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입시에 3번 실패하고 결론을 내야 할 때가 왔다. 
대학 졸업장을 위해 공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고졸학력을 갖기도 싫었다. 고민했다. 
궁지에 몰리면 별 아이디어가 다 떠오른다. 
미술학원에서 내가 다니는 대학 실기를 준비하는걸 봤다!. 
우리 대학에도 미대가 있다. 
과를 옮기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실기력은 입시한만큼 쌓였으니 실기 테스트가 있다면 응할 마음도 있다.  

2학기 등록기간을 앞두고 전과를 필사적으로 알아보았다. 
최소 1년 이수의 학점이 필요했다. 
한 학기 21학점을 공대 수업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미대 수업을 듣고 싶었고, 학칙을 보니 전공 선택은 타 학과생에게도 열려있었다. 
21학점 7과목을 모조리 조형대학 전공 선택과목으로 채운다. 

학점상으론 2학년이 안되지만 2학년 수업에 들어갔다.
2학기 개강 첫 날. 실험실만큼이나 낫선 공간에 들어갔다. 
'공대학생입니다. 미대 수업이 너무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작업실 자리 한 켠만 내주십쇼'
없던 변죽이 생겼다. 
알뜰하게 모아 온 재료들을 꺼내고 수업을 들었다.
반쪽짜리 입시준비생으로 다양한 재료를 다뤄봤기에 학교 생활이 낫설지는 않았다.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100호 캔버스도 직접 짜보고, 유화를 처음 다뤄보기도 하고, 온갖 재료로 실험도 해본다. 
학기중 누드크로키 수업이 있었는데 
평생교육원에서 처음 누드모델로 만난 여성모델과 재회한다.

나는 타 과 수업을 청강하러 온 독특한 배경의 신기한 학생이었다.
학교를 이렇게 행복하게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학기였다. 
그 학기 나는 학점 우수 장학금을 받았다.





∆ 시각화하고 싶은 텍스트를 패러디로 표현하라. 



幼年
                              - 정병근
측백나무 냄새를 맡았다 
개미들이 하루종일 햇살을 끌고 갔다 
매미 소리가 한낮의 귀청을 찢었다
바지랑대 높이 빨래가 펄럭였다 
후두둑, 소나기가 오기 전에 
서둘러 교미를 끝낸 암사마귀가 
숫사마귀를 뜯어먹었다 
단 한번의 정사를 위해 
벌들이 공중으로 전 생애를 던졌다
버둥거리며 뒤집힌 몸을 일으켜 세우고 
쇠똥구리는 둥근 대지의 페달을 
부지런히 밟았다 거미는 발을 헛디딘 
잠자리의 체액을 거핌없이 빨았다
나무와 풀은 함부로 웃자랐다 
바위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강과 저수지는 자주 사람을 잡아먹었다 
수억만 리 물길을 뚫고 연어 떼가 돌아왔다 
멀리서 산은 팔짱을 낀 채 
양떼구름을 지키고 있었다 
하늘은 별 생각 없이 
핏빛 노을을 풀어놓았다



원본 그림 보기



탐미적인, 스타일을 좋아라 하는 내 취향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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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1차가 연필소묘, 2차는 혼합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색체였다.
2차는 3일간 치뤄야했다.

요즘 입시도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는 꽤 파격적이었다.

시험 자체가 난이도가 높았기에

첫해에 6개월 만에 1차를 통과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첫번째 실기를 보고 나온 내 실기 수준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이나 얼굴이 화끈하다.


주제는 '본인의 손을 중심으로 현장 공간을 연출해 그리라'는 것이었다.

소묘를 겨우 할 줄 아는 실력으로 공간연출이라니.

말도 안되는 그림을 그리고 당연히 1차도 떨어졌다.

2년은 준비해볼 요량으로 시작한터라 바로 내년 시험을 준비한다. 


한 해는 빨리도 돌아와 입시 현장.

두번째 나타나자 시험 감독하러 들어온 조교님이 늘었네요. 라고 아는체를 한다.

조교가 알아볼 만큼 실력은 일취 월장한다.

가볍게1차 통과. 그러나 2차의 혼합재료를 다루기에는 어설펐다.

2차에서 똑 떨어진다.


'고흐의 사진을 보여주고' 올드팝 '빈센트'를 들려주고

3일간 6장의 그림으로 스토리텔링하라.

스토리는 기막히게 만들었다. 손이 못따라줘서 그렇지.

2차 면접을 통해 스토리를 설명하는데,

그제서야 내가 뭘 그렸는지를 파악한 면접관의 안타까운 눈빛을 읽는다.

실기력을 올려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 시험을 볼 때 조교가 이제는 먼저 와서 아는체를 한다.

'현진씨, 정말 많이 늘었네요.'

연속 세번 실기장에 나타난어느 집념의 학생이 눈에 띄었겠지.

그래 나도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세번째는 힘들었다. 학원비용도 많이 배려를 해주어

부담을 덜었음에도 재료비는 벌어 써야 했기에. 


결론적으로 휴학생 신분으로 치른 세번의 입시는 실패했다.

세번까지 가볼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에 선택한 사항이고

이 일을 하게되면 예술을 즐기면서 생활도 할수 있을 거란

막연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름으로는 여러 경로로 수소문해

2,3학년에 재학중인 선배들을 찾아가 그림 평가를 받아보기도 했고,

이미 무대미술 분야의 직업을 갖고 있는 졸업생을 찾아가 상담을 청해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지금 갈길을 찾고 있다면 나처럼 그 분야 선배를 찾아가 인터뷰를 해보라.

300프로젝트의 인터뷰 시도를 나는 이때부터 시도했었다.)


정말로 간절했다면 아마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라도

강남의 명문으로 소문난 입시미술학원에 합숙이라도 하러 갔을 것이다.

집착은 했지만 집요하진 못했다.

누구는 배수진을 치고 죽기살기로 덤빈다지만 내 생에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정도 했으니, 난 할만큼 했다라는 약간의 미련이 남는 정도까지

무려 세 번의 시험을 보고서 마무리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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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뭔가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그림을 그리자. 그런데 입시미술은 안되겠다.
종합적인 예술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용케 찾아낸 것이 '무대미술'이라는 종합 장르의 예술이었다.


희곡을 읽고, 시각적으로 해석해서 공간을 상상하고,

연출과 배우와 조명과 소리와 무대위의 소품과 조화를 이뤄내고

그러려면 그림을 그릴줄 알아야겠지.  


아무것도 모르던 때는 저 일을 하려면 일차적으로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가르쳐 주는 학교를 가야 하는구나.


딱 두군데 있었다. 관련 경력이 2년 이상 있어야 하는

무대미술 아카데미 그리고 일반 대학과 비슷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내가 도전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곳은 후자였다.

실기시험을 보고 그걸 통과하면 되는건가?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6개월간 학원비를 마련하겠다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틈틈히 무대예술이라는 장르를 탐구하기 위한 연극공연을 찾아본다.

이 때의 나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희곡'이 연극무대로 공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다닐때 학교만 등교하지 말고 미리 접했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동안 입시학원을 다니려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문고에서 데이터베이스 입력하기도 하고, 레스토랑 서빙,

심지어 '국샘'이라 불리며 보습학원에서 국어강사도 했다.


21세. 2월 8일. 년도는 가물해도 날짜는 잊혀지질 않는다.

입시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수능을 치는 입시생도 아닌, 독특하게도 한여름에 실기시험을 치뤄야 하는 때라
내가 실기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6개월 남짓이었다.

2절 스케치북에 연필을 깎아 어깨를 사용한 가로로 선긋기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세로로 긋고, 다음날은 삼각뿔을, 축구공을, 타이어를....
아침부터 나가서 종이 3장을 연필로 까맣게 그려나갔다.
어제보다 조금 발전한 내 실력에 희열을 느낀다.

새끼 손가락으로 고정하고 그리는 습관으로 나중엔 새끼 손톱이

종이결에 닳아서 피가 베어 나올 정도였다.

시간을 투자한 만큼 정비례하는 그 짧은 기간이 행복했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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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실험실에 있는 것을 견딜수가 없으니 관심은 과생활 밖으로 향했다.

한창 대학 동아리에서도 신입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선배들을 따라 동아리 순례를 하는데

유독 봄바람에 실려오는 향을 따라 움직인 곳이 서예동아리방이었다.

벽에 는 연습한 글을 걸어 놓은 화선지가 날렸고, 한쪽에선 먹을 갈고 있었다. 그 향에 반했다.

사실 서예 자체가 좋았던건 아니고 사람들이 좋았다.

수업 끝나면 바로 동아리방으로 가서 수다를 떨거나

날적이라 이름불리는 공용 낙서전용 노트에 글을 적었다.

한 감성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누군가는 그날의 감상을,

마음에 담고 있는 고민을 적었고, 누군가는 답을 했다.

나도 글 쓰고 답하는걸 즐겨했다.

전공수업에서 도피하듯 동아리 방에서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과 수업은 고등학교의 재판이었다.

10대의 아름다울 한 토막을 뭉텅 고스란히 날려보낸 수학 시간.

그 때의 상실감을 스무살에 와서도 반복하고 있었다. 한 학기를 어떻게 견뎠나 모른다.

그렇게 여름 방학을 지나고 목적없는 휴학을 한다.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하는지 고민한다.

그 와중에 그림은 한번 그려보고 싶어서

대학부설 평생교육원 취미미술반에 등록해서 그림도 배워본다.

그때 아크릴, 유화라는 그림 도구들도 접하게 되고 누드화도 처음 접한다.

(몇년 후 이 때 모델이 되었던 언니와 재회할 일이 생긴다. 세상은 좁다.)


- 위 사진은 본 내용과 아무관계 없음 -



꽃그림을 즐겨 그리는 청담동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스무살의 방황하는 휴학생이 들어있다.

내가 생각하는 잘 그리는 그림은 사물을 보고 똑같이 그려내는 수준이었고, 그것을 욕망했다.

평생교육원 수업을 맡은 교수님은 현직 추상화가였기 때문에 나에게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을 그리라'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해댔다.

결국 미대 입시 준비를 하던 친구를 꼬셔 그에게 소묘를 사사받는 것으로

내가 그리고 싶어하는 그림을 알게되고 자연스레 일요화가 코스프레 생활을 접는다.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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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희망 '직업'을 써서 내라. 3순위까지.

공교육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씩 받아봤을 진로조사.

중학교 1학년 14살. 나는 설문조사란에 '시인'이라고 적었다.

나머지 2,3순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적어낸 대부분은 과학자, 교사, 약사, 회사원이 대부분이었을터.

'시인'이라 적어 낸 눈에 띄었는지

담임 선생님은 '우리반에서 시인을 직업인으로 쓴 애는 너 뿐'이라 했다. 


이즈음의 또래 소녀들이 그렇듯 나도 그런 소녀였다.
한국 단편 소설집을 읽고, 시를 읽고, 봄에는 꽃잎을,
가을에는 낙엽을 주워다가 책갈피에 끼워넣는.
웃음 많고 수다 많던 소녀였다.
그 아이가 '시인'을 이라고 적은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살 수 어른이 될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서이지 않았을까?






6년 후 스무살. 3월의 봄학기. 소녀는 스무살의 새내기가 되었다. 
'지금부터 나가서 은행잎을 따오도록'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내린 지시였다.
아 은행잎을 따오라니, 대학의 수업이 이렇게 낭만적인가.
똑같이 생긴 은행잎을 걔중에서 더 예쁜 은행잎을 확보하겠다고 눈에 불을 켰다.
우르르 한손 가득 은행잎을 들고 강의실로 다시 들어갔고, 이내 교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징코산 추출 시범을 보이겠다.'
한동안 은행잎에서 추출한 징코산의 약용화가 대중화되던 시점이었다.
나는 은행잎을 고이 따다 책갈피에 끼워넣는 대신 은행잎을 짓이겨
여러차례 화학공정을 거친 후 필요한 성분을 추출해내야했다. 

그렇다,내가 있던 곳은 실험실. 내 전공은 식품공학.
내가 4년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수학, 물리, 화학이었던 것이다.
진로 적성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로 집어 넣은 원서 하나로 결정난 내 전공.
공교육의 피해가 고스란히 낭만으로 넘쳤어야 할 스무살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때부터였다.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은.


Posted by 카페인 코치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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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용
    2014.02.20 07:1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게 어떻게 공교육에 폐해인가유
    • 2014.02.20 23:2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중학교 시절 미래의 꿈이라는게 '직업'을 적으라는 것 정도였죠.
      내가 뭘 잘 할수 있는지, 어느곳에 재능있는지 공교육을 받는 동안은 알 기회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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