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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획&기록/산티아고BuenCamino

[Buen camino] 드디어 친구가 생기다


2009.11.02
에스텔라 - 로스아르코스 : 21.8km



어제 비가 온 뒤 제법 쌀쌀해진 기온으로 상쾌한 걷기가 시작되었다.
새끼발가락 물집을 실리콘 밴드로 동여매고 만반의 준비로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변덕이다.
첫 번째 고개를 넘어서자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쬔다.
황토 빛 땅이 환하게 개고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반가운 산티아고 길의 날씨다.



두 번째 고개를 넘어서자 바람이 마구 불기 시작한다.
갈대길 사이로 갈대보다 더 흔들리는 바람이다.
그리고 슬슬 춥다. 땀이 나기도 전에 식어버렸다.
그래도 비를 맞고 걷게 되지 않음에 감사하나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이 들 정도다.
이때 나의 장갑과 귀가리개가 딸린 모자가 위력을 발한다.
물론 바람막이가 되어줄 나의 주황색 점퍼도.

뒤에서 '안녕안녕'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드레아다.
어디선가 줏어들은 한국인사를 배워서는 동양인이 보이면 인사를 건넨다.
몇 걸음 걷다가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내 눈치를 보더니 혼자 걷고싶냐고 묻는다.
"너만 괜찮으면 같이 걷고 싶어."
"난 상관없어."

소방관인 이탈리아인. 올 연말까지 휴가라고 한다. 한 50여일 정도. 휴가를 받았다.
대신 그동안 황소같이 일했다고 한다.

어딜가나 서먹한 사이에는 '날씨'이야기를 꺼내는게 장땡이다.
"바람 부는 날씨를 좋아하니?"
"응 좋긴 한데 좀 춥다."
"춥다... 안녕, 왜?, 가자" 그동안 학습한 한국어를 쭉 나열하고 자랑한다.
 
발바닥이 하중의 한계에 다다를 때쯤 마을이 보인다.
오늘은 안드레아가 길동무가 되어준 덕분에 기적이 발생했다.
2시가 되기 전에 입성하다니 생장 출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발바닥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여기 알베르게까지 들어온 안드레아,
8킬로를  더 갈 것이냐 이 마을에서 잘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더니
같이 밥만 먹고 떠나겠다고 한다.
"그래 그러자. 근데 우린 요리해 먹을 건데...스파게티 해줄래?"
"너희들이 원하는 건 다 해줄게."
자연스럽게 안드레아는 눌러앉았고 요리사 섭외까지 완료되었다.

바에 가서 또띠아에 홍차 한 잔을 마셨다. 안드레아가 사주었다.
그럼 와인은 우리가 살게 저녁 파티나 하자.
이렇게 해서 최초의 파티가 기획된다.

이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나게 된 엔젤 커플.
사람 좋아보이는 미국여인. 엔젤. 그녀는 팜플로냐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과 세계여행 중이다. 8월에 독일에서 시작해 여행은 독일, 파리를 거쳐 산티아고,
그리고 프라하를 거쳐 호주로 넘어갈 계획이다.
산티아고는 내일까지만 걷는다. 그럼 마지막을 기념하는 파티를 오늘 하자.

이곳 알베르게는 사설로 개인 별장 같은 곳이다.
거실에 놓인 벽난로가 편안한 카페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곳이 순례자 커뮤니케이션의 중심구역이다.
주인 아저씨가 분위기를 타면서 스페인 공연을 틀어준다.
"플라멩고 좋아해요?"
스페인 음악의 쥐어짜는 정서 판소리와 비슷한 것이 낫설지 않다.
이 알베르게에 머물면서 오늘 저녁, 진짜로 여행을 온 것 같다.


▲ 각자 갖고 있는 음식을 내놓고 자신있는 요리 하나쯤 해놓는다. 그래서 더욱 풍요로운 식탁.



▲ 벽면의 지도를 보면 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대륙에서 왔다.

6:30 슈퍼가 문을 여는 시간 약속대로 안드레아가 스파게티 재료를 산다.
센티는 샐러드를 만들었고,  안드레아는 스파게티를 만든다.
그리고 순례자 11명이 모인 오붓한 저녁시간을 맞이했다. 
 


2009 santiago de compo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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