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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행칼럼

[월간 VIVID BNT] 구글맵으로 여행기획하는 여자

[여행문화 기획자 박현진 칼럼]
구글맵으로 여행기획하는 여자 남의 이야기만 하면서 정작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 집어내지 못하는 사람들. 본인이 가진 콘텐츠를 발굴해 책으로 엮을 소재를 발굴하는 탐험캠프가 있으면 어떨까? 제주도가 적합할것 같은데. 존경하는 글쓰기 코치로부터 이런 여행을 기획하지 않겠느냐고 제안받았을 때, 나는 제주도를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책이 될만한 이야기를 발굴하겠다는 고객층이 두꺼울 리도 없었다. 시간 여유가 충분하지 않기도 했거니와 이 기획 하나를 위해 현장 답사를 갈 수 없었다. 제주에 관한 정보라고는 한라봉과 한라산이 전부인 채로 우선 기획부터 들어갔다. 주제는 ‘책이 되는 내 이야기 탐험캠프’. 컨셉은 내 이야기는 한 줄도 안 쓰면서 남의 이야기에 빠져 산 당신 인생의 작가는 바로 당신. 당신의 이야기를 발굴하라. 장소는 제주도. 답사 대신 나는 구글 지도를 불러들였다. 내가 그 장소에 가보진 못하더라도 컨셉만 있다면 동선을 짜고 지리를 파악하는 데는 문제없었다.

이 여행기획의 핵심은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캠프라는데 있다. 장소보다는 내용이 중요했다. 이 컨셉을 어떻게 여행에 잘 녹여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차라리 안 가본 곳이라 상상에 제한은 없었다.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데 시간 대부분을 쏟을 테니 장소선정이 핵심이었다. 육로가 없는 곳 제주. 그중에서도 제주의 땅끝인 섭지코지에 있는 휘닉스 아일랜드에서 2박의 여정을 풀기로 했다. 휘닉스 아일랜드는 이미 부지 내에 안도 다다오 명상센터가 있고 제주올레 길이 지나는 곳이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걷기와 명상만큼 적절한 것이 있는가. 게다가 땅끝이라는 장소의 절박함까지 더해지니 최적의 장소였다.

일정도 단순하다. 제주의 주요 관광시설은 애초 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다. 술과 여흥이 있는 식사도 없다. 단지 걷고, 요기하고, 생각하고, 이야기나누고, 코칭을 받는 것이 깨어있는 시간에 할 일이다. 컨셉을 명확히 하니 기획자로서 할 일이 분명해졌다. 섭지코지, 올레길, 김영갑 갤러리, 세 포인트만 잡았다. 첫날은 쓰고싶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땅끝마을 섭지코지에서 명상센터와 주변 산책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둘째날은 올레길을 걷는다. 중간중간 코치와 깊은 대담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한다. 올레길의 끝무렵 김영갑 갤러리에 들러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진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절박함을 느낀다.

과연 진행될까? 반신반의였다. 이런 시도에 돌아올 피드백이 궁금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관광지로서 알던 제주가 자신의 이야기가 주인공이 되는 경험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관광이 목적이었다면 이런방식으로 여행기획한다는 것은 무모한일이었을 것이다. 종종 새로운 여행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나는 구글맵을 켠다. 거기서 알지못하는 세계를, 지도 위에서 마음껏 상상하곤한다. 모르기 때문에 상상력이 제약받지 않아 더 재미있다.

글, 사진 박현진 (www.sentipark.com)





이 글은 김경호의 VIVID BNT News International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