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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생활의 발견

[100일 글쓰기] #73 노트북 열기 전에

 주말에 TV채널을 돌리다 '알쓸신잡'을 봤다. 알쓸신잡은 '알아두면 쓸데 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에서 따온 말이다. 작곡가 유희열을 MC로 두고 작가 유시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뇌과학자 정제승 , 각 분야의 잡학전문가 5명이 여행하며 먹고 마시고 수다떠는 내용을 주구장창 담은 일상 예능 프로그램이다. 음식 상 앞에서 술도 없이 남자들이 수다 떠는 포맷이 신선하다. 

 수다 거리로 다양한 주제들이 식탁에 오른다. 마침 내가 본 장면은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대한 이야기였다. 1984년 서울대 학생 이었던 유시민은  프락치 사건 배후조종자로 몰려 구속된다.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이유서를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판사들도 돌려가며 봤다는 그 문서를 어떻게 썼는지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되었다. 

 작성에 든 순수한 시간은 14시간, 200자 원고지 100장으로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다. 놀라운 건 퇴고를 거치지 않고 한번에 썼다는 것이다. 안나오는 볼펜으로 종이에 자필로 써야 하고 퇴고를 할 상황이 되지 않아서 머리속에서 모든 구상을 끝냈어야 했다고. 육필원고가 책이 되는 시대를 보낸 작가들은 지금의 원고 생산 방식이 편해졌다고 한다. 육체 노동이 줄은 것이지 생각구상은 크게 변한게 없다고.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는 어떻게 매일의 마감을 맞추기 위해 글을 생산하나 생각해 본다. 일단 키보드에 손가락을 대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루동안 떠오는 주제만 하나 잡고 노트북을 펼친다.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에 대한 감이나 결론을 정해두기가 쉽지 않다. 쓰다 보니 결론이 나와서 문단으로 나뉘고 결론으로 완결되는 모양새는 갖춘다. 이게 맞는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머릿속에 구상하고 일필휘지로 써내는 능력이 부럽기도 하고 내가 닿을 수 있는 지점 일까 의심도 들고 그렇다. 키보드에 손 얹기 전에 구상하는 습관을 들여봐야겠다. 


4.5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