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바로가기







우리 고마실(GoMasil)에 실제 영도에 사는 영도 주민의 마실 상품이 올라왔다.
반평생 영도쟁이로 고마실을 하기위해 다시금 자신이 사는 곳 영도의 매력을 깨달았다는 마실러 박정은양.
그녀의 진심이 통했는지 4명이 덜컥 예약을 해버렸다.
예약자들은 안내문자와 메일을 받고 화창한 토요일 아침 10시에 남포역 8번 출구에서 미팅을 가졌다.
이미 마실러가 나와있었고 곧 나를 비롯 오늘의 고객 즉, 마실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전지적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기록하겠다.

남자 1호 - 30대 후반, 중국관련 무역업으로 업종 전환. 한달 가량 머리를 식히며 사업구상을 하려함. 부산 토박이이나 대체 영도의 어떤 모습을 부각 시킬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함.
남자 2호 - 30대 초반, 직장인.  갑자기 영도의 바다를 낫선이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 전날 예약함.
여자 1호 - 30대 초반, 서울 지리도 잘 모르는 서울 토박이. 부산에 며칠 머무는 차에 영도가 대체 어떤 섬인가 싶어 신청하게 됨.
여자 2호 - 30대 중반,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오면 무조건 해운대 달맞이고개만 데려가던 그녀, 다음 관광지 레파토리로 삼을까 싶어 답사차 나옴.
영도 마실러 - 반평생 영도 주민. 해운대와 비교되는 영도의 컨츄리함을 원망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너무 사랑하는 공간. 이게 다 고마실 덕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 함.


첫 만남. 의도하지 않게 남2, 여2이 되면서 마실러는 자연스럽게 짝미팅을 주도한다.



어쩜 좋아,  남2, 여2로 짝이 딱 맞아버렸네요.
저는 영도에서 초중고를 나온 영도리안 박정은 마실러에요.
제가 숨겨둔 보물과도 같은 추억의 골목길을 안내할께요.


여자 2호는 남자 2호의 웃음을 지긋이 바라본다.
남자 1호는 여자 1호, 2호, 심지어 마실러가 맘에 드는지 알수 없는 표정으로 하늘만 본다.
남자 2호는 마실러를 보며 좋아하고 있다. 

인사를 마치고 살짝 어색한 정적이 도는 가운데 본격적인 남녀 영도 탐험이 시작되었다.






마실러가 안내한 골목. 벽마다 아기자기한 벽화를 그려놨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더 아기자기 한 것 같다며 마실러가 설명한다.
남자 2호는 자꾸 뒷모습을 찍어댄다.







자연 배경이 너무 좋으니 빨렛줄에 수건 하나, 찢어진 그물만 걸쳐도 작품이다.





여자 1호는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을 원없이 바라본다.
눈높이에 웬 개똥인가 싶어 흠짓 놀란다. 곧 시멘트에 녹물떨어진것을 인식하고 여자 1호는 안심한다.





정남향으로 따듯한 겨울해가 비추니 견공들은 종일 꾸벅꾸벅 기분좋은 졸음을 짓는게 하루 일과다.





하수구 안에서도 꽃은 자라고 이 마을의 생활속의 모든 물건이 작은 예술품 같다고 느끼는 건,
영도 이기 때문일까?






저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거나 기분이 않좋을때는 파도소리를 들으면 위안이 되요.
오늘같은 볕 좋은 날씨에 이런 파도 소리를 듣는건 참 행운인 것 같아요.
가만히 앉아서 들어볼까요?


여자 2호가 예쁜 조약돌에 관심을 두자 남자 1호가 돌을 주워 바다 멀리 던진다.
통-통,  퐁당, 물수제비 놀이다. '우와, 두번~' 여자 2호가 감탄사를 낸다.
남자 2호 이에 질세라 돌팔매질을 한다. 퐁`퐁.
이 둘의 신경전을 눈치챈 마실러는 누가 이기냐에 따라 다음 코스에서 먹을 즉석 떡볶이에
떡볶이 사리를 1개 특별 추가 해준다고 말했다.
남자 1호와 남자 2호의 신경전이 거세졌다.
여자 1호, 여자 2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돌 수제비 따위엔 관심 없다.
남자 1호는 사력을 다해 마지막 돌을 튕겼다. 퐁-퐁-퐁-퐁....!!! 4번뜨기 ! 남자 1호의 승리다.
그제서야 여자 1호는 자연스럽게 남자 1호에게 다가가 친한척 한다. 




순 토종 고추장으로만 양념 한다는, 쌀:밀가루 비율이 9:1이라는 20년 전통의 오직 즉석떡볶이를 먹으러 간다.
엄마가 학창시절에 먹던 즉석떡볶이를 20년이 지나 딸이 교복입고와 먹고 간다는 떡볶이다.
여자 1호는 얼른 남자 1호가 앉은 테이블로 간다. 떡사리가 추가로 나왔다.
아까 팔이 떨어져라 물수제비 뜰 때, 생깐 것에 대한 미안함과 떡사리에 추가에 대한 감사함으로 여자 1호는
남자 1호에게 수고했다며 직접 음식을 담아준다.
달달하니 딱 여고생 입맛에 최적화 되었다. 떡볶이를 다 먹고 나면  '뻥크림'이라 불리는 후식을 시켜준다.
뻥튀기 사이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넣었다.
붕어싸만코보다 경제적이고 상큼한 아이디어에 특허를 내리고 싶을 정도라고 여자 1호가 호들갑을 떨었다. 맛은... 똑같았다.

남자 2호는 다음 미팅이 있다며 서둘러 갔고,  마실러도 시간이 다 됐다며 떠났다.
남자 1호, 여자 1호, 여자 2호는 버스를 타고 영도의 해안가를 버스로 달려 남포역에 도착했다.
다음엔 남자 1호의 중국 마실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희망을 남기고 영도 마실링을 마쳤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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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그랬다. 어느 까페 사장이 도심 속 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그랬다고.
문득 궁금해졌다. 카페를 만든 사장의 꿈이 공원이라니.  동료와 찾아갔다. 
부산의 중앙동. 구시가가 밀집한 동네다. 이곳에는 높은 빌딩도 번쩍이는 인테리어로 도배된 카페체인도 없다.
소소하고 낡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동네도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한 계단들이 많다.
40계단이라 이름 붙인 계단엔 랜드마크 이외에는 큰 의미는 없는 듯하다.
콘크리트 계단으로 다음 언덕으로 난 길을 연결해주는 정도의 실용적인 계단이다.
이 주변에 하나둘 카페가 들어섰다.
그래도 오피스는 많은 동네이니 직장인들에겐 식후의 커피 한잔을 가까이서 할수 있어 반가운 일이기도 할거다.




목수가 되고 싶었던 디자이너
캐나다 집을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형과 함께 삶의 터전을 만들고 싶었으나 형을 교통 사고로 잃는다. 
한국에서 형이 운영하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이어받아 8년간 자리잡아 잘 운영했다가 건물주의 횡포에 못이겨 정리했다. 
가게의 이름은 파스타 팩토리로 경성대학교 부근에 있었다. 근처 사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꽤나 유명했던 레스토랑이었던듯 하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그곳에서 데이트 하던 연인들이 부부가 되고 아이와 함께 오고, 두살짜리 꼬마애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한 단골손님은 자신의 아이가 커서 결혼까지 하는 걸 보는 레스토랑으로 남아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남겼다고 한다.
그게 그 가게를 8년간 이끌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집을 짓는 목수가 되고 싶었던 꿈이 있던 그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꿈을 잊었다고 여겼다.

어느날 공원 벤치에서 사람들이 쉬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데이트 하며 거니는 사람들과 가게의 손님들과 연결이 되었다.

꿈을 버린게 아니라 그 과정속에 하나의 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객과 만들어가는 레스토랑, 파스타 팩토리
그가 8년간 운영했던 레스토랑 명이다.
8년전 요식업에선 공업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팩토리란 단어를 쓸수 없었다. (현재는 가능하다.)
그때도 컨셉욕심이 많아서 레스토랑 로고도 톱니바퀴 세개가 맞물려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손님, 스텝, 공간이 하나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그가 이렇게 이름 지은 이유는 고객의 취향을 전부 반영해 말 그대로 파스타 공장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스타 면 10가지, 3가지 소스, 베이컨을 넣느냐 마느냐 등의 다양한 토핑의 취향까지 반영한다면  90가지에서 수만가지 파스타가 만들어졌다.
손님 개개인의 취향별로 만들다보니 그 사람 이름을 딴 메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캐리란 사람이 이런걸 선택하고나면 캐리스페셜이란 메뉴가 생긴다. 

한번은 독특한 조합을 요구하던 핵토란 친구가 친구들과 방문했다가,
모두 핵토의 레시피를 시켰다. 그날 이후로 헥토메뉴가 생겼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메뉴를 즐기게 되었다.
핵토가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 스페셜 메뉴는 유지됐다.
취향을 기록하고 관리한 4500명의 고객카드까지 작성할 정도였다니 레스토랑의 운영방식이 분명했다.



부산 중앙동 40계단 카페 앞 cafe URBAN 의 전원찬 사장



나뭇잎 같은 휴식처 카페 어반
파스타 팩토리를 경황없이 정리하고 바로 3개월간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했다.

운이 좋아 로마에서 레스토랑에서 10일 정도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때 커피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오늘의 커피샵을 여는 계기가 됐다.

레스토랑 시절의 고객이 언제 레스토랑 할거냐고 묻긴 하는데 지금은 커피를 하고 싶다.



카페 간판에 나뭇잎 모양의 표지판만 있을 뿐, 텍스트는 표시되지 않았다.
도시의 위성사진을 보고 그물같은 도시의 면을 보고 나뭇잎 맥을 떠올렸다.
녹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공원의 녹지였을 것이다.

처음엔 벌래먹은 나뭇잎이 떠올랐고, 도시의 녹지가 될 수 있는 커피로 카페를 만들고 싶어졌다.
이 카페 터도 이전엔 분식집이었고 떡볶이 먹으러 왔다가 계약했다.
쉬러 들어온 곳. 커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기면 상징성을 갖고 싶다.

urban을 정하고 나니까. 다음 스텝이 떠올랐다.
스피커는 어떤걸 써야하고, 못은 어디에 박아야 할지가 정해진다.
손님을 배려한 공간. 내가 좋아한 공간을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좋아하니 더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낡은것을 재현하는게 비용이 더 많이 든다.

그는 파스타 팩토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만의 레시피로 커피를 만들고 싶다고한다.
이탈리아에서 로스팅 해 수입한 콩을 쓴다. 그 중 베네치아에서 생산된
bonomi이란 품종이다.
커피를 직접 로스팅할 생각은 없다. 이탈리
아 수백년 대를 이어온 장인들의 스킬을 따라잡을 수도 없다.
신선할 순 있어도 안정적인 맛은 보장될수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이 선택한 원두로 카페 어반만의 색을 내고 싶다.



▲Urban을 정하자 카페 내의 소품 스타일이 분명해졌다.



프랜카이즈 커피도 하루가 멀다 하고 빼곡히 들어서고 커피 시장이 더 성장할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떤 전략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프렌차이즈와의 고객층이 다르다고 보고 있다.
양식과 한식의 차이처럼 극명하게.
프렌차이즈에서 도심의 커피, 비즈니스 미팅을 목적으로 하는 일 중심의 카페라면 이곳은 쉼을 위한 카페다.

가장 정직한 마케팅은 사람이 직접 전하는 것이다.
250인의 법칙을 믿고 있다. 한 사람이 좋은 것을 대했을 때 그 사람으로 인해 연결하는 사람이 250명이다.
카페 어반의 속도는 그렇게 사람 사이로 천천히 가고싶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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