 좀 괴로워해야 했다. 그놈의 술이 웬수였다.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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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2 11: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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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 홍대에서 우연히 만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는
    2차 마치고 다른 친구 만나러 가던 길이었거든.
    권형 바운더리가 주로 홍대-상수-합정 이거든.

    좀더 확장하자면 광화문-인사동-북촌-삼청동 지역도 자주 다니기는 하는데,
    그래도 줄은 홍대쪽에서주로 마신다는...ㅋㅋ 여하튼 반가웠다는. ㅋㅋ

    부엔 카미노! ㅎㅎ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많이 배워 오셨는가요?
    길위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조근조근 블로그를 뒤져봐야겠군.
    책이 나오면 바로 알려주시와요 네 블로그에 걸어줄께 ㅎㅎ


2009.11.09
벨로라도-아게아 : 24km



"이봐, 아가씨. 일어나야지 않어?"
거북이 아저씨가 깨웠다. 어제 내 주위의 모든 소리는 코고는 소리였다.
참고 자느냐 배낭에서 귀마개를 꺼내느냐를 잠결에 고민하다가 귀마개를 사용하기로 했다.
아 정말 카미노는 다 좋은데 이 것만큼은 견디기 어렵다.

어제 들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앞으로 2일은 더 비가 올 것이며 (물론 어제와 같이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
웬만한 알베르게는 문을 닫았으며,
12킬로지점에 있는 알베르게는 1시에 문을 여는데 예상대로면 12시도 안되게 도착.
앞으로 12킬로 지점의 알베르게는 거지소굴로 유명하다는 곳. 패스요함.
그리고 약 4킬로 떨어진 지점에 그나마 괜찮은 곳이 있다고 했음.
그러니 12시부터 16킬로를 더 걸어야 하는데 역시 비바람이....

중간중간 거북이 부자와 만나는데 그 때마다 나를 걱정해주신다.
이미 생장에서의 경찰신고사건과 나의 넘치는 배낭을 보았기에 하는 걱정이다.

어제처럼 6시가 다 되어 입술 퍼렇게 들어갈까를 고민하며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아베크를 보았다.
독일에서 온 그녀 3주의 휴가를 받아 왔단다.
"나는 내일까지가 끝이야. 아쉽네 내년에 또 올 수 있으면 좋겠어"
"난 20년 후에나. 그전엔 절대 오지 않을 거야."
먼저 그녀를 보내고 바에서 바게트를 하나 산 사이 버스가 떠나 버렸다.
음 역시 걸어야 하는걸까 싶은 생각은 또다시 내리는 빗줄기에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이미 지나간 버스는 또 두 시간 후에나 온다고 하여 생장 이후 오랜만에 히치 하이킹에 도전해봤다.
브루고스까지 간다는 에스파냐인이 흔쾌히 태워줬다.
오르테가 마을에서 내려 알베르게까지 4킬로는 걷기로 했다.
내리면서 작은 기념품이라도 줄까 싶어 가방을 뒤적이는데 굳이 마다하면서 떠난다.


▲ 땅은 젖고 하늘은 말갛구나. 언제 비가왔냐는듯... 


작은 마을에 바와 같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
딱 한명이 먼저 와 있었는데, 코리안 치킨 숩을 같이 먹은 폴 아저씨.
너무 반갑게 ‘올라’를 외쳐주었다. 그래 이런 게 은근한 반가움인가보다.

먼저 오면 침대 선택권이 있다. 딱 찍은 침대에 짐을 푸는데 하얀 베겟잇 사이로 까만 점을 발견.
예전 어느 알베르게의 방명록에 누군가 그려놓았던 '베드벅스'인 것이었다.
꺄악....가지고 있던 휴지를 두껍게 접어 그 넘을 눌렀다.
‘띡’ 소리와 함께 손 끝에 터지는 느낌이 끔찍했다.
오 제발...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베드벅스에 물리지 않게 해주세요.

방명록을 보니 3년 정도의 기록두께다.
많은 사연들이 적혀있었지만 어느 부부의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다.
매일 저녁 만들어 먹을 음식을 구상하고 매일같이 소풍가는 느낌으로 여행한다는 부부.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그들이 참 행복해보였다.
이 길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걸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내 산딸기 젤리를 기꺼이 나눠먹은 독일인 알렉산더가 도착했다.
조금의 영어도 못하는 그와 할 수 있는 대화는 오로지 바디랭귀지 뿐이다.
'밥 먹을래?' 어렵게 알아들은 그의 랭귀지에 이미 밥을 많이 먹었어, 노 쌩스라는 말이 통하지 않아,
농(non) 이라는 차가운 말 밖에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와중에 땡그란 프랑스인도 들어온다.
오 어떻게 벌써 왔냐고 걸어온 거 맞냐고 물어댄다.
그녀와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한다. 너네들 먼저 왔구나...

곧 거북이 부자도 오겠군. 또 한 번씩 놀라시겠네.
내일이면 카미노의 진짜 마지막 날이다. 
이 마을에 유일한 바이자, 레스토랑이자, 슈퍼에서 다들 모여 오늘 카미노의 마지막 파티를 해야겠다. 
 




▲ 전~혀 정상적인 단어로는 대화가 되지 않았던 알렉산더. 그의 막 그림으로 모든 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순례자메뉴를 주문하는데 이런, 에스파냐어로 적은 메모지를 갖고 온다.
총 3코스에 와인과 물 빵이 포함된다는 건 알겠는데, 각 코스별로 선택하는 3가지 메뉴.
즉 총 3코스의 9가지 메뉴를 구별해낼 방도가 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샘을 닮은 이 남자 처음엔 사전을 가져와서 애쓰더니
반짝 아이디어가 생각난듯 잠시만 기다리라는 느낌을 남기곤 사라진다.
곧 조그만 접시에 9가지 음식을 담아왔다. 말하자면 직접 샘플을 보여주는 서비스다. 
그 생각이 너무 재밌어서 웃었다.

어느새 다들 모였다. 삼일 째 같은 숙소에서 만난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후르츠 샐러드에 무엇인가 점점이 뿌려져 있다.
후추인가 살펴보니 묘한 향이 나는게 꽤나 매력적인 향신료 같다.
옆에 알렉산더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림을 그려준다.
때론 말보다 그림이 더 쉽다.
꽃의 씨앗인가 보다. You're good artist!!

축구게임기 앞에서 서성이니 한 친구가 게임 제안을 한다.
공이 5개 나오는데 4대1로 그가 이겼다. 그나마 1점은 나의 자살골이다.
푸드 보린~~ 이건 작은 축구 게임을 말하는거야. 그가 가르쳐 줬다.

아 친구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애틋해지는 이 길이 곧 그리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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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8
칼즈-벨로라도 : 23km


초반부터 비다. 앞으로 삼일간 비가 온다는데 징하다.
오늘 중간중간 마을이 있으니 비가 심하게 내릴 경우 벨로라도 까지 무리해서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 달 휴가를 신청하고 항공권을 발권할 때부터 지금까지 세세한 계획은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리턴일만 정해두고 카미노 길 위에서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할 생각이다.
카미노에 겨울은 이렇게 오고 나는 이제 서서히 카미노 여정을 마무리 해야겠다.

같이 일주일을 걷고, 홀로 일주일을 걷고, 또 일주일은 홀로 대도시를 여행하고
나머지 사흘은 유럽을 오가는데 시간을 쓸 것이다.




첫 번째 마을 그라농에서 카페 솔로 한 잔을 마시고부터 비바람에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빗방울이다.
바람의 속도에 묻어서 오는 빗물이라 막을 수도 없고 앞을 바로 보기도 힘들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길에 빗물은 또 어찌나 고이는지...

이번 마을에선 초입부터 알베르게 간판으로 유혹하더니 결국 문을 닫은 곳이었다.
이젠 별수 없다. 벨로라도 까지 죽자고 걷는 수밖에. 7킬로가 남았다.
이 비바람이 계속 분다면 3시간 이상은 걸어야 하는 마당에 오기가 발동했다.
물찬 장화로 변신한 내 등산화를 바라보며 그냥 빨리 걸어서 몸에 열을 내야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 같다.

발도 이젠 다 나아서 쩔둑 대지 않고 몸 컨디션도 좋지만, 이번엔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출발로부터 2주도 안 지난 마당에 날씨가 이리도 차가와진다더냐.


▶ 비바람과 따뜻한 태양볕 경계가 분명한 하늘. 먹구름 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기분은 영....
저속으로 들어가면 비바람이 내리칠것이 분명하다.


보통 걸음으로 3시면 도착할 거리를 오늘은 6시가 다 되었다.
샤워를 하며 보니 비바람에 젓은 허벅지며 종아리가 빨갛게 부었다.
거울을 보니 입술까지 검게 변한 검둥이가 있었다.
 
감동의 라면스프 파스타를 끓여먹고 이층침대로 올라가려고 보니
거북이 부자가 내 아래채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굳은살은 구원이었다.
드디어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각자의 기능을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물집 잡힌 발바닥이 굳은살로 변하면서 오히려 걷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육체의 고통이 더 이상 머리를 지배하지 않는다.
발바달이 쏴아 해지도록 걸으면 머리는 이내 이런 생각으로 꽉 찬다.
'발바닥 아프다. 어떻게하면 다리가 덜 아프게 걸을수 있나,
아 배고프다...커피 마시고 싶다..내가 왜 여기 왔지..??' 라는 참으로 원시적이고 즉물적인 생각.

그런데 요 며칠 카미노를 슬슬 떠날 생각을 하면서 
육체의 고통이나 수고와는 별도로 '다른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의 상념들을 간단히 메모해본다.
 
무의식적으로 걸으면서 든 생각은 이런 여행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
홀로여도 좋고 같이여도 좋고. 지금 배낭 여행의 맛을 보고 흥분해 있는거다.
여행을 안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길 위에서의 생활을 이만큼 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하루 8시간 이상을 며칠 내리 걷는 다는 게 일생을 통틀어 겪을 일이 얼마나 될까.
지금처럼 작정하지 않는다면.
그러다가 최소한의 비용, 겸허한 마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하는 이 길 위의 생활이
결국은 일상에서부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한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힘겹게 온 만큼 무리를 해서라도 완주라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인가.
끝을 내야 하는가. 끝의 정의는 무엇이라도 있는것인가.




카미노를 꿈꾸는 사람들.
나처럼 비용에 구애는 받지 않아도 한달이 넘는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어쩌면 꿈으로만 남기거나, 혹은 직장을 때려치고 오기도 한다.
카미노. 걸어보니 40여일을 투자해서 완주해야 할 이유 없다.

비장한 마음으로 사표를 던지고 수십일을 나올 필요도,
금메달 걸린 마라톤 코스를 완주해야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싱그러운 경험 한 조각 얻어가는것으로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이 여행은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인지 모른다.
여행.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잖아!!!
한번 느껴보자는...
그리고 잠시 일상에서 탈출하고 내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카미노를 충분히 경험 할 수 있다는것으로 정리해본다.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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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7
나헤라-칼즈 : 21.2km




출발부터 비가 올 듯한 하늘이기에 초반부터 판쵸를 뒤집어 썼다.
오늘 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한시간 반 만에 아스포르 마을에 도착했다.
아침을 치즈와 빵과 함께 마치고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셨다.
작디 작은 잔에 설탕 가득 한 스푼 넣으면 쓰고 달콥 쌉싸름한 깊은 맛에 중독된다.
걷다가 카페가 보이면 몸은 자동 반사로 들어간다.

산길에 들어서자 빗발이 거세지고 바닥은 순식간에 질척거린다.
처음엔 물이 닿지 않도록 신경 쓰다가 발바닥부터 빗물이 들어차고 부터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그냥 막 걸었다. 발은 시려워도 걷다보니 열기가 생기면서 견딜만해졌다.
손과 귀가 시려워서 장갑 모자, 갖고 있던 옷을 다 꺼내 입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막 겨울이 된 듯 한데 고개 넘어 보이는 곳은 해가 쨍쨍하다.
얼른 그 그곳으로 가고 싶다. 어릴적 읽은 햇님과 바람의 우화가 생각난다.
바람이 몰아칠수록 판초자락 꼭 붙들어 매며 장갑 모자 다 챙겨입은 내 모습은 꼭 우화속의 나그네였다.
어제까지 통증에 시달리던 발바닥의 물집은 이제는 거짓말 같이 굳은살이 되어서 더는 아픔을 못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처음으로 편한 발걸음이 되었다.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시설이 꽤 괜찮다.
장을 보고 오니 거북이 부자들을 만났다. 어제부터 자주 마주친다.
아들분이 한식을 해먹을 거라며 초대해주었다.
오늘도 라면스프로 어떤 요리를 해먹을까를 고심하던 차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닭도리탕을 시도하려나보다. 나의 귀중한 신라면 스프를 주었다.
거북이 어르신은 고추장에 쌈을 싸드실 요량인지 양상추를 사들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와 프랑스에서 온 폴 아저씨와 넷이서 식탁에 모였다.
코리안 치킨 숩이라고 소개하고 닭볽음탕과 흰 쌀밥을 조금 덜어주었다.
매워서 먹지 못할 거라고 염려한 우리와 달리 프랑스인 폴 아저씨는 매우 즐거워하며 음식을 맛보았다.
양상추에 밥과 고추장을 얹어서 코리안 스타일을 강조하시던 어르신을 따라
모두들 코리안 스타일 흉내 내기 바빴다.
멀리 이국땅에서 이런 쌈을 먹게 될줄이야.
흐뭇하게 프랑스인 폴 아저씨의 코리안 쌈 스타일 흉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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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6
나바레테-나헤라 : 21km



어제밤 전화벨 소리에 깼는데 창문이 어찌나 잘 봉했던지 낮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다.
그때가 12시. 한국에서 송교수님이 건 전화다.
한국에서 7시좀 넘어서니 교수님이 어지간히 일찍 아침을 시작하신다.
잘 다녀오라는 안부 메세지를 전하시는데 뭉클하다.
3년 후 이 길을 걷고 싶다고 하시는데 내가 선 경험자가 되었다.

다시 발바닥 통증과 근육통이 찾아온다. 물집에는 이제 피가 고였다.
그냥 호텔방에서 퍼지기로 했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 어떠하리오.
오늘 걸어야 할 킬로는 16 킬로미터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뒤비적 거리다 나왔다. 비는 또 추적추적 내리고 아흥~~ 판초를 뒤집어 썼다.


안녕하세요?
뒤를 돌아보니 거북이 부자 아들분이다.
첫날 생장에서 헤어지고 중간에 소식 한 번 전해 듣고 처음 만났다.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
어제 나바레테 알베르게가 문을 닫아 4키로를 더 가서 벤토사를 갈까 했으나
체력이 바닥나 포기하기를 잘했다. 한 시간 반을 가서 도착한 벤토사 역시 알베르게가 문을 닫았다.
호텔이나 있을까 싶은 작은 마을이었다.



어제 나바레테 길부터 포도밭이 무성한데 모두 수확하지 않은 모양이다.
걔 중엔 무척 굵은 알도 보이길래 몇 개 따먹었다. 다시 수렵, 채집의 일상화다.
휴식을 취하고 2시 앞으로 13킬로가 남았다. 해질녁에나 도착하겠다.
나헤라 가는 길 좀 어렵다. 길은 평탄하지만 어느 순간 화살표가 나오질 않는다.
숲길은 끝나고 어느새 고속도로로 나와 걷는데 한 2시간을 넘게 노란 화살표 한 조각 못 보았다.
게다가 주로 지나가는 차들은 대형 트럭이었다.
그것들이 쌩쌩 달리면 어찌나 큰 소리와 바람이 몰아치는지 공포스럽기까지 할 정도다.

돈데 에스따 나헤라? 나헤라 알베르게? 월 킬로미터? 투 킬로미터?... 수십 번을 물어가며 도착했다.
아 그런데 해가 저물어가니 체력이 또 바닥나고 있다.
저 멀리 마을 불빛은 하나씩 켜져가고 발은 돌덩이로 변해가고,
앞으로 일 킬로미터인지 이 킬로미터인지 가늠할 수도 없고....
이를 악물고 겨우 마을로 들어섰다.




순례자 차림으로 헤메는 나를 보더니 어느 노인분이 나를 끌고 데려다 주신다.
여든은 넘으신 것 같은데 그분 발걸음 보다 내 발걸음이 더 느리다. 어라 이 마을 좀 정감 간다.
로고르뇨처럼 대형 건물과 슈퍼가 들어선 것도 아니고 간간히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눈에 띈다.
특히 알베르게 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래로 흐르는 하천과, 공원들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 두어 시간 일찍 왔더라면 저기 앉아서 충분히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으리라.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 5유로를 기부했다.

"아이고, 이제 오셨구랴."
이번에는 거북이 부자의 아버지였다.
반가움에 악수를 청하신다.

내일의 일용할 바게트를 마련하기 위해 가게를 찾아 나서는데 판매대에 놓인 파스타가 눈에 들어온다.
태권브이가 나에게 남기고 간 신라면 스프 3개가 겹쳐지며 매콤한 상상을 한다.
저녁 라면 스프에 좁쌀알만한 파스타를 넣고 끓였다.
문득 먹다 남은 츄러스를 넣고 끓이면 고기 국물 맛도 날 듯 하여 투하했다.
원래 라면 국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끓이다보니 국물을 졸아들어 어설픈 리조또 스타일이 되어갔다. 

그럴싸한 맛이 났다. 오랜만의 매운 맛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감동하며 먹었다.
역시 센티는 어디 가서 음식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상상하던대로 코리안 쿠킹이 되었으니 이건 요리라고 칭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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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5
비아나-나바레테 : 21.5km


8시에 기상. 나의 늦잠에는 이유가 있다.
아래층 침대에서 머문 코골이 부자는 최고의 가창력을 자랑한다.
둘이서 번갈아 박자를 맞춰가며 밤새 리듬을 탔다. 귀마개도 소용없었다. 
아침, 그들은 너무도 개운한 잠을 자고 난 듯 마알간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나는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욱하는 맘을 달래야했다.



출발은 조금 쌀쌀. 로고르뇨로 향하는 길은 대체적으로 평탄했다.
2시간 만에 로고르뇨에 도착했고 바에 들어가 또띠아와 커피를 마셨다.
또띠아는 생감자를 달걀과 함께 오랜시간 불에익힌 스페인 대표요리다.
로고르뇨는 조금 큰 도시였지만 공장도 많고,
여기저기 공사중인 건축물들도 눈에 띄고 대체적으로 낭만은 덜 한 도시였다.
느낌이 좋았다면 로고르뇨에 머물 생각이었지만, 예정대로 나제라로 발을 옮겼다.
나제라까지 13킬로를 더 가야 하는데 너무 추워졌다.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면 너무 추워 갖고 있던 옷을 다 껴입어도 힘에 부쳤다.
장갑에 모자를 두 겹 쓰고 판쵸까지 뒤집어 쓰니 누가 봐도 추례한 복장일 것이다.
추위가 더하니 근육통이 좀 더 심해진다. 1시쯤 근육통약을 복용했다.
나제라 까지는 마을은 없기에 무조건 걸어야 한다.
11월이 되니 점점 겨울을 만나게 되는건가 싶다. 
바람이 역으로 불어댈때 발을 옮기기가 어렵다.
4시가 가까워 겨우 나제라에 도착했는데 알베르게가 문을 닫았다.





나는 거의 초주검이 되어갔다.

근처 호텔을 보니 싱글에 70유로다.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올것을...  7유로짜리 알베르게가 사무치게 그립다.
동네 사람을 붙잡고 손짓 발짓 동원했다....돈데 에스타 호텔??
나의 없어뵈는 차림을 보더니 나를 끌고 허름한 호텔로 안내해준다.
다행이 19유로였다.
 
여전히 5유로짜리 알베르게가 그리웠다.
결정적인 차이는 싱글룸과, TV를 볼 수 있는 것 뿐.
공동 화장실과 샤워장 타월은 카운터에서 체크인 할 때 주었다.   

거울을 보니 눈에 핏발이 터졌다.
죽은 듯 누워 한 시간을 잠들다 꼬르륵 소리에 슈퍼를 찾았다.
누가봐도 내 차림은 순례자였다. 계산원 아주머니가 뭐라고 하신다.
손짓을 보니 날이 춥다고 옷 따뜻하게 입으라는 것 같다.
고맙게도 부엔 카미노라며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첫날 20킬로를 메고 18킬로를 오른후 피레네 산맥 앞에서 돌아온 이후 오늘이 제일 힘겨웠다.
앞으로 기온이 떨어지고 계속 바람이 분다면 따뜻한 옷을 한 벌 사야 할지도 모르겠다.
덜어도 모자랄 판에 점점 짐만 더해가는 상황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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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4
로스아르코스-비아나 : 19.5km


내가 눈 뜬 시간은 7시 30분.
점점 기상시간이 늦어진다. 조금씩 적응해가는 덕이겠지.
관광객 모드로 돌아간 태권브이와 광년이는 늦잠을 더 즐기고 싶어했으나,
나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깼다.

지금까지 일주일을 함께 걸었다면, 앞으로 일주일 이상은 혼자 걸을 것이다.
아침부터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 이런 마른 땅 밟기도 힘든 마당에 진탕길을 걷게 생겼군.
짐을 1g이라도 줄이기 위해 배낭 커버를 부쳐버렸기에 판초를 쓰고 걸을 수밖에 없다.
기다란 자락이 참으로 걸리적거린다.
산길을 따라 걸으며 먹구름이 수없이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며 비를 뿌리고 거두고,
나 또한 땀이 차오르는 판쵸를 벗었다 입었다 해야 했다.



비보다 더 성가신 것은 신발에 붙어대는 진흙이다.
양발에 1kg씩은 더해져서 발걸음을 붙잡는다.
먹구름의 움직임을 따라 비구름을 좀 지나니 예상하게 된다.
재밌는 사실 하나.
조금 전에 내 앞을 가로질러간 독일인 막스와 그의 개.
다른 건 몰라도 막스가 간 길은 확실히 눈에 띈다.
진흙길에 개 발 자국이 너무도 선명하게 찍혀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신발 자국 사이사이 강아지 발자국 찾아 걸음 하는 것도 재밌었다.
오늘은 평탄한 길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고, 쉬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어제 하루종일 에너지를 절약한 덕분 같다. 

알베르게에 도착한건 2시 40분. 3시부터 문을 연다고 써 있다.
설마 이 동에 딱 하나 있는 알베르게인데, 문 닫은 건 아니겠지.

모니카. 아까 걸어올 때 내게 길을 물었던 그녀를 다시 만났다.
알베르게가 문을 열때까지 기다리겠다며 건너에 있는 모니카에게 물었다.
"is there anything?"
"just... wind."
그렇게 둘이 앉아 바람과 햇살을 감상했다.
마드리드에 사는 스페인인 그녀는 조용조용하고 또박한 말투를 가졌다.
그리고 스페인어를 통역해주는 통역사 역할도 했다.
참 신기하게도 인종도 다르고 잠시 만난 사이지만 몇 마디 말을 하고나면 성격과 개성이 파악이 된다.
그녀는 꽤 친절하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정하다.




▲ 그저 바람이 지나갈 뿐...


여기서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1
알베르게 옆, 성당 앞에 공원이 하나있다.
이곳에 동네 사람들이 찾아오는 모양인데 80세 정도의 할아버지가 왔다.
그리고 사람이 그리웠는지 작은 벤치에 앉아있던 나를 손수 끌고 양지바른 곳에 앉히는 거였다.
자꾸 말을 거는데 이건 대답을 할 수가 있어야지...

#2

모니카가 빵과 치즈를 나눠주었다.
배도 고프고 해서 먹고 있는데, 동네 청년들이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강아지가 발발 거리며 오더니 냅다 치즈를 덥석 물고 가버렸다.
그거 꽤 큰 덩어리였는데... 청년도 웃고, 치즈를 갑자기 빼앗긴 모니카도 웃고...

#3

사람이 그리운 할아버지 모니카와 몇 마디 말을 하고 나에게 통역도 해주고...갑자기 웃는다.
할아버지가 말 잘 통한다고 청혼해 왔다고.

#4

알베르게 앞에서 기다리던 노인 한 분. 72세인데 지금 일 년에 한번씩 10번 산티아고를 걷는단다.
물론 이 내용은 모니카가 영어로 옮겨준 내용이다.
근데 가만히 보니깐 이분 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둘이 에스파냐어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더 이상 호응을 안 하고 나와함께 차나 마시러 가자고한다.    
알베르게에 들어와서 보니 팬티바람으로 온 군데를 휘젓고 다닌다.
정신사납다. 씨끄럽다....

#5

"친구들이 그러는데 비아나 이 마을은 사람들이 좀 이상하다고 했어.
그냥 좀 다른거 같다고. 나도 오늘 청혼을 받질 않나, 10번씩 걸어다니는 노인네가 있질 않나...
게다가 이 호텔 레스토랑은 우리 같은 순례자 옷차림을 싫어하는 모양이야. 친절하지 않아."
"특별히 그런 이유라도 있을까?"
"아마 바람이 불어서일거래. 이 지역 바람은 좀 다른가봐."
"이 동네 오는 내내 날씨도 참 스트레인지 했어. 그치?"
"응"


저녁은 간단히 점심에 먹고 남은 바게트에 츄라스와 치즈를 사서 토마토를 썰어 끼워먹었다.
역시 발 부상과 피부건조함으로 추가비용이 는다.
모이스쳐 로션 3유로와 콤피드 발가락용이 5유로 들었다.

홀로 걸을 첫날 기념으로 마을을 산책하며 성당에도 들러보다.
그리고 바에서 여유를 즐기면서 산미구엘 맥주 한잔 마셨다.
홀로된 첫 날의 낭만은 알콜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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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어젯밤 파티를 같이 보낸 사라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오후의 한가로운 때를 즐기고 있다.
아침에 빨래도 하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식재료도 사오고 동네도 어슬렁거리다.

한국인 남자사람이 쉬어간다며 들어왔다.
문득 내 노란 슬리퍼에 시선을 두더니 독일인 마크 이야기를 한다.
노란 신발의 한국 여자 이야기를 했나보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못 넘고 있는 나를 경찰에 신고해 준 친구다.
소문이 거기까지 퍼졌나?
카미노에서 나의 정체는
'노란슬리퍼를 신고 피레네에서 퍼졌던 그래서 실종신고됐던 한국여자'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느리지만 잘 간다.

빨래 말리고 식사하고 발의 물집 처리하는데 벌써 한 시다.
아 이곳에서의 시간은 느리지만 잘 간다.
앞으로 남은 2주일을 보낼 계획을 세워보지만 계획이랄게 따로 있을리 없다.
그저 걷다가 돌아오는 것.
어디서 돌아오느냐가 계획의 전부일 것이다.



▲ 하루종일 틀어줬던 '맘마미아 OST' 스페인버전. 급기아 가라오케버전을 소개까지 해주는 센스발휘.  


밖이 시끌벅적하다.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등장하려나보다.
그 무리에 나를 노란슬리퍼라고 부르는 마크와 40대 '샤이보이' 가 섞여있었다.
하루 여유를 부리니 이렇게 만난다.
마크(화가. 32세)는 지네 집에서부터 독일에서부터 900킬로를 개와 함께 걸어왔다.
그의 개는 항상 지쳐 있고 마크는 멀쩡하다.
서로 반가운 '척' 인사 해대고 난리도 아니다. 
그래 잘 왔다.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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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에스텔라 - 로스아르코스 : 21.8km



어제 비가 온 뒤 제법 쌀쌀해진 기온으로 상쾌한 걷기가 시작되었다.
새끼발가락 물집을 실리콘 밴드로 동여매고 만반의 준비로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변덕이다.
첫 번째 고개를 넘어서자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쬔다.
황토 빛 땅이 환하게 개고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반가운 산티아고 길의 날씨다.



두 번째 고개를 넘어서자 바람이 마구 불기 시작한다.
갈대길 사이로 갈대보다 더 흔들리는 바람이다.
그리고 슬슬 춥다. 땀이 나기도 전에 식어버렸다.
그래도 비를 맞고 걷게 되지 않음에 감사하나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이 들 정도다.
이때 나의 장갑과 귀가리개가 딸린 모자가 위력을 발한다.
물론 바람막이가 되어줄 나의 주황색 점퍼도.

뒤에서 '안녕안녕'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드레아다.
어디선가 줏어들은 한국인사를 배워서는 동양인이 보이면 인사를 건넨다.
몇 걸음 걷다가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내 눈치를 보더니 혼자 걷고싶냐고 묻는다.
"너만 괜찮으면 같이 걷고 싶어."
"난 상관없어."

소방관인 이탈리아인. 올 연말까지 휴가라고 한다. 한 50여일 정도. 휴가를 받았다.
대신 그동안 황소같이 일했다고 한다.

어딜가나 서먹한 사이에는 '날씨'이야기를 꺼내는게 장땡이다.
"바람 부는 날씨를 좋아하니?"
"응 좋긴 한데 좀 춥다."
"춥다... 안녕, 왜?, 가자" 그동안 학습한 한국어를 쭉 나열하고 자랑한다.
 
발바닥이 하중의 한계에 다다를 때쯤 마을이 보인다.
오늘은 안드레아가 길동무가 되어준 덕분에 기적이 발생했다.
2시가 되기 전에 입성하다니 생장 출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발바닥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여기 알베르게까지 들어온 안드레아,
8킬로를  더 갈 것이냐 이 마을에서 잘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더니
같이 밥만 먹고 떠나겠다고 한다.
"그래 그러자. 근데 우린 요리해 먹을 건데...스파게티 해줄래?"
"너희들이 원하는 건 다 해줄게."
자연스럽게 안드레아는 눌러앉았고 요리사 섭외까지 완료되었다.

바에 가서 또띠아에 홍차 한 잔을 마셨다. 안드레아가 사주었다.
그럼 와인은 우리가 살게 저녁 파티나 하자.
이렇게 해서 최초의 파티가 기획된다.

이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나게 된 엔젤 커플.
사람 좋아보이는 미국여인. 엔젤. 그녀는 팜플로냐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과 세계여행 중이다. 8월에 독일에서 시작해 여행은 독일, 파리를 거쳐 산티아고,
그리고 프라하를 거쳐 호주로 넘어갈 계획이다.
산티아고는 내일까지만 걷는다. 그럼 마지막을 기념하는 파티를 오늘 하자.

이곳 알베르게는 사설로 개인 별장 같은 곳이다.
거실에 놓인 벽난로가 편안한 카페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곳이 순례자 커뮤니케이션의 중심구역이다.
주인 아저씨가 분위기를 타면서 스페인 공연을 틀어준다.
"플라멩고 좋아해요?"
스페인 음악의 쥐어짜는 정서 판소리와 비슷한 것이 낫설지 않다.
이 알베르게에 머물면서 오늘 저녁, 진짜로 여행을 온 것 같다.


▲ 각자 갖고 있는 음식을 내놓고 자신있는 요리 하나쯤 해놓는다. 그래서 더욱 풍요로운 식탁.



▲ 벽면의 지도를 보면 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대륙에서 왔다.

6:30 슈퍼가 문을 여는 시간 약속대로 안드레아가 스파게티 재료를 산다.
센티는 샐러드를 만들었고,  안드레아는 스파게티를 만든다.
그리고 순례자 11명이 모인 오붓한 저녁시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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