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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생활의 발견

[100일 글쓰기] #37 물건버리기

 우리집엔 냉장고가 4대다. 첫번째는 양문형 대형 냉장고, 두 대는 김치 냉장고로 각종 과일, 야채, 김치 보관용이다. 나머지 한 대는 어머니가 경품으로 받아온 냉동고다. 새 것인데 마땅히 쓸데는 없어서 그 안에는 수건을 채워놓았다.

 내일부터 대대적인 집수리에 들어간다. 도배 장판을 기본으로 화장실, 주방까지 전부 교체하는 큰 공사이다. 약 열흘간 집을 비워야 한다. 가장 큰 일은 살림을 다 꺼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평수에 비해 집안 살림이 어마어마하다. 이 집에서 산 지가 20년이다. 즉, 살림의 무게가 20년치인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 이참에 안쓰는 물건들을 버리길 권했다. 

 냉동고에 있는 수건이 말해주듯 부모님은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20년 만의 대청소를 하면서 우리집에 이렇게 새 물건이 많은줄 몰랐다. 엄마 세대에 핫 했을 주석잔, 크리스탈 물컵, 고급 찻잔이 그대로 모셔있다. 그뿐 아니라 골동품 천국 이기도 하다. 30년 된 비디오 플레이어와 TV 장이 안방 구석에서 나왔을 때는 충격적 이기까지 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예쁘고 귀하니 너희들 시집갈 때 가져가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언제 쓰임이 있을지 모르니 갖고 있겠다는 것이다. 엄마시대의 핫 아이템들이 딸 세대에 통할리도 없고, 오랜 물건은 다시 쓸 일이 없다. 나는 과연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 

 언제 쓰일지 모를 물건에 치여, 우리는 좁은 공간 생활을 한다. 과거 우리 가족과 일상을 함께 보낸 물건들과 작별식을 하고 싶다. 과거와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새로운 공간에선 산뜻하게 현재를 맞이하고 싶다. 과거의 물건들로 더이상 현재를 채우지 않는 것으로 바로 지금에 집중하는 힘을 갖고 싶다.

오래된 앨범에서 나온 사진은 디지털 스캔을 받아 남겨야 겠다. 


4.65장