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W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다음 인터뷰는 어르신을 소개하겠다 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 나는 그들과 함께 북한산 둘레길에 서 있었다. 걷다 만난 인연 이왕이면 걸으면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800km걸은 길 위의 동지. 나는 그 길의 키워드로 함께 한 인터뷰어. 이미 사진으로 한 번 만났기에 익숙했다. 첫 만남에 명함을 드리는 나와 달리 어르신은 직접 만드신 엽서를 건내신다. 직접 찍은 사진에 어울릴만한 텍스트를 담아주셨다. 인터뷰라는 거창한 형식은 다 떼고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 



기업에서 전략기획실 임원으로 은퇴 하시고 현재는 기업 컨설팅과 플래닝 강연을 하고 계시다.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하시며 내가 생각할때의 은퇴후 2의 인생을 멋지게 사는 분이다. 걸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산도 한번씩 보고 막걸리와 손수 챙겨주신 초콜릿 바, 그리고 W는 달콤한 사과를 챙겨왔다. 새삼 인생을 바꾸는 여행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나는 이렇게 둘레길도 가보고 좋은 이야기도 듣는다. 이 작업을 하기 참 잘한것 같다. 

손두부를 만드는 집을 안내하신다. 얽기설기 거칠을 표면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한 두부가 나왔다. 고소하면서 깊은 맛이 그만이다. 얼큰한 국물에 후루륵 잘 넘어가는 순두부찌도 일품이었다. 본격 인터뷰는 두부로 만든 저녁을 먹고 차 한잔을 하며 진행했다. 우리 둘은 어느새 인생상담을 하고 있었다. 직장이야기, 인생의 비전 이야기, 꿈 이야기, 가족간의 이야기.... 인터뷰 이전에 상담이 되어선 곤란하다. ㅎㅎ 다시 인터뷰로 돌아갔다 오기를 여러번... 이렇게 지났다.




▲ 어르신은 다음길을 살피시고 방향을 알려주시고 잠시 뒤돌아 우리들을 기다렸다. 이 사진도 그러는 중에 촬영한 사진일것이다.
산티아고에서 끝내 버림(?)받지 않고 일행과 같이 완주했다는 W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적이 있었나? 
거대한 덩치의 어떤 남자였는데 너무나 힘겹게 길을 걷는 거에요. 아 저사람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글쎄 독일에서 2000키로를 걸어 와서 800키로를 더 걷는다는 거예요. 독일인이었는데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위해 치유의 길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회복을 기원 한다는거에요. 그때 나는 뭉클한거에요. 나는 평생 내 형제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생각해보니 없는거에요. 나 혼자 살기 바빴지. 
또 한번은 유모차를 끌고 순례하는 엄마. 그 높은 피레네까지 끌고 온거야. 5살 정도의 아기가 타고 있는데 한번도 그 아이가 걷는걸 못봤어요. 그저 내가 관찰한 것일 뿐이지만 아이를 위한 모성 아닐까 싶어요.
세번째는 나란히 지팡이 한 개를 앞 뒤로 지고 걷는 사람들이었죠. 뒤에 오는 사람이 시약자더라고요. 둘이 친구 사이더라고요. 장애인 친구를 위해 시력이 정상인 친구가 같이 순례를 해주는거였어요. 내 친구를 위해 어려움을 동행한 적이 있었나.. 내가 한일이 뭐가 있을까. 솔직히 없더라고요...



나는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중이에요.  
어느날 부턴가는 인생의 산을 내려오는 일을 지나 정리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걸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 정리를 하고 싶었어. 걷다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난 도통 즐거웠던 일들이 안 떠오르는 거야. 반추되는건 모두 안좋았던 기억, 원한 사무치는 기억, 슬펐던 사건.... 모조리 이런것만 기억이 되는거였어요. 얼마나 처절했는지. 살면서 좋은 기억 없었겠어요? 난 좋았던 건 그냥 흘려보내고 회한만 남겨놓은거야. 그걸 깨닫고 회환의 눈물을 꽤 흘렸어요.

 



행복이란게 뭘까요?

너무나 아픈 기억만 나왔어요. 나는 이북 사람이에요. 홀홀 단신으로 목숨만 살아서 온 사람들이에요.
낙동강을 못넘고, 인민군에게 잡히면 바로 죽임을 당하자나요. 그래서 죽느니 싸우겠다고 군으로 가셨어요. 가족들 유품을 찾는다고 왔다가 만난거에요. 그래서 거제 포로수용소 옆에 단칸방을 마련해서 살림을 만든거에요. 그때부터 어릴적 기억이 나요. 
국민학교 6학년때까지 밥을 못먹었어요. 쌀을 소화할 기능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물었어요. 이남으로 넘어오니 뭐가 좋습니까? 따뜻해서 좋더라, 두번째는요? 내가 숨을 마음대로 쉴수 있어 좋다. 5호 감시제 이런걸 듣고 살아온 거에요. 그런기억들이 많이 남았었죠.
이게 환상인지 직접 본건지 모르겠어요. 계속 따라다니는 기억이 있어요. 포로수용소에서는 삽으로 밥을 퍼줘요. 나는 수용소 밖에서 안을 들여다 봤는데 포로랑 나랑 눈이 마주쳤어요. 내가 6살때인가.... 그런데 포로가 씩 웃는거야. 당시에는 눈이 마주친게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성장하면서 그 장면이 가끔 떠올라요. 그 때의 그 포로의 눈빛은 행복함 아니었던가. 밥 한그릇에. 그 눈이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이 났어요. 행복이 무엇인가. 



훗날 아이가 이 추억을 떠올렸으면...

산티아고 걷는게 큰 감동은 못 느꼈어요. 올레에서 많은 생각을 했었지. 나는 아이에게 뭔가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제대하고 유학을 떠날 건데 3개월 정도 남은 기간에 멀할까 보니 산티아고 생각이 나는거에요. 나는 플래닝으로 강의도 하고 컨설팅도 하는 전문가인데 계획은 아들이 다 짜라고 한거예요. 나는 관조만 했지 그게 참 어려운 일이예요. 참견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안해야 하니까. 난 책도 지도도 의도적으로 안 챙겼어요. 내가 알면 아들에게 이건 아니야, 저건 아니야 라고 참견할 것 같아서. 나는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런데 내가 모르고 온게 너무 행복했어요. 답답함을 누르고 아이에게 다 맡겼어요. 내가 사업전략을 평생 하던 사람인데, 모든 걸 아들에게 맡겼어요. 나는 훈수조차 두지 않으려고 아예 알 생각을 안했죠. 나중에 내가 없겟지만 그때가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면 좋겠다.. 싶어요.
내 나이에 우리 부모가 무엇을 생각했을까. 내 아들이 26살인데 내가 아들을 보면 저거 세상을 잘 헤쳐나 나갈까 싶잖아요? 근데 내가 그무렵때를 떠올려보면 또 달라요. 그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으니까. 내가 대한민국 육군 장굔데, 내가 상장 기업 임원인데.... 그런데 우리는 또 그렇게 생각 안하자나요. 내가 26살일때 우리아버지가 나를 봤을때를 생각했었죠. 지금 내 맘과 같았겠죠. 가끔 그런생각을 해보면 부모가 어땠겠다. 하는 생각이 들거에요.


둘레길 첫시작을 기념하며 사진. 이런식으로 인터뷰를 하게 될줄 몰랐다. 둘레길 체험도 하며 인생이야기도 듣는 나는야 행운의 인터뷰어


오리.지.날 정신의 패러글라이더 - 오리도 지랄하면 날 수 있다. 
나이 55세가 되니깐 안방 노인네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패러글라이딩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아내가 너무 반대를 했는데 어느날 TV를 보는데 여든의 할머니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는거야. 그거 보여주면서 너무 하고 싶어했더니 그렇게 하고 싶은거냐고 허락을 해주더라고요. 휘어진 새끼손가락을 보인다. 이게 자연 앞에서 교만해서 생긴 상처에요. 바람을 타면서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바람보다 욕심을 냈죠. 순간 기류에 휩쓸려서 끌려갔어요. 여기에 지금도 쇠가 박혀있어요.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제비가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 그 원리가 다 보여요. 제비가 강남간다고 하자나요? 그 강남이 동남아예요. 비행기 항로 아세요? 비행기가 홍콩 갈때 어떻게 가요. 홍콩노선은요 여기서 강화, 서해안 따라 여수에서 대마도로 해서 홍콩으로 들어가요. 해안선을 따라갑니다. 우리 항로들이 전부다 해안선을 따라 섬과 섬을 이어요. 
그 쪼그만 새한테 인간이 다 배워요. 군대의 배열 있죠? 그 원리도 새들에게서 나온거에요. 맨 앞에 있는 놈이 우두머리고요 그 앞에 있는 애를 항도라고 불러요. 길잡이 역할 하는. 대형 옆에 떨어져서 한마리씩, 맨 뒤에 떨어져 한마리. 이게 척후병으로 적이 침범하면 알려주는 놈들. 세계의 모든 군대가 이런 원리입니다. 제일 가에 있는 놈이 튼튼하고 안으로 갈수록 노약자, 어린아이들이에요. 가운데는 부력이 생겨서 조금만 움직여도 날 수 있어요.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검색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234769


ⓒ 문경시 제공





반나절 산행과 식사 찻잔 토크를 하면서 얻은 인상. 삶을 참 멋지게 사는 건강한 어른이다. 
사람이 마음이 급해서 움직이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으면 가만이 있어보세요.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입겁니다.
난은 물만 줘야 꽃이 핍니다. 영양제 주고 그럼 꽃이 안펴요. 그러니 지금 조금 힘든 일은 꽃을 피우는 과정이라는 위안의 말씀도 주신다. 인생 레슨을 받은 셈이다. 오리지날 정신을 알려주셔서 필자를 배꼽빠지게 하셨고, 백두대간은 진작에 주파하셨고, 올 여름엔 스킨스쿠버에 도전하러 필리핀으로 떠나신다는 무척 멋진 계획을 갖고 계시다. 분명 바다속 세상을 만날때도 겸허한 마음으로 물속의 생물들과 조우할 테다. 이번엔 어떤 세상 이야기를 꺼내놓으실까.
여름이 지나 그의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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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김용진이 산티아고 여행기를 웹툰의 형식으로 연재한다.
작년 6월에 한달간 다녀오고 올해부터 시작해서 벌써 20화까지 나왔다.
산티아고는 다녀온 후에 이야깃거리가 더 많다. 
내가 산티아고 이야기를 몇 년간 꾸준히 이어오듯이 말이지.




2010/01/31 - [인생을 바꾸는 여행/산티아고 Buen Camino ] - 산티아고 프로젝트 NO.1
2011/06/30 - [인생을 바꾸는 여행/산티아고 Buen Camino ] - 산티아고, 감성의 다양한 변주곡
2012/01/25 - [인생을 바꾸는 여행/센티의 인터뷰] - 용기를 주는 레시피, 경험공유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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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저... 이걸 가져왔어요.’
인터뷰 장소로 온 W가 인사를 마치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요즘 유행하는 사진 앨범이다. 웹사이트에서 사용자가 사진을 업로드해서 편집을 하면 그대로 책으로 제작되어 나오는 시스템. 신혼여행 앨범, 아이들 백일 사진 등 응용을 많이 하지만 가장 흔히 하는 것이 여행기록을 담은 내용이다.
‘9명의 사람들과 시작과 끝을 같이했어요. 그 친구들이 만들어서 선물로 줬어요. 너무 소중한 인연이에요.’
오늘 만난 W. (실명과 사진을 원치 않았으므로 W로 기재한다.)

‘올해는 나 스스로 나에게 준 안식년이예요. 10년 열심히 일했으니까.’
고객들 중 하필 그녀에게 인터뷰를 청한 건 바로 ‘안식년’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과 나잇대. 그리고 오래 일을 했기에 안식년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년 전 처음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그녀의 인상은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한번은 쉼표를 찍으려는 자의 홀가분함과 해외로 나가기를 즐겨하지 않은 자의 혼란스러움이 교차했다. 그녀는 해외를 나가기를 싫어했던 사람이 한 달여의 여행을 그것도 짐을 지고 떠나야 하는 여행을 선택했기에 좀 더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는 여기 더한 사람도 갔다 왔다고 다 해결 된다며 (다들 무모하다고 말렸다던) 그녀의 결정에 용기를 보탰다.

지난 번 인터뷰 이후로 질문을 별달리 준비하지 않기로했다. 첫 인사를 나누면 대화는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이미 수다 떨 주제는 마련되었고 두 번째 만난 사이라고 하기엔 참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는 이것이 정말 신기하다. 이번에는 그냥 ‘수다’를 떨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사진첩의 동지들로 이야기가 흘렀다. 세계여행을 계획한 30대의 미혼 여성 친구 둘, 60대의 은퇴한 어르신과 20대의 아들, 철저한 기획파 남성, 그리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성, 누구의 아내 엄마의 이름을 떠나 개인의 삶으로 걸어온 여인, 20대 초반의 혈기로 준비 없이 떠나온 배려 깊은 청년 그리고 청년만큼이나 무모하게 즉흥적으로 떠난 W. 





산티아고 길에서 도움을 엄청 받았어요.
처음부터 민폐였어요. 걸어본 적도 없고 체력도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8명의 보폭을 맞추기는 무리였죠. 그래 떨어져 나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근데 이 사람들이 너무 착한 거예요. 어떻게든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또 너무 미안한 거예요. 어떻게 나를 마음 아프지 않게 버릴 수 있게 할까. 밤새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침대에서 안 일어났어요. 난 도저히 갈수 없는 상태라는걸 보여줬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못 떠나는 거예요. 걱정 되서. 결정적으로 제가 지도가 없었거든요. 짐을 줄인다는 생각에 버려서는 안 될 지도도 버려 버린 거예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제가 어리숙했겠어요.

그래서 다음날 혼자 떠나신 거예요?

자꾸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내고 걷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택시도 없는 거예요. 겨우 걸어서, 제가 한 번에 알베르게를 찾아간 적이 없어요. 엉뚱한데 갔다가 아 아닌가봐 이러고 나와요.(웃음) 가까스로 알베르게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일행을 만난 거예요. 다들 비가 와서 많이 못 걷기도 했고 나를 두고 가는 게 마음도 무겁고 걸어지지도 않더래요. 그때부터 이건 운명이다. 각자에 페이스에 맞게 걷되 낙오 없이 끝까지 같이 가자가 된 거죠.

그룹이 참 재미났을 것 같아요. 연령대도 그렇고.

등을 보여주는 어르신이 있었어요. 제가 하도 못 걸으니깐 어르신이 한참 걷고 나면 제가 저 멀리 점으로 보인대요. 그러면 또 안가고 기다리세요. 내 등이 보여야 따라올 수 있다고. 그렇게 맞춰 주셨어요.
20대, 30대, 40대, 50대를 다 사셨잖아요. 이미 그 나이대의 생각들을 아시고 또 아닌 길로 갈수 있는데 그걸 다 지켜보시고 맞춰주세요. 그 나이 대는 그렇게 하게 되어있는 거라면서. 길은 어떻게든 목적지에는 가게 되었어요. 무얼 보고 가느냐. 이게 중요한 거라는 걸 알려주신 분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그냥 목표만 보고 간대요. 젊은 사람은 빨리 걷는 게 뿌듯한 거죠. 그러나 중년은 내려갈 준비도 해야 한 대요. 그러니깐 여유를 가지고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밤이 떨어진 걸 보고 포도도 따먹고 그렇게 느끼면서 걸으라고 하셨죠. 그러니깐 늦게 가는 게 억울할 게 하나 없는 거에요. 저는 제일 느렸기 때문에 유일하게 노을을 보는 사람이었을걸요.
800km를 걸으려던 게 아니었어요. 근데 걸었지. 어르신 덕분에 참 많은걸 깨달았어요. 나는 떠나는 것만 준비했지 어떻게 걸을까를 마음을 어떻게 먹을까 까지는 생각을 못했어요. 많은 조언과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분이죠. 



나는 부족한 걸 다 보여줘요.
저는 가장 좋을 때 항상 나와요. 결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고 해요. 성급하지 않게. 공돌이였고, 형부가 내 멘토였어요. 과학도도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에 폐기물 연구소 쪽으로 갔어요. 그런데 연구소는 안생기고... 일단 전문 기자로 활동을 했죠. 공학도긴 하니깐 기자들이 싫어하는 각종 세미나는 제가 좋아서 가고... 기사도 선배들이 좀 주고... 그랬죠. 거기서도 엄청 도움을 받았어요. 바라던 연구소는 안 생기고 더 다닐 수는 있었지만 원하던 길이 아니니 나왔어요. 

박수칠 때 떠나는 스타일이네요.

이직을 했었고, 사장이 첫 지시를 내렸는데 조달청 가서 멀 해오라는 거예요. 일단 조달청에 가서 수위아저씨를 찾다가 안내하시는 아저씬가 하고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갔어요. 
‘저기요, 첫 출근인데요, 처음 사장님이 시킨 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했더니 그 아저씨가 저 안쪽에 가서 멀 챙겨주더라고요. 그걸 회사에 냈더니 사장이 좀 제대로 해 왔구나 하더라고요. 그 뒤로 무슨 일 있거나 궁금한 일 생기면 전화를 해서 정보 받아오고 그랬어요. 다들 내가 그분과 통화해서 얻은 정보로 보고서 쓰고 그러면 놀라는 거예요. 근데 알고 보니 그분이 사무관인가 엄청 높은 직급의 사람이었어요.
난 그냥 수위 아저씬 줄 알았는데... 높은 사람이래. 너는 서열 모르니? 전 모르는데요. 진짜 그렇게 높은 거예요? (웃음) 저는 그렇게 한 거예요. 저는 늘 그런 거예요. 나중에 그분은 신문에도 나오고 엄청 높아졌더라고요.
첫 월급을 타고 그분을 찾아갔어요. 맛있는 거 대접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너가 무슨 돈이 있냐면서 칼국수 사달라는 거예요. 결국 칼국수를 사드렸어요.
프로젝트성 작업이 많았어요. 저는 거짓말은 못하니깐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너무 어리숙 하니까 업계 사람들이 다 도와줘요. 입찰을 들어가면 그냥 솔직하게 다 말해요. 그냥 계약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신기한 거였죠. 일은 재밌는데 너무 과한 거예요. 과로로 입원할 정도로.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으니까 떠나야겠다. 했죠.


이런 이야기까지 내가 왜 하는 거죠?

7년을 따라다닌 남자애랑 결혼을 해야겠다 했는데, 그 친구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개인적인 일이나 다음 이야기를 위해 사랑했던 이야기를 사정만 적는다.
사랑한번 진하게 못한 나는 이 이야기가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그런 감정이 부럽기도 해서 혹은 상실감에.) 



무슨 페로몬을 뿌린 거예요. 이런이 야기까지 하게 하고. 이상해 오늘..
머핀 드시고 저는 커피를 가져올게요.
잠시 휴식을 가져요 ^^

(이어서)
사랑의 상처도 있고 해서 도피처로 대학원을 갔어요. 남들이 안 쓰는 주제의 논문을 써서 상도 받고 유학도 쉽게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외국이잖아요. 나는 외국이 정말 싫거든요. 그래서 유학을 포기했어요.
그러다가 학원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말에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학비도 벌었는데 싶어서 학원으로 간 거예요. 거기서도 원장님을 잘 만났어요. 자기 수업의 반을 내어주고 저는 또 트레이닝을 한 거죠. 수학강사를 했어요.
(센티 여기서 잠시 움찔한다. 인수분해에서 포기한 사람으로서 W샘이 갑자기 다른 세상 사람으로 보인다.)

어쨌든 나의 이런 선택에 다른 사람들이 엄청 머라 했어요. 대학원까지 나와서 논문으로 표창도 받은 사람이 유학도 마다하고 학원 강사를 한다고. 나는 그냥 어쩌다가 대학원으로 간 거고 상을 받고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거거든요. 나한텐 그게 아쉽지도 않고 소용이 없는 거예요. 해석은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하죠.
(맞다. 내가 안 행복하면 남들이 보는 훌륭한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행복한 것이 먼저다.)

원래 교수가 꿈이었고요, 완벽한 사람만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꿈을 입 밖에 내지 않았죠. 사교육에 몸을 담았지만 저는 그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좋은 거예요. 게다가 학원에서도 엄청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특목고 반도 몇 년을 맡았고, 정말 신나게 달렸죠. 사십 전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어쩌다 보니 작은 학원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수학이라는 하드한 과목을 푸른 정원이 내다보이는 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또 다들 반대했는데 열심히 일을 만들어 학원을 운영했어요.
나는 리더로서 총대를 매는게 자신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내 강점이 못하는건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랬어요. 그래서 했죠. 그렇게
학원도 한 3년 하니깐 정상으로 올랐을 즈음 돌아보니 딱 십년이 되었더라고요. 쉬고 싶었고 그렇게 정리해서 나왔어요. 아름다울 때 떠나왔죠. 


나는 사람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란 걸 알았죠.

내가 행복한 것이 뭘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돌아보니 나는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년을 잡았어요. 내 몸은 항상 바빴어요. 늘 바빴고 시간이 없었고, 친구들 돌잔치가 있거나 몸은 못가니 부주를 했어요. 산티아고를 다녀오고 나서 남은 안식년 동안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했어요. 고마운 게 내 친구들은 나에게 와줬어요. 이제는 그들의 삶의 장소에서 한번 가서 봐야겠다. 해서 정말 찾아갔어요.

저라는 사람의 내가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를 한참 생각했어요. 나는 사람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에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나를 봐주었듯이 나도 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줘야겠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다른 꿈이 있어요. 공교육과 사교육. 스토리가 있는 학원을 만들겠다는 마음에 움직였죠. 
스펙. 중요하지 않아 스토리를 만들어. 니가 이걸 왜 하는지 왜 하고 싶은지 왜 말을 못해.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의사가 기술자.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스토리를 주고 싶어요. 그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요. 내가 행복해지는 건 고생을 해도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즐거운 이 사람이 이뤄내면 나도 돕는 거구나, 삶은 도움을 주고받는 거구나. 관점이 바뀌는 계기가 되는 거죠. 


그러니깐 내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내 나이쯤 되면 있는 사람을 관리하지 새 관계에 투자 하지 않아요. 그래도 내가 나온 이유는,  현진씨가 말한 것 때문이에요. 내가 도움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자는 말에 마음을 움직였어요.
예전에 지리산에 충동적으로 갔어요. 친구랑 갔는데 그 친구가 발목을 다쳐서 저 혼자 정상에 올라가게 된 거죠. 그런데 초짜가 초반에 막 올라가서 내려올 힘도 없는 거예요. 돈이고 짐이고 모두 친구한테 있고. 해는 져가고...
그러다 은인을 만났어요. 힘도 하나도 없이 주저앉아있는데 그분이 먹을 걸 줬어요. 저 양갱 정말 싫어하거든요. 근데 그걸 벗겨먹을 힘도 없어서 그분이 벗겨서 입에 넣어줬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먹었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양갱이 없는 거예요. (웃음) 거의 업혀서 내려왔는데 그분이 끝내 사례를 거절했고 고마운 맘이 든다면 다른 분께 같이 베풀어 주세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게 그 도움이 저는 또 산티아고에서 느낀 거예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생각해요. 

두 번째 이유가 있어요. 이년이 다 되가는 시점에 왜 박현진씨가 나한테 연락을 했을까. 생각을 해 봤죠.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쯤에서 나도 내 삶을 정리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는거죠.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가면 좀 더 담백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나도 말하면서 나를 정리하는 거니까...

최근에 일을 새로 시작했어요. 내가 어려울 때 나에게 와준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나도 돕기로 했죠.
이 사람들이 그리는 꿈이 좋아요. 나도 내가
내가 잘 될 때 박수 쳐준 사람들이 아니고, 내가 힘들 때 와서 도와준 사람들. 그 사람들하고 같이 가고 싶어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과 일을 하면 고생이 아니라 행복인거고요.
이 사람이 이뤄내면 나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돕는거구나...
이 친구가 나에게 '스토리가 있는 학원을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했고, 다른 화려한 제안들을 굳이 물리치고 이쪽에 합류했어요.
대치동은 정말 개인주의예요. 여기는 정말 돕고 돕는 구조예요. 함께 라는 마인드가 너무 좋아요. 이 사람들이 그리는 꿈이 좋아요.  개인적인 인생사까지 살펴보면서 함께 가는. 혼자 사는 건 힘들어요. 내가 이렇게 지나온 것도 도와줬기 때문이에요. 

산티아고 다녀온 전과 후 달라진게 뭐냐고 물었죠? 달라진건 없어요. 다만 사람이 인생을 사는데 있어 과거의 경험을 베이스로 미래를 사는 거거든요. 이제 돌아보니까 산티아고의 경험으로 내 다음 스템도 비춰지는 거예요.
산티아고에서도 아무것도 없이 갔다가 사람들을 만났고 좋았잖아요. 그 경험들을 미루어 앞으로 있을 일들을 헤쳐나가것도 좋겠다. 좋을 것이다. 라는거고, 선택 이후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거죠.
그게 내 행복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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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세 시간 넘는 인터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노트북 앞에 앉기가 쉽지 않았다. 대화 내용이 사라지기 전에 옮겨 적어야 하는데 왜 미루는 걸까. 세 시간의 이야기가 나는 너무 소중했고 이야기 듣는 게 재미있었는데도. 
아마도 내가 받은 이야기가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그 긴 시간을 일일이 되불러 적을 수도 없고, 어떤 부분을 발췌할 수도 없고, 흐름이 잘 전달되도록 만들어내야 하는데, 초보 인터뷰이로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십 여년의 인생 이야기를 아무 조건 없이 해주신 것도 고마웠다.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가 망설여진다. 

모든 사람들이 도와준다던, 운이 좋았다던, 자신이 가진 것 보다 더 높은 가치평가를 받아왔다던 그녀가 결코 운으로 살아온 게 아니었음 안다.
부족한 부분을 보이고, 도움을 요청하기를, 고마움에 크게 감사할 줄 아는 모습이 인간적이다.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아 준 그녀가 좋아졌다.

그럼 현진씨의 키워드는 뭐예요? 질문을 받던 그녀가 끝내는 나에게 질문을 해준 것도 고맙다. 
내가 정말 뭘 원하는가 하는 것. 지금 어쩔 수 없이 외롭다는 것. 글을 잘 써보고 싶은 것. 이 말을 차근차근 되집어 주었다.또 한
나의 외로움을 깊이 공감해주었던 것도. 내가 대여한 공간에 감탄을 해주었던 것도 감사하고 몇 달 만에 얻은 주말의 휴식 한 가운데 시간을 내어준 것도 감사하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던 고집스러움에, 
너의 꿈을 이루자고 같이 가자고 한다면 나의 꿈은 물어봐 주어야 한다는 상식에, 
현실의 가치가 '돈'이 으뜸이 되고 다른 가치들이 묻혀버리는 것에 안타까워 하는 마음에 동감한다.
이 년 전 잠시 맺은 인연을 되불러내어 나의 엉뚱한 인터뷰 요청에 답해준 이 인연이 욕심난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의 '인디언의 복음'이란 책에 실린 '늙은 인디언 양파 장수'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를 정리할까 한다. 



멕시코 시티의 큰 시장 한 그늘진 구석에 포타 -- 라모라는 나이든 인디언이 있었다.
그는 그 앞에 20줄의 양파를 매달아 놓고 있었다. 시카고에서 온 어떤 미국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요?"
"10센트입니다."
"2줄은 얼마요?"
"20센트입니다."
"3줄에는 얼마요?"
"30센트."
"그래도 깎아 주지 않는군요." 그 미국인이 말했다.
"25센트에 주실래요?"
"아뇨."
"20줄 전부는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20줄 전부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안 판다고요? 당신은 여기에 양파를 팔기 위해 있는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붉은 서라피(멕시코나 중남미에서 어깨걸이나 무릎덮개 등에 쓰는 색깔이 화려한 모포)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페드로와 루이스가 와서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인사하고 담배를 태우며 아이들과 곡물에 관해 얘기하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내 삶입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종일 여기 앉아서 20줄의 양파를 팝니다.
그러나 내가 내 모든 양파를 한 손님에게 다 팔아 버린다면, 내 하루는 끝이 납니다.
그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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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의 WithmeLAB.
'용기를 주는 레시피‘ 만들기 프로젝트

본인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끌려서 떠난 산티아고. 생전처음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도 보고, 낯선 환경에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딛껴도 보고.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 생기자 드디어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로 생각이 정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굳은살이 구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이 경험들이 너무 소중해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문의가 하나둘 들어와 웹사이트를 만들어 상담소를 운영하고 결국 여행상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의 힘이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었고(주술적 의미가 들어간^^)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고자 한 욕구는 결국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센티를 통해 다녀온 고객들을 캐스팅하기로 했다. 위드 미 랩 센티의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온 산티아고의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를 주는 레시피로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안영식. 그를 처음 본때는 2010년도 가을이었다.

산티아고 가겠다고 센티를 찾아 씩씩하게 들어와 몇 가지 확인을 하고는 예약을 마치고 돌아갔다. 한 달을 넘게 낯선 이국땅에서 잠자리를 지고 걷겠다는 사람치고는 질문이 무척 심플했다. 회사를 사직하게 되었고 갑자기 내켜서 떠나기로 했단다. 이유도 참 심플하다.
(이하 센티팍은 ‘센티’로 안영식은 ‘영식’으로 쓴다.)



▲  산티아고 완주자의 자랑 필수품인  증명서를 가져오라는 센티의 말에 기꺼이 가져와 자랑질 중인 인터뷰이.
센티는 생장-부르고스 구간만 경험했기에 완주증이 부럽다. 부러워. 



센티: 어떻게 지내셨어요?

영식: 산티아고 이후로 이탈리아에서 친구가 있어서 한 육 개월 머물렀고요, 제주도도 가서 올레길도 걸어보고...

다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거라는 일상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이런 답이 나온다. 이 남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슬쩍 궁금해진다.


센티: 그럼 그 후로 계속 여행을 하셨단 거에요?

영식: 네, 좀 더 그렇게 여행해보려고요.


센티: 혹시 여행을 계속하시려는 목적이 있나요?


영식: 제 이름으로 된 기행문을 쓰고 싶어요.


(기행문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하자. 음... 솔직히 부럽다. 센티를 이것을 생산적 무위도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노는 게 아냐 생산하는 거야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

센티: 참 그러고 보니 여행박사의 오랜 고객 이시랬죠?

영식: 네, 일본을 비롯해서 베트남, 터키, 그리스 등등 좀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포인트’가 생각만큼 안 쌓였더라고요.

(앞으로 이분 포인트 팍팍 드려야겠다.
일단 기분 좋아진 센티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한다. )

센티: 질문이 제일 없었던 고객이었어요.

영식: 여행은 내 여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산티아고도 기행문 한권 보고만 갔어요. 블로그나 맛집 이런 거도 안 찾아보고.  다른 사람이 짠 일정과 느낌을 그대로 따라 갈 것 같아서 저는 책도 지도 보려고 사는 편이에요.


센티: 제일 고생했던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영식: 첫날 피레네 산맥 넘을 때 거의 죽을 고생을 했고요, 제가 나름 군대를 산에서 보냈는데 피레네는 정말 죽음이더군요... 하필이면 비가 엄청 오는데 온몸이 생쥐가 되어서.

그리고 두 번째는 눈이 너무 온 날.. 산에 올라갔는데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또 얼른 내려왔던 기억이 있고...


▲ 보기엔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눈물나는 고생길인 눈보라길이었다고 한다. ⓒ 안영식





 2010년 11월 말 출발해서 완주했다. 잠깐 늦가을을 맛보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간 거다. 이렇게 눈이 쌓였다가 금새 녹아버린다고 한다. 참 신기허네.  ⓒ 안영식


영식: 기억나는 건 쌀을 싸서 처음 밥을 했는데 이렇게 잘 하는 줄도 몰랐죠. 찰진 밥은 물론, 누룽지, 숭늉까지 만들어 먹었어요.
참 엽서는 좋은 아이템이었어요. 모두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죠.

(나름 표현의 욕구를 나눈 센티의 작품이다. 아주 잘했다고 뿌듯해 한다. 엽서보기 )


센티: 인상 깊은 사람들은요?


영식: 음 오키나와에 살았던 일본인 애가 있는데, 샤미센을 들고 와서 연주도 하고 다녔고요, 꿈이 일본에서 스페인 바를 여는 거
래요. 그 친구 따라 바도 여러 군데 다녔어요. 바 인테리어도 꼼꼼히 보고 사진 찍고... 그랬던 친구..

또 18살짜리 캐나다 화가인데 대학 안가고 바로 전 세계 여행을 다니는 친구예요. 얼마전에 한국에 와서 제가 올레길을 안내하기도 했죠. 이런 저런 사람들 만나면서 삶의 여러 방식을 배웠죠.

(인터뷰 초반에 본인 이름으로 기행문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슬슬 다녀온 여행기록을 블로그에 남기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블로그를 보여 주었다. 블로그를 따라 여정을 한번 더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

영식: 블로그를 만들고 그동안 여행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하드가 다 지워졌어요. 복구도 안되게. 일단 작업 진행이 멈춰졌죠. 젤 아까운 게 터키인데...거긴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어요.


센티: 터키는 자유 여행하기 힘들지 않나요? 문화재도 많아서 가이드 설명이 있으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영식: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란 책을 읽고 갔어요. 현재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어떻게 함락했고, 문화재들을 어떻게 이슬람화 시켰고, 지명이나 문화 유적들이... 보이거든요. 굳이 가이드라는 게 필요 없어요.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저 나름대로 재구성 할 수 있고.


센티: 참 훌륭한 여행 방식 같아요.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음 훌륭한 여행 방식 같다. 센티처럼 취재 목적이 있어 가는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일정이 있다 해도 사전 조사 없이 소설 한권 읽고 가는 것도 여행 로망 중에 하나겠다.)



센티: 같은 사람인줄 몰랐어요. 머랄까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덥수룩한데 표정은 너무 해맑고
평온한 모습이네요.

영식:  맞아요. 이때는 정말 등 따숩고 먹을거리만 해결되면 부족한 게 없는 거예요. 이때 표정이 딱 그런 거죠. 

센티: 뭔가 의미를 만드는 말 같아서 이런 말은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영식: 네, 있어요. 욕심을 버리게 됐어요.


센티: 무슨 욕심이요?


영식: 한 번은 가게를 못 찾아서 아사 직전까지 갔었어요. 한 마을 슈퍼에서 애걸을 해서 장을 보게 해 줬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겨서 마구 산거에요. 물건을.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요. 그 다음날 걷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욕심 부린 것만큼 딱 그만큼 못 가겠는 거예요. 그 뒤로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센티: 저는 처음에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걸으면서 하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영식씨는 어떠셨어요?

영식: 도보여행은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얻게 되는거 같아요. 참 아쉬웠던 게 ‘나란 누구인가’를 생각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
거든요. 취업준비 때 자기소개서 쓰면서 일관된 자기 철학,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리를 못했던걸, 이제라도 여기서 생각한다는 게 다행인거죠.

센티: 같이도 걷지만 혼자서 걷게 될 때가 많은데요, 주로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영식: 걸으면서 저는 저의 과거와 대화를 많이 나눴거든요. 뭐 가끔 동수 놀이도 했고요. (웃음) 과거의 저는 더 좋은 고등학교를 가려고 애썼고, 대학도 더 좋은 곳을 가려고 재수도 했고, 취업도 더 잘하려고 했고... 이 모든 노력들을 돌아보니까 결국 더 돈을 잘 벌기 위한 거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나보다 좋지 않은 고등학교 다니던 친구 녀석을 대학에서 만나기도 하고 사회 나와서도 돈 좀 번다고 흥청망청 쓰는 애들 보면 적은 월급으로 살뜰하게 더 잘 사는 친구들하고도 별 차이가 없고. 사람이 한 단계에서 앞서간다고 해도 인생의 길을 또 가다보면 비슷해져 있기도 하고... 성공만 향해 달려가다가 건강을 잃고 병원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죽지 못해 살다가 죽는 경우도 있고, 평화롭게 생을 마감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 거 생각하다보니깐 아등바등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센티: 우아,, 엄청나게 도를 닦고 오셨네요. 근데 이런 생각은 이미 산티아고를 가실 때 어느 정도 생각한 거 아니었나요?

영식: 회사는 홧김에 그만뒀지만, 여행 다녀와서 바로 MBA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을 하던가. 그래서 더 좋은 직장에서 더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고 살겠다 였죠.

센티: 아 그럼 길 위에서 생각이 바뀐 거네요.

영식: 네 180도로 바뀐 거죠. 길에서 답을 찾고자 떠났죠. 저도 딱히 재취업이랄지 학문을 계속 할지 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데 있을 줄 알았던 답은 없고 길 위에 또 길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필시 기행문이라면 말 그대로 文이 중심일진데 요새는 사진이 주인이 된 듯하다며 같이 개탄하였다. 사람들이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라고 하는데 정작 내용은 안 봐요. 사진 몇 장 보고 잘 찍은 사진이면 이야, 나도 가야지...라고 하는 거에요.
 
일단 우리는 사직작가가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기꺼이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야기한 내용을 모두 적을 수는 없다. 안영식, 이 사람의 블로그에는 참 영양가 있는 감상들이 적혀 있으니 이곳으로 나머지 감상들을 교류해 보길 바란다. ^^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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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식
    2012.01.30 20:3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아...민망하네요^^;;;;

산티아고 순례여행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다가,
몇몇 분들의 요청으로 상담을 해주다가 급기야 상품화가 되었던 센티의 산티아고 프로젝트 #1.
오픈하며 게시판에 공지글을 쓴지가 2010년 1월이니,  벌써 2년째 유지되고 있다.
오늘은 센티의 산티아고 프로젝트를 '카피'한 혐의가 짙은 회사를 소개하려 한다.
http://라틴투어.kr

보면 알겠지만 기본 레이아웃은 물론, 콘텐츠의 구성까지 비슷하다.
여행업 구조상 아무리 독특한 여행 상품일지라도 저작권은 없고,
뭔가 된다 싶으면 우르르 모여들어 서로 카피하다가
급기야는 대한민국의 모든 여행상품이 다 같아지는 상황도 발생한다.
경쟁자 생기는건 이 상품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니 좋은것이고,
여행 경험을 나누는 상품을 미리 통찰한 나의 기획이 관심 받는것이니 그닥 기분나쁠것 없다.

그런데 상담의 형식까지 카피를 한건 좀 그렇다. 
고객과의 소통 방법중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질문 게시판 운영일 것이다.
나는 처음 이 게시판을 운영하면서 경험자로서 최대한 조언을 아끼지 말고 용기를 주는 답을 쓰고,
글의 끝에 꼭 Buen Camino 붙였다. 이마저도 똑같은 걸 보면 살짝 분하다.

 
▲ 라틴투어의 상담페이지에서 캡쳐


산티아고 여행은 나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 길을 다른사람이 더 많이 알게 된다면 좋은 일이다.
카피가 생겼으니 이제 센티의 산티아고 프로젝트 2를 업그레이드 할 때가 온 것 같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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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술가 후원의 한 방식으로 소셜 클라우드 펀딩이 생겨났다.
좋은 아이디어는 있지만 현실화 시킬 자금이 없는 경우 이 시스템을 이용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소개해 다수의 후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이행 후
투자금을 돌려주는 대신 '리워드'로 보답하는 새로운 후원 시스템이다. 
그 리워드가 독특할수록 후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면 어느 밴드가 앨범 제작비용을 모금하는 프로젝트를 올리고
후원금액에 따라 리워드를 차등 제공한다. 
3만원 이상의 후원에는 공연초대를
6만원 이상의 후원에는 공연초대와 더불어 앨범 재킷에 후원자 이름을 넣어준달지.
6만원 이상은 공연중 이벤트를 해준달지.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이벤트를 접하게 된다.
나 또한 몇가지 프로젝트에 참여도 해보고 후원이 성사되어 리워드도 받아보았고
또 현재 후원이 성공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프로젝트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나도 한번 아이디어로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면 이거 꽤 좋은 플랫폼인건가? ^^
뭐 걔중엔 요런 것도 있었다.


나름 아티스트의 기획적 성향을 가졌다고 믿는 나는 
내가 경험한 내용을 전파하고 파는 방식으로 창조적인 욕망을 풀었다.
지금쯤 순례길에 있을 이 작가는 후원이 성공하면 도예로 창작행위를 할 것이다.
스페인 산티아고는 참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고나...

작게나마 후원에 가담 했는데, 
펀딩이 꼭 성공해서 산티아고 목걸이를 받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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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도보여행은 식도락파의 입이 즐거운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거기서도 창조요리 활동은 변함이 없었다.
산티아고에서 즐겼던 간단한 음식과, 생존요리를 소개한다.


 코카콜라
카미노를 걸으면서 처음엔 콜라 생각이 간절했다.
실컷 걷고 나서 들이키는 콜라 한잔의 쾌감.
목구멍을 따끔하게 타고내려가며 가슴을 뻥 뚫는 듯한 콜라만 생각하면 아찔했다. 
콜라 혹은 환타 한 캔에 2유로 미만. 매일 마셔대는 콜라에 지출되는 돈이
슬슬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대체제가 나타났다.
바로 물에 녹여마시는 비타민. 2유로도 안하는데 수십알이 들어있다.
맹물에 두알 넣고 두면 뽀글뽀글 자동 탄산발생. 오렌지 환타맛이다.


 카페
카미노에 겨울이 찾아오고부턴 시원한 콜라는 더이상 구원이 될 수 없었다.
따끈한 에스프레소, 혹은 따끈한 우유를 넣은 카페 콘 레체 그란데 사이즈.


 또르띠아
스페인 전통 음식으로 생감자를 잘게 썰어 계란과 함께 오랜시간 약한불에 익혀만든 요리. 
두툼한 파이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웬만한 바에서는 샌드위치등과 함께 기본 메뉴로 있다. 출출할 때 요깃거리로 좋다. 





 일용할 양식 바게트
아침에 바게트를 하나 사서 배낭 옆구리에 끼고 있으면 맘이 든든했다.
거의 바게트와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딱딱한 것과 쫄깃한 속, 그 식감을 즐겼다.
슈퍼에서 작은 포장단위로 파는 잼과 버터를 사서 발라먹기도 했고,
가공된 초리스(유럽식 말린 육포)와 치즈를 끼워넣어 먹기도 하고 바게트의 변신은 무한하다.
바게트 말고도 식빵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양식이 있으니
바게트만 먹고 입천장 다 까지는 불상사는 없길 바란다.




센티표 쿠킹로망 초간단 생존레시피


좁쌀 파스타 라면수프 
재료 : 초리스, 라면스프(신라면), 파스타

레시피랄것도 없다. 위 세가지 재로를 넣고 그냥 끓여먹으면 된다.
한국에서라면 자취생의 찌질한 식단이 되었음이 분명할,
라면국물에 밥 말아먹는게 먼 이국땅에서는 로망이될 줄이야. 

친구가 챙겨준 라면스프 3개를 고이고이 간직하다가
언젠가는 뜨거운 물에 믹스커피대신 타먹으리다...라고 만 생각했다가
아주 우연찮게 발견한 파스타를 보고 요런 생존요리법을 생각해냈다.
파스타 이름은 모르겠고, 그냥 편의상 좁쌀파스타라고 부른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어슬프게 고기국물까지 우려내었다며 라면의 고급화를 외쳤다.
산티아고에서 라면스프는 필수다.





얼렁뚱땅 상치쌈
재료 : 참치캔, 양상치, 마늘, 양파, 볶음 고추장

라면스프만큼 필수품 볶음 고추장.  저 고추장과의 재회는 약 보름후에 이루어졌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모두 뺐기 때문이다. 
보름만에 고추장을 만났으니 그 기쁨 얼마나 컸으리오. 얼른 초간단 요리를 만들어먹었다.

이 요리(?)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주방시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참치캔을 따고 채소를 씻고 썰기만 하면 코리안 푸드가 완성되는 것이다.
주먹만하게 쌈을 싸서 매운맛에 눈물 찔끔 흘리며 먹는 장면을
외국인 친구들은 신기하게 바라봤다
들어는 봤나, 코리안 트레디셔널 소스~~고추장 !!





센티표 알뜰로망 샌드위치
재료: 이름모를 빵, 양파, 훈제슬라이스햄

바게트에 지칠만큼 지쳤다면 새로운 빵을 선택해보자.
방석만한 빵 발견. 1.5 유로라는 환상적인 가격. 더군다나 맛있어보이기까지.
상추쌈 싸먹고 남은 양파를 가지고 다음날 도시락으로 샌드위치 당첨.
바게트에 응용해도 훌륭한 도시락이 된다. 
초반엔 보이던 '바(Bar)'도 안나타나고 배고픔에 지칠 때,
와삭 베어무는 센티표 생존샌드위치야 말로 최고의 만찬 !!!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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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브루고스에서 하루종일 노닐기

어제는 피곤했던 모양인지 12시에 잠이 들었고
중간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워 입고 자던 스웨터를 벗느라
잠시 깨었던 것 빼고는 참 잘 잤다. 베드벅 걱정 없이 쾌적하게 잘 잔 날이다.
알베르게에서 또 묵는것은 불가능했고 8시부터 2시까지 알베르게가 문을 닫는 동안
짐을 맏기고 부르고스 시내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말수가 적었던 한 친구가 말을 건네온다. 안토니오다.
어제 타르코프스키의 안개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야속한 친구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며 블로그나 사이트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한다. 
서로 메일을 교환하고 이번 여행은 블로그에 잘 정리해 두어야겠다 생각한다.
이미 벌써 해외의 독자 하나가 생기지 않았나.

‘센티’혹은 ‘진’으로 통하는 나의 마지막을 앞으로도 계속 길을 가는 친구들이 작별인사를 챙겨준다.
“진, 부엔 카미노”
“음 그건 내가 해야 할 인사 같은데. 카미노는 앞으로 너희들이 계속 가는건데.”
“인생은 어차피 길을 걷는 거자나. 네 삶이 부엔 카미노 하길 바라.”

나의 산티아고 두 번째 프로젝트를 구성함에 꼭 필요한 스페인 우표를 구입해야 했다.
짐을 붙이겠다는 몇몇 친구들과 우체국에 들렀다.
그 와중에 안토니오는 나에게 그림까지 그려주었다. 그들과 우체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런 거 잘 안하지만 오늘로서 카미노가 마지막이라 남겨두고 싶었다.



산티아고 일행과 헤어지고 이곳에서 주말까지 머무르겠다는 안토니오와 조금 걷다가 헤어지고
나는 그동안 몸살이 날 만큼 하고 싶어 했던 일들에 착수했다.

일단 아무 계획 없이 거리 싸돌아 다니기. 그 동안은 알베르게에 등록하자마자
슈퍼를 찾아 헤메느라 멍 때릴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관광객 모드로 변신해서 천천히 놀아야했다.
일단 패션부터 바꿨다. 아침 쌀쌀한 날씨에 비행기 좌석에 놓고 내린 나의 핑크 점퍼가 유난히 그리웠다.
코트를 하나 사 입었다. 50유로 정도 했는데 실용적이고 꽤 따뜻한 것이 오래도록 입을 것 같다. 

볕 잘 드는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하면서 샌드위치 먹기. 이건 내 로망이다.
그것도 어제 만든 센티 스타일 햄 양파 샌드위치 아 드디어 여유롭게 로망을 실현하는구나.
또 밖이 환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 찐하게 들이켜며 책읽기.
나의 십자가에 무게를 더한 책 한권. 가져오길 잘했다.
시니컬한 문체가 어찌나 재미나던지 앉은자리에서 후딱 70페이지를 읽어버렸다.

브루고스에 발을 디딜 때부터 웅장하게 솟은 성당 관람하기.
어제는 너무 피곤하여 제대로 못 둘러볼 것 같아서 오늘로 미뤘다.
종교의 내용과 상징하는 바는 모르겠지만, 그 규모와 분위기는 봐볼만 하다.
순례자 여권을 내면 1유로 더 저렴하다.
12세기에 지어졌다는데 이곳 건축의 힘은 위대하다. 핸드폰이 울린다.
그동안 순례중에는 배낭 속에 핸드폰을 쳐 박아 두고 신경 쓸 수가 없었다.
해외로밍 안내 멘트를 듣고서도 전화벨을 울리는걸 보면 받아야 할 것 같다. 회사다.
"머하세요? 거기 몇 시에요?"
"왜요? 아 왜요???"
"그냥 살아있나 궁금해서요. 우리 술 마셔요~~ 여긴 아홉시~~요새 일 겁나 많아요. 빨랑 와요~~~"

2-3일에 한번은 인터넷을 할 줄 알았는데 센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으니
술 자시다가 슬쩍 궁금했나보다.

인터넷이고 핸드폰이고 통신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알베르게에 설치된 인터넷에 한글 지원이 안 되면, 이건 거의 환장이다.
어떤 알베르게는 한국어 인코딩이 지원되지 않아 외계어만 보다 끝내 메일확인을 포기 한 날도 있었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그동안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나보다. 모국어로 말하는 것에 들 뜬 듯했고 사람이 그리웠던 것 같다.
주저리주저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행운을 빌어줬다.

예전부터 찜해둔 조개모형 앙증맞은 목걸이를 기념품삼아 구입했다.
조개는 수호를 의미한다. 그래서 순례자들의 순례길에 수호를 비는 상징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다.
단순히 실에 엮은 작은 금속 조각일 뿐이지만 이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참 좋아할 것이란 생각이다.

이렇게 놀다보니 2시가 훌쩍이다.
어깨에 배낭을 메다가 주저앉을 만큼 무거워진 배낭을 지고 나서
그제서야 바르셀로나까지 버스로 얼마나 걸리는지를 안 물어 본 것이 생각났다.
호스피탈로 말로는 약 8시간이란다.
헉...그럼 나는 밤에나 도착하는 거야?
그냥 하루 밤 호텔에서 더 묵을까? 일단 터미널로 갔다.
오전 시간대 버스는 다 가고 11:45 버스가 남았다. 내일 아침 8시에나 도착한다.
이럴 땐 야간 버스가 최고다. 비용과 시간 둘 다 아낄 수 있겠다 싶어
다음날 아침 버스 대신 야간 버스를 예매했다.

이 모두 즉흥적이다. 여기와서 인터넷으로 알아본 한인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내일 예약을 잡았다.
비수기니깐 가능한 일이다.
코인 라커에 산더미 같은 배낭을 쑤셔 넣고 광장 한복판을 거닐다가 안토니오를 또 만났다.


▲ 걱정마, 나 좋은 사람이라니까.



"진, 어떻게 된 거야?"
"응, 계획 없이 노닐다가 밤에 바르셀로나로 갈려고."
"그렇구나, 타파스 먹어봤어?"
"아니 또띠아만 엄청 먹어댔어. 타파스 맛있어? 그거 먹어보고 싶다."

타파스는 작은 접시를 뜻하는데 조그만  음식들을 여러개 놓고 먹는 것을 뜻한다.
스시에 다양한 생선을 올려먹듯,
김밥에 온갖 재료들을 넣어먹듯,
이들도 그들의 주식인 바게트에 여러 가지 토핑들을 올려먹는구나 라며 내멋대로 생각해본다.



그렇게 간단하게 먹고 나오는데 안토니오가 급 제안을 한다.
너 피곤하지 않으면 내가 좋은 곳으로 데려갈까 하는데... 산솔.
브루고스 시내가 다 내다 보이는 곳이다. 손짓 발짓, 노트에 적어가면서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망설이는 것 같이 보였는지 그가 부연설명을 한다.
"걱정마, 나 굿 맨이야."
"미안, 나 좀 피곤해. 그리고 오늘밤은 버스에서 자야해서 힘들거 같아. 이만 헤어져야겠어.
타파스는 맛있었고 고마워. 이메일로 다시 만나자."

하루 동안 그와 뺨 인사를 세 번이나 했다.

오늘 하루는 한 마을에 자리 잡고 앉아 고스란히 시간을 보냈다.
상점이 열리는 시간, 시에스타 시간의 시작과 끝, 그리고 마무리까지 같이 했다.
그동안 순례를 마치고 진입한 마을의 쥐죽은 듯한 시간의 마을만이 맞아줬는데...  
자평하기로 꽤 성과있는 날이다.
하루를 연장하지 않아도 되고 야간버스를 타보는 경험도 해보고 숙박비도 아끼고...

그리고 지금 해가 지고 다시 마을은 활기를 찾았다. 가로등엔 불이 켜지고,
식료품점, 기념품 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 바에도 다시금 복작복작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카페에 앉아 나의 또 다른 로망을 실현하고 있다. 넷북으로 일기 쓰기.
역시 내 옆에는 카페 콘 라체 그랑데가 모락모락 따뜻한 향기를 퍼트리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금방 흐를 것 같다.

마지막 순례자 코스를 즐기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한인 민박의 한식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길로 뻗은 골목 중 한곳에 레스토랑을 봐둔 곳이 있다.
포도주 한 병이 같이 나왔다. 혼자서 홀짝홀짝 어느새 치사량을 넘고 말았다.
홀짝거리는 사이 어느새 반병이나 줄어있었다.
마실 때 기분은 좋았으나 버스에서 좀 괴로워해야 했다. 그놈의 술이 웬수였다.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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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2 11: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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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 홍대에서 우연히 만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는
    2차 마치고 다른 친구 만나러 가던 길이었거든.
    권형 바운더리가 주로 홍대-상수-합정 이거든.

    좀더 확장하자면 광화문-인사동-북촌-삼청동 지역도 자주 다니기는 하는데,
    그래도 줄은 홍대쪽에서주로 마신다는...ㅋㅋ 여하튼 반가웠다는. ㅋㅋ

    부엔 카미노! ㅎㅎ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많이 배워 오셨는가요?
    길위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조근조근 블로그를 뒤져봐야겠군.
    책이 나오면 바로 알려주시와요 네 블로그에 걸어줄께 ㅎㅎ


2009.11.10
산 후안 드 오르테가-부르고스 : 26km


오늘 날씨는 어제보단 조금 나았다.
3킬로도 안 되는 길을 가뿐하게 주파. 이곳에 하나 있던 알베르게는 문을 닫았다.
어제의 알베르게에서 묵기를 잘한 일이다. 카미노에는 정보 공유가 쉽다.
다들 머무르는 곳이 비슷하기에. 아파르는 작은 마을이고 브루고스까지 21킬로가 남았다.
숲길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딸깍 발을 디디는데 엄청 커다란 개가 묶여있지도 않은 채로 앉아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의례히 컹컹 짖어댈 거란 나의 조바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에겐 아무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봤고,
울타리 안에 있던 수십 마리의 양떼는 떼거지로 경계망 사이로 다가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개는 양때에게만 관심이 있는 양치기 개였던 것이다.

다른 개체들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키는 것. 양떼 주인은 그래서 맡겼겠지.  
질척이는 길에 수많은 발자국을 보니 군데군데 개 발자국 
무수한 반복되는 옴폭한 발자국은 양떼, 턱턱 올려진 동그란 건 개의 발자국.
커다란 초코볼을 흩뿌려 놓은 듯한 무수한 양의 똥무더기들은 옵션이다.
 


이곳의 날씨는 정말 예감 할 수 없다.
조금 전에 보고 온 양떼를 지나 오 분도 안 지났건만 바로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했다.
마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안개 가득한 풍경.
실루엣으로 보이는 나무와 표지판의 드라마틱한 풍경도 잠시, 곧 공포감이 찾아왔다.
불과 10미터 앞도 안 보이는 상황.



띄엄띄엄 보이던 팻말도 사라지고 이제 노란 화살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또 비가 내린다. 앞이 보이질 않으니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본능적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이 지금 고개가 가장 높은 곳이니 흙길을 따라, 발자국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을 따라 나도 나란히 걸었다.
멀리서 땡깡땡강 깡통종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아까 본 양때가 내 곁에 와 있다.
양들은 건초를 찾아, 나는 길을 헤메다가 같은 길에서 만났다. 별 경험을 다 하는구나.


▲ 야속하게도 안개속으로 먼저 사라저버린 순례자. 나중에 말을 트게 되었던 안토니오.


멀리서 분명 공사현장에서나 들릴법한 소음이 들린다.
안개가 심해 앞이 보이지않으면 문명의 소리를 찾아 가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양때를 벗어나 그쪽으로 내딛기 시작했다. 곧 트럭 지나 가는 소리도 들린다.
그때부터 길을 따라 내려갔다.
저 멀리 마을이 보여서 안도감이 들지만 오늘 일정대로라면 브루고스까지는 어떤 마을도 나타나선 안 되었다.
표지판 상으로 마을 이름은 루베나. 길을 한참 잘 못 든 것이다.

10시. 30분 정도 안개 속에서 헤맸을 뿐인데 온몸의 에너지가 다 소진됐다.
일단 마을 바에 들어가서 배부터 채워야 했다.
바에 준비된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바텐더에게 바디랭귀지로 배와 입을 가리켰더니 잠시 고민하더니 화장실 키를 내어 준다.
아니 이게 아니야~~ 이번엔 좀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문질렀다.
역시 고통을 표현하는 데는 의성어와 실감나는 표정이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주인이 바게트를 가져와서 반으로 쪼개는 시늉을 한다.
그 안에 먼가를 넣어서 샌드위치 비슷한 걸 만들어 준다는 소리 같다.
나는 아무거나 오케이 했다. 뭐든 먹을 걸 달란 말이다....
바게트 샌드위치가 나오자 나는 자랑스럽게 주문해댔다. 카페 콘 라체, 그란데!!!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브루고스 방향으로 걷는다.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고속도로 갓길뿐이다.
아까 문명의 소리라며 반가워하던 마음도 잠시.
엄청난 속도와 소음과 바람을 남기며 지나가는 트럭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어제 밤 유용히도 사용했던 귀마개를 다시 꺼냈다.
이 길을 적어도 두 시간은 가야한다.
마지막 카미노 길이 고속도로라니 원통했다.





오늘은 홀로 산길에서 안개를 만나 길을 잃었어.
곧 마을을 찾았지만,
여행은 한 편의 모험 같아.


어제 읽은 가이드 북에서 브루고스엔 공장지대가 많아 순례자들도 몇 킬로는 버스를 이용한다고 써있다.
안개 대신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가 그득하다.
이 근처에서는 카미노 가는 길을 아무도 몰랐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기에 조금 당황했지만 지금까지 오던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브루고스는 철도 항공시설까지 있는 대도시다.
버스가 다니기에 이번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정거장 앞에서 산티아고, 무니시팔 알베르게, 버스를 반복했더니 1번 버스를 타라고 알려준다.
한 노인이 내 가방에 붙은 조개 껍대기와 진흙범벅인 신발을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순례자니깐 걸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뜻이다. 베시시 웃어주었다.
'고속도로에서 차들의 소음에 시달려서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안개에서 길을 잃은 후 나의 노란 화살표는 단 한 조각도 보지 못했다구요...'
그분 뭐라고는 했지만 친절하게 나를 알베르게까지 안내해 주었다.
친절함이 너무 감사하여 가방에 꼬깃하게 둔 핸드폰 매듭 고리를 선물했다.
기뻐하며 받으셨다. 아디오스...
이곳 알베르게는 거의 개인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각 침대 머리맡에 개인 전등이 설치되었고 칸막이가 존재한다.
고작 3유로에 이런 시설을 사용하니 고마운 생각까지 든다.




부르고스에선 생장에서 부친 내 삶의 6킬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내 욕심과 집착의 무게 6킬로그램. 그것 없이도 지금까지 잘 걸어왔는데.
필요 없는 것들은 이곳 알베르게에 기부해야지.
하지만 반가운 물건도 있다. 바로 볶음 고추장. 우체국 가는 길을 그래서 즐거웠다.
고추장을 찾아서 참치캔과 양상추를 사서 싸먹어야지. 으흐흐..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고추장 타령인가 싶다. 
양파, 마늘 추가해서 양상추에 참치 얹어 고추장 듬뿍 뿌려 먹었다.
코 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이 몸에서 열기가 오른다.
한국의 맛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갈등이 생긴다. 대성당도 찬찬히 보고 싶고, 공원에서 더 멍 때리고도 싶고....
카미노의 길을 하루 더 연장 할까 말까...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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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2 11: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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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의 시선과 순례자의 가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듯 하더이다.
    부디 그 마음이 일상 생활에서도 변치 않기를...

    부앤 까미노 ^^
  2. 2011.03.16 09: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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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여행이시네요 ^^

    저도 이런 여행길 나누고 싶습니다.
  3. 김현주
    2011.06.09 20:0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 검색하다 여기까지 오게됐는데요..
    저도 한 20일부터 7월 6일까지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부르고스까지 갔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와야하는데.
    교통편이 궁금해서 글을 남깁니다. 어떻게 이동을 하셨나요?
    제 계획은 파리에서 바로 생장으로 가서 걷기 시작한 다음 부르고스에서 다시 돌아가려는데..
    버스로 바욘까지 갈 수 있나요? 바욘에서는 야간기차로 파리로 갈까 하는데요..
    정보 좀 부탁드립니다.
    • 2011.06.10 10: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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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부르고스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이동
      바르셀로나에서는 야간 열차로 파리로 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부르고스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교통은 열차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2009.11.09
벨로라도-아게아 : 24km



"이봐, 아가씨. 일어나야지 않어?"
거북이 아저씨가 깨웠다. 어제 내 주위의 모든 소리는 코고는 소리였다.
참고 자느냐 배낭에서 귀마개를 꺼내느냐를 잠결에 고민하다가 귀마개를 사용하기로 했다.
아 정말 카미노는 다 좋은데 이 것만큼은 견디기 어렵다.

어제 들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앞으로 2일은 더 비가 올 것이며 (물론 어제와 같이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
웬만한 알베르게는 문을 닫았으며,
12킬로지점에 있는 알베르게는 1시에 문을 여는데 예상대로면 12시도 안되게 도착.
앞으로 12킬로 지점의 알베르게는 거지소굴로 유명하다는 곳. 패스요함.
그리고 약 4킬로 떨어진 지점에 그나마 괜찮은 곳이 있다고 했음.
그러니 12시부터 16킬로를 더 걸어야 하는데 역시 비바람이....

중간중간 거북이 부자와 만나는데 그 때마다 나를 걱정해주신다.
이미 생장에서의 경찰신고사건과 나의 넘치는 배낭을 보았기에 하는 걱정이다.

어제처럼 6시가 다 되어 입술 퍼렇게 들어갈까를 고민하며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아베크를 보았다.
독일에서 온 그녀 3주의 휴가를 받아 왔단다.
"나는 내일까지가 끝이야. 아쉽네 내년에 또 올 수 있으면 좋겠어"
"난 20년 후에나. 그전엔 절대 오지 않을 거야."
먼저 그녀를 보내고 바에서 바게트를 하나 산 사이 버스가 떠나 버렸다.
음 역시 걸어야 하는걸까 싶은 생각은 또다시 내리는 빗줄기에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이미 지나간 버스는 또 두 시간 후에나 온다고 하여 생장 이후 오랜만에 히치 하이킹에 도전해봤다.
브루고스까지 간다는 에스파냐인이 흔쾌히 태워줬다.
오르테가 마을에서 내려 알베르게까지 4킬로는 걷기로 했다.
내리면서 작은 기념품이라도 줄까 싶어 가방을 뒤적이는데 굳이 마다하면서 떠난다.


▲ 땅은 젖고 하늘은 말갛구나. 언제 비가왔냐는듯... 


작은 마을에 바와 같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
딱 한명이 먼저 와 있었는데, 코리안 치킨 숩을 같이 먹은 폴 아저씨.
너무 반갑게 ‘올라’를 외쳐주었다. 그래 이런 게 은근한 반가움인가보다.

먼저 오면 침대 선택권이 있다. 딱 찍은 침대에 짐을 푸는데 하얀 베겟잇 사이로 까만 점을 발견.
예전 어느 알베르게의 방명록에 누군가 그려놓았던 '베드벅스'인 것이었다.
꺄악....가지고 있던 휴지를 두껍게 접어 그 넘을 눌렀다.
‘띡’ 소리와 함께 손 끝에 터지는 느낌이 끔찍했다.
오 제발...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베드벅스에 물리지 않게 해주세요.

방명록을 보니 3년 정도의 기록두께다.
많은 사연들이 적혀있었지만 어느 부부의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다.
매일 저녁 만들어 먹을 음식을 구상하고 매일같이 소풍가는 느낌으로 여행한다는 부부.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그들이 참 행복해보였다.
이 길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걸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내 산딸기 젤리를 기꺼이 나눠먹은 독일인 알렉산더가 도착했다.
조금의 영어도 못하는 그와 할 수 있는 대화는 오로지 바디랭귀지 뿐이다.
'밥 먹을래?' 어렵게 알아들은 그의 랭귀지에 이미 밥을 많이 먹었어, 노 쌩스라는 말이 통하지 않아,
농(non) 이라는 차가운 말 밖에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와중에 땡그란 프랑스인도 들어온다.
오 어떻게 벌써 왔냐고 걸어온 거 맞냐고 물어댄다.
그녀와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한다. 너네들 먼저 왔구나...

곧 거북이 부자도 오겠군. 또 한 번씩 놀라시겠네.
내일이면 카미노의 진짜 마지막 날이다. 
이 마을에 유일한 바이자, 레스토랑이자, 슈퍼에서 다들 모여 오늘 카미노의 마지막 파티를 해야겠다. 
 




▲ 전~혀 정상적인 단어로는 대화가 되지 않았던 알렉산더. 그의 막 그림으로 모든 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순례자메뉴를 주문하는데 이런, 에스파냐어로 적은 메모지를 갖고 온다.
총 3코스에 와인과 물 빵이 포함된다는 건 알겠는데, 각 코스별로 선택하는 3가지 메뉴.
즉 총 3코스의 9가지 메뉴를 구별해낼 방도가 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샘을 닮은 이 남자 처음엔 사전을 가져와서 애쓰더니
반짝 아이디어가 생각난듯 잠시만 기다리라는 느낌을 남기곤 사라진다.
곧 조그만 접시에 9가지 음식을 담아왔다. 말하자면 직접 샘플을 보여주는 서비스다. 
그 생각이 너무 재밌어서 웃었다.

어느새 다들 모였다. 삼일 째 같은 숙소에서 만난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후르츠 샐러드에 무엇인가 점점이 뿌려져 있다.
후추인가 살펴보니 묘한 향이 나는게 꽤나 매력적인 향신료 같다.
옆에 알렉산더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림을 그려준다.
때론 말보다 그림이 더 쉽다.
꽃의 씨앗인가 보다. You're good artist!!

축구게임기 앞에서 서성이니 한 친구가 게임 제안을 한다.
공이 5개 나오는데 4대1로 그가 이겼다. 그나마 1점은 나의 자살골이다.
푸드 보린~~ 이건 작은 축구 게임을 말하는거야. 그가 가르쳐 줬다.

아 친구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애틋해지는 이 길이 곧 그리워지겠지.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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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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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 코치로서 개인의 잠재력을 깨워 비즈니스의 성공자원으로 활용되도록 코칭하고 있습니다. sentipark@gmail.com by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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