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한 셔츠에 버튼 커버를 달자 포인트가 확 살아난다.
패션의 완성은 디테일이라는데 이 말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다.
1%의 디테일을 책임지는 아이템을 탄생시킨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조재선 대표를 만났다.

핸드메이드 악세사리를 디자인하는 누로 조재선 대표

Q. 누로의 브랜드 뜻과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누로(NOORO)는 소말리아어로 '직관'이라는 뜻입니다. 사유나 분석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것인데요,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그렇게 날카로운 직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직관으로 그 니즈를 충족시켜주고 싶습니다. 소말리아인들은 NOORO를 알라의 선물이라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작은 제품 하나까지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저의 NOORO입니다.
핸드메이드 맞춤 악세서리로 시대에 맞는 공예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재료는 금속, 칠보,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합니다. 핵심 아이템은 버튼 커버고요, 거기서 파생된 악세서리도 만들고 있어요. 주문 후 제작에 들어가는 1:1 맞춤 제작방식으로 한 분의 고객을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다양한 디자인의 버튼 커버

셔츠 앞단추는 물론 소매 단추에도 착용 가능하다.


떼었다 붙였다 하는 특징을 살려 반지 팔찌 등의 악세사리로도 연출 가능하다.


Q. 버튼 커버는 흔치 않은 아이템인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건축을 전공하고 관련 일을 했어요. 건축일이 꽤 하드한데 육아와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공예를 배웠어요. 작은 공방을 내고 작업 활동 하면서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공예를 강의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공모전 관심이 많아서 공예 공모전을 유심히 살폈어요. 버튼 커버로 2014년에 서울여성공예창업대전에 공모했는데 ‘대상’을 수상했어요. 창업 지원을 해주는 공모전이어서 자연스럽게 창업의 길로 이어졌어요.

 버튼커버를 착용한 박원순 시장

 그다음 해부터 북부여성발전센터의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서 첫 사무실이 생겼어요. 사업자는 냈지만, 첫 1년은 거의 창업교육만 받았어요. 창업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거든요. 사업기획서 쓰는 법부터 상표/디자인 등록 등의 지식관련, 세무관련 등 기초부터 차근히 배워나갔습니다.


Q. 공예와 IoT를 콜라보한 색다른 실험도 하시는 것 같아요.

2015년부터 ‘사물인터넷 융합 디자인 협동조합’에서 이사로 있어요. 블루투스 업체, 웹 개발 등의 IT 업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협동조합이에요. 대학교 창업교육 갔다가 만난 분이 저에게 제안을 해주셨어요. 사물인터넷과 공예의 콜라보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겨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제어하는 조명 등 여러 시제품을 만드는 중이고 NFC나 비콘을 활용한 악세서리를 시도하고 있어요. 

스마트폰으로 조명 색, 밝기 등을 콘트롤하는 조명. 시제품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NFC로 다양한 디지털 이미지를 디스플레이할 수 있는 스마트 패션 악세서리


* 비콘(beacon)은 근거리에 있는 스마트 기기를 자동으로 인식하여 필요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무선 통신 장치이다. 블루투스 비콘(Bluetooth Beacon)이라고도 한다. 비콘은 최대 50m 거리에서 작동할 수 있다. 비콘 기술을 이용하면 쇼핑센터, 음식점, 박물관, 미술관, 영화관, 야구장 등을 방문한 고객의 스마트폰에 할인 쿠폰이나 상세 설명 등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 NFC(Near Field Communication) 는 10cm 이내의 근거리에서 작동하는 무선통신인데 교통, 티켓, 지불 등 여러 서비스에서 사용할 수 있다.



Q. 디자이너는 늘 창조를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으세요?
책이나 영상물을 보기도 하고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건축적인 요소를 가져와 공예 디자인에 적용하기도 해요. 스케일의 차이가 있더라도 '디자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까요. 버튼 커버는 남편이랑 뮤지컬 영화 ‘애니’를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영화에 남자 주인공 워벅스가 나비넥타이를 하고 오는데 셔츠에 버튼 같은 게 있는거에요. 호기심에 찾아보니 버튼 커버라는 악세서리가 있더라고요.


Q. 공예 대전 대상 수상 이후로도 꾸준한 전시 참여와 다양한 지원사업의 대상자로 선정 되셨네요. 내게 맞는 지원사업을 찾는 노하우가 있나요?
지원사업은 장단점이 있어요. 사업 계획서 형식과 절차에 맞는 서류를 준비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제가 하는 작업은 우선 비용이 드는 편이어서 지원금 사업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케이스 제작도 기본 단가가 높아서 지원금이 없으면 시도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해보고 싶은 것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어서 장점이 큰 참 고마운 제도에요. 협동조합에서도 시제품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받았고요, KOTRA에서 해외진출을 위한 지원을 받게 됐어요. 해외전시와 인증을 받고싶은데 계획대로 되면좋겠네요. 좋은 바이어를 만나 지속적인 판로를 개척하고 싶어요. 그 모든 것을 저 혼자 하기에는 힘든 부분인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어떤 사업이 되었든 제일 중요한 건 처음 물꼬를 잘 트는거에요. 저는 서울여성공예창업대전이 시작이었어요. 하나를 잘 해내면 그 기관에서부터 엄청난 정보가 쏟아져 와요. 요즘은 지원사업도 홍보 마케팅, 홈페이지 제작 등 세분되어 있어요. 찬찬히 살펴보면 나에게 맞는 지원사업을 찾는 노하우도 쌓여요. 홈페이지도 지원사업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여성능력개발원에서 7명의 공예작가에게 지원금을 주는데 제가 1기로 선정되었습니다.

하이서울우수상품어워드 선정 - 누로의 대표상품 버튼 커버 홍보영상 제작 지원


Q.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거에요?
시간이에요. 일과 가정이 쪼개지니까요. 우선순위는 가족인데 균형을 맞추려면 제가 시간을 쪼개야 해요. 그러다 보니 잠을 줄이는데 급노화가… (웃음) 밤새면서 서류 쓰고 작업해서 결과가 나오면 또 뿌듯해지고 성취감도 생기니까 계속 도전해보는 거죠. 다행이 남편이 지원자가 되어 주었어요. 같이 건축 설계를 해서 서로의 일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요.


Q. 대표님에게 창업의 의미는 어떤 거에요 ?
자아실현이요. 건축할 때 워낙 하드한 일을 하다 보니 저를 몰아쳐서 일하는데 익숙해졌나 봐요. 집안일도 하드하게 해요 (웃음) 그렇지 않으면 일을 안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해도 눈에 잘 안띄는 집안일 보다는 성취가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 있다는걸 느껴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창업 강의도 진행한다.


Q. 올해의 목표는 어떻게 정하셨어요?
완전한 독립입니다. 작년 후반부터 홍보마케팅을 시작했어요. 올해는 오프라인에서 페어에 참여하고 온라인 마켓을 운영하면서 인지도를 쌓아가려고요. 버튼 커버가 국립중앙박물관, 청와대, 세종시청사, 역사박물관 기프트샵에 입점해 있어요. 비즈니스호텔 등으로 진출하고 해외시장으로도 판로를 개척도 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유래된 악세서리다 보니 주 고객은 해외에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강의를 했는데 올해도 시간만 허락되면 꾸준히 진행하고 싶어요.

공예 강의 중인 조재선 대표

홍보/마케팅의 일환으로 공예 관련 정보를 다루는 유튜브 페이지를 개설했다.


Q.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포부 한 말씀 남겨주세요

음. 별 시련 없이 잘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일 하고, 건강하면 그게 행복인 거 같아요.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DIY 공예 카페를 만들고 싶어요. 인간은 손을 사용해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하는데요, 제가 만드는 카페가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한때 서점가에서 '디테일의 힘'이라는 경영책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사소한 1%의 부족이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작지만 ‘치명적인’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디테일의 힘은 비즈니스뿐 아니라 패션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 소매 끝, 셔츠 앞 단에 달린 버튼 커버로 센스있는 패션 감각을 선보일 수 있다. 언젠간 누로의 버튼 커버가 남성들의 비즈니스 센스를 대변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유럽의 전통 악세서리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하게 된 버튼 커버 아이템에 동양적인 디자인으로 해외의 바이어를 사로잡겠다는 그녀. 버튼 커버 하나하나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을 보면 곧 그날이 오리라는 기대감이 든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누로가 되는 날을 응원한다.


누로 홈페이지 : http://nooro.co.kr/



'누로' 조재선 대표 프로필 

2005-2009   
누로공방 한국, 일본 아트클레이 공모전 입선 
2006-2007
인사동 아트센터 및 도쿄 신미술관 전시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참가
2008
국제 도자 장신구 공모전 입선 
2008-2013
중앙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숙명여고 등 특강 강사활동 
2014
서울여성공예창업대전 ‘대상’ 수상 
2015
‘NOORO’ Brand launching 
‘서울여성 공예분야 판로 및 성장 지원사업’선정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문화상품 선정
‘공예가 맛있다’ 서울역 전시 ‘서울여성공예창업축제’ 시민청 전시
‘사물인터넷 융합 디자인’ 협동조합 이사 취임 
2016
국제 핸드메이드페어 참가 
서울여성공예페어 참가
2017
핸드메이드페어 참가 
하이서울우수상품어워드 선정 / 메가쇼 참가
대한민국 산업기술 R&D대전 참가 




본 인터뷰는 북부여성발전센터를 거처 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북부여성발전센터의 의뢰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원문: https://blog.naver.com/bukbuwomen/221187863772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매주 다양한 국가의 청년들이 핫(Hot)한 안건을 놓고 토론하는 '비정상회담'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재기발랄한 세계의 젊은 시선으로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참여자들은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이다.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있다. 외국 출신 방송인이 자신의 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해 한국을 여행하는 것이 리얼리티로 방송에 실린다. 바야흐로 K팝을 넘어 K컬쳐의 시대다. 문화에 관심이 높다 보니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도 높다. 이 가운데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과 교사를 연결해주는 튜터케이가 있다. 전 세계인이 언제 어디서나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어회화 오픈플랫폼 튜터케이 (www.tutor-k.com) 을 운영하는 (주)케이오알이 최희정 대표를 만났다. 


Q. 하는 사업을 소개해주세요.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과 한국어 교사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입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의 국적이 다양한 만큼 교사들도 국적이 다양해요. 심지어 외국어를 전혀 못 해도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어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의 국적이 다양한 만큼 한국어 강사들도 한국어 뿐만 아니라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한국어 강사들도 많이 있어요. 외국어를 전혀 못해도 한국어 강사를 할 수 있냐고 많이들 물어 보시는데 중.상급자들은 수업시간에 “한국어”로만 수업하는걸 원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http://www.tutor-k.com 에서 만날수 있는 한국어 선생님


Q. 한국어 교육 플랫폼을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직장생활 하면서 번 돈으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일 년이면 마스터 할 줄 알았는데 입도 안 떨어지는 거에요. 결혼하고 남편이 주재원 발령을 받아 아이와 함께 LA로 이주했어요. 아이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치고 싶었어요. LA는 한국인이 많은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한국어 선생님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한글학교를 보내도 잘 못 하더라고요. 개인 과외 선생님까지 찾기도 하고 제가 가르치기도 했어요. 아이가 8살에 한국에 왔는데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제가 어학 연수할 때의 막막함과 아이를 가르치던 경험으로 온라인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직접 강사 활동을 해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창업으로 이어졌어요.

(주) 케이오알이의 최희정 대표


Q. 튜터케이의 고객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주 고객층을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해외 거주 외국인으로 잡고 2016년부터 베타 버전을 운영했어요.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알게 됐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의외로 국내에 시장이 있는 거예요. 한국에 20년 거주하는 분들도 한국어 교육이 필요합니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우리도 외국에서 20년 산다고 네이티브가 되는 게 아니듯이요.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도 지속적인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더라고요. 한국인 남편분들의 문의가 많은 편이에요. 외국인들에게는 실질적인 한국식 표현을 알려줘요. 정식으로 학교에서 공부한 분들인데 시험용 언어와 생활에서 쓰이는 언어가 다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영어를 쓰면 다들 배우려고 하니깐 크게 한국어를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에요.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놓치고요. 그러다 취업 등으로 한국어 시험을 봐야 하는데 그때부터 다시 한국어 공부를 해야 하는 분들도 있어요.


Q. 오프라인 교육도 하시나요?
온라인 플래폼으로 시작했지만, 오프라인 교육 요청도 많아요. 한국어 기초를 배울 때는 오프라인 수업이 더 효과적일 수 있거든요. 학생이 있는 가까운 곳에 교사가 있으면 파견을 합니다. 별표, 리뷰를 통해 평판관리가 잘 된 교사를 선별해요.


Q. 교사모집은 어떻게 모집 하나요? 외국인 대상의 홍보도 궁금합니다.
구글 키워드 광고 집행하고 있고 페이스북 페이지와 그룹 4개를 레벨별로 운영해요. 홍보용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있어요. 회사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알리고 있어요. 페북은 회원 수가 많은 회사 커뮤니티와 전략적으로 조인해서 협업하고 있어요. 저희가 가진 콘텐츠 중에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능력 시험 콘텐츠가 있는데, 정답자에게는 100코인을 발급하고 있어요. 1불이 10코인인데 코인으로 사이트 내에서 한국어 교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튜터케이가 개발한 한국어 교육 콘텐츠

한국어 능력시험 퀴즈


한국어 쓰기 학습지도 제공한다.



Q. 대표님에게 창업은 어떤 의미세요?
지금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보다는 남이 하라는 일을 했었어요. 이 일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습니다. 사업의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과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Q. 2016년에 북부여성발전센터에 입주하셨는데요, 여기서 어떤 성과가 있었어요?
1인 창조기업 마케팅 사업. 창조경제타운 인큐베이팅 아이디어 선정. 북부에서 진짜 좋은 일을 많이 했어요. 비즈니스모델도 출원하고요. 외국인 박람회에도 나갔었어요.


Q. 이렇게 밀고 나가는 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남편이 많이 밀어줬어요. 사람 소개도 해주고 남편의 네트워크를 공유해주기도 하고요. 사이트 최초 개발도 남편을 통해 소개받은 개발자가 해줬어요.

최희정 대표와 튜터케이 직원들과 함께


Q. 사업을 하다 보면 고비가 있으실 텐데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정말 힘들면 성공한 분들을 찾아가서 물어봐요. 연락하면 거절하지 않을까 싶어서 망설였는데 기꺼이 만나서 시간을 써주시더라고요. 바쁜 시간을 쪼개서 도와주려고 하시더라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업력이 쌓이면 깊어지는 것 같아요.


Q.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태도요. 겸손하고 배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다 보니 정말 훌륭한 멘토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그분들께 찾아가서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에요. 한 멘토에게 제가 '저는 경영이 제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고민을 토로했더니 '경영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멘토의 말이 충격이었어요. 사업하는 분들은 누구나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누구나 고비를 넘기며 버티는 거라고요. 평범한 아줌마로 남느냐 이 고비를 넘어서 사업가로 성장하느냐는 본인의 선택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정기적으로 만나는 대표들이 있어요 사업가들의 고민도 있고요. 멘토 교수님도 많이 뵙고요.


Q. 대표님이 사업하시는 자기만의 경영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총을 쏠 때, '준비-조준-발사'라고 하자나요. 어떤 책을 읽어보니 '준비-발사-조준'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작은 스타트업을 하는 저희 같은 경우는 후자가 맞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추진력이 부족한데 발사를 자주 해보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력이 많지 않아서 정부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11-7월까지 사업계획서 쓰느라 매우 바쁘지만, 그 준비를 하면서도 많이 배워요.


Q. 앞으로 비전은요?
지금은 한국어 회화 오픈플랫폼으로 시작했지만 전 세계인들이 한국어 하면 떠오르는 한국어 교육포탈로 자리잡고 싶어요. 구글 하면 서칭, 페이스북 하면 소셜네트워킹, 튜터케이 하면 한국어에 관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 라고 여겨지는 사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본 인터뷰는 북부여성발전센터를 거처 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북부여성발전센터의 의뢰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원문 : https://blog.naver.com/bukbuwomen/221185425588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사전 MC라는 직업이 있다. 녹화방송 중간마다 관객과 무대의 열기를 이어주는 사전 MC는 원활한 방송을 위해 쉬는 시간에 관중들과 소통하면서 흐름을 이어 나가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방송 프로그램에 없어서는 안 될 사전 MC들은 대부분 남성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 유일한 여성 사전 MC가 있다. 그만큼 관중과 무대의 에너지를 끌어 가는 힘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녀는 바로 개그우먼 조승희씨다. KBS 공채개그맨 23기 출신으로 각종 행사의 진행자로, 공연기획사의 대표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무대에 서면 힘이 난다는 그녀, 여자 유재석을 꿈꾼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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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3기 공채 개그우먼입니다. 여성 MC로 각종 행사와 진행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및 뮤지컬 등 공연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연 '투맘쇼'를 하는 '투맘컴퍼니' 공연기획사 대표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큰 기회를 소개한다면요?

첫째는 저만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다를 텐데요, 저는 '즐거움'이 가장 우선 가치였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명언이 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해야 즐거우냐는 고민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둘째는 대학 시절 광주 MBC에서 보조 MC를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방송 활동에 입문 할 기회도 얻었고 더 큰 무대를 찾아 서울로 와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곳이지요. 








일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는 점과 힘들었던 점을 알려주세요.

일하면서 당연히 가장 큰 보람은 관객과 대중에게 웃음을 주었을 때입니다. 처음에 개그우먼이 되었을 때는 오로지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어요. 연차가 쌓이고 행사도 하고 연기도 하며 공연을 했을 때 대중을 직접 만나면서 다른 부분이 보였어요. 단지 웃음만 드리는 것을 넘어 공감과 감동을 주었을 때 감흥이 크게 일어나는 것 같아요. 또 저로 인해 누군가가 힘을 얻고 작은 것 하나라도 도전할 계기가 되었다면 보람되지 않을까요.

힘들었던 점은 개그 지망생 때라고 할 수 있어요. 잘 아시다피 지망생의 생활은 가난의 연속입니다. 처음엔 가난해서 힘들지만, 나중에는 연속된 실패에서 오는 상처로 더 괴롭습니다.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게 얼마나 두렵겠어요. 1년에 단 한 번 있는 시험이에요. 그 시험에 낙방하고 또다시 1년 동안 지망생 생활을 해야 할 때 눈앞이 캄캄 했습니다. 

개그맨이 되었다고 해서 고생이 없는 게 아녀요. 밤새 짠 코너가 통과되지 않았을 때, 승승장구 하고있는 동기들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 했을때도 견디기 힘들죠.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더라구요. 이건 연차가 쌓여서이기도 하고 30대에 들어보니 생기는 여유와 안목인 것 같습니다.

개그콘서트에 출연중인 개그우먼 조승희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이었나요? 그를 통해 배운 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실패는 2005년 광주 MBC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입니다. 광주의 한 대학생이 방송사에 들어와 2-3개 프로그램의 보조 MC로 활약하다가 드디어 메인프로그램의 MC가 되던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프로그램은 한 달 만에 폐지가 되고 말았죠. 저는 수건 하나가 다 젖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가 오던 그 날 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날 '서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 상황이 되고 나니 어릴 적부터 서울로 가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발판이란 생각이 듭니다. 



롤모델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현재 롤모델은 개그우먼 송은이선배 입니다. 연기와 방송도 두루 하면서 지금은 '비보티비라'는 크리에이티브 컨텐츠 기업을 운영 중입니다. 대중의 사랑도 받으며 후배들의 길도 열어 주는 멋진 일을 하고 계시지요. 제가 선배와 비주얼이 조금 닮았어요.



조승희 선생님이 생각하는 ‘공부’는 어떤 의미인가요?

공부는 결국 나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수학을 전공했어요. 수학과 출신 개그맨이라니요. (웃음)
수학은 생활에서 널리 적용할 수 있는 학문입니다. 논리의 학문입니다. 수학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은  인과 관계의 논리입니다. 
수학 공부가 개그맨이 되는데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생활에 많은 도움이 돼요. 모든 공부에는 나름의 의미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재밌게 수학을 가르치는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어느 날 깨달았는데 제가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수학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아이들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결국 강단이 아닌 무대에 서게 되었네요. 수학과에 갔기에 이 일에 대해 열망을 품을 수 있었어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책 단 한 권만 소개한다면?

'시크릿'이라는 자기계발서입니다. 광주에서의 방송 생활, 개그맨 지망생 시절 의기소침해 있을 때 만난 책이었어요. 도전에 대한 두려움에 젖어있을 때 뭐든 생각하기에 달렸다고 강력하게 말해주던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바로 실천을 했어요. 이미 유명 개그우먼이 된 것처럼 아침마다 생생하게 그려보는 연습을 했어요. 어느 날은 KBS 앞에 찾아가서 '이곳이 내가 출근할 그곳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걸어 보기도 했었습니다.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생생하게 그리다 보니 더욱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어요. 

시크릿
국내도서
저자 : 론다 번(Rhonda Byrne) / 김우열역
출판 : 살림biz 2007.06.16
상세보기





개그맨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개그맨을 꿈꿀 창의력과 끼로 꼭 PD가 되라는 조언을 하고 싶네요^^;;  막상 방송국에 들어와 보니 진정한 일인자는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이 아니었어요. 그 연예인을 무대에 세우는 제작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창작자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더라고요. 

 송은이 선배처럼 개그맨 활동도 하면서 제작자이기도 한 길을 가는 선배들도 많고요, 저 또한 그렇게 길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개그맨이 되어서 인지도를 쌓은 후에 제작자의 길로 가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강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개그 지망생 시절처럼 전투적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봤어요. 약간 반성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꿈은 '현재에 안주해 있지 않은 나, 늘 성장하는 조승희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악기, 언어, 연기, 하모니카도 정말 열심히 배웠습니다.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나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어요. 늘 발전하지 못해도 퇴보는 하지 않는 조승희가 되고 싶네요.

 가까운 10년 안에는 여자 유재석, 대한민국의 인정받는 대표 여성 MC 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꿈이 너무 야무지다고요?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 이효리 씨가 기억이 나네요.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7월 게스트는 KBS 공채개그맨 조승희씨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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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Origin 인터뷰 _ 아이디어디렉터 안다비를 만나다 

낙서를 하면서 why 꽃을 발견하게 된 안다비 아이디어 디렉터


는 일에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아이디어디렉터 안다비입니다. 저는 ‘손재주와 아이디어로 감동을 주는 일‘에 행복감을 느끼고, 아이디어디렉터라는 직업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분야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만들었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호기심'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고, 지금은 호기심이 아이디어가 될 수 있도록 돕는(보이지 않는 호기심을 그려내는 전시 및 사람들의 호기심을 표현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젝트)일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곤 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큰 기회는 무엇이었나요?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적었던 ‘낙서’가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큰 기회 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내 마음 속 호기심을 표출하지 않았다면 (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지 않는 걸까?, 왜 무언가 하려면 꼭 대학을 가야만 하는 걸까?, 왜 무조건 대기업을 가는 것이 성공하는 걸까? 등) 돈과 현실보다 호기심이 중요하다는 깨달음도 얻지 못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당연히 첫 번째 전시회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 이 순간도 오지 않았겠죠?^^


아이디어 디렉터로서 활동한 내용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프로젝트, 작품, 일화 등) 한가지 소개해줄 수 있나요?
세 번째 전시회를 얘기하고 싶어요. 세 번째 전시는 제가 그동안 이야기를 전하면서 만났던 학생들이 그려준 그림(whyart)으로 전시회를 열었어요. 그 중에 인상 깊었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why를 우산으로 표현한 친구가 있었어요.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은 저를 표현했고, 우산 아래 앉아있는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표현했던 친구였는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데요. 근데 제 이야기를 듣고, 내가 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직업을 하고 싶은지, 그 직업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이나 대회 그리고 학원은 왜 안 끌리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렇게 스스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니까 진짜 내가 뭘 원하는지 분명해지면서 쏟아지는 반대를 막는 힘이 생겼다는 말을 해주었어요. 그 학생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두가 호기심의 힘을 느꼈던 순간이었어요. 


가장 큰 실패와 그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이었어요?
실패라고 느꼈던 일이 있었어요. 물론 지금은 실패라고 부르진 않아요. 멘토스 회사에 광고를 제안하러 네덜란드 본사에 찾아갔던 적이 있어요. 사회에는 다양한 어른들이 존재하고 그 모두가 어울려서 살아가는 곳이 사회인데 고등학교 때 들을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은 지극히 편향적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고스펙이 없으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들이요. 제가 직접 느낀 사회와는 너무 달랐죠. 그래서 뭔가 이런 얘기를 전해주고 싶었어요. 마침 멘토스에 이런 메시지를 표현할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걸 광고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영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네덜란드로 갔죠. 광고가 만들어지진 않았어요. 다만 난 광고는 목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호기심’이 수많은 두려움을 이겨낼 힘이라는 깨달음도 얻었고요.

여러사람들이 참여한 WhyArt 그림들



롤모델이 있나요? 누구이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롤모델은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롤모델이란 닮고 싶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제가 지금 가는 길은 진짜 아무도 가지 않았던 제 길을 개척해서 가고 있어서 롤모델 보단 제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큐리어스 마인드>의 저자이자 할리우드 영화제작프로듀서인 ‘브라이언 그레이저’를 꼭 만나보고 싶어요. 그분과 호기심을 키워드로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강한 바램이 있습니다^^ 곧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책을 단 한 권만 추천한다면? 
저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예전에 화려한 겉표지에 호기심이 생겨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제가 제 돈을 주고 책 한권을 산적이 있어요.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이라는 책인데 책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달리 멋진 도전을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책이예요. 정말 이 책은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주변에 선물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읽을 때 마다 다른 느낌으로 와닿더라구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
국내도서
저자 : 아네스 안(Aness An)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06.11.29
상세보기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게 진짜 공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는 배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어릴 때 엄마의 웃는 표정에 호기심이 생겨서 팔다리를 움직이고, 걸음마를 하듯이 호기심에 호기심이 이어져서 정답이 아닌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마음속 꿈틀대는 호기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말도 안 되고, 주변에서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끌리는 호기심이라면 한번 따라가 봤으면 좋겠어요. 에디슨의 호기심은 ‘어두운 밤을 낮으로 바꿀 순 없을까?’였다고 해요. 주변에서는 미쳤다며 손가락질을 했지만, 그 호기심이 지금은 없어선 안 될 전구를 만들었잖아요. 호기심은 에디슨, 아인슈타인, 스티브잡스 머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무궁무진한 호기심이 있고, 여러분도 마음에 귀 기울여 본다면 호기심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의 호기심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갚지 다는걸 잊지 말아요.


앞으로의 꿈 혹은 계획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의 호기심을 모으고 싶어요. 사람들의 호기심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서 비슷한 호기심을 연결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호기심을 융합해보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호기심을 눈앞에 그려내고 싶어요. 호기심 공장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호기심 공장의 자원은 여러분들의 호기심이랍니다.


아이디어 디렉터 안다비 만나기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180cmmmm/
홈페이지 : 180cmmmm.modoo.at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4월 게스트는 아이디어디렉터 안다비씨와 함께 한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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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행복한 의료인이 되는 길 탁종석 간호사]

이제 더이상 남자간호사는 생소한 직업이 아니다. 입시 시즌 전국의 간호대학에 지원하는 남학생 비율률이 늘고 있다는 뉴스도 새롭지 않다. 그런 세태를 반영하듯 요즘 의학 드라마에서는 남자 간호사도 등장한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쾌할하고 유쾌한 목소리의 소유자 탁간호사와 인터뷰 약속을 하고 분당서울대병원 로비에서 만났다. 듬직한 체격의 그는 얼굴 한가들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런 미소는 살뜰히 환자를 살피는 간호사의 몸에 밴 습관 같았다. 행복한 의료인으로서 살고 있는 간호사 탁종석씨를 만나 간호사로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공공의료사업단에서 불우환자돕기후원기금 운영 및 관리와 
해외의료봉사와 국내의료봉사를 담당하는 간호사입니다. 


Q. 간호사가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3학년 진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중, 먼저 간호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친누나의 적극적인 추천과 도움으로 간호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남자 간호사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라는데 어느정도 인가요? 
2014년 면허 등록 한 남자간호사는 2.3%으로 7천명입니다. 
재학중인 간호학과 학생 중 남자는1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6년 국가고시 합격자(1만 8천여명) 중 남자비율은 10% (1천7백여명)로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2013년 인도네시아 의료봉사


Q. 8년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여러 과를 옮겨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각 과의 특징과 일을 설명해주세요. 
2009년 입사 때 처음 발령 받은 곳은 수술실이었습니다. 수술실이라 하면 보통 무섭고 징그러운 장면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누워있는 환자의 배를 칼로 가르고 여러 신체조직을 만지면서 수술하는 모습에 많은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나의 도움으로 단 한명의 환자를 위해 서로 손을 맞추며 치료하고 생명을 구해내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수술실에는 서로 다른 진료과가 38개의 수술실에서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진료과가 일하고 있는 만큼 수술실은 우스갯 소리로 “10년 동안 신입직원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수술실에 적응되면 또 다른 수술실로 가서 새로운 것을 익히고 또 다시 옮기고 이렇게 계속 옮기게 됩니다.  저는 입사 후 비뇨기과, 산부인과, 정형외과를 순서대로 돌면서 수술에 대해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실에서 간호사가 하는 일은 수술기구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업무라 생각 할 수 있지만 그건 매우 큰 착각입니다. 수술을 하기 위해 환자가 들어오고 나가는데 까지 간호사의 손길이 안 미치는 곳이 없습니다. 한 명의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기구를 멸균하고, 수술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합니다. 환자가 들어오면 정서적인 지지를 해줍니다. 더불어 혹시 모를 안전을 위해 여러 번 확인도 합니다. 수술 후에도 이 수술이 정확하게 된 건지 재확인 하는 것이 간호사의 역할입니다. 
수술에 임함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숙지하고 있어야 원활한 수술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각 과의 특징을 말하면 먼저 비뇨기과는 주로 남자분들의 생식계 질환을, 산부인과에서는 여자분들의 질환을 주로 수술하였습니다. 이중 비뇨기과에서는 야구를 하던 중 포수를 하면서 야구공이 바로 급소(고환)에 날라와 한쪽이 터져 응급수술을 한 사람, 음경에 암세포가 생겨 음경을 절제한 환자를, 산부인과에서는 해외에서 유학중인 고등학생 여자분이 거대한 난소 물혹으로 임신의심을 받아 혼난 환자, 결혼을 앞두고 자궁암으로 세상을 등진 환자, 출산 도중 과도한 출혈로 피를 흘리며 수술 문을 박차고 들어온 환자 등 많은 사연의 환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형외과에서는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은 군인, 오토바이를 타다 다친 학생, 얼음판에 미끄러져 고관절이 뿌러진 할머니 등 사고와 퇴행성으로 불편을 호소하던 분들의 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몽골 심장병 환아 치료후 방문 사진



Q. 일하시면서 가장 보람될 때가 언제예요? 
캄보디아 의료봉사 때 선천적으로 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태어났을 때 자동적으로 막혀야 될 심장의 구멍이 안 막히게 되면서 전신으로 펴져야 될 피가 엉뚱한 구멍으로 새어나가게 되면서 호흡도 힘들고 밥 먹기도 힘들고 활동하기 힘들어 하는 아이였습니다. 
주먹만한 심장은 보상작용으로 축구공만하게 커지게 되었고 입술과 손가락에는 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파랗게 질려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바로 심장수술을 통해 심장의 구멍을 모두 막아주었고 이제는 숨쉬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일반적인 아이와 똑같이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회복한 아이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저를 꼭 안아주면서 어쿤(감사합니다)이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이이의 어머니는 감사의 표현을 담아 없는 형편에 시장에 가서 과자를 사와 저희에게 주면서 볼 때마다 두 손을 모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해 주었습니다. 저의 작은 재능으로 한 아이와 그 가족의 행복을 다시 찾아준 보람을 느꼈습니다.
 

Q. 남자 간호사로서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첫째는 힘입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합니다. 누워만 계시는 환자분들의 욕창을 방지하고자 자주 자세를 바꿔 주는 등의 모든 행위를 몸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힘쓰는 일에는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들의 역할이 큽니다. 
둘째는 의견 조율입니다. 일선에서 일을 하다보면 환자와 다른 직종의 직원들과 의견이 부딪힐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때도 남성으로서의 사회성이라고 할까요? 그런 협상과 조율이 효과적으로 풀릴 때가 있습니다.


Q. 간호사의 진로도 다양하다고 들었습니다. 병원 외에 어떤 방향이 있을까요? 
가. 소방공무원 
나. 각종 보험회사 보험 심사간호사 
다. 교정직공무원 
라. 보건교사(양호교사) 
마. 장기이식센터 이식 상담사 
바. 보건소 및 도청 공무원 
사. 산업체 간호사 
아. 보험공단 심사평가원 
자. 군대 간호장교 
차. 의료기기관련회사 취업 
카. 연구관련 전문회사 취업
타. 교수 


Q. 내 인생의 3대 사건을 말해줄 수 있나요? 
첫번째는 간호사가 된 계기이기도 한 어머니의 병원생활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고등학교 3학년때 1년 동안 병원에만 계셨습니다. 주말이면 항상 어머니를 뵙기 위해 춘천성심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항상 보살펴야 겠다라는 책임감이 지금의 저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번째는 부서이동입니다. 캄보디아 심장센터 걸립과 관련하여 공공의료사업단에서는 수술장출신의 남자간호사를 희망하였고, 때마침 수술실에서 근무중인 저는 공공의료사업단으로 부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항상 사람을 만나는 것과,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저로써 천직인 것 마냥 모든일이 흥미진진하고 재미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결혼입니다. 2014년 5월 수술실에서 만난 2년 선배 간호사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항상 서로를 존경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는 아내입니다. 

의료봉사 동료들과



Q. 의료봉사를 많이 하시는데 현장의 일은 어떤거에요?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째, 국내의료봉사는 지역선정을 통해 해당 지역의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정형외과, 신경외과, 안과, 소아과, 내과 등 다양한 진료과를 구성하여 검진버스(x-ray, 혈액검사, 초음파 검사 등)의 다양한 장비를 가지고 그 지역의 환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의료봉사도중 질환이 의심이 되면 병원 외래로 예약을 잡아 검사부터 치료까지의 진료비를 별도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둘째, 재난지역 의료봉사. 국가의 중요한 재난지역이 발생할 경우 응급의학과, 각 진료과의 의료진을 구성하여 특수 장비버스와, 함께 재난지역으로 출발합니다.(ex 세월호 등) 

셋째, 해외 의료봉사. 아직 세계 곳곳에는 의료기술의 낙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치료도 한 번 못받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빈민국을 위해 그곳에서 현장 수술을 진행하여 치료를 해주고 현지의 의사들과 간호사를 교육하여 그곳에서 자생적으로 수술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의료봉사를 기획,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몽골등 다양한 나라에 가서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캄보디아는 현지병원에 심장수술이 가능할 수 있도록 수술장비를 지원하였습니다. 1년에 2차례 의료진을 구성하여 현지에 선천적인 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수술을 해주고 있습니다. 
의료봉사를 앞두고 사전에 방문하여 환자를 몰색하고 수술 명단을 확보 후 수술에 필요한 의료진 구성, 물품 준비, 현지 입국과 관련된 사항, 사후 관리 등 전반적인 모든 구성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Q. 간호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간호사는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으로서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때문에 간호사란 직업 자체가 결국 쉬운 직종이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3D 업종으로 여길 만큼 힘든 직업인건 사실입니다. 4년 동안의 전공 과목 수련, 국가고시 등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한 병원 입사 후에는 더욱 더 전문적인 교육, 3교대 근무, 환자와의 갈등, 정보화 사회로 인한 고객 수준 향상, 생명을 다루는 책임감 등 많은 고충이 따릅니다. 
하지만 대기업 만큼의 연봉, 복리후생, 다양한 취업전망, 재취업 가능 등 다양한 혜택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매력은 나로 인해 타인을 살리고, 그들에게 웃음을 되돌려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간호사님이 생각하는 공부란 무엇인가요?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누나의 권유로 간호대에 진학했지만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외워야 할 것도 많고 공부 자체도 어려운데 여학생들이 또 공부를 엄청 잘하니까요. 지금이야 간호대에 남성비율이 80명 정원에 20명이지 제가 대학생일 당시는 5명이었거든요. 그러니 대충 성적이 그려지죠? 
그러다 군대에 갔다가 복학을 했는데 입대 전에 같이 놀던 남학생 친구들이 저를 배신하고 엄청 공부를 하는거에요. 놀 친구도 없고 나라고 못할게 있나 싶어서 책을 잡게 되었어요. 할만하더라고요. 그때 공부를 해내면서 저는 저를 믿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제가 목표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들을 꾸준히 해 나갈 예정입니다. 
 

Q. 앞으로의 꿈, 목표는 무엇인가요? 
유니세프처럼 큰 기금을 운영하는 세계에서 인정하는 후원단체 설립자가 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각국의 빈민국가가 식량이 없어 굶어 죽고 치료비와 의술이 없어 생을 일찍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슬픈 일들이 지구상에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현재 직무에 최선을 다해 충실히 임하고 있습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불우환자돕기 기금 관리 운영과 세계 빈민국가에 수술센터 설립하는 일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간호사라는 직무적 능력과 인간미 있는 친화력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성장할 계획입니다.


탁종석 간호사와 인터뷰를 진행중인 박현진 대표



남자간호사가 아닌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이었다. 식량이 없어 굶어 죽고 치료비와 의술이 없어 생을 일찍 마감해야 하는 슬픈 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오늘도 일하는 탁종석 간호사. 타인을 살리고, 그들에게 웃음을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간호 실무와 의료지원 행정력을 갖춘 인재로, 그가 꿈꾸는 세계가 인정하는 후원단체를 이끄는 꿈을 이뤄나가길 응원한다.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12월의 게스트는 남자 간호사 탁종석씨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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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의 인터뷰 Be Origin _ 청년목수 김동혁을 만나다  



폐허의 공사현장에 양복을 입고 

한 손에는 묵직한 공구를 든 남자.


청년목수 김동혁씨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때문이었다. 


목수라는 직업이 저렇게 섹시한 거였나?

이후로 그의 SNS를 발견했고, 

메시지를 보내 그와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차난으로 차는 작업장에 두고 바로 출발하느라 작업복 차림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10월 단풍이 무르익던 어느날 서촌의 고즈넉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작업장에서 바로 출발했다는 그는 본인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작업복에 검정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오른쪽 귀에는 노란색 연필이 선명했다. 서른 두살, 목수로 살아온 시간이 16년이란다. 작업복과 미팅복을 구분해서 입는다는 그에게서 프로페셔널의 냄새가 났다. 목수 장인을 꿈꾸는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현장에서 작업중인 김동혁 목수





아버지 따라 발을 들인 목수의 세계, 어느덧 16년차  

그는 한달에 천만원을 번다는 30대 초반의 목수다. 인테리어 총괄도 하고 있고, 목공 반장으로도 일한다.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며 소비자 직거래를 하고 있고, 온라인을 통해서도 고객을 많이 만나고 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나는 물음에 고달펐던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돈을 벌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학교 공과금을 못낼정도로 집이 가난했거든요. 그 당시 아버지가 목수였는데 방학때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다녔어요. 적성보다는 적응이 되었다고 할까요.” 


목수들은 현장에서 등 너머로 일을 배운다. 장인들이 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현장에서 하는 도제식 훈련이다. 젊은 사람들이 오면 사실 오래는 못버틴다. 최고 오래 버텼던 친구가 일년 반 정도.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좋은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보단 생활에 얽매여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목수가 10명이라면 지금은 5명 정도 된다. 88년도에 활동했던 목수들이 서서히 은퇴를 하면서 그마저도 매년 0.5명씩 줄어든다. 다행이 기계와 기술이 발달하고 시스템이 워낙 좋아져 목수가 1.5명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김동혁 청년 목수의 프로필 3대째 목수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목수 김동혁 만나기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onghyok_kim/

블로그 : http://blog.naver.com/somunnandong


프리랜서 목수이지만 시간맞춰 함께 그룹으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목수공부(工夫) 몸으로 부딪히고 머리로 흡수하다 

아버지를 따라 모두 현장에서 체득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도 같이 써야 했다. 인테리어가 진행되는 순서, 수많은 공구들의 쓰임새, 현장 용어 숙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타카종류만도 7개, 타카핀 종류만 3-40개나 된다. 타카와 핀이 결합해서 어떤 나무에 사용하면 좋을지, 시멘트, 철재에 박을지, 각각 어떤 효과가 나는지도 실습해보고 알아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측량법∙타공법에 능통해야하고 수학적인 계산도 잘해야 한다. 배우면서 어떨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일이 좋았다. 


21살 무렵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가 생겼다. 목수는 80%이상을 직접 만들어낸다. 그런데 공사를 마치고 결과물을 인정받는 사람은 인테리어 총 감독관과 인테리어 회사가 최종적인 성과를 얻었다.


“어린 마음에 ‘저건 내가 다 만들었는데, 왜 다른 사람이 인정받지?’ 하는 속상함이 올라오더라고요. 샘도 나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디자인 해야겠다고 기능사 준비부터 공부했어요. 반년 정도 하다가 포기한 게 대학에 진학하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거였으니까요. 그때가 이미 5년의 경력을 가진 때였거든요. 17살부터 해온 이 일을 놓는게 너무 아까운거에요. 그러면서 내가 하던 기술을  갈고 닦아서 더 큰사람이 되면 이 분야의 장인이 되면 되겠다 하는 결심이 들더라고요.” 






청년 목수 김동혁, 이 남자가 일하는 법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이지만 목수 일을 하려는 청년이 없어 늘 인력난을 겪는다. 그 배경에는 목수 일은 노동뿐이라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해 직업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목수는 전문직이고 또 그렇게 보여야 한다. 작업할 때 누가 보더라도 전문적인 포스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자신의 이미지를 잘 가꾸려고 한다. 추례하게 보이지 않게 작업복과 운동화는 늘 깔끔하게 입고매일 작업을 마치면 현장을 깔끔히 정리정돈 하고 퇴근한다. 더러운 환경에서 일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을 시켜주려고 함께 하는 분들과도 암묵적인 약속으로 지켜가는 중이라고.


“외국에서는 장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호주만 가도 건설현장 일을 하는 사람이 하이바(헬멧의 준말) 옆구리에 끼고 지하철 타면 우리나라에서 보는 판사, 검사가 법전 들고 다니는 거랑 똑같은 동경의 눈빛을 보내요. 하수구 공사 하는 사람들도 거기서는 호화스러운 직업이에요. 제가 하는 목수 일도 돈을 못버는 직업이 아니에요. 인식의 문제인거죠. 사실 내장 인테리어는 전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육체도 많이 써요. 그래서 사람들이 노가다라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거죠. 현업에 종사하는 목수로서 환경이나 인식부분을 개선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직접 제작한 작업물 앞에서




목수하면 김동혁. 장인들의 족보를 만들고파 

이제 목수로 16년 차로 접어들었다. 현재 80%정도의 목표점에 오른것 같다고 한다. 아직 20%를 채우려면 가야할 길이 멀다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기에 SNS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블로그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직 목수쪽에서 손꼽힐 사람은 아니거든요. 목수 하면 김동혁이라는 등식을 만들고 싶어요. 목수로서의 장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인들의 족보를 만들어 내고 싶어요. 어느 분야의 장인 하면 누구, 그의 수제자들이 쭉 적혀 내려오는 그런 족보요”  


머릿속에 생각한 디자인을 현장에서 완벽히 만들었을 때 성취의 희열이 즐겁다는 목수, 공사를 다 마치고 연장을 차에 싣고 시원한 음료 캔을 마시면서 차에 시동을 걸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목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이민을 꿈꾸기 보단 국내에서 최정상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그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나의 집을 갖게 된다면 청년 목수 김동혁씨에게 꼭 의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이면 그도 아마 ‘장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인터뷰 중인 퍼스널브랜드PD박현진 & 청년목수 김동혁



공부(工夫)는 쿵푸다. 쿵푸란 심신의 수련의로 어느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아 탁월한 경지에 오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을 잘내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었고, 대학-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청년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때 청소년들의 바른 진로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가 나섰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기만의 공부를 찾아볼 장을 열어주고자 한달에 한 번 토크쇼 ‘호모쿵푸스’를 연다. 자기만의 공부로 심신을 수련한 공부하는 인간 ‘호모쿵푸스’를 게스트로 모시고 진로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11월 게스트는 청년목수 김동혁씨와 함께 한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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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비건크리에이터 박솔지 대표를 만나다 


따듯한 봄이 간절했던 지루한 겨울의 끝 무렵. 기다리던 봄보다 먼저 따듯하게 다가온 건 그녀의 뜨거운 밥 한 끼였다. 그녀가 있는 곳 근처에 볼일이 생겨 간 김에 들를까 하는 문자를 보냈고 곧이어 온 답장은 ‘밥줄게’ 였다. 그 말을 듣자 없던 허기가 돌았고 그녀의 쿠킹스튜디오로 달려갔다. 자연으로부터 온 재료로 음식을 요리하고 가르치며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이드하는 비건크리에이터 박솔지 대표를 만났다. 그녀가 운영하는 스윗솔 쿠킹 스튜디오에서 비건베이킹과 쿠킹 강의를 진행하며 비건케이터링 사업도 병행한다. 






그녀는 채식주의자(Vegetarian) 중에서도 비건이다

채식주의자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한다. 육류는 먹지 않지만 생선, 해물, 우유와 유제품까지 먹는 페스코(Fesco), 달걀과 유제품까지 허용하는 락토-오보 (Lacto-ovo), 모든 동물성 음식과 가죽제품 등의 동물성 물건도 사용하지 않는 완전채식주의인 비건(Vegan)이다. 


어릴때부터 고기를 먹으면 몸과 마음의 불편을 느꼈다. 성장해서는 무엇을 먹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쫒으면서 깨달은 것은 몸과 의식은 먹는 것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육식을 멀리 하며 먹거리에 대한 독립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그녀 삶을 창조하는 신념과 연결되기도 하였다. 그녀의 신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 계기는 호주에서 머문 3년의 시간이었다. 20대를 청담동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그녀는 20대 후반, 휴식과 공부를 위해 호주 유학길에 오른다. 채식문화가 보편화 된 호주는 각자의 개성과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비로서 잠재되어 있던 먹거리에 대한 생각을 실천 할 수 있었다. 또한 우연찮게 일하게 된 호주의 비건레스토랑에서 베이킹과 요리를 담당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새로운 진로를 계획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때맞춰 채식붐이 일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어시스트를 마다하지 않고 참여해 실력을 쌓았다. 





이렇게 먹으면 채식할 수 있겠어요! 

베이킹 클래스에서는 원칙이 있다. 첫째 우유, 버터, 계란, 마가린, 인공첨가물, 트랜스지방, GMO는 철저히 배제한다. 그래서 GMO 식품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거나 계란, 유제품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도 안전하게 먹을수 있다. 둘째, 최상의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고 최저의 당분과 유지를 넣는다. 셋째, 우리땅에서 나는 유기농 제품을 사용한다. 케익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우유, 버터, 계란 및 화학적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으면서도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 연구에 몰입한다. 


쿠킹 클래스에서는 채식을 하고 말고를 논하지 않는다. 육식을 하지 말자가 아닌 건강한 채소를 어떻게 먹을까란 주제에 촛점이 맞춰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로 세계각국의 다양한 채소요리법을 구현해낸다. 화려한 비주얼에 맛있고 건강한 비건요리 클래스와 베이킹 클래스는 지방에서 찾아와 배울만큼 매우 인기가 좋다.


우리나라의 제철채소와 수퍼푸드를 이용한 세계요리와 우리밀의 단점을 보완하고 소화가 잘되는 탕종법을 이용한 제빵, 제과 수업이 주요 골자다. 즉, 동물성 재료에서 모티브를 얻어 채소와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메뉴 개발이 핵심이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채식할 수 있겠다’고. 







생활 밀착형 비건라이프를 즐기다 

그녀는 음식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비건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시절 하나의 화장품이 유통되기까지 무수한 동물이 화장품 실험으로 희생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화장품도 동물성 재료가 들어갔거나 동물실험을 자행하는 브랜드는 쓰지 않는다. 앞으로는 비건크리에이터로서 확대된 장르로 창작작업을 할 것이라고 한다. 생산 과정에서 잔인함이 없는 제품 정보도 공유하고 그 제품을 이용한 메이크업 스타일 클래스도 열 예정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중인 비건크리에이터 박솔지 대표


자신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며 사는대로가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었던 그녀는 스스로 자기 삶의 방식을 창조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포부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르고 싶다는 그녀다. 다만 이 세상이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더 평화로운 기운을 갖기를 바라는 정도가 그녀가 가진 소망이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나라에 나같은 사람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일하는 것이 천성이라는 그녀는 정말 일을 즐기며 하는 프로다움이 묻어난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이드 하고 싶다는 그녀를 통해 대한민국 사람들이 조금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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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의 Be-Origin 인터뷰  

[스타일을 조각하는 Style PD 이진영 대표를 만나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안에 이미 형상이 들어 있어 조각가는 그것을 끄집어 낼 뿐이라고 했다. 그가 대리석을 두드리는 행위는 조각하는 것보다는 형상을 빨리 꺼내 자유롭게 해주려는 행위였다.

이진영 대표는 스타일 컨설팅을 하고, 헤어 & 메이크업샵 운영하며 뷰티아카데미에서 메이크업 레슨과 강의를, 의류 MD 사업을 병행한다. 한 사람이 하기에 굉장히 많은 일이 아닌가 싶지만 그녀의 지난 경력을 보면 이해가 간다. 헤어디자이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며 틈틈이 스타일 공부를 하여 방송국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미국에서 만난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인연으로 마카오에서 의류샵 MD 사업도 병행, 한국에서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풀어보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헤어디자이너 & 메이크업 아티스트에서 

인순이, 백지영 등 스타들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스타일 이야기를 하니 오늘 아침 맘에 드는 옷이 없어 옷장 앞에서 실랑이하던 때가 떠올랐다. 여자들의 영원한 미스터리. 옷장에 옷은 미어터지는데 정작 입고 나갈 옷이 없다는 것. 매 시즌별 같은 의문이 든다. “대체 작년에는 는 뭘 입고 다닌거지?” 이런 의문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것이다. 나의 이 말에 이진영 대표도 공감하는 웃음을 보였다. 동그란 무늬가 큼직하게 패턴을 이룬 흰 셔츠와 검은색 중절모를 매치한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을 설명해주었다. 








“이 옷은 제가 작년에 입었던 건데요, 이상하게 올해 입어보니 작년하고 느낌이 달랐어요. 옷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일 년 사이에 변한 거에요. 그런데 이 옷은 제거 무척 좋아하는 옷이라서 다시 입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 모자를 매치했어요.”   


가수 인순이의 스타일리스트 시절 가수 인순이의 공연이 끝나고



그녀가 모자를 벗은 모습을 보여줬다. 모자 착용의 차이가 엄청 달랐다. 작년에는 모자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얼굴의 형태, 이미지, 느낌이 바뀌었기에 시선을 모자로 분산시켜 준 것이란다. 이런 게 바로 스타일을 잡아주는 거다. 환경, 사람에 따라서 최적의 상태로 맞춰놓는 것, 스타일은 고정이 아니라 유동적인 흐름인 거라고. 그녀의 스타일 강의에 입이 떡 벌어진다.


남편 스타일이 변하는 것을 보고 

남편 친구들이 앞다퉈 컨설팅을 의뢰하다.


남편의 스타일이 변한 것을 보고 남편 친구들이 하나둘 부탁해 왔다. 그중 한 친구분은 자신의 비즈니스가 커지면서 개인의 성장도 이뤘고, 그에 맞춰 스타일도 변화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늘 짙은 색깔의 슈트를 한 세트로 입어서 더 작고 답답해 보였단다. 쇼핑하러 가서 제일 처음에 고른 옷이 카키색 슈트 콤비를 권했다. (콤비 스타일이란 다른 슈트와 바지를 매칭하는 것이다. 슈트는 한 세트로 통일해 입으란 법은 없다고…) 


중국 미용대회에서 수상

“‘나는 키가 작으니깐, 저런 옷은 안 어울릴 거야.’ 라는 생각으로 패션의 다양성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남성분은 그 옷이 보이지 않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세요? 이제는 자기 취향을 말해요. ‘음, 저 옷은 가벼워 보여요. 나는 그래도 무게가 있는 게 좋아요.’라는 식으로 말을 할 줄 알게 된 거에요. 저의 스타일 컨설팅을 거치면서 남성분들도 스스로 자기 취향을 말할 수 있게 돼요. 요즘에는 그루밍족이 많아요. 남성들도 스타일에 관심을 갖는 시대인 만큼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 즐길 수 있는 남성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스타일을 연구하는 저로서도 참 재밌는 일이에요. 저의 고객이자 지독한 패션테러리스트였던 남성분이 생각나요. 편하게 입는 스타일이었는데 본인의 비즈니스가 성장하면서 그것에 맞게 스타일도 변화를 줘야 하는 고객이었어요. 스타일 컨셉을 잡고 퍼스널 쇼핑을 했는데 막 눈이 개안하는 느낌이었대요. 맨 마지막으로 저의 숍으로 모셔와 헤어컷을 해드렸어요. 그때 그분 말씀이, 패션의 완성은 헤어다! 라는 거에요. 지금은 그 스타일을 유지한 채로 비즈니스를 잘하고 계셔요.”  


클래지콰이와 리쌍의 스타일 연출


그녀는 디자이너 시절부터 유독 예민하고 까다로운 고객이 많았다. 다른 디자이너라면 피했을 텐데 그녀는 고객의 까다로움이 미에 대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역지사지가 되었다고. 그래서 더욱 고객 맞춤형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했다. 진심은 다 통한다고 저의 그런 생각이 고객에게 전해진 것 같아 단골도 많았다.


“메이크업 받으러 오시는 여성 고객에게 저는 될 수 있으면 노하우를 알려드려요. 저에게 메이크업 받고 마는 것이 아닌 본인의 스타일을 연구하라고요. 자기 얼굴을 스스로 그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내가 얼마나 예뻐질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연출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변화를 보면 더 예뻐지려고 하는 동기부여가 생기는 거죠.”



스타일 프로듀서는 변화가 필요한 사람에게 

스타일을 진단하고 프로듀싱 함으로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이미지를 갖추도록 코칭하는 사람입니다. 



이진영 스타일PD가 말하는 스타일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람의 전체 이미지만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그 사람의 내면과 생각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거죠. 그 전체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느냐를 연구하는 것이 관건이에요. 스타일리스트 하던 시절에도 컨셉이 나오기 무섭게 엄청 돌아다니면서 공부했어요. 지금 제가 뷰티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스타일PD는 연륜이 생기는 직업이에요. 제 연륜을 잘 활용하고 싶어요.” 


그렇게 그녀의 손끝을 통해 스타일의 극적인 변화를 이룬 사람이 여러 명이다. 주 고객이 30대 후반 50대 초반인데, 이때가 미적 감각이 변하는 시기이다. 비즈니스는 무르익고, 나이에서도 성숙미가 묻어나는 때이니 그 극적인 변화가 재미있기도 하고 보람 있단다.  


  가수 정동하와 함께



매번 부족함을 느끼고 전환하느라 슬럼프를 겪을 시간이 없었다는 그녀. 그렇게 오래 일을 했지만 늘 새로운 고객 앞에선 긴장한다. 그녀를 만나서 더 예뻐지고 멋있어져야 하는데 혹시라도 부족해서 못 해주진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늘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래서인지 고객 관계에선 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한다. 스스로 100%가 아니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스스로 달달 볶는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장이기질이 발휘되는 것이다. 


"스타일 PD, 즉 스타일 프로듀서는 변화가 필요한 사람에게 스타일을 진단하고 프로듀싱 함으로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이미지를 갖추도록 코칭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고객을 만나서 캐릭터를 살펴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스타일을 꺼내주는 거예요. 저를 통해 자신이 더 멋져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타일은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무엇이다.'라던 이탈리아 스타일의 거장 알바자 리노(Al bazar lino)의 철학이 떠오른다. 결국 스타일이란 ‘타인이 모방할 수 없는 표현양식을 가진’이란 의미를 넘어 자신의 개인의 가치와 생각이 표현되는 것이다. 그녀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내면의 가치를 표현할수 있는 멋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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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마이웨이, 

35년간 기자로 살아온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大記者) 


by 퍼스널브랜드PD 박현진




사람마다 한 가지 길을 선택하면 나머지 길은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삶의 길은 숱한 회한이 남기 마련이다. 여기 무려 35년을 기자라는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대학시절도 학보사 활동을 했고 군대 3년을 다녀온 것 이외에는 20대부터 지금까지 기자생활만 해 온 사람. 기자 생활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모든 것’이라고 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천직(天’職)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그는 1090 평화와통일운동 이사로 통일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1090청년위원단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그리고 부사장을 만나 기자로서 그리고 리더로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김종필 증언록을 쓰고 있습니다. 김종필(JP)씨는 우리나라 정치사의 산 증인이자 현대사의 격동과 성취와 좌절을 다 겪으신 분입니다. JP 증언록이자 현대사 회고록을 취재하고 작성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통일 운동을 하시는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게 통일운동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서 말하는 ‘가지 않은 길’ 같은 것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보고 있는 것이죠. 지금의 2030 세대는 통일을 경험하는 세대가 될 것인데 청년들의 관심이 적습니다. 그 이유는 ‘피부로 와 닿지 않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당장 자신의 현실을 준비하는데 급급해서’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 해보면, 통일은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처해있는 경제문제, 실업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북한이 새로운 해결책이 될 거에요. 우리 청년들이 북에 가서 건설업, IT산업, 영어교육, 관광업, 농사기술 활용을 할 수 있겠지요. 이들에게는 통일이 기회의 땅 ‘엘도라도’가 될 것입니다. 




35년간 기자생활로 현재 대기자의 위치까지 오셨습니다. 기자로서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정치부 기자만 30여년을 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부터 박근혜대통령까지, 지금 18대 국회인데 제가 11대 국회부터 출입 기자를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태도는 겸손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꼽습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기자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도 해당됩니다. 대상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대상자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죠. 기자도 같습니다. 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의 취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그 사람과 더욱 친해지고, 남보다 취재의 깊이가 깊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으로부터 특종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겸손하게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세상사는 모든 것에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연을 알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호기심이 평생 기자를 하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기사는 사연에 담긴 사실과 진실을 쓰는 것입니다. 정치 문제뿐만 아니라 작은 사건까지도 겸손한 자세로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면 흥미 있고 드라마틱한 얘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3년 8월 20일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가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뒤 변영섭 문화재청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현직 기자로서는 받기 힘든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으셨네요?
미국 워싱턴 DC의 중심부 로건 서클에 있는 대한제국 공사관을 환수 받은 공로를 인정받아서였습니다. 1910년 일제에 5달러에 강탈당했던 이 건물은 지난해 8월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 기간 역사에서 잊혀졌던 이 건물을 102년 만에 되찾을 수 있었던 데는 건물의 가치와 매입 필요성을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렸기 때문이지요. 20차례 이상 현장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고 칼럼과 강연,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공사관 매입 여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정말 집요하게 파고들었죠.

제가 기자로서 후배들에게 자주 말하는 것이 ‘사명감과 소명감을 먼저 내세우면 핵심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기사를 쓰면 그게 사회에 정의가 되는 것이지, 내가 소명감을 갖고 무언가 파헤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핵심에 접근을 못하게 됩니다. 

어떤 사연을 겸손하게 추적을 하다 보면 진실에 다가설 수 있고 그것으로 좋은 기사, 진실에 다가가는 기사가 됩니다. ‘나는 돈을 벌어야겠다.’, ‘ 내가 세상을 한번 흔들어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표출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행동의 유연성, 순발력, 상상력이 떨어집니다. 우리 20대 청년들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살다 보면 내 얘기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요즘 20대는 끈기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런 청년들에게 지혜를 나눠 주신다면요?
제가 자라면서 선생님들한테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한 우물을 파는 노력이 필요하다’ 였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좌절과 성취를 지켜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성취와 패배의 배경은 무엇인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한 우물을 파는 것’ 이었습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은 쉽지가 않지만 꾸준함으로 일관성을 지키면 드라마틱한 멋진 기회가 반드시 생기더군요. 복잡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 우물을 어느 정도 파야지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 가끔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선택이 맞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청년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세계를 구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때부터는 내공이 붙어서 좌절에 강해집니다. 그렇게 해서 기회를 찾고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 출장을 다니며 각 나라의 청년들을 많이 만났지만, 대한민국 청년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이 좋고, 영어도 능통합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신감을 가시세요. 

기자이자 한편으로는 리더이기도 한 그에게 좋은 리더의 조건에 대해 물었다. 다음과 같은 말이 돌아왔다. 리더는 상상력이 제일 중요하다. 기자들이 많은 기사를 써내면 최종 결정권을 갖는 사람이 편집국장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 노력을 편집하는 자리인 만큼 신중해야 하고 자개 개발에 철저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노력과 고민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러운 소통을 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리더는 상상과 결정력, 그리고 소통하는 사람이다. 리더의 조건을 말하는 부드러운 중저움의 목소리에서 깊고 진한 35년의 무게가 느껴졌다. 






사진: 이준호 포토그래퍼

인터뷰: 1090 청년분과(박현진, 이혜미, 나은샘, 박선미)
인터뷰 글 정리: 나은샘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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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산토리니의 맛을 책임지는 남자한만재 셰프를 만나다

먹는 순간, 만든 사람이 궁금해지는 요리가 있다. 재료의 선도와 적절한 조합 등으로 절로 탄성이 나오는 순간이다. '산토리니'의 한만재 셰프의 요리에서도 그 궁금증이 생긴다. 정성과 자연스러움을 담은 그의 요리에서 고객의 오감만족을 지향하는 고집이 느껴진다. 음식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나가겠다는 한만재 셰프를 만나 그의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Q.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릴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 몸을 움직이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학창시절은 모형항공기 제작에 빠졌어요. 그 덕분에 수능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운 좋게 대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은 호텔, 외식 경영학과가 유명했는데요. 부모님이 레스토랑을 운영하셨고, 저도 레스토랑 경영에 관심도 있는 터라 대학에서 복수전공으로 외식경영을 선택했어요. 레스토랑의 핵심인 주방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게 운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의 적성을 일찌감치 발견해 한길을 걸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발견한 적성을 다듬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국내에도 이미 좋은 문화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는 사람이 많아서 굳이 유학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현지에서 높은 수준의 레스토랑을 다녀보고 외식 문화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경험 덕에 저는 더 공부를 하려고 했고, 더 많이 생각하려 했고, 좋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셰프의 훈련방법이 있나요?    
직접 경험해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학습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요리를 하는 저에겐 직접 다른 사람이 한 요리를 먹어보고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서울의 유명한 레스토랑들을 다녀봅니다. 이 음식을 만든 셰프는 식재료들의 궁합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거죠. 그리고 제 주방으로 돌아와 저의 스타일로 재해석해봅니다. 또 하나는 간접적인 방법입니다. 세계의 유능한 셰프들의 책을 많이 보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연구합니다



Q. 롤모델 셰프가 있나요? 
셰프로서 사는 저에게 두 명의 롤모델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영국 출신의 제이미 올리버예요. 음식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나가겠다는 그의 목표가 좋아요. 문제아로 불렸던 불우 청소년 15명에게 요리를 가르쳐 피프틴(fifteen)’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요. 청소년들에게 요리로 삶의 희망을 찾게 해주었어요. 영국의 급식 문화와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에 길들어 있는 학생들의 식생활 개선 계획에도 적극 참여해 혼자서 괴멸 상태에 가까웠던 영국의 급식 제도를 바꾸는 데 성공한 업적이 있어요. 당시 치킨 너겟을 먹는 꼬마들에게 치킨 너겟의 제조과정을 보여주는 충격요법을 쓰기도 했어요. 이 사건은 , 우웩이라는 제목으로 EBS 지식채널e에도 소개되었죠. 그가 요리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닮고 싶어요.

또 한 명은 이탈리아 음식을 한국에 들여온 안토니오 심 셰프입니다. 2004년 이탈리아 정부에서 운영하는 요리 학교 일 꾸오꼬 알마(IL CUOCO ALMA)를 국내에 론칭해 이탈리아 음식문화를 국내에 널리 알리고 있어요. 2010년 요리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 대통령 훈장을 수여받은 분이기도 합니다. ‘외국 요리를 배울 때 테크닉이나 레시피가 아닌 그 문화를 먼저 익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음식도 그 나라의 문화 속에서 발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음식에서 요리의 뿌리를 중시하는 이분의 철학이 참 좋아요.




Q. 한만재 셰프만의 요리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요리는 정성과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요리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제철에 나오는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해 저의 철학이 담긴 요리를 만들려고요. 인공 조미료는 가급적 줄이고, 스테이크 소스나 드레싱은 직접 만들며, 육수도 직접 뽑습니다. 산토리니의 대표적인 디저트인 젤라또도 직접 만들어요. 샐러드용 채소도 수경 재배실에서 무공해로 재배하고 있어요. 산토리니 채소는 드레싱을 가급적 하지 않아요. 올리브, 소금, 후추 조금 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채소를 수확해서 오래 두면 절단면에서 쓴맛이 올라오거든요. 그래서 쓴맛을 가리려고 강한 드레싱을 사용하는데, 산토리니 채소는 바로 수확한 신선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냥 드셔도 신선한 본연의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산토리니 피자는 나폴리 스타일의 화덕식 오븐에서
450도로 90초간 구워냅니다. 나폴리 피자 협회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이탈리아 피자를 만드는 제대로 된 방법을 배웠어요. 이탈리아 정통 피자는 원래 짧고 강한 화기에 순간적으로 익혀요. 좋은 치즈를 쓰면 피자가 식어도 굳지 않아요. 나폴리 피자는 잘라서 나오지 않고 통째 나옵니다. 저희 
손님들도 기호에 맞는 크기로 잘라드시면 좋겠어요.



Q. 일을 하면 힘들때도 있을 텐데, 어려움을 극복하는 셰프의 방법이 있다면요?
외식업의 특성상 근무시간이 길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노동의 강도가 무척 센 편이에요. 바쁜 시간대는 마치 폭풍우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순간이 지나면 또 무사히 최선을 다해 잘 넘겼구나 하는 쾌감이 있습니다. 저는 산토리니에서 파인다이닝퀄리티를 높이고 싶다는 열망이 큽니다. 10년 안에 산토리니를 세계 100대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하는 게 목표예요. 그 생각하면 피곤함도 싹 사라져요. 



Q.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공개해주세요!
요즘은 산토리니 메뉴를 개편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반영하고 싶었던 요리를 메뉴에 적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 구속력을 갖기 위해 제가 구성한 프로젝트가 있어요. 프로젝트명은 나인프로젝트(Nine Project)예요. 9라는 숫자는 꽉 찬 느낌이 들어서 좋아해요. 6월부터 내년 2월까지 매월 1개씩 총 9개의 신메뉴를 개발하겠습니다. 매월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에 맞춰 시식회도 하고요. SNS채널을 통해서도 오픈하려고요. 이렇게 선포해버리면 남은 건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없겠죠? 하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선 빛이 난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사람들이 먹고 만족할 때 행복을 느낀다는 한만재 셰프에게서도 빛이 났다. 요리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눈빛이 바뀌는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쉴새없이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스스로 약속한 나인 프로젝트다. 그의 주방에서 매달 탄생할 새로운 요리가 기대된다.


한만재 셰프 약력

  • 산토리니 레스토랑 오너 셰프

  •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졸업

  • 세종대학교 외식경영학과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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